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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이 되어버린 유선통신, 그다음은? 

 

로버트 헤일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1876년 특허를 받은 기술로 억만장자가 됐다. 그러나 유선통신에 주어진 시간은 끝났고, 21세기는 새로운 길을 요구한다.
“다들 힘내서, 파이팅!” 금요일 새벽 6시 30분, 롭 헤일(Rob Hale, 56)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앞에는 그래닛 텔레커뮤니케이션즈(Granite Telecommunications) 직원 20여 명이 모여 있었다. CEO인 헤일이 가장 좋아하는 오전 운동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운동은 1시간 동안 계속되는데 절대 만만하지 않다. 팔굽혀펴기와 스쾃, 버피, 윗몸일으키기, 플랭크, 팔 벌려 제자리뛰기를 연이어 끝내고 나면 본사가 있는 4층짜리 건물 계단을 뛰어 올라가야 한다. 회사는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16㎞가량 떨어진 블루칼라 노동자의 도시 매사추세츠주 퀸시에 있다.

헤일은 오전 운동을 특히 좋아한다. 그의 하루 스케줄은 매일 비슷하다. 주차장 5번 자리(5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에 차를 대고, 던킨 도넛의 엑스트라 라지 디카페인 커피를 4잔(오전에 2잔, 오후에 2잔) 마신다. 점심시간에는 두 번째 운동(이번에는 자비롭게도 20분짜리)을 해야 한다. 퇴근 시간이 되면 집에 가서 28년간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 카렌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헤일은 “루틴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라며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규칙적인 삶은 그에게 큰돈을 안겨줬다. 비상장사 그래닛은 지난해 매출 16억 달러를 올렸다. 장기 채무는 전혀 없다. 20년 전 첫 회사의 파산을 지켜봐야 했던 헤일의 지금 재산은 50억 달러다. 그가 보유한 그래닛 지분 70%의 가치다. 덕분에 그는 2년째 미국 400대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그 엄청난 돈을 벌었을까? 블록체인이나 메타버스, 클라우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보스턴 사람인 그가 21세기에 구축한 텔레콤 왕국은 150년 전 개발된 옛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바로 한 쌍의 구리선을 꼬아 만든 기존 전화 서비스다. 업계에서는 ‘POTS(plain old telephone service)’라고 부른다. 도매 통신업을 하는 그래닛은 유선통신사에서 전통적인 전화선을 빌려서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프리미엄을 받는다.

광섬유 케이블이나 무선통신 대비 POTS의 큰 장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안정성이다. 유리섬유와 달리 구리선은 전도체다. 다시 말해 정전이 되어도 POTS는 계속 작동된다. 그래서 화재경보와 보안 시스템, 엘리베이터 비상전화처럼 항상 작동해야 하는 필수 장비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헤일은 “증권가에서는 유선 전화선의 수명이 다 했다고 보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소매업체들은 모두 POTS 선을 두 개씩은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닛은 나이키, CVS, 펩시코처럼 전국에 유통 네트워크를 가진 기업에 POTS를 제공한다. 이들 기업의 IT 담당자는 전국 각 주에 있는 전화선을 한 협력업체에서 총괄하는 걸 선호한다. 몬태나에 있는 POTS 선이 작동하지 않으면 CVS 기술 담당자들은 주마다 다른 유선통신업체를 찾아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 어디에서든 그래닛에 연락하면 모든 일을 처리해준다.

헤일은 “전국 단위 브랜드에서는 다수의 통신사를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딱 한 업체와 얘기했을 때 문제가 해결되는 걸 선호하죠.”

이렇게 간편한 방식은 지난 수년간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그래닛은 지금 실존적 위협에 직면했다. 유선통신을 넘어서지 않으면 구닥다리 기업으로 전락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연방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0년만 해도 1억2300만 개였던 미국의 POTS 선은 지난해 3200만 개로 감소했다. 구리선은 유지관리 비용이 비싸고 난도도 높다.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전화 통신사들에 POTS선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그래닛과 같은 경쟁업체에 재 판매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그런 요구조차 하지 않는다. 버라이즌과 함께 미국 최대 POTS 통신사인 AT&T는 2025년까지 설치한 구리선의 절반에서 더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지난 3월에 발표했다. 전화 시스템을 인터넷 전화 VoIP로 바꾼 기업도 상당하다. 화재경보와 기타 중요 서비스를 위해 계속 POTS를 사용하는 기업들도 POTS 대체 시스템으로 알려진 배터리 기반 무선통신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그래닛은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POTS 사업의 연 매출이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장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POTS는 조만간 사라질 수도 있겠다”고 CRG 텔레콤의 비용관리를 맡고 있는 컨설턴트 데니스 먼로가 말했다.

헤일이 도매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닛은 아직 이들 신규 시장에서 중개 역할을 하고 있다. 단순히 POTS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 인터넷을 임대해주고 무선장비를 대량으로 사서 월 사용료를 받으며 관리해주는 일도 한다. 덕분에 10년 전만 해도 그래닛 매출의 100%를 차지했던 POTS 선은 이제 매출의 절반 정도로 비중이 낮아졌다. 대신 케이블 및 무선 인터넷전화 상품이 각각 매출의 20%와 15%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그래닛은 POTS 대체 장비를 생산하는 EPIK를 인수하는 데 2000만 달러를 투자하며 회사의 최초 인수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그래닛은 구리선을 더는 사용하지 않으려는 고객사들에 EPIK의 POTS 대체 장비를 판매할 예정이다.

그러나 그래닛이 수익성 높은 유선전화 틈새시장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그 앞에 놓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래닛에 상품을 판매했던 거대 통신사 및 케이블 업체(버라이즌, AT&T, 차터, 컴캐스트 등)들은 그래닛을 건너뛰고 기업에 직접 상품을 판매하고 싶어 한다. 시장에 이미 뛰어들어 직접 경쟁하는 기업도 있다. 링센트럴(RingCentral)과 8X8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 모두 베이에어리어에 본사를 두고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텔레콤은 아주 지저분한 사업이 될 수 있다. 서로의 목을 노리는 경쟁업체끼리 서로 의존해야 하고 파트너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뉴저지에 본사를 둔 포 포인츠 캐피털 파트너스의 통신산업 투자은행 전문가 리치 테라니가 설명했다. 그는 그래닛이 전체 사업 라인에 걸쳐 “말 그대로 수천 개 경쟁업체”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헤일은 케이블과 도매 사업부에서 그래닛의 운용 마진이 유선전화 사업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포브스는 15~20% 사이로 추산한다.) 그는 그래닛이 POTS 사업을 하면서 얻은 경험은 사업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럴 만하다. 유선통신사와 마찬가지로 케이블 업체 또한 통신망이 지리적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그래닛이 구축한 전국 단위 집합 모델이 아직 유용하기 때문이다. 무선통신망 또한 위치에 따라 통신 품질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래닛은 고객 서비스가 훌륭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쉽사리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헤일은 주장한다. 그는 고객사와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눈다는 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우리는 고객을 위해 움직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우리 사업의 기반이 거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관계입니다.”

경영자보다는 다가와서 등을 두들겨주는 정치인

헤일에게는 특유의 인간적인 분위기가 있다. 만나면 주먹 인사를 건네고 소소한 대화를 이끌면서 자기를 비하하는 듯한 농담으로 상대를 웃긴다. 차갑게 느껴지는 경영자보다는 다가와서 등을 두들겨주는 정치인 같다. 뉴잉글랜드 자선사업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크다. 그는 자신과 그래닛의 이름으로 다수 병원과 대학, 학교, 지역 자선재단에 총 5억 달러를 기부했다. 회사가 매년 개최하는 ‘세이빙 바이 셰이빙(Saving by Shaving)’ 행사는 퀸시의 대표적인 붙박이 행사가 됐다. 참석자들이 머리카락을 깎아서 항암 환자를 위한 가발 소재로 기부하는 행사다. 지금까지 톰 브래디와 데이비드 오르티스 등 보스턴의 스포츠 전설들이 참여했을 정도로 유명하다. “(보스턴에) 롭보다 더 많이 기부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있다면 정말 놀라울 것”이라고 헤일의 막역한 친구인 찰리 베이커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말했다.

1966년생인 로버트 헤일 주니어는 서부 매사추세츠에 있는 인구 3만 명의 도시에서 자라났다. 스미스칼리지가 있는 곳이다. 그의 아버지 밥은 여성 의류를 수입해서 판매하는 사업가였다. (코네티컷칼리지에서 반대표를 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쳤지만, 학교 성적은 평범(“저는 C와 B를 주로 받는 학생이었는데, 둘 중에 굳이 고르자면 C가 더 많았습니다”)했던 헤일은 영업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았다. 역사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 입사한 장거리 전화 회사 MCI에서 재능에 눈을 떴다. 이후 지역 통신사인 뉴잉글랜드 텔레폰(버라이즌이 인수)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영업을 시작하고 한 달도 안 되어서 ‘와, 나 정말 소질 있네’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학업에 그리 뛰어나지 않았고 운동에도 소질이 없었지만,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영업에서는 점수를 매기잖아요.”

1990년에 그는 첫 회사 네트워크 플러스를 창업했다. 부모님에게 빌린 40만 달러(“부모님 비상금이었어요”)가 창업 자금으로 쓰였다. 도매 시장에서 전화선을 사서 저렴한 가격으로 중소기업에 장거리 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획이었다. 후에 그래닛의 모태가 된 아이디어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수익이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업이 아주 잘됐죠.”

그때 월스트리트 증권사들이 문을 두드렸다. “골드만삭스가 갑자기 연락을 해오더니 채권을 발행해보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통신맨이지 금융맨이 아니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채권을 발행해서 IPO를 하면 억만장자가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럼 그 채권 발행이란 걸 꼭 해야겠군요’라고 답해줬습니다.”

당연했다. 당시는 닷컴 버블이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투자자들이 텔레콤이란 말만 들으면 돈을 퍼붓던 때였다. 헤일도 이 광란의 도가니에 숟가락을 얹었다. 네트워크 플러스는 2억 달러가 넘는 채권을 발행하고 이 돈으로 지역 전화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을 세웠다. 회사는 1999년 6월에 상장했다. 잠시였지만, 증권사가 약속한 대로 헤일은 억만장자가 됐다.

그러나 곧바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텔레콤 시장이 수직낙하를 시작하면서 투자자들은 피난처를 향해 뛰었고 대출기관은 수도꼭지를 잠갔다. 부채에 허덕이던 네트워크 플러스는 2002년 2월 파산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는 남은 자산을 1600만 달러도 안 되는 헐값에 팔아버리고 직원 수백 명을 정리해고했다.

헤일은 “통신망을 구축하는 건 다리를 짓는 것과 비슷한데, 다리 절반이 무너져내린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의 충격이 엄청났다고 전했다.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어서 체중이 크게 줄었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바로 구토를 했죠.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자존감을 되찾고 싶었죠.”

그는 네트워크 플러스가 파산한 그해에 그래닛을 창업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두 번째 회사에 모두 쏟았다. 두 번째 회사는 운이 좋았다고 헤일도 스스로 인정한다. 원래는 이전과 같은 전화 통신망을 구축하려 했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보스턴 지역에서 전화선 임대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시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야 했어요”라고 말했다. “고객을 확보해서 규모를 갖춰놓은 다음 방향을 바꾸는 거죠. 다들 하는 방식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월마트와 월그린에서 각자 그래닛에 연락을 해왔다. 보스턴 지역에 개설한 자사 전화선을 총괄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렇게 계약이 성사되자 뉴잉글랜드 지역에 있는 전화선을 모두 종합해서 관리해달라는 계약이 잇따랐다. 관할 지역은 뉴잉글랜드에서 북동부로 넓어졌고, 급기야는 미 전역으로 확대됐다.

헤일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라고 항상 묻는데, 우리가 찾아낸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고객이 먼저 요청한 거죠”라고 말했다. “우리는 단지 ‘경청’이라는 상식을 따랐을 뿐입니다.”

이제 다시금 현장에 귀를 기울일 때가 왔다. 그 전화선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닛이 앞으로 맞이할 20년이 지난 20년만큼 좋아지려면 상식에서 벗어날 정도로 많은 변화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 고객이 원하는 대로 롭 헤일 그래닛 CEO가 컴퓨터 서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닛 직원 2500명은 이 서버를 통해 1만7000개가 넘는 기업고객의 전화선을 관리해준다.

※ How To Play It

나무 전신주 사이 늘어진 구리선으로 대표되던 옛 통신망이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리고 이 자리를 차세대 통신망인 ‘소프트웨어 기반 네트워크’가 대체하는 중이다. 관련 장비를 만드는 회사로는 아리스타 네트웍스(Arista Networks)가 있다. 5G 무선, 디지털 스트리밍 미디어, 원격근무, 하이퍼스케일 클라우드 컴퓨팅 등 혁신적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탄탄하면서도 확장 가능한 네트워크다. 관련 장비 사업은 이미 호황기에 접어들었고, 수익 마진도 상당히 높다. 아리스타가 지난 8월 발표한 2분기 실적을 보면, 매출은 전년 대비 48% 증가해 10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총마진율은 61.9%였다.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 있는 회사의 주가는 12개월 내 155달러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주가가 124.75달러니까 잠재 수익률이 24%인 셈이다.

- 존 D. 마크맨은 마크맨 캐피털 인사이트 사장이자 패스트 포워드 인베스팅의 편집자다.

※ The Vault- - O.G. 아메리카 온라인

롭 헤일이 전화선을 기업에 판매하기 50년 전, 당시 이미 108년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웨스턴 유니언은 기업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며 “한때 잘나갔지만 지금은 한물간” 기업에서 “통신 시장의 선도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비상장 통신사였던 웨스턴 유니언은 유나이티드 항공사와 펜실베이니아 철도를 비롯한 기업들과 미 공군의 내부 통신 서비스를 담당하면서 연 매출 4200만 달러(지금 기준 4억3000만 달러)를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눈부신 산동 실크 정장을 입은 웨스턴 유니언 사장 월터 피터 마셜이 하와이 히컴 공군기지에서 버나드 우튼 공군준장 옆에 앉았다. 광대뼈가 높이 솟은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우튼 준장이 스위치를 켜자 공군의 새로운 통신망 서비스가 공식 가동에 들어갔다. 히컴 기지와 일본 후츄, 미국에 있는 250개 발전소와 25만 마일의 민간 고속 통신 시스템을 연결하는 스위치였다. 시스템 전체의 설계와 구축, 설치는 웨스턴 디자인이 맡았다. - 포브스 1959년 8월 1일 기사

- John Hyatt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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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호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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