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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욱 독도소주 대표 

버스회사 접고 평창에서 술독에 빠진 이유 

조득진 선임기자
잘 달리던 버스회사를 매각하고 강원도 평창 산골에서 술을 빚기 시작했다. 브랜드는 독도 우편번호 40240을 입힌 ‘40240 DOKDO’로, 프리미엄 소주다. ‘타요 버스’ ‘소녀상 버스’ 등을 선보이며 버스업계 아이디어 뱅크로 꼽혔던 임진욱 전 동아운수 대표. 그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을 내기 위해 식전부터 술맛을 보는 술꾼이 됐다.

▎임진욱 독도소주 대표가 평창공장에서 처음으로 내린 술을 맛보고 있다. 독도소주는 ‘품격 있는 한국식 소주’를 추구한다.
“오늘은 우리 평창공장에서 첫 술을 증류하는 날입니다.”

10월 초 강원도 평창에서 만난 임진욱 독도소주 대표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지난해 12월 공장을 인수하고 기계를 들여와 올 1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장 설비를 도입하고 설치하여 시험 가동을 했으니 꼬박 10개월. 그동안 위탁생산을 해오다가 자체 공장에선 첫 증류다. 그는 “오랜 시간 파일럿 장비로 테스트하다가 우리 장비로 증류해내니 기쁨이 크다”며 “내가 원하는 맛에 가깝기는 하지만 더 완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코올 도수 측정기로 체크해보니 53도. 건네받은 술은 목넘김이 부드럽고 알코올 향이 강하지 않아 높은 도수가 실감 나지 않았다. 이날 평창공장에선 53도짜리 소주 400ℓ를 내렸다.

2년 전만 해도 임진욱 대표는 운수업계에서 잘나가는 CEO이자 ‘아이디어 뱅크’로 꼽혔던 인물이다. 동아운수 대표였던 그는 2014년 ‘타요 버스’를 선보이며 승객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2017년엔 ‘소녀상 버스’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버스 안에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 전시를 열기도 했다. 그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가장 많이 팔리는 우리 술 소주를 통해 독도를 더 사랑하고,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알리겠다는 생각에 독도소주를 론칭했다”고 밝혔다.

독도소주의 정식 제품명은 독도의 우편번호를 딴 ‘40240 DOKDO’. 주정에 물을 섞어 생산하는 일반 희석식 소주와 달리 국내산 쌀을 감압증류한 원액과 울릉도 해양 심층수의 미네랄농축수로 제조한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다. 알코올 도수 17.3도 용량 375㎖로,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이 특징이다. 소주 라벨 디자인은 화산섬의 투박한 느낌을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재미동포의 ‘독도와인’에서 영감 얻어


▎‘40240 독도’ 소주는 알코올 도수 17도, 27도, 37도로 구성됐다.(왼쪽) / 임진욱 대표가 영감을 얻은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산 ‘799- 805 DOKDO WINE’. 799-805는 2003년 정부가 독도에 부여한 첫 우편번호다.
임 대표가 독도소주 브랜딩과 개발을 마음에 품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인 2012년, 모 그룹 회장과 식사 자리에서 ‘799-805 독도 와인(799-805 DOKDO WINE)’을 맛보고 나서다. 당시 와인 붐이 일어 수많은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 와인의 브랜드 스토리가 기가 막혔다. 독도와인은 한국인 치과의사 고(故) 안재현씨가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독도 와이너리’를 설립해 생산했다. 독도 지도와 위도·경도 등이 표시된 상자에 담겨 미국과 한국에서 출시됐다.

임 대표는 “와인 브랜드에 포함된 799-805는 2003년 정부가 독도에 부여한 최초의 우편번호다. 이런 레이블(label, 종이나 천에 상표나 품명 따위를 인쇄하여 상품에 붙여놓은 조각) 디자인에서 그의 열정이 느껴져 감동했다”며 “그가 와인을 통해 추구했던 것, 그것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동아운수 소속 버스 뒷면에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 799-805’ 광고판을 붙였다. ‘799-805’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독도에 대한 관심을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2013년 버스 안 미술관 ‘한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 전시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버스는 또 다른 매스미디어다. 내가 확보한 미디어를 가지고 독도 알리기에 나섰던 것”이라며 “독도 사랑이 한두 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게 된 계기는 버스회사 매각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맛본 ‘동해소주’였다. “강원도에 있는 전통주 양조장 설악프로방스배꽃마을에서 생산하는 술이었는데 나름 특색이 있고, 가격 대비 예술이었죠. 2019년 9월 방문해 독도소주 기획을 설명하고 생산을 의뢰했어요. 우리가 술맛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제시하고 생산을 위탁하는 OEM 방식이었죠.”

독도소주는 지난해 독도 후원기업인 편의점 CU에서 3·1절을 기념해 2병들이 3100세트를 한정 판매하면서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출시 사흘 만에 모두 팔리면서 정식 출시로 이어졌다. 이후 울릉도와 독도를 여행할 때 울릉도에 있는 CU에서 독도소주를 구매하는 것이 필수코스가 되면서 정식 출시 4개월 만에 누적판매량 10만 병을 돌파했다. 8월 15일 광복절과 10월 25일 독도의 날엔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하기도 했다. 현재는 편의점과 식당, 골프장 등에서 월 2만5000병 정도 판매된다.

임 대표는 5개월 전에 평창군민이 됐다. 거주지를 평창공장으로 옮긴 후엔 매일 탱크 청소에서 공장 조경관리, 농사까지 짓고 있다. 그는 “아침저녁으로 술맛을 본다. 쌀 도정률, 물의 양, 감압 정도에 따라 술맛이 다른데 객관적인 맛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정의 효율성과 표준화를 확보하기 위해 자동화에 공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2023년부터는 독도소주 평창공장에서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알코올 도수는 독도 위치 ‘동경 132도, 북위 37도’에 착안한 37도와 보급형인 17도, 그 중간인 27도로 구성했다.

평창에 둥지를 튼 이유는 청정지역의 쌀과 물 등 원료 확보 차원도 있지만 ‘평창’이라는 브랜드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평창은 동계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있어 글로벌시장에서 지명(PYEONGCHANG)이 알려져 있다는 판단이다. 강릉에서 독도로 향하는 뱃길이 가장 수월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는 “모두 글로벌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결정”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지역특산주이지만 그는 “지자체 차원에서의 지원은 일절 없다. 사업이라는 게 시점이 중요한데 지원을 받으려면 MOU와 투자심사 등에 시간이 상당히 걸린다. 그래서 나 혼자, 내 속도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퀄리티 갖춘 ‘독도 브랜드’ 만들 것


▎내년 초부터는 이곳 평창공장에서 독도소주가 양산된다. 임진욱 대표는 공정의 효율성과 표준화를 확보하기 위해 자동화에 공들이고 있다.
최근 주류 시장엔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코로나로 주류시장 전체 규모가 축소됐지만 증류식 소주는 성장하고 있는 것.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2021년 국내 희석식 소주 출고량은 82만5848㎘로 전년 대비 5.5% 감소했다. 이에 반해 증류식 소주 출고량은 2480㎘로 전년대비 28.5% 늘었다. 증가세도 점점 가파르다. 업계에서는 “술을 마시는 목적이 ‘즐기는 것’으로 바뀌면서 가격이 높아도 소비자가 지갑을 열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 흐름을 타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일품진로, 화요 등이 인기가 높은 가운데 원소주, 토끼소주 등도 출시됐다. 편의점 3사의 고급주 판매 전략도 한몫했다.

임 대표는 “셀럽과 한국적 스토리를 활용한 브랜드 경쟁력이 시장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시장이 더 확대되려면 ‘품격 있는 한국식 소주’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제가 고급 소주 생산에 뛰어든 이후 ‘화요’라는 브랜드에 쏟아낸 조태권 광주요 회장님의 노고에 새삼 존경심이 생겼어요. 중요한 것은 결국 술맛이죠. 화요와 나란히 고급 바, 파인 다이닝의 주류 리스트에 오르는 날을 기대합니다.”

소주는 만드는 방식에 따라 증류식 소주와 희석식 소주로 나뉜다. 증류식 소주는 일반적으로 상압증류기에서 한두 번만 증류해 원료의 풍미를 살린 소주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초록병 소주는 희석식 소주다. 95% 이상의 주정(에틸알코올)에 물을 섞어 희석하고 조미한다. 최근 출시되는 고급주들이 한결같이 ‘전통주’를 표방하지만 ‘무늬만 전통주’라는 논란도 만만치 않다. 전통 방식 고수와 대중적 생산이라는 경계에서 비롯된 고민은 독도소주도 예외가 아니었다.

임 대표는 “예전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구분했지만 소주의 표기가 달라져 소주로 통일됐다. 지금은 주정을 베이스로 한 소주냐, 증류한 원액으로 만든 소주냐로 구분한다”고 설명했다. “주류업계 전문가는 물론이고 바이오 분야 사람들까지 두루 만나면서 공부하고 테스트도 진행했어요. 그런데 모두 자기 방식이 정답이라고 하더군요.(웃음) 제가 내린 결론은 ‘술은 내 방식대로 만든다’였죠. 전통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글로벌시장에서 호응할 수 있는 술을 만드는 게 목적이니까요.”

사실 ‘독도소주’ 브랜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선주조, 금복주 등에서 같은 브랜드로 소주를 출시했지만 전국적으로 판매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당시처럼 여전히 ‘독도’ 브랜드 사용에 대해 이견도 많다. ‘애국심(국뽕) 마케팅’, ‘독도 이미지의 상업화’ 등이 대표적이다.

임 대표는 “독도는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브랜드”라고 말했다. “10여 년에 걸쳐 독도, 소녀상 등 역사적 의미에 깊이 공감한 제게 독도를 알리는 것은 일종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술이든, 식품이든, 화장품이든 독도에 관심을 갖고 한국 영토임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접근은 환영할 일이 아닌가요? 브랜드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높은 퀄리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임 대표는 지난 광복절엔 이지함피부과와 협업으로 ‘40240 DOKDO COSMETIC’을 론칭했다. 독도와 울릉도에서 자생하는 섬기린초 추출물, 울릉도 해수를 기본 재료로 만든 토너와 에센스를 선보였다.

현재 독도소주 평창공장의 생산능력은 하루 1만 병, 연 365만 병 수준이다. 그는 “국내에서 소주가 하루에 980만 병가량 팔린다. 우리 공장 생산능력이 절대 큰 규모는 아니지만 이마저도 과유불급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일반 유통과 함께 커스터마이징(맞춤제작 서비스)을 계획하고 있다. 성년의 날, 결혼식, 칠순잔치, 기업 기념식 등에 주문자의 기호에 맞는 프리미엄 소주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술은 가장 쉽고 빠른 미디어다

임 대표는 버스회사 대표 시절부터 업계 분위기와 달리 튀는 경영을 하면서 주목받았다. 버스의 로백 등받이 의자를 목 높이까지 올라오는 하이백으로 교체했고, 회색 범퍼를 파란색으로 도색해 버스와 ‘깔맞춤’하기도 했다. 말하는 버스, 돌출 번호판, 손잡이에 붙어 있는 NFC 태그 기능의 바나나우유 광고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특히 노선번호를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버스 문이 열리면서 펼쳐지는 돌출 번호판은 버스 제작사가 제작을 거절하자 직접 디자인해 특허를 내기도 했다. 돌출 번호판에는 2016년부터 상업광고가 허용돼 지자체의 재정 부담도 덜어주고 있다.

그에게 남다른 ‘혁신 또는 역발상 DNA’라도 있는 것일까. 임 대표는 “평소 다른 운송회사의 버스를 타고 내리면서 개선점을 꼼꼼히 살핀 결과였다. 운행하는 입장이 아니라 승객의 입장에 서니 불편한 점이 보였다”며 “혁신, 역발상이라기보다는 하나에서 열까지 먼저 경험해본 후에 선택하고 집중하는 고집이 있다. 독도소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일본 시마네현에 가면 다케시마관(독도관)이 있는데 거기서 ‘다케시마’ 브랜드로 다양한 술을 팔고 있어요.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며 분쟁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더 쉽게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소주를 선택했고, 기왕 소주를 선택했으니 더 좋은 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큰돈 벌 생각이면 딴 거 해야죠.(웃음)”

- 조득진 선임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박종근 기자

202212호 (20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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