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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만 아모레퍼시픽 부사장 

디지털 대전환으로 그리는 ‘뉴 뷰티’ 

김영문 기자
화장품 회사가 ‘디지털 기업’이 되겠다고 한다. 소비자 중심으로 세상이 바뀌고, 시장도 온오프라인으로 다변화하면서 생존을 위해 데이터·디지털 전략은 필수가 됐다. 수년 전부터 디지털전략 유닛을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해온 아모레퍼시픽은 올해도 ‘디지털 대전환’을 주요 화두로 삼았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박종만 부사장을 만나봤다.

▎ 사진:아모레퍼시픽
“디지털과 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고객 가까이에 자리하며 고객과 세상이 직면한 어려움에 공감하는 ‘뉴 뷰티’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사람을 아름답게,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자.”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지난 9월 2일 온라인으로 열린 창립 77주년 기념식에서 이같이 말하며 ‘디지털전환’을 재차 강조했다. 실제 국내 최대 화장품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은 몇 해 전부터 ‘데이터 기업’임을 천명해왔다. 전사적으로 데이터 전문조직을 꾸리고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마스터플랜을 다시 짰다. 영업 일선과 고객 접점에서 나오는 데이터도 한데 모아 사업 전략에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며 클라우드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이 모든 게 ‘디지털, 데이터 기술’로 디지털 혁신을 하겠다는 서 회장의 강한 의지 덕분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올해 3월에 열린 주주총회에서는 3대 과제 중 하나로 ‘디지털 대전환’을 공표하기도 했다.

디지털전략 유닛의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아모레퍼시픽 임원 인사에서 디지털전략 유닛을 이끄는 박종만(56)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박 부사장은 지난 2018년 아모레퍼시픽에 합류 후 디지털전략 유닛 신설을 맡아 지금까지 전사의 디지털 전략과 이커머스 등 디지털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비교적 빠른 승진 인사와 더불어 조직 규모도 2018년 2명에서 4년 만에 400여 명으로 200배 이상 커졌다. 그만큼 디지털 대전환에 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2명에서 400명으로 커진 디지털전략 유닛


▎ 사진:아모레퍼시픽
“디지털전략 유닛은 디지털 전략, 기술개발, 기술 운영, 이커머스 등 아모레퍼시픽 디지털 전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도입하고, 이커머스 파트도 직접 맡고 있어요. 제 개인적인 역할도 좀 늘어났습니다. 아모레퍼시픽 글로벌 법인들을 대상으로는 디지털 CoE(Center of Excellence)에다가 전사 CDO로서 브랜드 디지털 마케팅, R&D(연구개발)·SCM(공급망관리) 등 디지털전환을 고민하고 있죠. 일이 많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만큼 디지털 역량이 전사적으로 필요하다는 증거겠죠.”

지난 9월 7일 아모레퍼시픽 본사에서 만난 박 부사장은 ‘디지털전략 유닛’과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전자계산기공학 학사와 석사,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쳤다. 이후 네이버 이커머스 본부장과 캠프모바일 대표 등을 지내고 스마일게이트스토브를 거친 플랫폼·이커머스 전문가로 통한다. 박 부사장은 “막강한 브랜드로 TV 광고만 하면 잘 팔리던 시절, 대표가 사내 ERP(전사적자원관리)에 쌓인 월간·주간 실적자료만 보며 나무라던 시대는 지났다”며 “시장이 소비자 중심으로 변했고, 온오프라인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소비자 관련 데이터가 쏟아지고 있어 우리가 디지털화되어 있지 않다면 시장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부사장에게 2019년 ‘디지털 대전환’ 선언 이후의 과정을 더 들어봤다.

그간 가장 극적인 변화를 꼽는다면.

이커머스 실적이 매년 40%씩 성장해왔다. 2018년만 해도 전체 매출에서 이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를 밑돌았지만, 올해는 거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일단 시장 자체가 달라졌다. 과거 빅모델을 기용해 TV 광고를 하던 시장은 가고, 유튜브나 페이스북, 틱톡 같은 플랫폼과 네이버, 쿠팡, 다양한 오픈마켓이 주요 무대가 됐다. 소비자가 온오프라인 곳곳에서 데이터를 쏟아냈고, 자연스레 디지털 마케팅과 이커머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시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우리’부터 제대로 점검해야 했다.

‘우리를 점검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가.

디지털전략 유닛의 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합류할 당시 아모레퍼시픽 내에는 연구개발·제조·영업·고객관리 등을 관리하는 데 800개 넘는 IT시스템이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제품 판매와 직접 연결되는 영업 관련 시스템에 쌓인 데이터만 80테라바이트(TB)가 넘었다. 애플리케이션과 데이터 운영·관리를 아웃소싱했던 탓에 시스템마다 데이터 구조와 운영방식이 달랐다. 사실상 필요한 데이터가 뭔지 구분하기도 힘들었고, 어디에 무슨 데이터가 어떤 형태로 있는지를 파악할 조직도 없었다. 그래서 2018년부터 마케팅, 영업, 연구개발, SCM, 재무회계, 인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디지털을 적용해왔고, 별도의 전문조직을 꾸려 전사 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커머스와 디지털 마케팅을 고도하기 위해 ‘데이터 기업’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앞서 말한 대로 데이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어차피 시장과 괴리된다. 지난 4년간 아모레퍼시픽은 두 가지 측면에서 디지털 전략을 추진해왔다. 데이터를 활용하는 재료와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는 것과 현장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었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2018년부터 대대적으로 데이터 플랫폼과 활용체계 구축에 투자했다. 데이터 관리 비전과 원칙, 프로세스, 아키텍처, 표준화, 모델링, 품질, 관리시스템, 조직별 R&R(역할과 책임)을 아우르는 거버넌스 프로젝트였다. 2019년 1단계, 2020년 2단계를 거쳐 데이터 설계·표준화·모델링 작업을 외부에 맡기지 않고 자체 수행하는 체계를 갖췄다. 이 프로젝트는 필요한 시점에 원하는 데이터를 적시에 분석해 실시간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반을 확보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큰 틀의 거버넌스 체계와 데이터 플랫폼을 끊임없이 수정, 보완하며 고도화하고 있다. 시장에서 소비자와 가장 맞닿아 있는 영업 영역에 먼저 적용하고 차차 R&D, SCM 등으로 확장해왔다.

많이 달라졌나.

디지털 전략 과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데이터 기업으로 진일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예전에는 마케팅, 커머스, 콘텐트, SNS 등에서 나오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웠는데, 지금은 브랜드 인지도나 성과 데이터를 모아 브랜드 개선에 활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공장에서 제조와 포장 공정 데이터를 통합해 수요예측부터 판매계획, 생산계획까지 연계하는 데이터 통합 작업도 진행 중이다. 문화도 달라졌다. 부서나 개인을 불문하고 누구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대시보드를 만들어 업무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현재 사내 대시보드 활용 트래픽 중 30%가 디지털전략 유닛이 아니라 임직원 스스로 만든 대시보드에서 나온다.

누구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맞다. 과거 현업 부서는 몇 가지 실적 데이터만 조회하는 대시보드를 이용했지만, 이제는 온오프라인에 나오는 마켓 데이터를 찾아보고, 고객 분석은 물론 실적도 입체적으로 보는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다. AWS 팀과 함께 다양한 데이터 엔진을 활용했기에 가능했다. 데이터에 접근하는 벽이 낮아지자 임직원들이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요청하기 시작했다. 많은 부서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다. 궁극적으로 데이터 전문조직뿐만 아니라 현장, 영업, 마케팅, 생산 등 모든 영역에서 자유롭게 데이터를 찾아 업무에 쓰는 것이 목표다.

AWS와 완전히 클라우드로 가는 결정도 내렸다.

비용 절감과 비즈니스 효율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미 대규모 온프레미스 인프라를 갖고 있는데, 구축, 운영, 유지보수, 통합 등에서 손대기 힘들 정도로 방대했다. 장기적으로 시스템 전반을 클라우드로 완전히 옮겨야 진정한 ‘통합관리’를 할 수 있다.

고객 데이터 분석·활용뿐만 아니라 물류, 연구소, 공장 등도 디지털화에 진전이 있었겠다.

시장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보다 사내 밸류체인을 디지털화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레거시(기존 IT 시스템)와 도메인 날리지(Domain knowledge, 업계 전문지식)이 축적된 곳이라 단시간에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물류, 연구소, 공장의 경우 독립적인 시스템으로 구성돼 있고, 제품 코드나 분류체계도 통일돼 있지 않아 이 모두를 관통하는 데이터 체계를 단계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디지털 전문조직을 키워가는 일과 전사에 기여하는 일, 둘 중 어디에 집중하나.

경중은 없다. 내가 합류하는 시점에 아모레퍼시픽에 데이터·디지털 혁신 조직을 총괄하는 CDO(최고디지털책임자) 자리가 생겼다. 당시만 해도 다들 이커머스에 집중하는 곳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서경배 회장께서 이 자리를 제안하시며 “CDO는 이커머스 하나 잘하자고 만든 자리가 아니다. 이 부서만 잘나간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다. 전자 차원의 디지털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 후로 난 두 모자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전략 조직을 고도화할 때는 ‘유닛장’, 전사에 디지털 문화를 전파할 때는 ‘CDO’라고 생각하고 임한다.

아모레퍼시픽에 합류한 계기가 있었나.

늘 디지털 플랫폼에서 쌓아온 경험을 살려 인더스트리(산업) 현장이 맞닥뜨린 디지털 과제를 풀고 싶었다. CDO라는 자리는 당시만 해도 흔한 단어도 아니었다. 국내 최대 화장품 제조기업에서 데이터·디지털 혁신을 담당하는 조직이라는 말에 끌려 합류를 결심했다.

플랫폼과 제조업, 어떻게 다르던가.

제조업, 쉽게 볼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처음 둘러본 생산 공정만 하더라도 매우 까다롭고 복잡한 프로세스가 수십 년 간 쌓인 곳이었다. 데이터만 풀어내 소비자 기호만 알아채면 시장을 빨리 장악할 수 있겠다던 기대도 깨졌다. 제품을 생산해서 시장에 내놓기도 전에 소비자 기호가 달라져 낭패를 보기도 했다. 제조업이 만만하지 않은 이유다.

그래도 이베이, 네이버 등을 거쳤으니 플랫폼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지 않았나.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물론 나도 아모레퍼시픽에 합류할 때 플랫폼만큼은 내가 가장 잘 알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임직원들과 얘기해보니 다들 플랫폼별 특성이나 활용 전략을 디테일하게 꿰뚫고 있었다. 브랜드는 각기 다른 플랫폼 특성에 맞춰 소비자 기호를 맞춰야 하니 아주 디테일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진짜 고객은 플랫폼이 아니라 인더스트리에서 더 잘 알고 있겠구나 싶었다.

“고객이 원하는 채널이 가장 중요”

데이터·디지털 혁신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마케팅 조직과 역할이 겹칠 텐데.

실제로 초기엔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마케팅 성격을 나눠 교통정리를 했다. 예를 들어 특정 매출 목표를 가지고 투자해 어떤 매출 결과가 나왔느냐는 식의 ‘퍼포먼스 마케팅’은 우리 조직이 전담한다. 기존 마케팅 조직은 정량적인 평가보다 유튜브 인플루언서나 오프라인 특정 마케팅 채널을 활용하거나 브랜드 캠페인을 펼치는 식의 ‘브랜드 마케팅’에 집중한다. 브랜드 조직도 어쨌든 매출을 올리고 싶기 때문에 우리 조직과 더 적극적으로 협업을 하고 싶어 한다.

글로벌 이커머스도 주요 무대다. 데이터를 모으는 입장에서 인상적인 글로벌 플랫폼이 있나.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국내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개인정보를 활용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알리바바의 경우 아모레퍼시픽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들의 동향 정보를 세분화해 제공한다. 연령별 주문 성향, 주문량, 거주 지역, 시간대 등 다각도로 분석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덕분에 중국 이커머스 요구에 빨리 움직일 수 있었고, 매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형 이커머스 플랫폼도 있지만, 자사몰을 키우는 사례도 늘고 있다.

그렇다. 아마존과 결별하고 자사몰과 직영점 비중을 높이고 있는 나이키가 대표적인 예다. 나이키의 모험은 꽤 성공적이었지만, 아마존에서는 나이키 본사가 아닌 나이키 리셀러들이 많은 나이키 제품을 여전히 팔고 있다. 결국 다른 플랫폼과 자사몰 중 한쪽에 우위를 두기보다는 고객이 더 원하는 채널을 따라가는 데 더 집중한다. 물론 최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고객 접점을 늘려가는 채널로 자사몰을 강화하고 있다. 자사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품을 기획하고, 신상품을 먼저 선보이거나 멤버십 혜택도 늘릴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빅데이터’ 무용론을 펴기도 한다. 고객을 알려면 한 명씩 봐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한 명의 데이터를 깊이 들여다보는 건 엔지니어 입장에서 재미있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비즈니스 측면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때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수천만 개 데이터가 나오면 일단 비즈니스 측면에서 임팩트 있는 몇 개 요소로 분류한다. 그렇게 쪼개다 보면 제품 생산단위나 마케팅 예산을 가늠해볼 수 있다. 하지만 한 명의 소비 루트만 추적하면 결국 다시금 빅데이터와 대조해야 한다. 비즈니스 결정에서는 여전히 ‘빅데이터’가 유효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목표가 있다면.

‘디지털화’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막연한 목표일 수 있다. 단순히 IT 시스템을 바꾸거나 고도화하는 일도 아니다. 내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데이터를 바라보는 자연스러운 사내 ‘문화’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 이커머스 플랫폼 데이터를 보고 여기저기서 ‘이 데이터 이상하다’, ‘내가 이 데이터 챙기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 ‘다른 지역 데이터와 대조해볼게’ 등 소위 데이터 선수(?)끼리의 대화가 가능해야 디지털화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국내 최고 개발자들과 함께 아모레퍼시픽이 국내 대표 데이터·디지털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202210호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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