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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우 리씽크 대표 

재고로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 

장진원 기자
‘저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나?’ 리씽크몰을 찾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깜짝 놀랄 만한 할인율을 내건 유통 혁신은 20년 넘게 재고·중고 유통체인에서 갈고닦은 김중우 대표의 노하우가 집약된 결과다.

재고관리는 기업, 특히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제조업체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시장의 수요를 완벽히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처 팔리지 않은 상품이 많을수록, 오랜 시간 물류창고 공간을 차지하게 될 재고는 그 자체로 비용이 될 수밖에 없다. 제때 팔리지 않아 일정 기간 동안 창고에 쌓여 있는 제품을 체화재고라 하는데, 기업 입장에선 체화재고가 늘수록 창고 유지·관리 비용을 견디지 못해 아예 폐기 처분하는 경우도 잦다. 애꿎은 물건들이 포장 박스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사라지는 셈이다.

요즘 노트북, 컴퓨터, 태블릿PC 등을 중심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온라인쇼핑몰이 화제다. 재고 제품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리씽크(Re:think)’다. 노트북 등 IT 기기를 비롯해 TV 등 가전, 가구·인테리어, 화장품, 가방·선글라스 같은 해외 명품, 심지어 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이 시중가의 최대 80%까지 할인 판매된다. 실제로 쇼핑몰을 찾으면 50~80%대에 이르는 할인 상품이 즐비하다 보니 20~30%대 할인율이 좀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수준이다. 당당하게 주요 포털의 최저가와 비교해놓는 꼼꼼함도 잊지 않는다. 같은 상품으로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한 걸까? 혹여 제품에 하자라도 있는 건 아닐까? “기업이 떠안고 있는 재고 상품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어 구매자와 기업을 행복하게 한다.” 지난 2019년 리씽크를 설립한 김중우 대표의 말이다. 어마어마한 할인율의 비결이 바로 재고상품이라는 뜻이다.

전 세계 프리미엄 재고 총집합

리씽크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유통체인과 협력해 프리미엄급 재고 제품을 소싱해 판매하는 재고 전문몰이다. 흔히 중고숍이라 이해하기 쉬운데, 재고와 중고는 엄연히 다르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재고는 기업이 생산을 마친 후 미처 팔지 못해 남은 제품, 즉 새 제품과 마찬가지이고 중고는 소비자에게 한 번 판매된 제품을 말한다. 흔히 ‘리퍼제품’이라 부르는 중고품은 ‘다시 닦는다’는 뜻의 영어 리퍼비시(refurbish)에서 따온 말이다. 리씽크몰에도 일부 리퍼 제품들이 있지만, 전체 라인업의 90%가 순수 재고 상품이다.

“개인 간 중고 거래도 가성비만 있으면 잘 거래됩니다. ‘○○마켓’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이 잘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기업의 재고 상품도 굉장히 많습니다. 팔고 남은 제품들이죠. 이를 관리하는 데만 연간 10조원 넘는 비용이 든다는 추산도 있어요. 이런 제품을 모아 ‘신상 재고’를 판매해보자고 생각했죠.”

가성비만 좋다면 작은 흠집 정도는 충분히 감수하는 시장에서, 포장도 뜯지 않은 A급 재고의 등장은 열렬한 환호를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창립 첫해인 2019년 연 매출 100억원을 돌파한 리씽크는 2020년 들어 기술보증기금의 프런티어 벤처기업 인증, 25억원 투자 유치(코어자산운용)에 이어 올 4월 기준 누적매출 1200억원을 돌파했다. 창업 4년 차인 올해는 연 매출 1000억원 달성이 무난할 전망이다.

“재고 상품은 과잉생산(overstock)이나 마케팅 부족으로 발생합니다. 리씽크는 하루에도 수없이 버려지고 폐기되는 재고 상품들을 확보해 어떤 유통체인보다 저렴하게 판매합니다. 유통의 선순환을 도모하고 환경문제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죠. 기업 입장에선 골칫덩이인 재고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알뜰 소비를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개념소비몰’이라는 기업 비전을 세운 배경입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해 ‘잠들어 있던 재고의 가치’를 깨운 김 대표의 혜안은 그의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다. 경희대 산업공학과 95학번인 김 대표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오롯이 중고·재고 유통 체인에서 이력을 다져온 ‘찐’전문가다. 군 전역 후 복학 자금 마련을 위해 자신이 쓰던 중고 컴퓨터를 내놓은 게 시작이었다.

“그때는 PC통신 시절이었어요. 컴퓨터를 팔려고 보니 벼룩시장 같은 오프라인 무가지와 온라인(PC통신) 장터 사이에 가격차가 너무 크더라고요. 온라인이 훨씬 저렴했죠. 비싸게 받아야 이득이니 자연스럽게 벼룩시장에 물건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금방 팔렸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가격차를 활용하면 돈을 벌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렇게 대학생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중고 컴퓨터를 구입해 이를 다시 세팅한 후 오프라인에서 파는 모델이었다. ‘모든 작업을 집에서’ 하니 회사 이름도 ‘홈시스템’이라 지었다. 2001년 출발한 청년 창업가는 연 매출 20억원을 찍는 성과를 거뒀다. 포털사이트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 전봇대에 ‘컴퓨터 39만원 판매’라는 전단지를 붙여 얻은 성공치곤 대단했다.

“제 컴퓨터가 팔려나가는 걸 보면서 중고 시장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마침 학교에서 해외탐방 연수 1기를 모집했는데, 해외 중고판매 산업을 알아보겠다는 콘셉트로 연수생에 선발됐죠. 캐나다 밴쿠버와 토론토를 한 달 정도 돌아봤는데, 실제로 리퍼비시 마켓이 엄청 활성화돼 있었어요. 자신감을 갖고 돌아와 홈시스템을 창업했습니다.”

신상품과 다름없는 케어 서비스

PC통신을 지나 인터넷의 등장은 이전과는 차원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절이었는데, 중고 거래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눈여겨본 김 대표는 뜻이 맞는 동업자를 물색해 카페 사업화에 나섰다. 지금도 유명한 네이버 ‘중고나라’ 카페다. 2007년 들어선 ‘디지리워드’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온라인 중고쇼핑몰 시장을 개척했다. 디지털TV나 스마트기기 중고 제품을 사들여(보상닷컴) 다시 일반 고객에게 판매하는(전시몰) 모델은 동종업계 최초로 연 매출 200억원을 넘기며 승승장구했다. 가성비 좋은 중고품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전시몰의 인기는 대단했다.

홈시스템에서 출발해 중고나라, 보상닷컴과 전시몰로 이어진 김 대표의 행보는 누구도 따라잡기 어려운 탄탄한 유통 네트워크 확보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더불어 재고와 반품은 모든 유통업체가 골머리를 앓는 숙제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전시몰은 리퍼비시에 특화된 쇼핑몰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조사나 유통사 모두가 재고 처리에 더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인다는 걸 알게 됐죠. 반품된 물건은 재판매도 어렵고, 다시 돌아오는 리버스 로지스틱 과정에서 파손도 많았습니다. 그대로 쓰레기가 되는 셈이죠. ‘재고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없을까’ 고민한 결과가 바로 리씽크 창업이었습니다.”

대기업이 인수한 전시몰에서 3년간 전문경영인으로 일한 김 대표는 겸업금지 규제가 풀린 2019년에 곧장 회사를 나와 꿈꿨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그간 쌓아온 탄탄한 유통망 네트워크를 활용해 ‘언박싱’의 희열을 안기면서도 가격은 어떤 곳보다도 저렴한 상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과는 실적으로 증명됐다. 창업 첫해 매출 100억원을 기록한 리씽크는 2020년 360억원, 2021년 600억원에 이어 올해 10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서울 개봉점과 경기도 일산점 등 고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도 열었다. 현재 리씽크와 협력관계를 맺은 유통사만 1200곳에 달한다.

현재 리씽크의 주력 상품은 IT 제품군이다. 전체 판매량의 35%가량으로, TV와 가전 등을 합하면 전자기기 판매가 65%를 차지한다. 이 밖에 명품 잡화와 화장품, 편의점 재고 등이 뒤를 잇는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유명한 백화점 유통체인인 메이시스에서 의류를 들여와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판매 제품의 90%가 이른바 ‘신상 재고’이고 나머지 10%를 리퍼 제품이 보충한다.

‘재고나 중고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한 김 대표의 시도는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다. 구매 후 리케어 서비스를 통해 1년 동안 무상 애프터서비스(AS)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품질에 자신감이 있기에, 기존 제조사에서 했던 서비스를 그대로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리씽크의 아이덴티티라 할 수 있는 가격경쟁력도 투명하게 공개한다.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쇼핑과 연동해 실시간으로 재고 상품과 새 상품 가격을 비교해 보여주는 방식이다. 구매자들이 얼마나 저렴하게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지를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가격비교 커머스다. 이 밖에도 리씽크는 재고 제품과 보험 서비스를 결합해 AS뿐만 아니라 보험까지 받을 수 있는 리케어 서비스도 운용 중이다.

재고 처리를 통해 소비자는 물론 제조·유통기업과도 상생을 꾀한다는 목표는 B2B 서비스로 확장되고 있다. 리씽크는 지난 6월 17일 법무법인 YK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리씽크는 법무법인 YK 임직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한 공식 복지몰로 선정돼 서울 본사를 포함한 수원, 대전, 부산 등 15개 전국 지사의 임직원들에게 오픈형 복지몰 서비스를 제공하게 됐다. 이에 앞서 지난 5월에는 전국배달라이더협회의 복지몰로 선정됐다. 이를 통해 리씽크는 임직원을 포함해 회원 약 30만 명을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고, 기업·단체 복지몰이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해 재고 쇼핑의 새로운 활로를 찾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씽크와 협업 관계를 맺은 협력사와의 상생도 추진 중이다. 리씽크가 자체 개발한 재고관리 솔루션을 기업이 원할 경우 무상으로 제공하면서다. 악성 재고가 발생하면 리씽크에 의뢰가 오고, 움직이지 않는 체화재고도 알람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김 대표는 “현재 리씽크 재고관리 솔루션을 도입한 협력사만 20곳이 넘는다”고 밝혔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한해 재고 상품을 주문한 날 바로 받을 수 있는 ‘오늘 도착’ 서비스도 시작했다. 평일 오전 11시 이전에 주문하면 제품 수령까지 하루 만에 이뤄지는 서비스다. 김 대표는 새 서비스를 통해 ‘라스트마일(Last mile) 딜리버리’ 혁신을 도모할 계획이다.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란 유통업체 상품이 소비자에게 최종 배송되는 마지막 과정을 뜻한다. 비대면 소비가 급증하면서 배송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많은 기업이 라스트마일 딜리버리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오늘 도착’ 서비스에 해당하는 재고 상품군은 국내외 유명 IT 브랜드의 PC, 노트북, 휴대폰 같은 IT 기기부터 가전, 가구, 선글라스, 유통기한 임박상품 등이다.

최근 들어 재고 소각 등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가 부각되면서 물류 영역에서도 ESG가 강조되고 있다. 단순히 싸게 파는 것을 넘어 소비자·기업·환경을 하나의 틀로 연결하는 유통 선순환 구축이 김 대표가 밝힌 리씽크의 사업 목표다. 리씽크는 이러한 역할을 인정받아 한국기업데이터가 선정한 ESG 인증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202210호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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