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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찬이 만난 부울경 혁신 리더(8) 조우현 대선주조 대표 

향토기업이 지역과 함께 사는 길 

장진원 기자
한때 90%를 넘어섰던 시장점유율이 30%대로 주저앉았다. 모두가 끝났다고 말했지만, 다시금 점유율 과반을 차지하며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부산을 대표하는 소주 제조사 대선주조 이야기다. ‘지역과 함께한다’는 전통과 원칙을 묵묵히 이어간 게 부활의 비결이다.

공장 생산라인을 따라 엄청난 수의 초록빛 소주병이 쉴 새 없이 미끄러진다. 병과 병이 몸을 맞대며 내는 ‘쨍그랑’ 소리에 고막이 먹먹해질 정도다.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기업 대선주조의 기장공장 풍경이다. 이곳에선 하루 8시간 기준 소주 100만 병이 생산된다. 1초에 20병 수준이다. 애주가들에겐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흐뭇한 장관일 게다.

부산 사람들에게 대선주조라는 이름은 곧 지역의 정체성과도 같다. 식당에서 굳이 대선(大鮮)소주와 시원(C1)소주를 주문하는 건 고향에 대한, 나아가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과 자존심이 걸린 일이다. 지역색이 유난히 세기로 유명한 ‘부산갈매기’들에게는 술, 더욱이 서민을 대표하는 소주야말로 향토기업이 내놓은 제품을 마셔야만 직성이 풀릴 일이다.

향토기업은 말 그대로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니 잘돼도 못돼도 오롯이 지역민의 정서에 기댈 수밖에 없다. 자칫 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이익만 밝힌다’며 눈 밖에 났다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에 빠지기 쉽다. 대선주조도 그랬다. 일제시대인 1930년 창립해 부산에서만 90년 넘게 사랑받았지만, 몇 차례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지역의 신망을 잃는 실수를 범했다. 부산지역 점유율이 90%를 넘어갈 정도로 아성을 쌓았던 대선주조는 한때 20%대 점유율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로 경쟁사에 왕좌를 넘겨주기도 했다.

대선주조의 뼈아픈 실책을 지역의 새로운 애정으로 돌려세운 주인공은 조우현 대표다. 대선주조는 지난 2011년 부산을 대표하는 중견기업 비엔그룹이 인수했다. 하지만 향토기업이 인수한 후에도 한번 꺾인 신뢰를 되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2세 경영자인 조 대표는 업계는 물론 지역에서도 ‘이젠 불가능에 가깝다’며 안타까워했던 대선주조의 명예회복을 우직하게 이뤄낸 주역이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가 조 대표를 만나 향토기업이 처한 현실과 풀어야 할 숙제, 나아가 지역과 상생할 비전을 물었다.

비엔그룹은 조성제 명예회장께서 1978년 창업한 부산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다. 소개 부탁한다.

1978년 BIP로 출발했다. 모기업인 BIP를 비롯해 비엔스틸라, 비스코, 바이펙스, 코스모, 비엔철강케미칼, 대선주조 등 13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창업 당시부터 수입에 의존하던 조선 기자재를 국산화하는 데 힘써왔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선정한 ‘세계 1위 제품’ 4개, ‘세계일류상품’ 7개를 보유한 중견그룹이다. 그룹 주력 사업이 대부분 B2B 영역인데, 창투사인 BK인베스트먼트를 제외하면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B2C 사업은 대선주조가 유일하다.

2011년 대선주조를 인수했다. 그룹 본업은 중후장대 산업인데, 과감하게 주류업체 인수에 나선 배경이 궁금하다.

인수 당시 부친께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계셨다. 애초 대선주조를 인수했던 대기업이 사모펀드에 재매각한 상황이었다. 향토기업으로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던 기업이 사모펀드 매각을 단행하자 부산 민심이 무섭게 돌아섰다. 공교롭게도 사모펀드로부터 재인수하겠다고 나선 곳이 또 그 대기업이었다. 부산지역 상공계에서 당장 “그 기업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성토가 높아졌고, 부친에게 인수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부산에서 제일 오래된 회사를 부산 기업이 운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었다. 대선주조는 이미 지역 인심을 잃고 어려움에 빠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부친으로선 상의 회장으로서 책임감과 사명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비엔그룹 인수 후에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때 대선주조의 부산시장 점유율은 90%대에 달했다. 대선소주를 비롯해 시원(C1)소주도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우리가 인수한 시점만 해도 이미 점유율이 30%대로 무너져 있었다. 애초 대선주조를 600억원에 사들였던 롯데 관계사가 사모펀드에 재매각한 금액이 3600억원에 달했다. 엄청난 차익을 거둔 셈이지만, ‘향토기업을 자본에 팔아먹었다’며 여론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불매운동까지 벌어졌다. ‘대선주조가 더는 부산 기업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부산 사람들 자존심이 워낙 세지 않나. 그런 와중에 인수를 감행한 것이다.

잘되던 기업을 인수해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CEO 부임 후 무엇에 집중했나.

인수 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모그룹에 있다가 2016년 대선주조에 합류했는데, 당시 가장 먼저 한 일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일단 제품 가짓수가 너무 많았다. 시원, 시원블루, 시원블루 자몽까지. 어디에 어떻게 집중할까를 고민했다. 현재 대선, 시원, 다이아몬드 등으로 라인업을 단순화했다.

‘대선’ 브랜드 부활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소주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을 풍미한 브랜드였다. 시원소주가 유행하면서 단종됐는데, 이를 레트로 감성으로 되살렸다. 2016년 9월에 출시하려다가 좌절된 뒷얘기도 있다. 당시 그룹 회장이자 숙부인 조의제 회장께서 새 제품 출시에 따른 리스크를 우려하셨기 때문이다. 부친은 명예회장으로 상의 활동에 집중하고 계신다.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에 부친께 “책임지고 해보라”는 답을 얻었다. 묵혔던 프로젝트를 다시 꺼내 다듬었다. 2017년 1월 23일 기장공장에서 처음 대선소주가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시장 반응은 어땠나.


소주 사업은 월별로 대략적인 매출 구조가 있다. 겨울 매출이 높고 여름엔 낮다. 명절 낀 달 전이 높고 그 후는 떨어진다. 2월은 일수가 적을뿐더러 대표적인 소주 비수기다. 신제품이라 해도 매출이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이를 알면서도 막상 2월 성적표를 받아보니 ‘괜한 도전이었나’ 하는 걱정이 컸다. 그러다 3월부터 반전이 시작됐다. 전달 대비 판매량이 150만 병 늘더라. 걱정이 ‘되겠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때부터 마케팅도 엄청 열심히 했다.

소주 마케팅은 어떻게 하나.

소주는 소비자와 최접점에서 만나는 식음료다. 마케팅 방법도 단순하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 즉 ‘페이스 투 페이스’가 전통적이면서도 가장 효과가 큰 방법이다. 움츠려들었던 영업·마케팅 부문에도 잔뜩 힘을 줬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홍보 알바생 100명을 썼다면 3월 이후엔 인원을 4~5배로 늘려 주요 상권에 투입했다. 그러자 한 달 매출이 30~40%씩 뛰었다. 운도 따랐다. 대선소주 출시 당시가 조기 대선 시즌이었다. ‘대선은 대선이다’, ‘대선으로 바꿉시다!’라는 카피로 포스터를 제작했는데, 부산에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다. 대선이라는 폰트(글자체)도 굉장히 투박한 붓글씨 형태로 기획했다. 중장년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자는 취지였는데, 의외로 젊은이들이 레트로 감성에 열광하더라. 이후 메이저 업체들도 우리의 레트로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700ml 대용량 제품도 홍보용으로 내놓았는데, 젊은 여성 소비자들이 SNS에 자발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작게 나오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웃음)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다.

잘된 것만 말씀하셨지만, 직접 남포동에서 삼보일배까지 하셨다. 솔직히 부산 사람으로선 가슴 아팠던 기억이다.

지역에서 인심을 잃게 된 과정이 사실 우리 실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를 앞섰던 경쟁사 역시 수도권 진출에 힘쓰면서 많은 비용을 치렀다고 들었다. ‘부산 소주가 왜 서울로 가냐’며 인심을 잃기도 했다. 그만큼 향토기업에는 지역 정서가 엄청나게 중요하게 작용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했지만, 점유율이 50%대로 올라서면서 다시 부산의 강자로 부활했다. 앞으로 사업 방향과 차별화는 어떻게 이뤄갈 계획인가.

가장 고민이 큰 질문이다. 대선주조뿐만 아니라 지역기반 주류기업이라면 어디나 안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 메이저 주류사들의 지역 공략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예전에는 깨끗한 환경에서 좋은 제품 만들어서 승부하는 게 통했는데, 현재 시장 상황에선 철없는 말이 돼버렸다. 그래도 전국에서 메이저 소주회사가 점유율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곳은 부산이 유일하다.

메이저 주류사의 공세가 그렇게 강한지 몰랐다.

가령 이런 식이다. 시장에 새 제품이 나오면, 기존에 시장을 장악했던 메이저 기업이 경쟁사 제품을 대량으로 사들인다. 제품의 자취를 아예 없애는 전략이다. 그렇게 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나. 지역 업체로선 언감생심일 뿐이다. 대선주조뿐만 아니라 타 지역의 소주업체들도 부침이 너무 많다. 메이저 기업 입장에선 서울에서 점유율 10%를 차지하면 부산 크기 시장을 하나 더 얻는 셈이다. 공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라도 안정적인 지역 기반을 닦아야 한다. 장기적으론 우리뿐 아니라 다른 지역 소주업체들도 서울에서 일정 부분 점유율을 확보해야 한다. 그게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다. 타 지역 기업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전국의 지역 소주업체 매출을 다 합쳐도 서울 메이저 기업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면 감당 자체가 어려운 지경이다.

그래서인가? 항상 지역과 밀착한 활동이 돋보인다.

어떤 행사든 초대받아 가면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정직하게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일 많이 하는 회사가 되겠다.” 대선 매출의 전부가 부산·경남 지역에서 나온다. 부산과 김해, 양산 시민들 덕에 우리가 돈을 버는 거다. 당연히 이 지역을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대선이 후원하는 행사 중 부산불꽃축제가 유명하다. 부산을 대표하는 유명한 축제인데, 1회부터 후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지역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단순 홍보 목적이라기보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게 곧 우리의 살길이기 때문이다. ‘대선은 부산과 함께’라는 문화를 만들려 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가야 할 길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이 돋보인다.

2005년 설립된 대선공익재단은 부산 최초의 민간 공익재단이다. 부산 동구에 있는데 1층은 무료급식소, 2층은 사무국, 3층은 어깨동무 아동지역센터, 4층은 아동도서관으로 꾸며 많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외에도 모기업인 비엔그룹과 함께 부산불꽃축제를 비롯해 부산국제영화제, 부산항축제, 부산자갈치축제 등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들을 지원한다. 소외계층에게 좀 더 질 높은 사회복지서비스가 제공되도록 예비 사회복지사들을 지원하는 ‘대선장학금’도 대표적인 활동 중 하나다.

팬데믹 초기, 소독용 알코올을 지원해 부산에서 큰 화제였다.

소독용 알코올 품귀 현상으로 국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의료용 알코올은 60~70도 정도로 희석해 사용한다는 걸 나도 이번 기회에 알게 됐다. 우리도 매출이 급감했지만 지역사회를 살리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소주 원료가 알코올 아닌가. 주류는 식약처와 국세청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데, 국세청에 주류 제조용 원료 용도변경 허가를 내자 3일 만에 승인됐다. 주류 제조용 알코올을 술 이외 다른 용도로 허가받은 첫 사례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다. 2020년 2월 들어 70도로 희석한 방역용 알코올 주조 원료 132톤을 부산시와 대구, 울산 지역 등에 기부했다. 이어 군부대와 병원 등에도 추가로 기부했다.

지역과 함께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에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얼마 전엔 이런 일도 있었다. 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가 코로나로 돌아가셨다. 소식을 접한 동아대 학생들이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대선소주로 캠페인을 할 테니, 아이들을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우리 술을 마시고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렸다. 마음 씀씀이가 정말 기특하지 않나. 바로 1000만원을 기부했다. 돈은 그렇게 써야 값진 거 아닌가. 학생들 입장에선 지역 현안을 대선주조에 이야기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거다. 그만큼 부산이라는 지역사회에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우리 노력이 통했다는 생각에 더 반가웠다.

부산 지역 2세 경영인들의 멘토 역할을 맡고 계신다. 끝으로 이들을 위한 조언 부탁한다.

2세 기업인들은 창업주와의 관계 설정에 따라 제 역량을 펼치든지 제한받든지 둘 중 하나다. 지나고 보니 나 역시 그렇더라. 부친과 경영 스타일이 달라 많이 부딪쳤다. 창업주는 대개 리스크를 피하려는 성향이 있지만, 2세는 그 반대다. 어릴 때는 내가 다 맞는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오히려 틀린 게 많더라. 자식이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가 있겠나. 물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건 후대의 몫이다. 하지만 기존의 레거시를 잘 수성하는 것 또한 의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선대의 노하우에 2세 경영인의 장점, 이를테면 흐름에 빨리 적응하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방식을 더해 시너지를 일으키는 거라 생각한다. 신구의 조화다. 새로운 도전에 나서면서도 지킬건 지켜야 한다. 새로운 것만 찾다가 무너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 최영찬 대표는… 선박과 플랜트 분야 제조업을 영위하는 선보공업의 차세대 경영인이다. 제조업체들이 스타트업 및 투자 생태계와 어떻게 공존하고 미래 사업을 만들지 고민하면서 선보엔젤파트너스와 기업 연합형 CVC인 라이트하우스를 창업했다. 200여 개 스타트업에 투자했으며, 컴퍼니빌딩 프로젝트와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을 공동경영 형태로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창업한 2개 법인과 별도로 3개 프로젝트의 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면서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 정리=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최재승 객원기자

202212호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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