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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희 이화다이아몬드 대표 

명문 기술기업의 저력 

신윤애 기자
진정한 강자는 위기의 순간 더 반짝인다. IMF 외환위기와 리먼사태를 거뜬히 이겨냈던 국내 1위 다이아몬드 공구 기업 이화다이아몬드의 기세가 범상치 않다. 위기에 강한 DNA를 장착한 이 회사는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이는 와중에도 지속 성장을 이뤄냈다. 1975년 창사 이래 2년 연속 최대 실적을 올린 김재희 대표를 만났다.

‘이환위리(以患爲利)’. 중국 병법서인 『손자병법』 군쟁편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고난을 극복하고 나아가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경제위기 등 악재가 엎친 데 덮쳤던 지난 몇 년은 기업인들에게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올해를 다짐하는 신년사에서 유독 ‘이환위리’라는 메시지가 많이 들려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이 구성원들에게 ‘위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회로 만들어 기업가치를 높이자’고 주문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전염병의 굴레, 갈수록 악화하는 금융 경제위기, 평생 과업인 안보와 환경 문제.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문제들을 과연 기업이 풀어낼 수 있을까? 나아가 어떤 기회를 창출해야 할까? 기회를 만들지 못하면 사장되는 것일까? 두려움과 막막함이 공존하는 위기에도 누군가는 늘 해답을 찾아냈다. 1975년 창립 이래 수십 년간 다이아몬드 공구라는 한 우물만 파온 다이아몬드 공구 전문 기업 이화다이아몬드가 그 주인공이다.

이화다이아몬드는 올해로 창립 48주년을 맞았다. 회사의 긴 역사만큼 수많은 국내외 경제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견뎌냈다. 어려움은 있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위기마다 더 큰 보폭으로 성장하는 ‘이환위리’의 모습으로 세간을 놀라게 했다.

여기 이화다이아몬드의 위기 대응력을 확인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우선 IMF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거렸던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금이 말라 대부분의 산업은 위축됐고 그 여파로 다이아몬드 공구도 수요가 크게 줄었다. 내수시장이 50% 이상 쪼그라들었고, 수출가는 20% 이상 하락했다. 그런데도 이화다이아몬드는 1997년보다 성장해 940억원 매출을 올리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2008년 리먼사태 때도 이화다이아몬드는 끄떡없었다. 일시적으로 회사 매출이 꺾이긴 했지만, 구조조정 등 별다른 타격 없이 이듬해 곧바로 매출을 회복했다.

이화다이아몬드가 각종 악조건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창업주 김수광 회장의 선견지명과 대담한 결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그는 IMF 외환위기가 터질 무렵 회사 사정이 어려워질 조짐이 보이자 직원들에게 개인사업을 적극 유도했다. 장비를 임대해주고 협력 업체로 지정하는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해 독립을 도왔다. 또 수출 비중을 높여 국내시장 침체에 따른 리스크에 대비했다. 그러자 인건비 부담이 줄었고, 원화 가치 폭락으로 인한 환율 태풍을 비켜갈 수 있었다. 이때 위기를 이겨낸 경험은 리먼사태 때도 큰 힘이 됐다.

2020년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이화다이아몬드의 위기 대응력은 빛을 발했다. 쟁쟁한 글로벌 경쟁사들이 ‘셧다운’으로 한숨 짓는 가운데 2년 연속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2021년 매출 3360억원, 영업이익 267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후 최대 실적을 올렸고, 이듬해인 2022년에는 매출 3486억원으로 곧바로 기록을 갈아치웠다. 플랫폼, 서비스 등 소위 ‘코로나 수혜’ 업종이 아닌 정통 제조업에서 거둔 성과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일반인들에게 이화다이아몬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사명 때문에 ‘이화여대 출신이 차린 주얼리회사’로 오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공구’업계에서는 이화다이아몬드를 모르는 이가 없다. 대한민국의 다이아몬드 공구 산업을 열고 꽃피운 주역이니 말이다.

다이아몬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로, 광물의 단단한 정도를 나타내는 모스 경도계 최고 등급인 10등급에 해당한다. 다이아몬드 공구는 인공으로 만든 공업용 다이아몬드의 입자로 날을 제조하기 때문에 강도가 높고 내구성이 좋다. 주로 건설 석재, 유리, 반도체 웨이퍼, 각종 산업용 부품을 절삭, 연마, 천공하는 가공처리에 쓰인다.

이화다이아몬드가 창업할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다이아몬드 공구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서울대 금속공학과 출신인 김 회장이 이 시장에 뛰어들어 다이아몬드 공구의 국산화를 이뤄냈다. 창업 6년 만인 1981년엔 석재 절단용 톱날을 미국에 수출하며 일찌감치 해외 판로를 개척해나갔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 업계 1위를 놓치지 않은 ‘절대 강자’ 이화다이아몬드는 해외시장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세계 4위인데, 세계 1위 기업으로 알려진 일본 아사히 다이아몬드와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다고 한다.

다이아몬드 공구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을 다이아몬드 공구 선진국 반열에 올려놓은 이화다이아몬드는 국내외 역사적인 현장에서도 활약했다. 1989년 냉전의 상징 베를린장벽 철거 현장을 비롯해 199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청사 첨탑·건물 철거 현장, 2003년 청계고가 철거 현장에서 이화다이아몬드의 제품이 사용됐다. 이 회사의 긴 역사는 물론 일찍이 세계시장에서도 통했던 기술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48년간 이어온 흑자 행진의 비결


“이화다이아몬드의 첫 제품은 화강석을 가공하는 공구 ‘쏘블레이드’입니다. 1970년대 전북 황등 지역에서 묘석을 가공해 일본에 수출하는 산업이 활발했는데, 묘석을 가공할 때 필요한 공구를 저희가 개발해 공급했습니다. 석재 분야를 시작으로 건축 구조물, 자동차, 반도체, 항공 등으로 영역을 꾸준히 넓혀왔고요. 현재 보유한 제품의 종류는 톱날부터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후면 가공용 휠 등 무려 3만 종이 넘습니다. 또 삼성, SK하이닉스, TSMC, 현대, BMW, GM, 보쉬, 블랙앤데커 등 국내외 유수의 업체가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사입니다.”

창업주이자 부친인 김수광 회장에 이어 2010년 대표직에 올라 가업을 잇고 있는 김재희 대표가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화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공구라는 한우물을 팠지만, 수많은 산업 분야에 손을 뻗치고 있는 종합 공구 메이커”라고 강조했다. 이화다이아몬드는 전자, 정밀가공, 건설 석재 등 세 분야를 중심으로 종합 공구 메이커라는 이름에 걸맞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대부분의 다이아몬드 공구 업체가 특정 분야의 제품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사업의 다변화 전략은 우리 회사가 중장기적으로 리스크를 분산하고 관리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며 “특정 산업의 성과가 좋지 않으면 다른 산업에서 빈틈을 메꾸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이화다이아몬드는 경기 흐름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안정적인 성과를 올리며 48년간 흑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공구 특성상 대부분이 고객사의 요구에 맞게 맞춤형으로 제품을 생산하는데, 여기에 산업 분야까지 다양하다면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이화다이아몬드는 제품 라인업 3만 개 중 이듬해에 완전히 그대로 생산되는 비율이 6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 재생산된다. 김 대표는 “생산공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아직 반자동화, 수동으로 이뤄지고 있는 공정을 한 단계씩 전산화, 자동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고무적인 건 몇 년 전부터 제조업에서 ‘맞춤’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한다는 점이에요. 자동차만 해도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 차체, 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주문 제작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아디다스는 이미 2017년에 완전 맞춤형 신발을 제조하며 제조 혁명을 이뤄냈고요. 하지만 아무리 시장 환경이 변하고 우선순위가 달라져도 제조업의 근간은 기술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48년간 지켜온 우리 회사의 신념이기도 합니다.”

김수광 회장의 기술력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다. 입버릇처럼 강조해온 ‘제조업의 기본은 기술’이라는 말을 일찌감치 행동으로 보여줬다. 그는 1988년 업계 최초로 또 중소기업에선 드물게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해, 당시 매년 매출액의 3% 이상(약 90억원)을 연구개발비로 투자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연구원 30여 명은 김 회장의 기대에 부응해 다이아몬드 와이어소(diamond wire saw) 부문에서 장영실상 수상, 정밀기술경진대회 금상 및 우수상 수상 등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이들 덕분에 이화다이아몬드의 뼈대를 단단히 다질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 공구는 기술 집약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내부 인재 육성이 중요합니다. 지금도 우리 기술연구소에서 활발하게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 각 사업부의 기술개발 전담부서와 연계해 시너지를 내고요. 현재 15년 넘게 공구 개발에 매진해온 경력자 80여 명을 포함해 총 120여 명의 기술 인력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 해 매출액의 5% 정도를 지원하고 있어요.”

기술개발에 통 큰 투자가 이뤄지는 만큼 성과도 상당하다. 현재까지 국내 특허 130개, 해외 특허 145개를 보유하고 있다. 김 대표가 대표적인 특허 기술 몇 가지를 소개했다. 우선 다이아몬드 분말을 균일하게 배열하는 기술이다. 다이아몬드 공구의 날 부분에는 다이아몬드 분말과 금속 분말이 섞여 있는데 이 중 금속을 자르거나 연마하는 가공 처리는 다이아몬드 분말이 맡는다. 따라서 다이아몬드 분말이 날의 끝부분에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돼야 성능이 더 좋아진다. 지금까진 분말을 한 통에 넣고 흔들어 섞었기 때문에 배열이 균일하지 못했지만 이화다이아몬드에서 다이아몬드 분말을 패턴으로 균일하게 배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기존 다이아몬드 공구의 성능과 수명을 모두 올린 ‘ZENESIS’라는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현재 석재 절단, 콘크리트 기둥 제거 등에 적용되며 건설 분야의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얼마 전에는 반도체 분야에서 이화다이아몬드의 기술로 혁신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반도체 후공정에서는 웨이퍼 위에 칩을 여러 층 쌓는 기술이 중요하다. 이러한 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웨이퍼를 최대한 얇게 연마해야 한다. 웨이퍼 두께가 얇을수록 휴대전화 등의 완성품이 얇아지고 가벼워진다. 이를 ‘백그라인딩’이라고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장비인 ‘백그라인딩휠’을 이화다이아몬드에서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김 대표는 “뛰어난 연삭 능력으로 웨이퍼 조도를 1㎚ 수준까지 연마했다”며 “일본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만들었던 제품을 제치고 우리 제품이 시장을 차지했다”고 자랑했다.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은 기존 비즈니스와 새로운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김 대표는 “이를 테면 유리 가공 기술은 건설용 유리, 자동차 유리, 디스플레이 유리 등 다양한 산업에 적용될 수 있는 식”이라며 “한 분야에서 개발한 기술이나 공정이 다른 분야에 적용되며 발전하기도 하고, 같은 기술을 조금씩 변형해 새로운 제품군으로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화다이아몬드가 48년간 갈고닦은 기술력은 오래전부터 세계에서 인정받아왔다. 앞서 말했듯 김 회장은 성장에 한계가 있는 국내시장을 넘어 선진 시장인 미국으로 곧장 도전했다. 1970년대 상대적으로 낮은 제조비용으로 경쟁우위를 점하고 있던 일본 제품보다 가격은 낮고 품질은 좋은 한국 제품을 선보이며 다이아몬드 공구 산업의 떠오르는 별이 됐다. 이후 기술력을 앞세워 본격적으로 해외시장을 점령해나갔다. 1993년 독일 시험인증기관 TÜV SÜD에서 국제품질경영인증(ISO9001)을 받았고, 같은 해 중국에 복건공장을 설립했다. 1994년엔 태국법인, 1995년엔 일본법인을 설립하고, 2004년엔 독일에 이화유럽을 설립했다. 김 회장이 처음 해외로 눈을 돌린 건 사업 확장을 위해서였지만, 결국 수출이 내수시장의 침체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이후 이화다이아몬드는 부지런히 해외사업을 확장했고, 일찌감치 해외시장을 리스크 관리의 거점으로 삼았다.

2002년 회사에 합류한 김 대표도 가장 먼저 해외 영업에 뛰어들었다. 그 당시에도 이미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이 해외에서 나오고 있었다.

“회사의 모든 일은 시장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고객사가 많은 해외시장을 잘 알아야 고객의 니즈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해외 영업으로 일을 시작했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죠.”

2010년 김 대표 체제가 출범한 이후 글로벌 진출은 더욱 활발해졌다. 인도네시아(2012), 인도(2013), 멕시코(2015), 이탈리아(2015), 베트남(2017), 미국(2021)까지 해외법인 6개를 추가 설립했다. 현재 국내 4곳, 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 해외 6곳에 생산 공장이 있고, 해외 판매 법인도 9곳에 달한다. 해외 공장과 법인 인프라를 기반으로 미국과 독일을 비롯해 중남미와 유럽, 러시아, 인도, 동남아, 중동 등 9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매출의 60%가량을 해외에서 거둬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다이아몬드 공구 회사 중 연간 수출액이 1억 달러가 넘는 업체는 이화다이아몬드가 유일하다. 이 점을 인정받아 2011년 지식경제부에서 ‘월드클래스 300’ 기업으로 선정했으며, 2008년에는 국내 다이아몬드 공구 업계 최초로 1억불 수출 탑을 수상했고, 금탑산업훈장과 은탑산업훈장(2회)도 받았다.

분산 생산으로 코로나19 방어


이화다이아몬드의 생산 공장이 회사 규모에 비해 너무 많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국내외 합해서 총 10곳이나 되니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이화다이아몬드의 버팀목이 된 건 이 공장들이었다. 팬데믹으로 일본, 독일 등 글로벌 브랜드들이 ‘셧다운’에 들어간 상황에서 이화다이아몬드는 고객사와 약속한 물량을 차질 없이 공급했다. 김 대표는 “공급망 리스크를 미리 대비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어떻게 공급망 리스크를 대비했을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이 있죠. 오래전부터 전체 제품은 아니더라도 주력 제품만큼은 적어도 두 군데 공장에서 생산하도록 분산했죠. 코로나19를 대비한 건 아니었고 예전부터 공급망 위기를 염두에 두고 준비해온 대응책입니다. 공장이 세계 곳곳에 있기 때문에 한 지역이 셧다운돼도 다른 곳에서 생산해 공급할 수 있었죠. 이는 신규 고객사 창출로도 이어졌어요. 그동안 아무리 두드려도 미동도 없던 경쟁사의 고객사가 ‘우리에게 제품 좀 달라’는 연락이 왔고 결국 우리 고객이 된 일도 있었습니다.”

2년 연속 최대 매출을 올린 김 대표에게 소감을 묻자 “한순간도 쉽지 않았다”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생산과 판매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긴 하지만 기술혁신을 게을리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산업이라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기술부서, 영업부서를 비롯한 모든 직원이 열심히 뛴 결과”라고 직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더불어 “특히 영업사원들은 전문적인 기술지식을 완벽히 숙지한 상태에서 현장에 나간다”며 “이들이 고객사와 주고받은 피드백을 토대로 새로운 기술과 제품이 탄생하고 새로운 산업 분야에도 진출한다. 우리 회사의 히든 챔피언”이라고 강조했다.


매년 회사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는 김 대표지만 취임할 당시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주변의 시선이 적지 않았다. ‘비엔지니어’ 출신의 ‘여성’이 기술 집약적인 제조회사를 어떻게 꾸려갈지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섞인 시선이었다. 김 대표가 당시의 심정을 들려줬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역사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회사에 합류했습니다. 처음부터 대표직을 염두에 뒀던 건 아닙니다. 당시 전문경영인이 따로 있었는데, 2010년 즈음에 새로운 전문경영인을 모시거나 직접 대표직에 올라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많은 걱정을 뒤로하고 도전해보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기술 집약적’이긴 하지만 ‘엔지니어 집약적’이진 않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다시 말해, 엔지니어 한 사람이 건설부터 반도체까지 기술적으로 모든 산업분야를 커버하긴 불가능하잖아요. 저는 분야별로 최고의 전문가를 발굴하고 육성해 각 산업에 맞는 드림팀을 꾸리는 역할을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또 시장에 나가서 이길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들고 투자를 해주겠단 결심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CEO의 ‘E’는 Enable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원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자리죠. 지금도 직원들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항상 고민합니다.”

이제 그도 제조업 대표로서 13년을 보냈다. 그사이 호황도 있었지만 제조업 위기론은 더 짙어졌다. 하지만 그는 제조업은 여전히 가능성 있는 산업이라며 선을 그었다.

“직원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경기가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거죠. 우리가 진출해 있는 시장만 보지 말고, 아직 개척하지 못한 시장을 보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 눈엔 다 가능성으로 보이거든요.”

시장 또한 가능성이 적은 레드오션과 가능성이 풍부한 블루오션으로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기회와 가능성은 시장이 아닌 회사의 경쟁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아무리 오래된 시장이어도 우리가 잘하면 블루오션이고, 아무리 첨단산업이어도 우리 회사가 경쟁력이 없으면 쫓겨나는 레드오션”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현대 기술의 빠른 발전과 경영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화다이아몬드만의 방식과 경쟁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기술이 발달해 예전에는 금속 한 가지로 만들던 소재를 이제는 여러 금속을 섞어 합금 소재로 만듭니다. 이런 제품은 가공하기 어려운 ‘난삭재’라고 불러요. 더불어 정밀도에 대한 요구 사항도 한층 까다로워졌습니다. 보통 요구하는 공차(규격에서 허용하는 오차 범위)가 0.1㎜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0.001㎜(㎛) 수준입니다. 이때 최고의 정밀도를 자랑하는 다이아몬드 공구가 빛을 보는 거죠. 다이아몬드 공구 시장은 계속 확대될 겁니다. 친환경을 추구하는 산업 흐름도 우리와 잘 맞아요. 자동차를 예로 들면, 연비가 좋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부품이 가벼워야 하거든요. 예전엔 잘 쓰지 않던 합금강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재에도 다이아몬드 공구를 사용해야 하고요. 게다가 다이아몬드 공구는 공정 과정에서 분진이나 폐기물이 거의 나오지 않아 다른 공구에 비해 친환경적입니다.”

이화다이아몬드는 이제 근본적인 발전을 꾀하고 있다. 지난 40여 년은 고객사에 성능 좋은 공구를 납품해 다양한 산업 분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게 주요 역할이었다면, 이젠 기술력과 노하우를 토대로 ‘토털 가공 솔루션’을 제공하는 공구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TMS(Tooling Management Service)’라는 사업입니다. 한 예로 고객사에서 생산 라인을 운영하려면 다이아몬드 공구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공구가 필요해요. 이때 생산성을 높이고 불량을 줄이기 위해선 어떤 공구 라인업이 필요한지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또 설비에 맞는 공구를 생산해 납품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가 개발한 공구를 최적의 환경에서 활용하도록 공구 맞춤형 설비를 개발할 수도 있어요. 현재 시장에 이런 설비가 출시돼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과의 융합도 준비 중이다. 그는 “회사의 장점으로 꼽히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가공 노하우’, 즉 기술력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엔지니어와 그 팀이 폐쇄적으로 공유하던 기술 지식을 데이터화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기술을 업그레이드 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위기만 있는 회사는 없다


사세를 확장하며 만나는 위기의 순간이나 선택의 순간에 김 대표가 늘 마음에 새기는 말이 있다. ‘투명성’과 ‘신용’이다. 부친인 김 회장이 늘 해주는 조언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선 어떤 경우에도 ‘회사의 이름을 지켜라’, 즉 신용을 지키라고 하셨어요. 고객사뿐 아니라 직원들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정직하고 투명하려고 노력하죠. 신용은 신뢰로 확장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우리 회사만의 문화가 있습니다. 수년 전 10년 넘게 적자를 면하지 못하는 팀이 있었는데 가능성이 있는 시장인 건 분명하지만 기술개발이 난제였죠. 회장님은 언젠가 직원들이 해낼 거라고 믿었어요. 다른 회사 같으면 접었을 텐데, 저희에겐 없는 옵션이었죠. 결국 우연히 다른 시장과 접목되며 ‘대박’을 냈고 아직도 그 팀은 굳건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신뢰를 갖고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려주는 문화가 바로 우리 회사의 ‘스피릿’입니다.”

입사 이후 김 대표가 맞닥뜨린 최대 위기에서도 신용을 잃지 않았다. 2006년 미국 정부에서 한국의 다이아몬드 공구 산업을 상대로 벌인 반덤핑 소송이었다. 국내 대표 다이아몬드 공구 업체였던 이화다이아몬드가 대표로 소송을 진행했고, 기나긴 소송전을 거치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 김 대표는 “소송에 대응할 때도 최대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FM대로 준비했다”며 “당시엔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회사의 핵심 가치를 지켜낸 자랑스러운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이화다이아몬드는 미국 시장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점유율을 늘려가며 시장에서 더욱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이화다이아몬드 엔지니어가 제품에 들어간 원재료를 분석하고 있다.
창립 50주년을 앞둔 이화다이아몬드는 2020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선정한 ‘명문장수기업’과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가 선정한 ‘등대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회사의 전통과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제조업 위기설이 끊이지 않고 제조업 내부에 패배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이화다이아몬드는 향후 100년 기업으로 가는 길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제조업은 관점에 따라 위기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당장 개선해야 할 시급한 문제도 있지만 모두가 위기라고 할 때 보란 듯 성공하는 기업은 항상 있잖아요. 유니클로가 대표적이죠. 티셔츠, 양말 등 기본적인 의류로 독보적인 회사를 만들어냈습니다. 더는 새로울 게 없어 보였던 어묵 시장에도 삼진어묵이 등장해 혁신을 보여줬고요. 언제나 ‘위기’는 있지만 ‘위기만’ 있는 시장이나 회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조업을 한데 묶어 위기라고 하는데, 그 안에서 기회를 찾아가는 회사도 참 많아요. 이런 기업들이 부정적인 시선에 주눅 들지 않도록 믿고 지켜봐주면 좋겠습니다.”

이화다이아몬드도 지금처럼 꾸준히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마련하고 관리해 위기에 대비하고 기회를 모색할 계획이다. 올해 심은 씨앗이 당장 열매를 맺지 못하더라도 3년, 5년 혹은 더 멀리 내다보며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창업주인 김 회장이 여전히 함께한다.

“회장님과 매일 대화를 나눕니다. 워낙 친한 부녀 사이라 일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요. 회장님은 여전히 회사의 기술력에 기대와 관심이 많습니다. 항상 ‘세계시장에서 이기는 기술을 개발하라’고 주문하시니까요. 일주일에도 몇 번씩 회사에 들러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조언을 주고 계십니다.”

※ 대표 제품


백그라인딩휠 반도체용 실리콘 웨이퍼 연마에 사용되는 제품. 세계 반도체 선두 기업의 패키징 공정에 주력 제품으로 사용된다.


CF 밀링커터 자동차와 전기차용 부품, 에어컨, 냉장고 등 전자전기 부품의 케이스 등 다양한 산업용 부품을 평평하게 가공하는 공구. 다수의 인조 다이아몬드 팁이 체결돼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공작물을 평탄하게 한다.


인공관절 가공 휠 무릎 인공관절 연삭에 사용되는 공구. 연삭성이 우수해 가공물의 조도 및 형상 구현이 뛰어나다. 최첨단 소재인 CFRP(Carbon Fiber Reinfoeced Plastic) 보디를 적용해 초고속 연삭 공정도 가능하다.


제네시스 블레이드 다이아몬드 입자 Pattern화 기술을 사용해 다양한 종류의 콘크리트 및 도로를 빠르고 정밀하게 절단하는 데 사용된다.

-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302호 (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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