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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41) 권민재 하이어엑스 대표 

무인점포의 보이지 않는 손 

노유선 기자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비대면 문화에 따라 국내 무인점포 수는 급속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무인(無人)’ 점포에도 사람의 손길은 필요하다. 2018년 설립된 업무관리 스타트업 하이어엑스는 무인점포의 업무 리스트를 디지털화하고 점포와 긱워커(초단기 노동자)를 연결해주는 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권민재 대표는 긱워커의 노동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할 계획이다.
무인 편의점, 무인 사진관, 무인 세탁소, 무인 카페, 무인 은행 등. 2022년 기준으로 전년 대비 약 26% 증가한 서울 시내 무인점포는 그 숫자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해졌다. 통계청은 올해부터 무인점포 전수 조사를 시작했다. 그만큼 무인점포의 한국 사회 진입 속도가 빨라졌다는 뜻이다. 서울경찰청과 편의점업계 통계를 종합하면 서울시 전체 무인점포 수는 이미 3000여 개를 돌파했으며, 2020년 말 전국에서 약 500곳에 불과했던 무인 편의점은 현재 3300여 곳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비대면 문화가 자리 잡은 데다가 최저임금 인상폭(전년 대비 5%)도 커지면서 무인점포 수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일부 점주들 사이에서 “무인이 무인이 아니다”라는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무인점포에도 청소나 진열, 정리 등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루에 1~2시간만 점포를 관리해줄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긱워커(gig worker·초단기 노동자)’라 불리는 이들은 일정 기간 근로를 하는 아르바이트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프리랜서와 구분된다. 어렵사리 구한 긱워커가 무인점포를 제대로 청소했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무인점포를 차렸어도 점주의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무인이 결코 무인이 아닌 셈이다.

무인점포의 고충에 주목한 권민재(36) 하이어엑스 대표는 2021년 무인점포 관리 서비스 ‘브라우니1.0’을 개발해 지난해 5월 정식 출시했다. 권 대표는 “출시 6개월 만에 매달 23% 매출 상승률, 90% 넘는 리텐션(잔존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브라우니는 긱워커를 선발해 무인점포별 특성에 맞는 업무를 교육하고 인력이 필요한 점주와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긱워커의 업무 수행 여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 하이어엑스는 스타트업 혹한기에도 불구하고 인포뱅크와 IBK캐피탈로부터 프리 시리즈A 브리지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무인점포 증가 추세가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방증이다.

하이어엑스는 2018년 설립된 업무관리 플랫폼 기업으로, 오프라인 매장 업무관리 플랫폼 ‘워키도키’와 무인점포 관리 서비스 ‘브라우니’를 운영하고 있다. 두세 차례 창업했다가 실패한 후 5년간 프랜차이즈 외식업체 매장을 운영했던 권 대표는 아르바이트생이나 긱워커의 업무 관리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데 답답함을 느꼈다. 구두나 수기, 메신저로 전달되는 업무 체크리스트를 한곳에 모은 뒤 정보기술(IT)을 접목하면 효율성이 높아질 것으로 봤다. 2019년 출시된 워키도키는 디지털 업무관리 애플리케이션으로, 현재 전국의 일부 GS25와 롯데슈퍼 등 1만 개 넘는 점포에서 5만 명이 사용 중이다.

창업 과정이 궁금하다.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왼쪽)과 권민재 하이어엑스 대표가 비대면 문화에 따른 무인점포 증가 추세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대학에서 산업경영공학을 전공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아이템이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케이스들을 연구하며 희열을 느꼈다. 기업에 하나의 부속품으로 종속되기보다 직접 뭔가를 개발해 많은 사람에게 윤택한 삶을 선사하고 싶었다. 평상시엔 쇼핑백이지만 접으면 옷걸이로 변신하는 친환경 제품을 판매하기도 했고 공연기획자와 아티스트를 매칭하는 플랫폼을 운영하기도 했다. 여러 번의 창업 실패 후 2017년 프랜차이즈 외식업체 매장한 곳을 운영하면서 워키도키를 필두로 한 사업 아이템을 새롭게 구상했다. 사명 하이어엑스(Higher-X)는 더욱 높은 차원의 발상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간다는 뜻이다. 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 긱워커 모두가 이전보다 나은 환경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제공하는 회사다.

명확한 페인포인트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현장에서 이뤄지는 업무 지시는 여전히 구시대적이다. 전화나 메신저, 수기로 아르바이트생을 관리하면 일의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다. 예기치 못한 오류나 고장, 이슈에 대비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다. 둘째, 이른바 MZ세대가 등장하면서 점주와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아르바이트생이 늘어났다. MZ세대는 자기가 맡은 일이 명확하고 지시가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애매모호하거나 부당한 지시는 통하지 않는다. 갑을관계에 예민한 경우도 잦아졌다. 이같이 점주와 아르바이트생 모두 업무 피로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IT를 활용한 업무 기록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정기적인 업무를 체크리스트로 만들어 디지털화하는 작업은 업계에선 혁신과도 같았다.

워키도키는 GS25, 롯데슈퍼 등 대형 체인에서 쓰고 있다. 장점을 꼽는다면.

편의점, PC방, 카페, 요식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워키도키를 사용하고 있다. 실사용자 5만 명 중에서 편의점업계 종사자가 70%, 요식업·카페 종사자가 20%를 차지한다. 워키도키는 업종별 아르바이트생 업무 리스트를 디테일하게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업무를 완료한 아르바이트생이 인증샷을 찍어 워키도키에 올리면 점주는 매장에 없어도 실시간으로 아르바이트생의 업무를 관리할 수 있다. 업무 체크리스트가 있기 때문에 인수인계, 신입교육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줄었다는 평가가 많다.

워키도키에는 전달 사항을 남기는 게시판도 있다. 비대면 소통을 선호하는 요즘 트렌드를 반영했다. 매일·주간·월간 업무일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시각화해 제공하는 것도 장점이다. 상품 유통기한을 바코드 스캔만으로도 관리할 수 있어 아르바이트생의 실수로 인한 영업손실도 줄었다.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점주의 신뢰도가 높아지다 보니 근로 환경이 건강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무인점포 관리로 서비스를 확장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프랜차이즈 박람회에 무인점포에 필요한 키오스크, CCTV 등 관련 제품이 다수 등장했다. 그곳에서 어떤 점주가 “막상 무인점포를 차려도 무인이 아니다”라며 하소연하는 것을 보고 워키도키를 무인점포용(브라우니)으로 변형하면 시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약 100개 업종 무인점포에 필요한 표준 업무를 1시간 단위로 리스트화했다. 스터디카페, 무인 세탁소, 무인 사진관, 무인카페 등 무인점포에는 단순 청소 서비스만 제공해선 안 된다. 재고 정리와 진열, 기기 작동상태 점검 등 자잘한 업무가 많다. 하이어엑스는 긱워커를 선발해 무인점포별 업무 교육을 실시한다. 긱워커는 점주와 약속한 주간 근무 횟수에 맞게 무인점포를 찾아 리스트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면 된다. 업종별 브라우니 사용 비중을 분석하면 무인 사진관, 스터디카페, 무인 세탁소가 각각 30%를 차지한다.

무인점포와 긱워커의 연결

어떤 사람들이 ‘긱워커’로 일하는지 궁금하다.

크게 20대와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 중장년층으로 나뉜다. 스터디카페에서 일하는 중장년 여성이 늘었고, 출근 전에 샐러드 매장에서 간단한 업무를 수행하는 직장인도 있다. 공유 오피스에서 배기·배관 청소나 책상·의자 정리정돈 업무를 맡는 청년도 많다. 긱워커는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일하며 부가수익을 낼 수 있는데, 업무 난이도나 업무량에 따라 1시간 당 임금에 차등이 있다. 하이어엑스는 점주와 긱워커 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기 때문에 노년층, 외국인, 장애인 등 다양한 대상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

브라우니의 월평균 매출 상승률이 23%다. 비결은.

점주의 디테일한 니즈를 충족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인점포여도 전문성 있는 관리를 원한다. 브라우니 크루(긱워커)는 유니폼을 입고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무인점포가 세련된 이미지를 유지하도록 돕는다. 초보 무인점포 점주가 놓칠 수 있는 서비스도 알아서 제공한다는 점도 주효했다. 무인 세탁소의 경우 건조기 필터 청소나 카트 바퀴의 머리카락 제거 등이 주기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안 된다. 2019년부터 워키도키를 운영하면서 쌓아온 데이터가 600만 개가 넘는다. 이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업무 리스트를 만들었기 때문에 서비스 퀄리티가 경쟁업체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무인점포 확대 계획은.

지난해 보안업체 SK쉴더스의 자회사 캡스텍과 무인점포 관리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시설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캡스텍이 확보한 무인점포가 5000여 곳에 달한다. 오는 4월 이곳을 대상으로 ‘브라우니 블랙’이라는 무인점포 정기관리 프리미엄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와 별개로 업종도 다양화할 계획인데, 아쿠아리움도 고객사 중 하나다. 시간대별 수온 체크와 먹이 투입 등 업무 수요가 있다. 에스테틱이나 동물병원, 태권도장에서도 긱워커를 찾는 추세다.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활용할 수도 있겠다.

600만 개가량 모인 업무 데이터를 가공해 업무 추천, 알림 서비스 등을 기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66㎡(20평) 규모 햄버거 가게에는 어떤 업무가 필요한지 업무 리스트와 함께 시기에 맞는 위생점검·소방점검 알림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선 이달에는 업무 기반 구인구직 서비스를 론칭한다. 아르바이트생 채용 공고문을 올릴 때 단순하게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일할 분’을 찾는 게 아니라 홀서빙, 계산 등 특정 업무를 수행할 인력을 뽑는 방식이다.

하이어엑스의 중장기 목표와 최종 목표를 구분해달라.

국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프랜차이즈 점포가 약 600만 곳으로 추산된다. 여기에서 10% 점유율이 목표다. 하이어엑스 서비스는 월정액 사스(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형이기 때문에 확장성이 높다. 프랜차이즈가 원하는 기능을 교집합으로 만들어 해외 진출도 고려 중이다. 궁극적으로는 하이어엑스의 서비스가 한 점포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점주 필수 앱’으로 불리길 바란다. 점포를 차리려면 먼저 워키도키를 설치해서 업무를 세팅해야 하고 폐점할 때도 워키도키에 누적된 데이터를 이용해 양수양도가 이뤄지는 구조를 꿈꾸고 있다.

무인점포와 긱워커 시장에 대한 전망은.

금리인상과 물가상승으로 부가 소득이 필요한 N잡러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또 누구나 조직에 소속되지 않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가능한 시간대에 할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 하이어엑스는 이들이 법적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노동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이바지할 계획이다.

※ 김익환은…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며 지난해 1조9224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정리=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사진 최영재 기자

202304호 (20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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