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People

Home>포브스>CEO&People

양승열 새롬제약 대표 

진심을 담아온 30년 한약재 혁신 

장진원 기자
국내 한약재 시장에서 혁신을 거듭하며 최강자 자리에 올라선 새롬제약이 그간의 약재 제조 노하우와 기술을 집대성해 ‘호랑이건강원’이라는 브랜드로 건강기능식품 시장에 뛰어들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호랑이건강원은 30년간 한약재 제조 혁신을 내세워 한 우물을 파온 양승열 대표의 새로운 도전이다.

▎호랑이건강원 매장 앞에 선 양승열 대표. 30년 한약재 제조 노하우를 담아낸 새 도전이다.
“몸이 허해 보약 한 재 지어 먹었다”는 말은 언제부턴가 ‘아재’들 사이 대화처럼 들린다. 한의원에서 지어준 약재를 집에 가져와 정성스레 약탕기에 달이던 풍경도 이제는 생활사박물관에서나 찾아볼 법한 장면이 되었다. 뛰어난 치료 효과와 효능에도 불구하고 한약재 시장은 과거의 영광을 상당 부분 잃은 지 오래다. 대신 그 자리는 복용이 간편한 양약이나 가짓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해진 건강기능식품이 대체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국내 한약재 시장의 혁신을 주도하며 업계 최강자 자리에 올라선 전문 제약 기업이 있다. 지난 1998년 창업한 새롬제약이다. 창업 이래 양승열 대표가 이끌어온 새롬제약은 생산부터 제조와 유통·판매에 이르기까지 한약재의 과학화·현대화를 리드하며 업계를 대표하는 톱클래스 기업으로 우뚝 섰다. 국내 한의계 종사자라면 새롬제약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시장의 신뢰를 전폭적으로 받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양 대표는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한약재 도매업에 뛰어들어 30여 년간 한약재 외길을 걸어온 업계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깨끗한 한약재, 믿고 안심할 수 있는 한약재를 더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겠다”는 비전과 신념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 사업을 꾸려온 원동력이다.

한약재 과학화·현대화에 올인


▎새롬제약과 호랑이건강원의 모든 제품은 한의사 등 전문가가 함께 참여해 생산한다.
새롬제약은 국내 한약재 업계를 대표하는 리딩 기업답게 약재 소비 자체가 줄고 이를 양약과 건강기능식품이 대체한 시장 환경에서도 연 매출 200억원 이상의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성과는 경쟁사가 따라오기 어려운 과학화·현대화에 올인한 덕분이다.

현재도 국내 한약재 업계엔 생산 환경과 시설이 열악한 영세 업체가 많다. 양 대표는 가내수공업에 머물던 한약재에 과학적 품질관리 체계를 도입한 선구자로 꼽힌다. 오랜 기간 고질병처럼 지적받던 중금속 문제 등을 전문 장비 도입과 성분검사로 해결하면서 소비자와 한의계가 믿고 찾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노력은 2004년 자체 설립해 가동한 한방과학연구소부터 본격화됐다. 양 대표는 “농약이나 중금속 등으로 위기를 맞은 한의학계 문제는 결국 기술력을 갖춘 연구시설로 풀 수밖에 없었다”며 “새롬제약의 한방과학연구소는 규모와 시설 면에서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연구소에는 중금속 분석 장비를 비롯해 성분검사를 위한 HLPC(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장비 등 웬만한 한약재 기업에서 찾기 힘든 고가의 분석 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종자관리 단계부터 무농약과 GAP(우수농산물관리제도) 인증, HGMP(우수한약재 제조·품질관리기준) 인증을 획득한 공장 등도 새롬제약의 차별화된 품질관리 역량을 드러내는 사례다.

원료 생산·구매부터 제조,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한 기업이 철저히 관리·관장하는 것도 새롬제약의 강점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제약 대기업이나 건강식품 제조사들이 생산은 물론, 판매까지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사업 초기부터 시장의 니즈를 간파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은 양 대표가 말하는 또 다른 성공 열쇠다. 국내 첫 ‘수치법제(修治法製)’ 전문회사라는 타이틀이다. 수치법제란 한약재의 효능을 높이기 위해 정해진 방법으로 가공하는 과정을 말한다. 약재를 물에 삶거나 불에 볶아 독성을 낮추고 약성은 높이는 과정이다.

“군 제대 후 운전면허증 소지자를 구한다는 공고 하나 보고 한약재 도매상에 취업했습니다. 1년 정도 일하다 독립했는데 IMF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았죠. 스물다섯 살에 시작해 서른 즈음에 쓴 물을 마셨지만, 첫 사업 실패 경험이 이후 새롬제약 창업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시장의 니즈를 정확히 꿰뚫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시장의 니즈를 꿰뚫은 성공 방정식

1998년 새롬제약 창업 당시만 해도 수치법제는 오롯이 한의사들의 몫이었다. 약재상에서 사 온 원재료를 삶거나 볶거나 찌는 과정은 꼭 필요하면서도 귀찮고 고된 작업이었다.

“한의사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겠더군요. 시장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니 새로운 도전에 오히려 자신감이 붙었어요. 당장 새롬제약을 수치법제 전문회사로 포지셔닝했습니다.”

집집마다 고추장을 담가 먹던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슈퍼마켓에 등장한 ‘공산품’ 고추장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수치법제를 마친 한약재도 마찬가지였다. 첫 사업 때 창고로 쓰려고 마련했던 안성의 165㎡(50평) 조립식 건물은 수치법제 전문 제약사 새롬제약의 출발점이 됐다. “사업을 청산하려고 창고를 내놓았는데, 외환위기 직후라 거들떠보는 이가 없었어요. 그것도 운명이었는지 군 시절 후임병과 제 아내, 저 이렇게 셋이 벽돌 쌓고 시멘트 바르며 창업했습니다. 당시 후임병이 지금 새롬제약 부사장입니다. 한약재 도매업을 하면서 쌓아놓았던 한의원 거래선들도 큰 도움이 됐죠. 경북 영천 도매업소에 마지막 부채 400만원을 갚은 날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혁신적인 사업 아이템을 잡았다지만, 제약사 인가를 받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약사법을 뒤져가며 식약처 인허가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처음엔 어이없어하던 공무원들도 수십 번을 찾아와 묻고 또 묻는 양 대표의 열정에 감복했다. 페인트를 손수 칠하고 방충망을 직접 만들어가면서 1년여를 제약사 인허가에만 매달렸다.

“황기, 녹각교, 맥아, 신곡 같은 주요 약재들은 수치법제가 꼭 필요합니다. 당시 수치법제가 제대로 안 된 약재가 많이 유통돼 한의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우리가 정성껏 가공하고 포장까지 해서 판매하니 2000년 초반 들어 연 매출이 50억원을 넘기 시작하더군요.”

‘엉뚱한 놈 하나가 나타나 희한한 짓을 벌인다’던 비아냥이 찬사와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품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도 중요했다. 양 대표는 수천만원에서 크게는 억 단위에 달하는 분석 장비 도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의사와 약학 전공자들을 영입해 연구소도 세웠다. 잔류농약, 중금속 함유 분석 같은 품질관리를 웬만한 대형 제약사 못지않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포제 혁신으로 시장에 없던 새로운 상품군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초기 새롬제약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녹각교’다. 녹각은 사슴뿔, 즉 녹용이 각질화돼 떨어진 것을 이르는데, 녹용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비교적 고가 약재다. 식물성 성분이 대부분인 한약을 달일 때 바로 이 녹각이 감초처럼 많이 쓰인다. 양 대표는 녹각 성분을 따로 추출해 캔에 담아 판매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마침내 대박을 터뜨렸다.

“한약 달일 때 녹각을 넣는 경우가 많은데, 최종 제품에서 녹각 성분 추출이 미미했어요. 그럴 바에 차라리 녹각을 먼저 달여 상품화해 식물성 초제를 달일 때 따로 첨가하자고 생각했죠. 실제로 효과도 좋고 추출률도 월등하더군요. 기존 법령 기준에는 없던 제품이라, 우리가 새로운 기준과 시험방법을 식약처에 제시했어요. 세상에 없던 제품군을 만들어낸 거죠. 항상 새로운 제품 개발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패한 경우도 많고요.”

새롬제약은 최근 한약재 사업의 저변을 획기적으로 넓힐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건강식품 브랜드 ‘호랑이건강원’ 론칭이다. 양 대표는 “30여 년간 쌓아온 한약재 사업의 노하우와 역량을 더 크게 확대할 기회이자 모험”이라며 “대중화되고 잘 알려진 한방 처방을 건강기능식품으로 내놓아 한방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경옥진, 진녹용, 침향고 등 프리미엄 제품부터 과일·채소즙, 건강차, 홍삼에 이르는 다양한 라인업을 갖췄다. 한의사가 주요 고객인 B2B 기업에서 일반 소비자를 아우르는 B2C로 사업 영역을 넓힌 도전이다.

30년 노하우 담은 건강기능식품 돌풍

3년 전 아이디어 구상을 시작으로 2021년 첫 상품을 선보인 호랑이건강원은 업계에선 이제 막 면허증을 따낸 초보운전자일 수밖에 없다. 메이저 제약사들과 일부 유명 한의사들이 장악한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선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호랑이건강원은 경쟁기업들과 달리 모든 제품 개발 및 제조 과정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운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120여 개 호랑이건강원 재배지에서 직접 재배한 약재를 사용하고 4명의 한의사·한약사가 제품을 레시피하여 고른 약재를 10명의 한방과학연구소 연구진이 일일이 안전 확인 과정에 나선다. 이처럼 30년 약재 제조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놓은 제품 경쟁력이 뛰어난 데다 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런 디자인 등으로 사업 초기부터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5월 경기도 하남 스타필드점에 처음 열었던 팝업스토어는 호랑이건강원의 가능성을 확인해준 상징적 장면이다.

“단 며칠간 운영한 행사 매장에서 1억원 가까운 매출이 쏟아지니 백화점 관계자들이 크게 놀라더군요. 매장 꾸미는 데 들인 돈이 많아 사업적으론 마이너스였지만, 신생 브랜드를 유통가와 소비자 모두에게 톡톡히 알린 절호의 기회였어요. 나중에는 백화점 대표까지 직접 찾아왔죠. ‘대체 어떤 곳에서 이런 매출을 올리느냐’면서요. 백화점 입장에선 매출 지표가 최우선이니, 당장 입점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팝업스토어 대박을 계기로 호랑이건강원은 현재 신세계 명동본점·김해점·하남점에 정식 매장을 냈고, 영등포점에는 팝업 매장을 열었다. 올가을에는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입점도 계획 중이다. 신생 브랜드의 가능성을 유통가의 공룡들이 먼저 알아본 셈이다.

남들이 뛰어들지 않던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독특한 아이디어로 시장을 선점하는 양 대표의 30년 전략과 뚝심은 호랑이건강원 사업에도 그대로 이식됐다. 양 대표는 이를 ‘진심 전략’이라고 불렀다.

“처음엔 버스에 광고도 하고 1+1 행사도 해봤어요. 하지만 잠깐 매출이 오르다 결국 제자리더군요. 몸 아플 때마다 진통제로 수습하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봤죠. 그때부터 마케팅과 고객 전략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제값을 받고, 고객에게도 그에 맞는 퀄리티를 제공하자는 거였죠.”

“그렇게 하다간 망한다”던 마케팅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양 대표는 당장 노 세일(No Sale)을 천명했다. 물건 값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남들보다 비싼 값을 치른 고객의 억울함을 먼저 생각했다. 최근에는 새벽배송으로 유명한 유통업체 입점을 포기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자체 세일 행사에 택배비까지 공짜로 하니 15%까지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는 것을 보면서다.

“제값 주고 산 고객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은 ‘다른 데는 못 들어가 안달인 곳에서 왜 나오려 하느냐’며 걱정이 크지만, 남들 하는 대로 해선 우리 같은 후발 주자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가장 어려운 마케팅은 거짓말이에요. 내 제품은 A인데 B라고 말하는 거죠. 그럼 가장 쉬운 마케팅은 뭘까요? 진심을 담은 좋은 제품을 고객에게 꾸밈없이 전하는 겁니다. 30년 경험에서 체득한 제 나름의 철학이에요.”

양 대표는 당장 1+1 행사에 대한 고객반성문부터 홈페이지에 올렸다. 제값을 주고 구매한 고객에겐 그만큼을 환불했다. 지난 설 명절에는 잘못된 보자기 포장에 대해 직원들이 직접 고객 집을 찾아가 바꿔주기도 했다. “기업의 잘못이나 실수는 그 처리 과정에서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양 대표는 올해 호랑이건강원의 사업 목표를 매출 50억원으로 잡았다. 현재 추세라면 무난히 달성할 전망이다. 2023년 200억원, 2024년 500억원, 이후 1000억원을 달성하면 북미 등 본격적인 해외 진출도 계획 중이다. 양 대표는 “수치법제 시장에 처음 진입할 때처럼 터무니없다고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어렵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 30여 년간 한 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새롬제약이 이만큼 성장한 비결이죠. 혁신은 도전이나 실패랑 같은 말이에요. 지금 실패하고 있지 않다면 혁신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임익순 객원기자

202206호 (2022.05.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