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STYLE] 옷 짓는 남자들 

 

정소나 기자
대한민국 1호 남성복 디자이너이자 대한민국 남성복 컬렉션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패션 디자이너 장광효. 서울패션위크에 최연소로 데뷔해 자신의 브랜드를 대표하는 ‘개 티’로 인기를 얻으며 디자이너 브랜드 단일 상품 최초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패션 디자이너 고태용.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스타일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자타 공인 대한민국 남성복 디자이너 정상의 자리에 오른 두 사람을 만났다.

▎비욘드 클로젯을 이끄는 고태용 디자이너와 카루소의 수장 장광효 디자이너.
“옷 만들 때가 제일 행복해. 그렇지 않아?” 선배 디자이너의 물음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요!”라며 후배 디자이너가 화답한다.

남성복 브랜드 카루소를 이끄는 장광효 디자이너는 국내 1호 남성복 디자이너로 남성복계의 대선배다. 국내 최초로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였고, 국내 최초로 파리 남성복 컬렉션에 참가하고, 최초로 홈쇼핑에 진출해 최고 매출을 찍는 등 가는 곳마다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여성복 위주의 한국 패션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그는 1987년 대한민국 남성복 시장을 개척한 패션 선구자다. 조용필, 소방차,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이정재, 정우성, 이병헌, 현빈 등 당대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카루소 옷을 입었고, ‘카루소 옷을 입지 않으면 스타가 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인기를 끌며 한국 남성복의 트렌드를 선도했다. 세월이 40년 가까이 흘렀지만, 장광효 디자이너의 컬렉션은 매 시즌 새롭기만 하다. 켜켜이 쌓아온 경험으로 여전히 완성도 높은 쇼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심지가 느껴지는 말투로 인터뷰를 이어가는 그에게서 패션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뜨거운 에너지, 1세대 디자이너 선배로서 한국 패션계와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는 책임감이 오롯이 전해졌다.

장광효 디자이너가 아끼는 후배로 지목한 고태용 디자이너는 2008년 비욘드 클로젯이라는 남성복 브랜드를 론칭했다. 서울패션위크에 최연소로 데뷔한 이후 매년 서울패션위크를 비롯해 뉴욕컬렉션, 차이나 패션위크, 이탈리아 피티워모 등 국내외 정상급 컬렉션에 참가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탄탄히 다져왔다. 일명 ‘국민 개티’로 불리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패치 도그 프린트 티셔츠로 브랜드를 널리 알린 비욘드 클로젯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젊은 옷’으로 서울의 힙한 아티스트들에게 사랑받으며 어느덧 서울패션위크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우뚝 섰다.

한국디자이너패션어워즈에서 2012년 신인디자이너상, 2019년 우수디자이너상에 이어 지난해에는 최우수디자이너상까지 거며쥐며 세 부문에서 모두 수상한 최초의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렸다. 15년 동안 단 한 시즌도 거르지 않고 서울컬렉션 무대를 지킨 중견 디자이너임에도 40년 차 대선배 디자이너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고 겸손해하는 고태용 디자이너. 선배 장광효 디자이너처럼 오랫동안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디자이너로 남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옷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선후배 디자이너가 청담동 카루소 쇼룸에서 함께 만나 각자의 패션 철학과 소신을 얘기했다.

두 분이 알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고태용(이하 고): 장 선생님은 데뷔 때부터 남성복에서는 가장 연차가 많은 선배였다. 사실 선배보다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정도로 까마득한 선배이시다. 대한민국 남성복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기에 선생님과 가깝게 지내면서 조언을 듣고 싶었는데, 그 당시에는 워낙 높으신 분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다 디자이너 활동을 꾸준히 하고, 매년 패션쇼에 참가하면서 선생님과 마주할 자리가 생기며 얘기를 나누게 됐고, 선생님이 선배 디자이너로서 이것저것 조언도 많이 해주시면서 가까워졌다. 워낙 대선배님이시다 보니 선생님을 어려워하는 디자이너가 많은데, 가깝게 지내게 돼서 너무 좋다.

장광효(이하 장): 우리가 알고 지낸 게 15년쯤 됐나? 컬렉션 기간에는 설사 초대를 받지 않아도 여러 후배의 쇼에 찾아가 무대 뒤에 멀찌감치 서서 관심 있게 지켜보곤 한다.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은 쇼의 콘셉트가 정리된 브로슈어를 본 뒤 옷을 보면 콘셉트가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것처럼 딱 와닿는다. 태용씨가 그랬다. 몇 시즌 동안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카프다(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 KFDA)의 제일 어른이신 안윤정 선생님이 카프다 신인 중에 똘똘한 아이가 하나 있다며 장 선생님도 신경 써 봐주시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냐고 여쭤보니 고태용이라고 하시더라.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언급하시니 부쩍 관심이 쏠렸다. 보면 볼수록 기본기가 탄탄하게 잘되어 있는 데다 정기적으로 컬렉션에 참가하는 꾸준함, 디자이너로서의 의식이 충만한 친구여서 특히 애정하는 후배 디자이너다.

특별히 남성복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있나.


고: 남자인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입고 싶은 옷을 우선순위로 생각하며 디자인을 하다 보니 남성복 외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남성복 디자이너가 된 것 같다.

장: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첫 직장이 남성복을 만드는 캠브리지였다. 당시 여성복 위주의 반도패션과 캠브리지에 모두 합격해 어디에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대학 시절 은사님이 ‘우리나라에 남성복 디자이너가 많지 않으니 너의 실력으로 남성복 시장을 개척해보는 게 어떠냐’며 캠브리지 입사를 추천하셨다. 그렇게 운명처럼 남성복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지금껏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영감을 얻는 원천과 콘셉트 작업 방식은.

고: 27살 어린 나이에 컬렉션에 데뷔했는데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 콘셉트 잡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는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그동안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컬렉션 테마로 선정해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노력했다. 매년 컬렉션을 하며 디자이너로 살다 보니 브랜드가 빠른 시간 내에 좋은 반응을 얻었고, 남들보다 훨씬 더 빨리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받아들이며 좋은 취향을 체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접한 다양한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대중에게 소개하며 취향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테마를 정하고 있다. 보통 쇼의 콘셉트를 먼저 정하고 나서 그다음에 어떤 옷을 만들어야겠다고 텍스트로 정리한 후, 그 아이템들을 콘셉트에 맞게 디자인으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한다.

장: 디자이너로 일해온 40여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옷을 보고 입어봤는지 모른다. 요즘도 쇼룸 주변에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나 유명 패션 하우스 등을 방문해 옷을 관심 있게 보고, 직접 입어보기도 하며 트렌드를 면밀히 살피다 보니 내 디자인도 세계시장의 유행 경향과 발맞추게 되는 것 같다. 디자이너가 콘셉트를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좋은 옷을 보고, 직접 입어보고 패턴과 봉재의 차이점도 느끼고 옷과 함께 호흡하는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옷을 만지작거리며 몸으로 배운 장점들을 받아들이고 반영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작업에도 그때 느낀 좋은 감정들이 투영돼 새로운 작업으로 술술 풀어낼 수 있게 됐다. 보통 쇼 한 달 전에 완성된 작품들을 모델에게 입혀보고 스타일링을 하고 순서도 정하면서 거기에 맞춰 떠오르는 영감들을 정리해 컬렉션의 콘셉트를 정하는 편이다.

상대방에게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다면.

고: 선생님께도 자주 말씀드리지만 나는 선생님처럼 이렇게까지는 못 할 것 같다. 40년이라는 시간을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컬렉션을 하고 계신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즐기면서 작업을 하자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컬렉션을 준비하며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컬렉션이 임박할 때쯤이면 ‘아 진짜 이거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무리 몇 달 전부터 컬렉션을 미리 준비하신다고 해도 선생님께서도 스트레스를 느끼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다. 꾸준함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나도 15년간 해오고 있지만, 앞으로 또 15년, 20년을 더 한다고 생각했을 때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선생님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 어려운 걸 한결같이 묵묵히 감내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장: 후배 중에 15년 동안 꾸준하게 컬렉션을 해온 친구는 고태용밖에 없다. 어쩌면 해외보다 지켜보는 후배가 많은 한국에서 컬렉션을 계속해나간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나만 해도 오랜 시간 컬렉션을 하면서 ‘젊은 디자이너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태용씨처럼 명민하고 열정적인 후배들을 보며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 남기 위해 디자인을 그만두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작품 같은 옷 VS 기분 좋아지는 옷


서로의 옷을 단어로 표현해달라.

고: 학창 시절부터 컬렉션에서 봐온 선생님의 옷은 ‘작품’이다. 약 3년 전부터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작품 컬렉팅을 시작했는데, 거장이라고 불리는 국내 작가들의 작업 방식과 가치관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내가 만드는 옷에도 미술작품처럼 삶과 가치관이 깃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다. 오랜 시간 두고 볼 수 있는 미술작품과 달리 패션은 굉장히 소모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선생님 옷은 그런 소모적인 옷이 아니라 한 벌 한 벌이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선생님이 컬렉션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활동도 다시 하셔서 작품 같은 옷을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 고태용! 비욘드 클로젯은 딱 내가 알고 있는 고태용 그 자체다. 젊고, 남성적이고, 귀여운 면모도 있다. 태용씨랑 얘기를 하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방방 뜬다. 청량음료같이 통통 튀는 매력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위트 넘치는 옷이 그를 꼭 빼닮았다.

성공한 디자이너가 되려면.

고: 아직 성공한 디자이너는 아닌 것 같다. 노하우라고 할 건 없지만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패션을 생각하고,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하는 것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기회가 많이 생긴 것 같다. 결혼한 지 2년 정도 됐는데, 결혼 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작업을 한다. 디자인을 할 때도 있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만 있을 때도 많다. 그래도 일단 사무실에 나가야 마음이 편하다.

장: 성공하고 싶으면 태용씨처럼 해야 하는 것 같다. 마음 내키는 대로 이것저것 다 하면서도 일은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 꼭 필요한 것은 해야겠지만, 대부분은 일하면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만큼 희생과 노력이 뒷받침되야 한다는 말이다. 기본 실력이 잘 갖춰져 있는 성실한 사람이 열정을 가지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상앞에 앉아 고민만 하더라도 작업실에 나와야 마음이 편하고, 열정을 쏟아 옷을 만들 때가 제일 좋은 사람만이 잠시 반짝 빛을 내는 디자이너가 아닌, 50~60대까지 오래 활동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가운데, K패션도 주목받고 있다.

고: 해외에서 유명 디자이너 상을 받으며 능력을 인정받은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글로벌 패션 하우스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하는 시대가 됐다. 오프 화이트가 한국의 뷰티 브랜드 아모레퍼시픽과 손잡고 한정판 제품을 선보였고, SPA 브랜드 자라가 아더에러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물론 BTS나 손흥민 선수 등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이 기폭제가 됐겠지만, 한국 패션의 위상이 높아진 건 분명하다. 지금처럼 막 시작한 브랜드들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것도 좋지만, 선생님처럼 오래 활동하시는 분들이 만든 옷들이 K패션의 성장과 함께 소개되는 것이 중요하다. 재능 많은 신인들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까지 세대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만드는 옷에 대한 이미지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장: 우리나라에서 소위 명품이라고 불리는 해외 수입 브랜드의 인기가 엄청나다.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마음에 드는 옷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설 정도다. 생각해보면 돈이 많아서 명품 브랜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안목이 높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다. 그들이 선택한 컬러나 패턴, 원단과 디자인이 감도 높은 한국 소비자의 취향을 충족해주니 많은 돈을 투자하고, 번호표를 받고 웨이팅하는 수고로움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안목이 높은 사람이 많다는 것은 좋은 디자이너가 나올 가능성도 많다는 얘기다. 패션에 관심이 많고, 세련되고 높은 안목을 가진 한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충족해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많아지다 보면 K패션의 수준도 덩달아 높아져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옷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실력 있고 감각이 뛰어난 K디자이너가 많아져 역으로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에서 러브콜을 받고,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에 브랜드를 론칭하는 등 K패션이 활짝 꽃피우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복 디자이너로서 한국 패션계나 소비자에게 바라는 점은.

고: 데뷔 초기 몇 년 동안이 한국 남성복 호황기였던 것 같다. 전체적인 쇼의 밸런스가 좋았고, 볼 만한 쇼가 참 많았다. 장 선생님 쇼를 보면서 옷의 본질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면, 어떤 쇼는 무척 드라마틱하고, 또 다른 쇼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다채로움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플랫폼이 생겨나면서 옷을 더 쉽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매출이 브랜드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격보다는 디자이너들이 옷을 만드는 과정이나 노력 같은 본질이 부각되어 옷에 담긴 가치가 잘 전달되면 좋겠다.

장: 나라에서 패션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공무원이 대상자를 선정한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기준으로 현장 경험이나 노하우가 풍부한 디자이너보다 신진 디자이너들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보니 해외시장에서 일회성으로 연습만 하다 돌아와 힘없이 사라질 확률이 높다. 마치 올림픽 100m 경기에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를 내보내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기 브랜드를 만들어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경험을 쌓으며 패션 비즈니스를 어느 정도 완성한 40대 디자이너들을 우선 선발해 지원해주면 좋겠다. 패션계에서 쓴맛 단맛을 두루 맛본 실력 있고 내면이 단단한 디자이너들을 세계시장에 내보내야 시너지 효과를 내며 K패션을 널리 알리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다. 대신 실력 있는 신인 디자이너들에겐 또 다른 콘텐트를 발굴해 지원·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선배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면밀히 전수하고, 후배들은 열정과 기술력을 무기 삼아 함께 잘 어우러질 때 패션계가 발전할 수 있다.

자신에게 패션은 어떤 의미인가.

고: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 유일하게 싫증 나지 않는 천직이다.

장: 나의 삶이며 열정이자 호흡이다.

앞으로의 계획과 비전은.

고: 처음 디자이너가 됐을 때는 유명한 디자이너, 돈을 많이 버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꾸준하게 한 가지 일을 해나가는 게 제일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선생님처럼 오래도록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장: 건강하게 활동을 마무리해서 후배들과 패션 관계자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기고 싶다. 남성복에 진심인 회사나 후계자가 있다면 카루소라는 브랜드를 물려주고 싶은 생각도 있다. 지금까지 힘들게 지켜온 카루소가 20~30년 후에는 디올이나 루이비통처럼 역사가 있는 브랜드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사진 김경빈 기자

202207호 (2022.06.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