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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호 앳홈 대표 

세상에서 가장 압도적인 고객 진정성 

장진원 기자
절망은 절실함을, 절실함은 도전과 열정을 낳았다. 다시금 열정은 진정성이라는 기업 비전으로 자가발전했다. 이제 막 꽃피우기 시작한 서른 살 청년 기업가의 진심이라 더욱 반갑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미니 건조기 하나가 시장을 장악해버렸다. 2021년 초 등장한 ‘미닉스’ 건조기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이 장악한 가전 시장에서 그야말로 ‘듣보’의 반란이었다. 1인가구에 꼭 맞는 아담한 사이즈, 웬만한 유명 제품 못지않은 뛰어난 디자인, 무엇보다 제품 자체의 경쟁력을 돋보이게 하는 성능까지. 어디 하나 흠 잡기 어려운 제품에 시장은 ‘반품률 0.9%’라는 기록으로 화답했다. 중소기업 자체 브랜드로는 뚫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가전 분야에서, 그것도 기존 대기업이 장악한 시장의 틈새를 공략해 얻은 성과에 업계가 깜짝 놀란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 알고 보니 전적이 건조기 하나에서 끝이 아니다. 2020년 출시 직후 온라인상에서 이른바 ‘대란템’으로 인기를 끈 ‘키첸 에어프라이어’도 이들의 작품이다. 작동되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봐야 할 정도의 무소음에다, 기존 제품들의 단점으로 꼽혔던 용량도 6리터로 크게 늘렸다. 여기에 깔끔한 화이트 컬러 디자인까지 더하니 대형마트 PPL 제품보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히트 상품 자리에 올랐다.

미닉스 건조기, 키첸 에어프라이어. 브랜드는 다르지만 제품을 만들어낸 기업은 한 곳이다. ‘홈라이프 솔루션 메이커’를 자처한 ‘앳홈(ATHOME)’이다. 앳홈은 미닉스, 키첸 외에도 웰싱(음식물처리기), 클리엔(청소기), 자몬스(메트리스), 슬리필로우(오가닉 베개) 등 자체 브랜드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 제품은 아니지만 경쟁력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 작은 거인들의 연합이다.

지난 2018년 앳홈을 창업한 양정호 대표는 “고객의 불편을 해결하면 가치가 창출되더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창업 이후 줄곧 직접 경험하며 체득한 결론이다. 단순히 그럴듯한 제품을 만들어내 매출을 올리기보다, 시장의 페인포인트를 명확히 짚어내는 일이야말로 앳홈 같은 후발 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설명이다. 홈라이프 솔루션 메이커라는 기업 비전에는 그의 이런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객 불편 해결에 올인하다

“최근 커머스 장벽이 낮아지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선택의 폭이 엄청 넓어졌어요. 하지만 넘쳐나는 정보와 프로모션, 자극적인 마케팅으로 점철된 시장에서 정말 좋은 제품을 발견하기란 오히려 더 어려워졌죠. 이런 상황에서 비슷비슷한 대안을 파는 커머스 업체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어떤 제품보다 우수해 선택의 기준이 되는 솔루션이 되자고 마음먹었죠. 그게 바로 앳홈의 존재 이유입니다.”

출시한 상품의 면면부터 자신만의 경영 비전에 이르기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이야기들이 쏟아지지만, 양 대표는 올해 막 30대를 맞은 청년 창업가다. 스스로의 말처럼 ‘아무것도 손에 쥔 것 없던’ 청년이 2017년 이후 5년 동안 써내려온 창업 스토리가 자못 궁금해진다.

“지금은 사람들이 잘 믿지 않지만 군대 가기 전까지 기초생활수급자였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어요. 남들처럼 취업해 돈 모으고 하다간 다 죽겠다 싶었죠. 사업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2017년 군대 전역 후, 무자본으로 집에서 1인 창업에 나섰고 이듬해에 앳홈이라는 법인을 세웠어요.”

체대 출신인 양 대표는 “원래 퍼스널트레이너를 꿈꿨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 바닥마저 난다 긴다 하는 경쟁자들이 이미 줄지어 서 있었고, 헬스 트레이너라는 직업만으로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빠르게 일으키기도 쉽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돈 때문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늘 가슴 아팠던 양 대표는 ‘뭐가 됐든 사업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포털에 카페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아프니까사장이다’라는 네이버 자영업 카페 회원 수가 현재 120만 명인데, 그걸 제가 만들었다고 하면 다들 놀라요. 사람이 모이면 경제적 가치도 커진다, 자본 없이도 마케팅이 가능하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카페 개설과 운영에 1년 넘게 열정을 쏟았다. 하지만 실제 손에 들어오는 수입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사업에 대한 절실함이 더 커진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당장 뭐라도 팔아야 한다’는 조급함에 인터넷카페를 헤매던 중 ‘판매자를 찾는다’는 글을 보게 됐는데, 포항의 30년 문어숙회 장인이 올린 글이었다. 사업자등록증도 없었지만 그 길로 포항까지 찾아가 판매권한을 얻었다.

“2017년 무렵이었는데, 당시 포털에서도 커머스 투자에 집중할 때였어요. 마케팅, 고객응대(CS), 디자인까지 집에서 혼자 다 했는데 신기하게도 판매가 되더군요. 하지만 저도 문어숙회 장인도 초보이다 보니 시행착오를 톡톡히 거쳐야 했습니다.”

야심 차게 출발한 문어숙회 판매는 결국 얼마 안 가 접어야 했다. 양 대표는 이후로도 6개월간 이 제품 저 제품 판매에 나서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먹히는 게 어떤 제품인지, 온라인 커머스 마케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직접 경험하며 배운 시간이기도 했다. 작은 실패의 경험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시장을 보는 눈을 키워준 셈이다. 반전은 이듬해 찾아왔다.

무자본 창업에서 연 매출 500억원까지

2018년 뷰티업계 최고의 히트 상품은 LED 마스크였다. TV 광고를 보던 양 대표는 ‘저거다!’라는 직감에 무릎을 쳤다. 대기업까지 뛰어든 만큼 관련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즉각 국내 LED 마스크 제조사에 한 곳도 빠지지 않고 전화를 돌렸고, 딱 한 곳에서 회신을 받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어요. 자동차부품사가 신사업차 만든 제품이었는데, LED칩의 종류부터 효능까지 대기업 제품과 똑같았어요. 하지만 판매에 어려움을 겪어 사업을 접기 직전이었죠.”

‘100만 명이 넘는 네이버카페 운영자다, 온라인 판매 노하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설사 실패한다 해도 아무런 리스크가 없다’ 등등 밤을 새가며 제안서를 만들었다. 그렇게 20대 중반의 빈털터리 청년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물건의 판권을 따오는 데 성공했다. 사입할 돈도 없었지만, 운 좋게도 판매 후 제품 값을 정산하겠다는 약정도 얻어냈다. 그야말로 무자본 창업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기업과 똑같은 제품을 브랜드와 디자인만 달리해 20만원에 팔았다. 타사에선 번외로 사야 했던 관리도구들도 사은품으로 끼워 넣었다. 하루에 10~20개씩 팔리던 제품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하루 만에 100개 넘게 팔려나갔다. 택배 포장, 마케팅, CS 전화 응대를 모두 혼자 해냈다. 시간이 없어 시리얼로 끼니를 때우고 먹은 그릇을 치울 시간도 없을 정도로 대박을 쳤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됐다. 사무실을 구하고 같이 일할 직원들을 1~2명씩 뽑기 시작했다. 2018년 4월 들어 앳홈이라는 이름으로 법인 전환에 나섰다. 가족의 끼니를 고민해야 했던 가난한 청년이 한 달 순수익 1억원이 넘는 청년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토록 바라던 대박 아이템을 내는 데 성공했지만 진짜 고민이 시작된 것도 그 즈음부터다. 총판 개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20대 젊은이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금 잘 팔린다 싶으면 판매권을 회수해가기 일쑤였고, 그 과정에서 ‘나이가 어리다’며 무시당하는 일도 잦았다. 자기 브랜드가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절감했다.

“우리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토퍼 매트리스 브랜드인 자몬스가 시작이었어요. 유명 브랜드 못지않은 제조 역량을 가진 곳을 찾아냈고, 저렴한 가격에 속 커버까지 무료로 나눠줬죠. 2018년 한 해에만 LED 마스크와 자몬스로 매출 60억원을 올렸습니다.”


유일한 대안이 되는 제품이 목표

제품 아이템을 정하고 시장에 안착시키기까지는 양 대표만의 전략이 주효했다. 철저하게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전략이다. 키첸 브랜드를 달고 나온 에어프라이어와 미닉스 건조기가 대표적이다.

“에어프라이어를 만든다고 할 때도 모두 반대했어요. 하지만 소음과 용량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면 먹힐 거라 확신했죠. 한국은 중국이라는 제조공장을 바로 옆에 끼고 있어요. 엄청난 이점이죠. 에어프라이어도 중국 제조사에서 샘플을 수없이 받아가며 제품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미니 건조기 ‘미닉스’의 성공은 이런 전략이 가장 잘 먹혀든 사례다. 미닉스 출시 전만 해도 미니 건조기 시장은 규모가 워낙 작아 대기업이 외면한 영역이었다. 자연스럽게 성능이나 디자인이 현저히 떨어지는 제품들만 넘쳐났다. 양 대표는 이 점에 착안해 본품과 부자재, 구성품까지 100% 국내에서 생산해 성능 수준을 높였다. 누가 봐도 탐날 정도로 디자인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데도 힘썼다. 미닉스는 출시한 지 몇 개월 안 돼 미니건조기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시장에서 성공이 거듭될수록 양 대표가 바라는 기업 목표도 더욱 뾰족해져갔다.

“고객을 바라보는 진정성, 시장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겠다는 고객 존중이 우리의 비전과 사명입니다. 고객 진정성이 세계 제일이라면 규모가 크진 않더라도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궁극적으론 홈라이프계의 애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다이슨 같은 기업이 좋은 예죠. 압도적인 품질로 홈라이프 솔루션을 제시하는 기업,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유일한 대안이 되는 기업. 그게 앳홈의 꿈이고 비전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양 대표는 “지난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인수합병(M&A) 제안을 받았다”는 깜짝 뉴스를 털어놓았다. 며칠간 고민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노(No)’였다.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양정호라는 개인의 이익과 맞바꾸고 싶지 않았다는 고백이다.

“구성원, 고객, 나아가 투자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만족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앳홈을 다니고 싶은 회사, 제품을 사고 싶은 회사, 투자하고 싶은 회사로 만드는 것이 제 사명이자 소임입니다. 올해부턴 신사업 진출과 제품 개발, 대규모 신규 채용 등 매출 증가보다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창업 5주년이 되는 내년부터는 더 뛰어난 제품, 더 정교한 조직, 더 뚜렷한 비전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최근 앳홈은 성수동 본사에 자체 상품기획팀을, 경기도 파주에 대기업 못지않은 품질연구소를 구축했다. ‘피트니스센터를 옮겨왔다’는 평가를 목표로 한 스피닝바이크, ‘피부과 못지않은 퀄리티를 보장하는’ 코스메틱제품, 미니 식기세척기와 의류관리기 등 또 다른 혁신 제품들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210호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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