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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선 신성이엔지 대표 

업(業)에 대한 자부심과 도전정신 

노유선 기자
세계 1위 클린룸 설비업체 신성이엔지가 잠행을 끝내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은 469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5% 증가했으며 영업이익도 흑자로 전환했다. 재무구조도 대폭 개선됐다는 평이다. 실적 호조에 탄력을 받은 신성이엔지는 새로운 에너지 트렌드에 발맞춰 B2C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미국발 자국중심주의에도 대응해 글로벌 인적자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혁신 성장을 주도하는 이지선 대표를 만났다.

▎창업주 이완근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지선 대표는 신성이엔지의 조용한 혁신을 이끌고 있다.
전 세계 클린룸 설비 시장에서 점유율 60%를 확보한 신성이엔지가 또다시 도약을 꿈꾼다. 1977년 설립된 신성이엔지는 1991년 국내 최초로 클린룸(온습도, 먼지 농도 등을 제어하는 청정 공간) 핵심 장비인 팬필터유닛(Fan Filter Unit·FFU) 국산화에 성공했다. 2차전지 생산용 드라이룸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한 데 이어 2008년 재생에너지 분야에 도전해 태양광 모듈·인버터(전력변환장치)를 생산하고 있다.

2022년은 회사 차원에서 고무적인 한 해였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연결기준)이 전년 동기보다 늘어 흑자로 전환했으며 같은 기간 매출도 65% 증가해 4697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도 매출 4545억원을 이미 넘어선 수치다. 신규 수주한 금액은 4307억원에 달한다. 삼성물산과 클린룸 시스템 실링 공사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서울에너지공사와 태양광발전설비 판매공급계약도 맺었다.

신성이엔지의 사업 부문은 크게 클린환경과 재생에너지로 나뉜다. 클린환경 사업 부문에서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이 제조되는 클린룸·드라이룸 설비를 만든다. 오랜 업력을 자랑하는 클린환경 사업이 실적을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707억원, 15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75%, 252% 늘었다.

재생에너지 사업 부문은 태양광모듈과 인버터 제조·판매를 담당한다. 태양광발전 시스템과 에너지저장장치를 시공하는 사업도 함께 진행한다. 3분기 누적 매출은 98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54억원을 기록해 흑자로 전환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RE100(사용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수익성이 증가할 전망이다.

현재 신성이엔지 수장은 창업주 이완근 회장의 차녀 이지선(47) 대표다. 2017년 대표직에 오른 그는 서강대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금융권에서 일하다가 2002년 신성이엔지 주임으로 입사해 홍보, 재무, 전략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다. 2022년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파워 여성 CEO 50인’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 1월 12일 경기 성남 신성이엔지 본사에서 이 대표를 만나 7년 차 CEO의 소회와 ‘2세 경영인’ 타이틀의 이면, 중장기 성장 전략 등에 대해 물었다.

큐레이터 꿈꾸던 2세 경영인


장영실상(1993년)부터 금탑산업훈장(2005년), 3억불 수출의 탑(2017년)에 이르기까지, 본사 지하 1층 로비에 전시된 각종 표창·훈장들에서 업(業)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국산 장비로 세계 무대에 뛰어들어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한 중견기업이다. 제조업체답게 1, 2층은 인공지능(AI) 센터와 DT(digital transformation·디지털전환)실로 쓰인다. 3, 4층은 클린환경 사업부와 재생에너지 사업부가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느 제조업체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건물 곳곳에서 포착됐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운보 김기창 화백의 풍경화와 채색 한국화의 대가 유산 민경갑 화백의 작품, ‘제주생활의 중도’로 알려진 이왈종 화백의 작품 등이 실내 벽면을 수놓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완근·이지선 부녀는 아트컬렉팅이란 공통된 취미를 가졌다.

이 대표 사무실에 들어서자 붉은색 그림 한 점이 눈에 띄었다. 동양화가 정해윤의 ‘플랜 비(Plan B)’다. 작은 박새들이 기둥 사이를 잇는 실 위에 옹기종기 올라가 있다. 작품을 택한 이유를 묻자 이 대표는 “전래동화에서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준 박새는 행운을 상징하고 여러 개의 실은 연결성을 뜻한다”며 “신성이엔지의 미래에 걸맞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 그림이 회사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줄 것만 같다”고도 했다.

학부 시절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한때 큐레이터를 꿈꿨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신성이엔지의 부침(浮沈)을 목격하면서 꿈을 접었다. 그는 “회사가 좋았을 때도 많았지만 어려운 시기도 적지 않았다”며 “그때마다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고백했다.

입사 22년 차인 이 대표에게 신성이엔지의 정체성에 대해 묻자 “업에 대한 집념과 도전정신으로 똘똘 뭉친 회사”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신성이엔지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기’를 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다”며 “산업 환경에 맞게 공기를 제어하는 기술력이 회사의 기본 토대”라고 강조했다. 클린룸, 드라이룸을 비롯한 클린환경 사업 부문은 전체 매출에서 약 79%를 차지한다.

“설립 초반에는 선박 건조용 제습기를 만들었습니다. 점차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클린룸, 2차전지 생산용 드라이룸, 공기청정기, 음압병동 등으로 제품군을 다변화했죠. 스마트공장을 구축하고 드라이룸 노점온도를 -40도에서 -70도로 더 낮추는 등 기술도 지속적으로 고도화했습니다. 지난해 7월에는 충북 증평에 국내 최대 규모 공조 장비 생산시설을 마련했어요.”

그는 “생존의 위협 속에서도 변화를 위해 노력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고객 요구에 귀 기울이면서 산업 변화를 학습하지 않았더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란 고백이다. 2008년 재생에너지 분야에 발을 들인 것도 기후변화에 따른 고객의 니즈를 반영한 결과다. 신성이엔지는 흑자와 적자를 반복하던 재생에너지 분야를 꾸준히 밀고 왔다. 2022년 1분기 영업이익 흑자전환 이후 영업이익률은 지속적으로 신장되는 모양새다.

2016년에 완공한 경기도 용인의 스마트 팩토리도 순항하고 있다. 사람이 협동로봇, 무인운반차 등 기계와 협업하는 구조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생산성 예측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 팩토리 도입으로 생산능력은 210% 향상됐으며 공정 불량률은 97% 감축됐다. 이 대표는 “기존 방식으로는 제조업체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스마트 팩토리는 생산성을 높일 뿐 아니라 단순 제조 업무를 줄이고 인력 배치의 효율성을 높였다”고 강조했다.

위기 끝, 새로운 도약


이 대표의 취미는 명상이다. 대학 시절 동양심리학에 심취했던 그는 요즘에도 명상으로 심신을 단련하곤 한다. 그는 “위기에 처했다 싶으면 자연스레 명상을 한다. 머릿속에 쓸데없는 생각이 얼마나 많은지 살펴보는 방법이다”라며 “쓸데없는 생각을 제치고 남은 것만 바라보면 비로소 정신이 맑아진다”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하는 습관은 경영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서두르지 않는 경영인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오갈 때 우선 침묵하는 편이다. 그는 “예를 들어 클린룸의 먼지를 줄이려면 방진복 문제인지 기류 문제인지 상황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며 “원인이 여러 개라면 경영자는 그중 핵심을 건드릴 줄 알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하면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만의 노하우는 ‘로우 데이터’를 꿰뚫어보는 것이다.

“조직의 문제일 경우 엑셀로 작성한 조직도를 펼쳐놓고 직원을 한 사람씩 살펴봅니다. 그렇게 3일을 보내면 답이 보여요. 실적 문제라면 공표 자료 외에 내부 자료를 모두 가져와서 한참 동안 검토하죠. 경영상 문제는 대부분 로우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답이 나오더군요.”

7년 차 대표인 그에게 그동안의 소회를 물었다. “재무구조를 어느 정도 개선해서 다행”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신성이엔지는 한동안 수익성 악화로 재무구조 개선에 여념이 없었다. 2017년 말 734%에 달했던 부채비율은 구원투수로 나선 이 대표의 활약으로 2022년 3분기 149%로 감소했다. 그는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하느라 신규 시장으로 진출하거나 신규 사업 분야를 개척하는 데 신경을 쓰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오늘날까지 신성이엔지는 시대 변화에 맞게 기술을 새롭게 응용·발전해왔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신성이엔지는 클린룸 기술로 이동형 음압병동을 개발해 의료시설 방역에 앞장섰다. 코로나 엔데믹 시대에는 ‘IEQ(실내 환경적 질·Indoor Environmental Quality)’ 트렌드에 적합한 제품군으로 B2C(기업·소비자 간 거래) 시장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이 대표는 “한동안 대세였던 ‘IAQ(실내 공기 질·Indoor Air Quality)’ 트렌드가 저물어가고 있다”며 “신성이엔지는 단순히 실내 공기에만 치중하기보다 천장형 공기청정기(퓨어루미), 미세먼지 제거장치(퓨어게이트), 의류·침구류 제습기(퓨어클로젯) 등으로 실내 환경을 전반적으로 개선하는 제품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사업 부문은 서비스에 방점을 둘 계획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는 에너지 전환 트렌드에 발맞춰 관련 스타트업들과 교류를 늘려나가겠다”며 “그동안 태양광발전 시스템 제조 및 설치 위주로 사업을 운영해 왔다면 이제는 스타트업과 연계해 서비스를 고도화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태양광발전 시스템에서 발생한 전력이 어떻게 쓰이는지, 기존 에너지와 잘 융합되고 있는지 등을 고객에게 보여주겠다는 구상이다.

해외시장 전략에 대해선 “글로벌 경영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이엔지는 이미 미국, 중국, 동남아, 헝가리, 폴란드 등 전 세계 9개국에 진출한 상태다. 이 대표는 “자국중심주의에 따른 현지화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클린룸, 드라이룸 등의 영역도 생산 현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경영전략으로 현지화 추세에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통과에 힘입어 자국 내 제조업 강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조업의 생산활동은 임금이 낮은 국가에 집중됐지만 이제는 현지화되고 있어요. 신성이엔지는 해외 현지 법인이 육성한 인적자원과 교류를 늘리고 기술적 지원을 강화해나갈 겁니다. 이미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 20여 년간 법인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인적자원 네트워크가 탄탄하게 구축돼 있어요.”

그러면서 이 대표는 “예를 들어 베트남법인의 인력이 유럽 프로젝트를 지원하거나 중국 프로젝트 설계에 참여하는 방식”이라며 “국가 간 협업을 활성화해 세계의 산업화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그는 “각국에서 성공 경험을 쌓은 인재는 새로운 국가에서도 두려움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터뷰가 끝나는 무렵 이 대표는 입사 첫해 치렀던 대형 사고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홍보 업무를 맡았던 그는 신년 매출 목표와 관련해 기자와 언쟁을 벌이던 중, 보도된 수치와 회사 내부 목표치가 다르다고 폭로하고 말았다. 이튿날 신문에는 ‘신성이엔지 매출 목표 하향’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주가는 하한가로 곤두박질쳤고 항의 전화가 수백 통 쏟아졌다. 항의 전화에 대응하고자 전 직원 동원령이 떨어졌다는 후문이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매한가지였다”며 “예기치 못한 비상사태에 모두 자기 일처럼 나서줘서 비로소 동지애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동지애는 더욱 강화될 모양새다. 그는 “앞으로 톱다운(Top-down) 방식보다는 직원 개개인의 잠재역량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겠다”며 “좋은 아이템이 있다면 사내 창업도 활성화하고 직원이 다방면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영진 결정사항을 단순히 따르는 방식은 때에 따라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이렇게 하면 좋겠다’ 또는 ‘이런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때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제 업무에 적용된다면 일에 대한 몰입도는 훨씬 높아질 겁니다. 직원이 스스로 뛸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지미연 객원기자

202302호 (202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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