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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준 로보케어 대표 

어르신 치매 예방 나선 소셜 로봇 

장진원 기자
인간과 상호작용하고 공감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치매 예방 교육과 발달장애 선별·진단 전문 로봇을 선보인 김덕준 로보케어 대표의 꿈도 그렇다.

▎반려로봇’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줄 것으로 기대되는 모델인 ‘보미2’를 안고 있는 김덕준 대표.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는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합계출산율은 0.8명대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 지표로, 0.8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 여성 1명이 평균 1명의 자녀도 낳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심각한 수준의 저출산은 자연스럽게 급속한 고령화로 이어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2000년부터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화사회는 불과 3년 뒤인 2025년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이어질 경우 2060년에는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40.1%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노인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치매환자의 급증이다. 2016년에 실시된 ‘치매유병률조사’에 따르면, 2018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약 75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현재 국내 추정 치매환자 수는 약 91만 명에 이를 것으로 파악된다.

고령화로 인한 치매환자의 폭발적 증가세는 치매관리비용의 급증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2020년 기준 1인당 연간 치매관리비용은 2100만원으로, 전체 치매 노인을 위한 관리비용은 17조6000억원에 달했다. 2022년 현재는 19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치매는 단순한 경제적 비용뿐만 아니라, 돌봄 부담 등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는 심각한 이슈다. 우리나라의 치매 돌봄 주체는 아직까지 가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치매환자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거나 스스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경우도 많다.

치매노인 돌봄과 치매 예방, 이에 더해 사회경제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덕준 로보케어 대표는 미래 첨단산업의 대표 격인 로봇 플랫폼을 통해 어르신과 아동을 위한 기초건강, 뇌 건강, 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는 상상을 현실로 풀어내고 있다. 창업 이래 10여 년간 쌓아온 로봇 기술과 관련 플랫폼 제작 역량으로 치매 예방과 노인돌봄, 발달장애 아동 선별·진단 등 사회적약자를 위한 서비스에 올인하겠다는 목표다.

사회적약자를 위한 로봇 서비스

로보케어의 출발은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과학기술부가 로봇 원천기술 확보를 목표로 관련 연구개발(R&D) 조직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두었고, 이를 바탕으로 2012년 KIST의 기술출자 1호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며 출범했다.

김덕준 대표와 로보케어가 인연을 맺은 건 2015년이다. 2002년 이후 1000억원 넘는 돈이 로봇 기술 개발에 들어갔지만, 관련 시장은 기대했던 것만큼 빠른 속도로 열리지 못했다. 로보케어도 재정난을 겪으며 인수자를 물색했고, 반도체 제조장비 사업으로 기반을 닦았던 김 대표와 인연이 닿았다. 김 대표는 이미 지난 2001년 글로벌스탠다드테크놀로지(GST)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경영해온 기업인이다. 반도체 제조장비 전문기업인 GST는 창업 4년 만인 2006년 코스닥시장 상장사로 이름을 올렸고, 2021년에는 매출 3044억원을 기록한 건실한 중견기업이다.

GST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배출가스를 정화하는 장비인 스크러버(Scrubber)와 공장 장비의 작업 온도를 제어하는 장비인 칠러(Chiller)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으로 국내는 물론 글로벌시장에서도 인정받는 강자다. 튼튼한 사업 기반을 갖춘 기업가가 로봇이라는 전혀 다른 업종에 뛰어든 배경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로봇 사업은 돈만 벌려고 해서는 할 수 없는 일 같다”며 “사회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답을 내놓았다.

“2015년 10월에 로보케어를 인수하면서 사회적약자를 위한 ‘돌봄 로봇’으로 사업 방향을 재정립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안내 로봇, 바리스타 로봇, 아이스카빙 로봇 등 다양한 서비스 로봇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로봇이라는 기술로 사회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직원들도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죠.”

김 대표는 로봇이야말로 기술과 인간이 공존하는 접점이라고 설명했다. 인간을 돕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로봇이라는 사업 방향은 치매 예방 교육과 개인 인지능력 향상 훈련, 가정용 돌봄 로봇, 최근에는 발달장애나 ADHD 아동을 선별·진단하는 로봇 개발로 이어졌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 기여하는 로봇, 이른바 소셜 로봇들이다.

“우리나라 치매환자 수가 100만 명 가까이 됩니다. 이분들을 케어하기 위한 국가 예산만 1년에 20조원 정도가 필요하고요. 치매를 사전에 예방해 환자 수를 10%만 절감한다 해도 수조원이 절감되는 셈입니다. 국가적으로도 꼭 필요한 사업이 바로 우리가 개발한 소셜 로봇들입니다.”

로보케어의 제품 라인업은 크게 치매 예방 교육과 어르신 돌봄, 발달장애 선별·진단 로봇 등으로 나뉜다. 이중 그룹형 인지훈련 로봇(시스템)인 ‘실벗(Silbot)’은 실제 치매 예방을 위한 현장 교육 과정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인기 강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2015년 삼성서울병원과 함께 인지훈련 콘텐트를 개발했고, 2016년 실벗을 개발해 수원시 치매안심센터 4곳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일반 고령자와 경도인지장애 어르신 등 최대 12명까지 동시 훈련할 수 있는 실벗은 친근하면서도 귀여운 외모와 동작으로 어르신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전문 의료기관과 협업한 교육훈련 콘텐트에 대한 강사진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었다. 실벗은 2017~2018년까지 전국 치매안심센터 50여 곳에 판매됐다.

로봇이 발달장애 아동 선별·진단


▎최근 개발을 끝낸 모델 ‘도리’는 세계 최초의 아동 발달장애·ADHD 선별·진단 로봇이다.
실벗의 성공적인 론칭 이후 위기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닥쳤다. 코로나19 팬데믹이다. 2020년부터 본격화된 팬데믹은, 노인들이 자주 찾는 센터와 경로당, 복지회관 등의 폐쇄를 불러왔다. 자연스럽게 실벗 보급도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개인형 인지훈련 로봇인 ‘보미1’을 국책과제로 개발한 동기다. 보미1은 노인들의 기초 건강과 뇌 건강을 위한 개인 훈련용 로봇으로, 삼성서울병원 등 국내 유수 대형병원과 함께 콘텐트를 개발했다. 간이치매검사를 비롯해 소근육 강화 운동, 기초 건강수치 이력 관리 등이 가능하다. 이상징후가 발견되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보호자(관계자)에게 알려준다.

보미1으로 가능성을 확인한 김 대표는 좀 더 큰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보미2’도 내놓았다. 보미2는 본격적인 가정용 돌봄 로봇으로, 치매 예방과 인지능력 향상 훈련은 물론 어르신들의 일상을 케어해주는 세계 최초 로봇이다. 일종의 ‘반려로봇’ 개념인데, 보미1의 다양한 콘텐트 외에도 복약 관리, 패트롤, IoT 의료기기 연결 등이 24시간 가능하다.

“어르신이 아침에 제때 일어나셨는지, 식사는 하셨는지, 약은 잘 드셨는지 확인하고 알려줍니다. 위험한 상황에선 응급알림 기능도 있죠. 단순한 AI 스피커 수준을 넘어 본격적으로 반려로봇 시대를 열 것이라는 기대가 큽니다.”

현재 보미2는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정보화진흥원 등의 실증사업 일환으로 광명시 20가구에 보급됐다. 성남시도 오는 9월부터 20가구에 보미2를 보급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보미2의 인지훈련 기능과 돌봄 기능에 대한 실증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친 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판매에 나설 것”이라 말했다.

아동 발달장애나 ADHD 선별·진단 로봇인 ‘도리’는 김 대표가 야심 차게 준비한 신모델이다. 귀여운 외모가 인상적인 도리는 관련 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인 안동현 한양대 교수와 함께 2015년부터 개발에 나섰다. 이후 한양대를 비롯해 성균관대, 광주과학기술원, 로보케어가 힘을 모았고, 2019년부터 2차 개발에 들어가 지난 5월에야 개발을 끝냈다. 현재 성남의료원, 성남산업진흥원 등과 함께 실증사업을 협의 중이다. 김 대표는 “증상 선별·진단뿐 아니라 로봇과 함께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스마트교육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도리는 멀티모달리티(Multi Modality: 전통적인 텍스트 외에 음성, 동작, 시선, 표정 등 다양한 입력 방식으로 인간과 시스템이 의사소통하는 방식) 체계를 적용한 진단시스템으로, 아동의 문제 행동을 감지한다. 아이들에게는 놀이로 인식되는 여러 활동 과정에서 아동의 특이성을 분석하고, 이를 빅데이터를 통해 진단하는 방식이다.

“ADHD 아동이 증가하면서 교육현장에서 도리를 찾는 수요도 크게 늘었습니다. 3~6개월간의 테스트 기간 동안 아동 1500명 정도를 진단했는데, 진단정확률이 98%까지 나왔습니다. 전문 의료진의 진단과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죠. 도리는 진단, 선별뿐 아니라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갖췄습니다. 학년별 수준에 따라 19종으로 세분화한 콘텐트죠.”

로봇 플랫폼 개발로 경쟁력 확장

실벗부터 도리에 이르기까지 김 대표와 로보케어가 걸어온 길은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도전들이다. 권위 있는 의료진과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로봇의 완벽한 동작을 위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제조와 판매까지 한 기업이 모두 해내고 있어서다. 김 대표는 “로보케어 인수 당시부터 주변에는 말리는 사람뿐”이었다며 “지금도 미쳤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모회사(GST)의 지원이 없었다면 훨씬 힘들었을 겁니다. 로봇과 인간의 인터렉션(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생존한 기업이 거의 없다시피 해요. AI 스피커 수준에 그치거나 서빙·안내 로봇 정도가 대부분이죠. 저도 로보케어를 인수한 지 7년이 됐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김 대표는 로봇이라는 플랫폼의 본질인 하드웨어를 제대로 갖춘 기업만이 관련 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는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탑재할 수 있지만, 로봇이라는 구동체 자체에 대한 제작 역량 없이는 승산이 없다는 깨달음이다.

“예전에는 로봇 한 종을 개발하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비용도 커지고 효율도 떨어졌죠.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하드웨어를 갖추지 못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죠. 이후 3년간 하드웨어 플랫폼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그 결과 로봇에 들어가는 보드 23종을 직접 설계하고 개발하는 과정을 마쳤죠. 로보케어의 로봇, 즉 하드웨어가 있으면, 고객이 원하는 목적과 용도에 따라 소프트웨어만 심어주면 됩니다. 로봇 하드웨어의 플랫폼화인데, 앞으로 로보케어만의 큰 강점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콘텐트의 플랫폼화도 로보케어의 지향점이다. 로봇서비스를 이용하는 개별 이용자(어르신)들의 데이터를 로보케어의 자체 서버 시스템으로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약, 식사, 기상 등 생활패턴은 물론 체중 같은 생체신호를 분석해 보호자와 공유한다. 김 대표는 “어르신과 보호자, 관계기관이 로봇으로 연결되는 상호관리 시스템 ‘GIANT’로 24시간 관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큰 타격을 줬던 코로나19 팬데믹이 점차 힘을 잃어가는 것도 호재다. 김 대표는 현재 성남시와 함께 지역 경로당 400여 곳에 로봇을 보급해 ‘스마트 경로당’을 만드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회사가 자리한 성남시 등 지자체, 한국정보화진흥원 등 관계기관과 협업해 스마트빌리지 조성 사업에 로보케어 제품을 보급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기업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매년 회사 수익의 1%를 사회에 환원하고 있고, 크고 작은 기부와 지원도 이어가고 있죠. GST가 유해물질 저감으로 환경에 기여하는 기업인 것처럼, 로보케어도 삶의 질을 높이는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정준희 기자

202208호 (202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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