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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력의 진화] 호모사피엔스의 진화 

 

인간의 사고력은 다른 종과 달리 어떻게 생겨났을까. 사고력이 있어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신경인류학의 관점에서 살펴봤다.

인류를 다른 종과 구분해주는 특징은 무엇일까? 인류학자는 대략 10가지 특징을 제안한다. 지방이 많은 신생아, 느린 생애사, 체모 소실, 월경, 음경골 소실, 두발 걷기, 언어, 대뇌화, 뇌 편측화, 출생 후 뇌 성장이다. 이 중 무려 네 가지 특징이 지능과 관련된다. 뇌의 주 기능은 바로 ‘사고’다.

18세기경, 칼 폰 린네(Carl von Linne)는 세상의 여러 동식물에 다양한 학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인간에게는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라는 이름을 주었다. 사피엔스는 지혜 혹은 지식이라는 뜻이다. 린네는 인간의 독특성이 바로 고도로 발달한 뇌, 즉 사고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_ 사이즈 혹은 에너지

1858년, 해부학자 리처드 오언(Richard Owen)은 인간의 뇌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유인원에서 발견되지 않는 ‘소해마(hippocampus minor)’는 인간만 가진다고 주장했다. 기억과 관련한 뇌 구조물이다. 오언은 진화론에 반대한 학자였는데, 인간만 가진 ‘창조적’ 특징을 믿고 싶었나 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5년 만에 공박을 받았다. 인류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는 유인원도 동일한 구조물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다윈의 불독’으로 불린 인물이다. 창조든 진화든 인간만 가진 별개의 뇌 구조물은 없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가 가진 독특성은 어디서 나올까? 일단 물리적 크기다. 인간 뇌는 다른 동물의 뇌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물론 ‘상대적’으로 말이다. 코끼리의 뇌는 인간보다 네 배나 크고, 체중 대비 용적은 두더지가 더 크다. 그러나 대형 포유류 중에서 상대 뇌 크기는 인간이 독보적이다. 약 2~4배는 더 크다. 하지만 그래봐야 고작 몇 배다. 더 중요한 특징은 에너지 소모량이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뇌는 아주 ‘비싼’ 기관이다. 체중의 약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소모량은 20%에 달한다. 인간이 먹는 음식의 1/5은 뇌가 먹는다. 신생아의 뇌는 전체 칼로리의 60%를 쓴다.

인간은 뇌에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할당하기 위해서 다양하게 적응했다. 고기와 꿀 등 양질의 음식을 선호하고, 불과 요리로 소화를 도왔다. 심지어 위장관 등 다른 신체 기관의 크기도 줄여버렸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에너지를 아껴서 머리에 집중 공급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만큼 뇌가 하는 일이 많았다. 바로 ‘생각’하는 능력이다.

나_ 사고력의 진화

원시인류는 왜 그렇게 크고, 비싼 뇌를 원했을까? 크게 세 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 식이 가설. 인간은 잡식성 동물이다. 사냥도 하고, 채집도 한다. 다른 동물은 ‘생각’도 못 하는 식재료를 구하고, 가공하고 조리해서 섭취한다. 머리가 좋아야 다양한 재료로 만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머리가 나쁘면 그냥 풀이나 뜯어 먹어야 한다.

둘째, 도구 가설.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 쓰는 유일한 종이다. 도구적 지능은 사고력의 핵심이다. 지능검사의 절반이 바로 동작성 지능을 평가하는 항목이다. 도구를 잘 활용하면 생존 가능성이 높아졌고, 자신처럼 손재주가 뛰어난 자식을 많이 낳아 잘 키울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손은 뇌의 일부다.

셋째, 마키아벨리 가설. 인간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동물이다. 덕분에 거짓말도 잘한다. 타인을 잘 기만하면서, 정작 자신은 속지 않아야 삶이 더 ‘윤택’해진다. 인간의 대화는 거짓말이 반, 허풍이 반이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이라면 잘 가려서 들을 것이다. 지능검사의 절반은 언어성 지능을 평가하는 항목으로 구성된다.

이 밖에도 복잡한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가장 중요한 단일 요인은 없다. 아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복잡다단한 인간의 사고력이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여러 지능은 보통 시너지 효과를 보인다. 그래서 도구를 잘 쓰는 사람이 말도 잘하고, 친구도 많고, 사기도 당하지 않고, 요리도 잘한다. 지능의 여러 특징은 공진화했다.

다_ 과거의 뇌, 현재의 세상

다른 동물에 비하면 인간의 사고능력은 아주 인상적이다. 그러나 전지전능한 것은 아니다. 앞서 말한 대로 뇌는 아주 ‘비싼’ 기관이다. 따라서 꼭 필요한 능력만 골라서 장착했다. 354×675를 한 번에 암산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데, 과거 인류는 이런 계산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2개 사물 이름을 불러준 후, 한 번에 외우는 것도 대단히 어렵다. 우리 조상이 살던 세상에는 7개 혹은 8개 이상의 사물을 동시에 추적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전화번호는 보통 일곱 자리 혹은 여덟 자리다. 더 늘어나면 외울 수 없다. 전화국 사장은 아홉 자리나 열 자리 전화번호를 쓰고 싶겠지만, 불가능하다. 굳이 복잡하게 국가번호, 지역번호로 나누는 이유다.

반면 과거에 자주 접하던 상황을 만나면 머리가 아주 쌩쌩 돌아간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투석이다. 호모사피엔스는 물체를 투사하여 사냥하는 독특한 종이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은 창이나 화살 등 투사형 도구를 몰랐다. 일부 인류학자는 네안데르탈인이 호모사피엔스에 밀려 사라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근접 사냥에 의존한 탓이라고 여긴다.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에는 여기저기 골절의 흔적이 참 많다.

아무튼 인간은 던지기를 참 좋아한다. 투포환이나 원반던지기, 투창뿐 아니라 야구와 농구, 핸드볼, 양궁, 사격에 이르기까지 무엇인가 멀리 던지고 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걸 참 잘한다. 그래서 유원지에는 야구공이나 표창을 던져서 동물 인형을 따는 코너가 인기다. 투사형 물체로 동물을 사냥하던 원시적 기억의 잔재다.

뭐, 공 던지기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현대인은 좀처럼 사냥할 일이 없지만, 농구 경기를 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니 말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유용했어도, 현대사회에서 오작동하는 사고력도 있다. 현대인의 불행은 대개 사고력의 결핍이 아니라, 잘못된 과잉에서 기인한다.

라_ 어느 숲으로 갈까?

사냥에 나선 원시인. 왼쪽과 오른쪽에 모두 숲이 있다. 어느 쪽으로 가야 사냥감이 많을까? 어제 가본 왼쪽 숲에서 토실토실한 토끼를 보았다. 그제 가본 오른쪽 숲에서는 허탕을 쳤다. 잠시 고민한 원시인은 왼쪽 숲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의사결정은 합리적일까? 물론이다. 토끼는 혼자 사는 일이 없으므로, 아마 왼쪽 숲에는 여전히 토끼가 많을 것이다. 허탕을 친 곳에 뜻밖의 사냥감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생태학적으로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판단을 대표성 경험칙이라고 하는데, 자연의 세계에서는 제법 잘 작동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아니다. 항상 주가가 오르는 기업은 없다. 반대로 항상 내리는 기업도 없다. 사실 주가는 평균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보이므로, 남들과 반대로 행동하는 편이 유리하다. 그러나 현대인의 원시적 마음은 그렇지 않다. 어제 토끼를 본 숲에서 오늘도 토끼를 보았으니 내일도 볼 것만 같다. 곧 왼쪽 숲과 사랑에 빠져버린다. 원시인은 며칠이고 계속 허탕을 쳐야 이내 오른쪽 숲을 쳐다보기 시작한다. 사냥이라면 며칠 굶으면 그만이지만, 주식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바닥까지 내려와서야 어쩔 수 없이 매도한다. 그러면 이내 반등이 시작된다. 매일같이 주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마_ 정말 딸기 숲이 있을까?

딸기 채집에 나선 원시인. 마을에서 한참 먼 숲으로 가려면 반나절이 걸린다. 그런데 막상 그 숲에 딸기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가까운 숲의 딸기는 모두 따 먹은 상태다. 어떻게 할까? 그 숲에 반드시 딸기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큰 자루를 메고 떠나는 원시인 A. 물론 열에 아홉은 허탕이다. 하지만 가끔 맛 좋은 딸기 숲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원시인 B는 다르다. 의심에 사로잡혀 반나절 원정을 끝내 마치지 못한다. 무려 90% 확률로 딸기 채집 가능성을 맞추었지만, 막상 딸기는 하나도 따지 못한다. 배가 고프다. 확증편향은 생태적 환경에서 유리한 경험칙이다.

그러나 확증편향은 현대사회에서 그다지 적합한 사고능력이 아니다. 희박한 근거에 기반해서 정보를 선택적으로 취득한다. 한번 고집을 부리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 생태적 환경에서의 자원 분포는 추계성을 보이므로 확신은 언젠가 보상을 받는다. 자포자기하는 편보다는 확실히 유리하다. 그러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런 확신은 금물이다. 숲 열 개 중 하나는 분명 딸기나무가 가득하겠지만, 열 번의 공무원 시험은 매번 독립 시행이다. 열 번 찍어도 안 넘어간다. 매번 새로운 나무를 찍는 것이니 말이다. 열 번이 아니라 백 번이라도 안 된다.

바_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는 메타 판단력

자신의 기억력을 걱정하며 진료실을 찾는 환자가 제법 많다. 혹시 치매는 아닌지, 건망증을 치료해야 하는지 묻는다. 감정 조절이 안 된다며 자책하는 환자도 많다. 화나고 우울하고 불안하다며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력을 걱정하며 진료실을 찾는 환자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선생님, 저는 참 판단력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판단을 믿지 않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중증 사고장애를 가진 환자도 자신의 판단력에 대해서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인류는 왜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는 메타 판단력을 진화시키지 못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고력은 결핍이 아니라 오작동이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고장애 환자는 사고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잘못 사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들려주는 진심 어린 조언도 무시한다. 꼰대니, 참견이니 하며 거부한다. 인간의 사고력은 사고 자체를 의심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최소한 자동적으로는 안 된다. 몹시 애를 써야만 겨우 가능하다.

가끔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 있다. 자신의 판단을 늘 의심한다. 다른 이에 대한 평가도 쉽게 내리지 않고, 세상에 대한 주관도 유보한다. 아직 이에 관한 연구는 드물다. 기존 지능검사로는 좀처럼 측정하기 어렵다.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학습되는 능력으로 보인다. 자기 확신을 의심하는 지능, 판단을 재고하는 메타 사고력은 종종 연령의존적으로 발달한다. 다양한 삶의 경험이 녹아들어야 비로소 가능한 능력이자,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성공과 행복을 보장하는 가장 확실한 사고력이다. 이러한 종합적·반성적·재귀적 사고능력을 흔히 ‘지혜’라고 부른다. 진짜 호모사피엔스다.

- 박한선 신경인류학자, 정신과 전문의

202203호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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