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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호 DY그룹 회장 

기업가가 꿈꾸는 인간 존중의 길 

장진원 기자
45년 경영 인생을 걸어온 기업가의 입에선 ‘매출과 이익이 얼마 늘었다’는 말 대신 행복과 존중, 공동체 같은 말만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더디더라도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회사, 소외된 이 없이 모두가 즐거운 회사는 조병호 DY그룹 회장이 평생을 일궈온 꿈이자 현실이다.

‘기업의 목적(목표)은 이윤 추구’라는 말을 정치·경제 교과서에서 배운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밀턴 프리드먼이 “기업의 유일한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이래 기업은 곧 주주와 동의어가 됐다. 주주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본질이라는 신자유주의 담론은 20세기를 넘어 최근까지도 자본주의 기반 시장경제 체제의 특징을 극명하게 요약해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시대를 풍미했던 담론도 급격한 변화 속에 점차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경제·금융위기를 거치는 동안, 기업은 숫자가 주는 도파민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미래를 진지하게 고찰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부자 되세요!”를 당당히 외치던 오래전 광고 속 배우의 모습을 떠올리며, 노골적 탐욕의 절정이 어디까지 미화될 수 있었는지를 깨닫곤 한다.

지난 2012년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지속가능한 자본주의 기업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상징적 장면이었다. 당시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 다보스포럼 회장은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다. 이전까지 자유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신봉자였던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할 때가 됐다며 프리드먼 이후 세계를 지배한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수정을 공식화했다. 주주는 물론 기업에서 일하는 직원, 고객, 경쟁사, 원청과 하청, 금융기관, 정부 당국,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 이르는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이 공생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천명이었다.

한국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맹아


생존을 위한 관점의 변화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이나 ESG 같은 말을 양산해내고 있다. ESG 경영을 잘하지 못하는 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즉 머잖아 망한다는 생각이 도그마처럼 자리 잡으면서 외려 기업경영을 압박하는 수준이 됐다. 극소수 과점주주, 좀 더 정확히는 일부 친족 중심의 재벌 가문이 지배하는 한국 대기업들도 변화의 바람에 순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는 마찬가지다.

직원에 대한 공정한 보상과 합리적 대우, 원·하청 간 윤리적 파트너십, 지역사회와 환경 등을 모두 아우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과연 한국에서도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까? 성장과 공정이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가치를 함께 그려낼 수 있을까? 여기 수십 년 전부터 공동체의 행복과 사회발전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은 기업가가 있다. 지난 1978년 동양기전, 지금의 DY그룹을 일궈온 조병호 회장이다. 조 회장이 45년간 걸어온 길은 한국적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어떻게 뿌리내려야 하는지, 또 이런 노력이 기업 성장과 구성원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고찰할 수 있는 드문 사례다.

조 회장은 창업 이래 45년간 “바른 경영을 통해 탁월한 가치를 창출하여 공동체의 행복과 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미션을 최고의 기업가치로 삼아왔다. ‘○○년까지 매출액 얼마, 영업이익 얼마’ 같은 목표는 애당초 DY에선 경영 목표가 될 수 없다. 반면 DY그룹은 노동자와 경영자가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하는 집단경영체제(경영협의회)를 무려 1991년 처음 가동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 갈등이 해방구처럼 터져 나왔던 당시는 물론, 지금도 국내 기업 중 노사 공동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 회장이 설계한 DY그룹의 독특한 제도와 문화는 이 밖에도 수두룩하다. 기업활동으로 얻은 이익을 모든 임직원이 공유하는 ‘공정성과배부제’가 대표적이다. 이 역시 조 회장의 특별한 경영 철학과 정신에 바탕을 둔다. 1993년 전격 도입한 이 제도는 “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이해관계자, 즉 사원, 주주, 채권단, 국가, 고객 및 협력업체의 공동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창업주의 신념에서 출발했다.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모두 상생하는 길을 걸어야 하고, 그 중심에 ‘즐거운 사원’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조 회장 경영 철학의 정수다. 화합과 인간 존중을 최고의 기업가치로 여기는 그만의 철학이다.

경기중·고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조 회장은 정통 기계부품 엔지니어 출신 창업가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69년 대우중공업에 입사해 기계·부품산업과 평생의 연을 맺었다. 1972년에는 약 2년간 독일 부퍼탈공과 대학원을 수료하고 현지 기업에서 OJT 연수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기술 엔지니어 경력을 시작했다. 비상장 히든챔피언들이 경제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고, 노사 공동경영이 자리 잡은 독일에서의 경험이 오늘날 DY와 조 회장의 경영 철학에 영향을 미친 걸까.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따라가보았다.

“1970년대 초, 매년 10명씩 한국 장학생을 뽑아 독일로 보내는 제도가 생겼어요. 당시 한국을 찾은 하인리히 륍케(Karl Heinrich Lübke) 독일 대통령의 선물이었죠. 같은 기수 10명 중 9명은 학계로 나가 교수가 됐고, 나만 현업으로 빠졌어요. 원체 공부엔 흥미가 없던 터라 OJT에 더 열심이었는데, 마침 유압 사업을 하던 기업이었죠.”

독일 연수가 끝난 후 돌아온 한국의 사정은 열악함 그 자체였다. 기계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변변한 기업조차 찾기 어려웠다. 공기업인 한국기계를 김우중 회장이 인수해 대우중공업이 들어섰고, 조 회장은 기술개발부 차장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0살이나 많은 김우중 회장이 ‘조형, 우리가 와이셔츠나 만들 줄 알지 기계를 뭘 압니까. 조형 같은 사람이 도와주셔야지’ 하더군요. 당시 독일에서 디젤엔진을 들여와 조립했는데, 수입면장에 적힌 부품이 어떤 건지, 어디 두었는지도 모르던 시절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 정도는 우리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하는 자신감이 붙더군요.”

매출과 이익이 기업 목표는 아니다


3년간 사직서를 반려하며 독립을 만류했던 김우중 회장은 어찌된 일인지 “정 나가려면 국산화를 좀 해보라”라는 말과 함께 그를 놓아주었다. 독일과 대우중공업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동양유압이라는 이름으로 창업에 나선 건 1978년이다. 한국 최초의 중화학공업단지인 창원에 터를 잡았다. 마침 나라에서 공업 입국을 위해 국민투자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사업 지원금을 저리로 융자해줬다. 조 회장은 “DY는 지금도 부채 없는 경영이 원칙”이라며 “사업 초기에 정 돈이 급할 때면 김우중 회장을 찾아가 선급금을 받아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지금도 DY의 부채비율은 70% 초반대다(2021년 지주사 DY 기준).

유압기기에서 출발한 회사는 1988년 들어 동양기전으로 사명을 바꿨다. 그 사이 기존 유압기기 부문에 더 해 자동차부품사업 부문도 함께 성장해갔다. 2014년 12월에는 유압기기사업 부문(DY파워)과 자동차부품사업 부문(DY오토)을 별도 회사로 분할했고, 2020년 5월에는 산업기계사업 부문(DY이노베이트)을 분할해 지주사 체제를 갖췄다. 그 사이 그룹 전체의 체격도 커졌다. 주력 계열사 세 곳의 매출을 더하면 1조원 수준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DY파워는 현재 현대두산인프라코어를 비롯해 캐터필라(미국), 볼보건설기계(스웨덴), 히타치·코벨코·스미토모(일본), JCB(영국) 등 국내외 주요 굴삭기업체에 유압실린더를 납품 중이다. 글로벌 2위 고소작업차 기업인 미국 테렉스도 주요 납품처 가운데 하나다. 그룹 모태가 된 창원공장을 비롯해 중국과 인도에도 생산기지를 뒀다. 수출 비중이 70%에 달하는 DY파워는 최근 고장을 사전 예측하는 ‘스마트 유압실린더’ 개발도 완료했다.

DY오토는 자동차에 쓰이는 각종 모터를 제작한다. 유리창을 닦는 와이퍼 시스템 모터, 파워윈도 모터, 엔진 냉각용 쿨링팬 모터 등이 주요 제품이다. 현대기아차,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이 주요 거래처이며, 독일 보쉬, 일본 덴소 등과 경쟁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기술력을 갖췄다. 전기차가 대세로 떠오르면서 DY오토의 모터 기술 경쟁력은 더 큰 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현대차와 공동 개발한 ‘센서 클리닝’ 기술은 DY오토의 기술력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자율주행차의 눈에 해당하는 카메라, 라이다센서가 오염 됐을 경우 이를 자동 세척하는 장비다. 회사 관계자는 “2023년 양산 예정인 현대차 첫 상업용 완전 무인 자율주행 차량인 ‘아이오닉5 로보택시’에 탑재될 예정”이라며 “2030년 매출 1조원 달성이 목표”라고 밝혔다.

B2B에 이어 B2C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납품처나 전방산업의 영향을 크게 받는 장비업의 단점을 상쇄하려는 전략이다. DY이노베이트가 주력으로 개발한 카고크레인과 콘크리트펌프카, 골프카, 자동세차기 등이 전략 제품군이다. DY이노베이트 매출은 2021년 1524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71% 급등하는 호실적을 거뒀다. 일본 야마하와 경쟁하던 골프 카트(APRO)는 최근 일본에 역수출하는 성과를 거둬 화제가 됐다. 향후 미국 LSV(Low Speed Vehicle) 시장 진출도 계획 중이다.

주력 계열사들의 탄탄한 성과는 그룹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1년 DY그룹은 매출 9983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1조원 달성을 자신한다. 창업 CEO로서 ‘1조 클럽’ 가입은 어떤 의미일까. 젊음을 바쳐 임직원들과 함께 이뤄낸 꿈의 결정체가 아닐까. 하지만 매출 1조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예상에서 한참 벗어난 조 회장만의 철학이 다시 이어졌다.

“1조? 미안하지만 아무 의미 없어요. 지난해 그룹 매출이 9983억원이었는데, 그해 12월쯤 ‘좀 노력해서 1조 한번 해보면 어때’라고 말한 적은 있네요. 17억원 모자란 거야 맘만 먹으면 어떻게든 메울 수 있었겠지. 회사에서 쓰는 공식 용어도 매출 ‘목표’가 아닌 ‘예상’입니다. 우리 목표는 매출이 아니에요. 매출과 이익은 구성원이 행복할 수 있는 적정한 수준이면 족합니다.” 그제야 기업 비전인 ‘즐거움이 있는 100년 기업’이라는 슬로건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 회장은 지난 2017년 회사의 미션과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가치로 ‘깨끗한 일터, 즐거운 사원, 튼튼한 회사’를 재정립했다.

노사가 함께 만든 집단경영체제


‘즐거운 사원들’이 모여 ‘즐거운 100년 기업’을 만드는 과정은 조 회장의 특별한 경영 철학과 정신에서 출발했다. 일찍이 1991년 도입한 ‘경영협의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노사가 동수로 기업경영을 일궈가는 건 국내에선 유례를 찾기 어려운 노사문화 혁신 사례다.

1987년 6·29 선언 이후 불어닥친 민주화 열기는 나라 전체에서 노동운동이 분출되는 촉매가 됐다. 기업들은 너나없이 심각한 노사갈등 문제에 직면했다. 당시 동양유압도 마찬가지였다. 형님 아우처럼 지내던 창원공장 직원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공장 문을 쇠사슬로 묶어 용접하고 출입을 막자, 조 회장은 담을 넘어 들어가 농성 중인 사원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밤을 새운 토론 끝에 첫 농성은 3일 만에 자진 해산으로 마무리됐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정식 노조가 설립되고 노사 협조도 이뤄졌다. 하지만 언제까지 갈등과 타협의 순서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업활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라는 경영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제도적 틀을 정비하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을 내렸다.

조 회장은 1991년 1월부터 회사의 경영 구조를 완전히 혁신하는 일에 착수했다. ‘인간 존중’이라는 기업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당장 ‘전원참여경영·집단의사결정·공정성과배분’을 경영방침으로 정했다. 소수 엘리트 중심의 한국적 경영 문화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였다. 경영자 대표 7명(경영자위원회), 노동자 대표(근로자위원회) 7명 동수로 구성된 경영협의회는 현재도 DY그룹 의사결정 구조에서 최상단에 자리한다. 기업문화 및 인사제도 개선, 임금조정 및 성과·상여에 관한 논의·결정, 공장 가동 및 비가동 계획, 근로환경 및 교육훈련, 심지어 인사평가와 채용·면접 등 경영 전반과 노사 간 이슈에 대한 안건을 모두 경영협의회에서 다룬다.

“노사갈등이 한창일 때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어요. 기업인이 장사치는 아닐 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기업관의 문제더군요. 회사는 사장 게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직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선 제도적 뒷받침이 꼭 필요했어요.”

DY의 기업문화를 대표하는 ‘공정성과배부제’ 역시 이해관계자, 즉 사원, 주주, 채권단, 국가, 고객 및 협력업체의 공동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조 회장의 확고한 신념에서 출발했다. 조 회장은 1991년 경영협의회 가동과 동시에 사무직-월급제, 생산직-시급제라는 관행부터 뜯어고쳤다. 생산직 월급제의 전면 도입이었다. 사원들의 일체감 조성을 위해 사무직과 생산직의 호봉 체계도 단일화했다.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던 생산직 사원들을 위한 배려였다.

1993년부터 본격 시행된 이익공유제는 처음부터 영업이익이 아닌 순이익을 성과 배분 기준으로 삼았다. 영업외손익도 기업의 실력이고 경영의 결과라는 판단에서다. 지주사로 전환한 2015년부터 현재까지는 제도를 단순화해 순이익률이 3%를 넘어서면, 초과 금액의 35%를 직원들과 공유한다.

조 회장은 성과 공유에 대한 고민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잘되는 계열사와 그렇지 못한 계열사 간의 차이와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우려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한국의 기업 시스템과 문화의 한계를 안타까워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토요타가 협력업체에 7100억 엔을 지원한다고 하더군요. 자사 경영 목표가 40% 떨어지는데도 말이죠. 7100억 엔이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닙니다. 지난해 원자재 파동, 환율 하락 등으로 토요타 협력업체들의 감익이 1조7000억 엔에 달했어요. 전체 감익분 중 3분의 1을 토요타가 다시 내준 겁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몇몇 대기업이 정부 당국자들과 모여 상생경영을 한 번 힘줘 외치고는 그만이에요. 완성차 업체는 고환율 덕에 사상 최대 이익을 보는데, 우리 같은 협력사는 수입 자재 가격이 올라 허덕입니다. 화가 나고 안타깝죠. 그러나 원망하고 싶진 않아요. 그런 사업 구조를 가져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건 결국 우리니까.”

조 회장은 “이런 상황이 더 심각한 건 고용의 미스매치 때문”이라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대기업과 협력사 간 임금 격차가 커질수록 한쪽에는 구직자가 몰리고, 다른 한쪽은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사업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반짝 지원이나 기금 마련보다는 근본적인 구조의 틀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환경이 어려울 때 속도와 효율을 희생해서라도 국민의 경제적 안정을 지키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고 기업인의 소명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상생이다.

큰 회사 아닌, 존경받는 특별한 회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뜻밖의 토로에선 회사 구성원들이 적정한 과실을 공유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게 배어나왔다. 현실적으로 제도가 가져다줄 수 있는 동기부여에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DY그룹은 이를 위한 보완책도 마련 중이다. 이익공유제도의 기준은 3년마다 경영협의회에서 논의해 변화를 준다. 이때는 투명성 못지않게 공정성이 중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과거 경영 실적, 예상되는 미래 환경과 경영 예측 등을 여러 차례 논의하면서 균형을 맞춘다. 인터뷰 중 만난 사내 관계자는 “이익공유제가 견고한 기업문화로 자리 잡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사전에 협의한 기준으로 결과를 공정하게 나누고 일관된 제도를 운영하는 가운데 공동체에 신뢰가 쌓이면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임직원 하나하나가 기업의 주체라는 철학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이어졌다. 국내 재계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완벽히 구현한 사례는 DY그룹을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다. 조 회장은 “아들만 셋인데 경영 수업이나 후계 훈련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일본과 독일에서 영향을 받았지요. 일본만 해도 대기업 중 2세, 3세가 경영하는 곳은 없어요. 100년 넘게 가업을 잇는 건 작은 기업이나 소상공인 얘기죠. 토요타가 예외인데, 거기도 창업자와 전문경영인이 번갈아 경영합니다. 아마 다음 세대에는 도요타 성을 가진 사람이 없을 거예요. 파나소닉에도 마쓰시타 성을 가진 이가 없고 혼다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도 비록 소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하는 게 창업주로서 보람 아니겠나 싶어요.”

1990년대 초 노사갈등을 겪으면서 ‘왜 기업을 하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천착한 조 회장은 ‘독서경영’이라는 독특한 문화에서 해법을 찾았다. 차별화된 지식을 습득해 구성원의 사고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높이는 것이 결국 개인과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DY그룹에선 단순히 책 읽기를 장려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계열사별로 독서 업무만 전담하는 독서지도사가 있고, 임직원들은 1년에 4권 이상 책을 읽은 뒤 독후감을 쓰고 독서 인터뷰에 합격해야 승진도 할 수 있다. 지주사와 DY오토 연구소가 있는 인천 사옥에만 1층 북카페에 책 4000여 권이 꽂혀 있다. 연간 도서 구입비가 5000만원이 넘는다. 조 회장은 “독서는 분명 남는 장사”라고 단언했다.

“독서경영은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냥 ‘독서’지 경영은 무슨…. 나도 학교 다닐 때는 책과 거리가 멀었어요. 그러다 일본에서 충격을 받았죠. 지하철에 탄 사람 태반이 책을 들고 있더군요. 소위 블루칼라도 책을 많이 읽습니다. 그렇다고 기술이나 경제서적을 읽으라고 하진 않아요. 그건 독서가 아닌 공부죠. 철학, 역사, 문학을 장려합니다.”

조 회장은 “1년이면 책을 100권 쯤 집어 들고, 그중 끝까지 읽는 건 절반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선 『일본의 굴레』와 『해피 매니페스토』를 추천했다. 전자는 국제정치경제 전문가인 미국인 교수가 일본에서 40년 이상 살며 일본을 분석한 내용이다. 후자는 ‘직원이 행복한 회사’가 목표라는 영국 기업가의 이야기다.

인터뷰 말미 조 회장은 “사실 아내가 인터뷰를 만류했다”며 뜻밖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당신이 걸어온 이야기는 ‘시대와의 불화’여서, 제 뜻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아내의 진단도 전했다. “반세기 가까이 기업을 하면서 내 이름으로 된 땅 한 평 가진 적 없고, 구로구 집에서 지금까지 37년을 살았다”는 경영 구루의 삶은 아내의 말마따나 시대를 역행한 고집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기업을 통해 공동체의 행복과 사회발전에 천착한 조 회장의 삶은 기업가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경영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지를 일러주는 징표와도 같다. 지난 2018년 창업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조 회장의 창립기념사는 일생을 바쳐온 기업가의 길을 드러낸 압축판이다.

“앞으로 우리 회사가 60년 동안 어떤 궤적을 그려갈지는 나도 모른다. 전적으로 여러분과 후배들의 어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회사가 매출액이나 규모가 큰 회사보다는 존경받는 특별한 회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회사가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가득 찬 회사가 되기를 희망한다. ‘즐거움이 있는 100년 기업’에서 각자의 일에서 꿈과 보람을 찾고 더디더라도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사원들이 회사의 진정한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 서로 가진 생각과 능력이 다르더라도 그 다름을 존중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나는 우리 회사가 깨끗하고 건강한 회사가 되기를 바란다. 어떠한 이유로든 소외되거나 차별받는 사람이 없으며,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실행하는 일터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 회사가 쉬운 길보다는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해답을 찾기 어렵고,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 사원이 묻고 또 물어서 떳떳한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 쉬운 길은 누구도 걸을 수 있지만 바른 길을 걷기 위해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불혹이라는 40주년을 맞아 회사의 비전이 우리 모두의 꿈이 되고 핵심 가치가 개인 삶의 지표가 되어 손에 손을 잡고 즐거움이 있는 100년 기업을 만들어가기 위해 전 사원이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신영복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잠자는 토끼도 잘못이지만 슬그머니 지나가는 거북이도 떳떳하지 못하다. 깨워서 함께 가야 한다.’ 같이 갑시다!”

-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211호 (202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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