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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환이 만난 혁신 기업가(42) 김소형 프린트베이커리 대표 

작가와 동반성장, 이제 세계 무대로 

노유선 기자
아트 플랫폼 ‘프린트베이커리’가 100억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2017년 대비 15배 넘게 늘었다. 판화 에디션 판매와 브랜드 컬래버레이션 등으로 한국 미술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김소형 대표는 최근 작가 발굴·관리 브랜드 ‘PBG’를 선보였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전속 작가를 확보한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포부다.

▎김소형 프린트베이커리·PBG 대표는 “국내 신진 작가를 발굴·육성해 세계 진출 교두보가 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 미술시장 거래 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2020년 약 3277억원과 비교하면 179% 증가한 수치다. 국내 대표적 아트페어인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KIAF)’가 236개 갤러리를 동원해 아시아 최대 규모로 열렸고, ‘아트부산’은 관람객 10만2000여 명이 찾으며 역대급 인기를 자랑했다. 미술 애호가의 연령대가 점차 낮아지는 점도 시장 확대에 긍정적 요인이다.

K-아트 열풍은 젊은 층을 겨냥해 미술품을 판매하는 아트 플랫폼 ‘프린트베이커리(Print Bakery)’에는 호재다. 특히 MZ세대가 미술품을 대체투자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아트테크(미술품+재테크)’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김소형(44) 프린트베이커리 대표는 “판화 에디션도 경매에 꾸준히 나오고 있다”며 “단색화 판화 에디션 중 가격이 3배가량 오른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2017년 설립된 프린트베이커리는 값비싼 원화를 판화 에디션으로 제작해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면서 이목을 끌다가 점차 드로잉, 아트포스터, 아트퍼니처, 오브제, 아트토이, 아트굿즈 등으로 상품군을 다양화했다. 설립 첫해 약 22억8000만원이었던 매출은 5년 만에 약 350억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2020년 30억원을 돌파한 후 안정궤도에 올랐다. 지난 5월 8일 프린트베이커리 한남점에서 만난 김 대표는 빠른 성장의 원동력으로 ‘세련된 융합’을 꼽았다.

“프린트베이커리는 미술의 대중화를 지향합니다. 한국 미술의 문턱은 높은 편이에요. 살면서 한 번도 미술품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누구나 쉽게 향유할 수 있는 미술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미술을 일상 속 다양한 분야에 세련되게 접목하고 있어요.”

미국에서 패션·패션 마케팅을 공부하고 이화여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김 대표는 인테리어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해 아트 디렉터로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가나 아트(Gana Art)’ 입사 후에는 패션과 인테리어, 마케팅을 통합하는 아이디어를 구상해 ‘가나 아트숍’을 선보였으며 공예, 뷰티 등으로 연구 분야를 확대해왔다. 김 대표의 열정에 힘입어 프린트베이커리는 지난해 말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펙투스컴퍼니로부터 100억원 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탄탄한 내실과 혁신적인 도전


▎김소형 프린트베이커리·PBG 대표와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이 K-아트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뒤에는 윤형택 작가의 ‘Fondness’ 시리즈 2022년 작품 세 점이 전시돼 있다.
창업 계기가 궁금하다.

프린트베이커리는 가나아트의 미술품 경매업체 ‘서울옥션’에서 미술의 대중화를 위해 만든 사업부가 시초다. 2017년 자회사로 분리되면서 리브랜딩을 맡았고 젊고 창의적인 이미지를 연출하고자 브랜드 로고를 지금처럼 바꿨다. 프린트베이커리는 사명에서 알 수 있듯, ‘빵을 고르듯 누구나 부담 없이 미술품을 즐긴다’는 뜻이다. 미술품은 비싸기 때문에 부유층만 향유한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여기서 벗어나자는 취지다. 집들이 갈 때 휴지나 비누 같은 생필품을 챙기는 대신, 미술품 하나 들고 가는 시대로 이끌어보고 싶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가나아트와 혁신성은 양립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통적인 느낌을 뛰어넘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프린트베이커리의 탄생과 성장은 1983년 설립된 가나아트와 계열사 서울옥션의 미술사업 노하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적 네트워크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프린트베이커리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미술품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 진출하고 오프라인 스토어를 프랜차이즈화한 시도는 국내 동종업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업계에서 프린트베이커리만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프린트베이커리는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작가 관리)에 탁월하다. 작가가 최우선이라는 생각으로 이 분야에 전념해왔다. 모든 예술은 작가의 생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오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프린트베이커리의 임무다. 최근 작가 관리 사업을 ‘PBG(Perception Beyond Genre)’라는 브랜드로 새롭게 내놨다. 앞으로 PBG는 작가를 발굴·선정하고 전문적으로 인큐베이팅(육성)하며 작가와 대중을 연결하는 데 더욱 힘쓸 것이다.

작가와 작품을 보는 안목이 궁금하다.

진중하고 성실한 작가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다. 그들은 느낌대로 편하게 그림을 그리기보다 고민을 거듭한다. 자신만의 예술철학과 세계관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단색화의 대가’ 이우환 작가의 점 하나는 그저 무의미하게 나온 점이 아니다. 작가의 생각과 발자취, 비전 등이 융합된 총체다. 프린트베이커리도 작가 발굴·선정 과정에서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경험했으며 이를 통해 어떤 고민을 했는지 귀 기울여 듣는다.

현재는 전속·준전속 계약 작가 15여 명과 함께 공생 관계를 이루며 성장하고 있다. 작가군은 크게 둘로 나뉜다. 활동 기간이 10년 이내인 신진 작가군과 고가 작품이 주를 이루는 유명 작가군이다. 작품 비중은 구상(figurative) 작품이 비구상·추상(abstract) 작품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옻칠 공예로 알려진 허명욱 작가와 서울대 도예과 출신인 배세진 작가의 작품을 예로들 수 있다.

AI작품을 평가한다면. 최근 국제광고제에서 수상도 했다.

AI(인공지능)의 역량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AI가 일러스트나 디자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겠지만 예술 세계에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명확하다. 앞서 말했듯이 작품에는 작가의 철학과 서사, 사유의 흔적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하지만 AI의 작품은 그렇지 못하다. 기교적 측면에서 퀄리티가 높을 뿐이다.

작가와 대중의 가교 역할 사례가 있다면.

다른 브랜드와 추진한 컬래버레이션과 국내외 아트페어 참가, 전시 기획 등 여러 사례가 있다. 특히 프린트베이커리의 마케팅·전략기획팀과 B2B(기업 간 거래)팀은 ‘작품 다각화’에 탁월하다. 작가와 작품의 다양한 모습을 다른 산업군 브랜드와 세련되게 엮어내 국내 아트마케팅 역사에 한 획을 긋고 있다. 브랜드 컬래버레이션은 가전제품과 패션, F&B(식음료) 등 전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른다. 앞서 삼성전자와 SPC, 뱅앤올룹슨, 빈폴 등과 협업했으며 지난 4월에 열린 서울페스타 2023에 참여해 명동거리를 미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공공미술작업을 시행했다.

웹3.0 시대, 세계가 주목하는 K-아트


▎아트 플랫폼 ‘프린트베이커리’는 서울 한남점· 더현대서울점· 갤러리아점과 부산 센텀시티점을 비롯해 총 8개 오프라인 지점을 운영 중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는 NFT(대체불가토큰·Non-Fungible Token)는 미술품 저작권의 위변조를 방지해 저작권과 소유권을 보장한다. 웹3.0 시대가 다가오는 가운데, 프린트베이커리는 지난해 12월 국내 미술업계에서 선도적으로 웹3.0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웹3.0 아트 커뮤니티 ‘TANP’를 조성하고 첫 번째 프로젝트 ‘1618 NFT’를 공개했다. 1618 NFT 프로젝트는 참여자가 디지털 세계에서 도굴꾼이 돼 문명을 탐험하며 NFT 미술품을 획득하고 이를 실물 작품으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미술품을 향유하는 색다른 방식이라는 평이다.

웹3.0 프로젝트 기획 의도는? 메타버스·블록체인 열풍은 소강상태다.

거품이 빠지는 과정일 뿐 웹3.0 시대는 분명히 오고 있다. NFT와 STO(증권형 토큰 발행·Security Token Offering) 등을 기반으로 한 웹3.0은 투명성과 공정성의 가치를 담고 있다. 프린트베이커리는 마냥 손 놓고 있지 않고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하나증권과 손잡고 ‘메타하나(META1)’ 전시회를 열었다. ‘도도새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선우 작가 작품과 NFT 디지털 아티스트로 인지도를 높인 다다즈 작가의 작품 여러 점이 전시됐다.

메타버스 개념을 활용한 ‘에디션’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현실과 메타버스 가상공간이 ‘쌍둥이’라는 콘셉트를 담았다. 가상공간에도 현실처럼 작가별 작품 공간을 마련하고 그 안에서도 작품 관람과 구매가 가능한 구조다. 실물 작품을 구매하는 동시에 메타버스상에서도 NFT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 현재 작가 20여 명이 참여 의사를 밝혔으며 오는 가을 론칭 예정이다.

스타트업 혹한기에 100억원 규모 투자 유치 배경은.

K-컬처에 전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대부분 K-팝을 포함한 K-엔터에 한정돼 있는데, 이제는 K-아트를 논할 때다. 미술계의 시선이 아시아로 넘어오면서 일본, 홍콩을 거쳐 현재는 한국을 향하고 있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난 5월 4일 프린트베이커리가 처음으로 부산 아트페어에 전시부스를 열었다. 김선우(35), 청신(42), 최혜지(34) 등을 비롯한 젊은 작가의 작품을 보려는 관람객으로 붐볐다.

K-아트의 세계 진출 현주소는.

국내 여러 중견 작가가 단색화 콘셉트로 글로벌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이제는 다음 세대를 발굴해야 할 차례다. 한국 미술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우리의 미션인 만큼, 프린트베이커리는 스타 작가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진 작가를 발굴·육성·관리해 그들의 세계 진출 교두보가 되고자 한다. 해외 전시 기획과 아트페어 참가, 미술품 팝업스토어 오픈,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하고 있다.

국내 미술업계의 역할도 중요해 보인다.

해외 컬렉터의 눈에 띄지 않는다면 ‘우리만의 잔치’로 국한돼 반짝 스타를 양산해내기 쉽다. 한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밑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려면 국내 미술관과 공공기관, 주요 갤러리, 컬렉터 등이 신진 작가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작가의 스토리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작가에게 작품의 소유·거래 이력은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에서 탄탄하게 성장한 작가가 자생력을 갖춘 상태에서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단기 목표와 최종 지향점을 설명해달라.

그동안 국내 미술업계는 온라인 시장을 간과해왔다.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서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 변화에 발맞춰 프린트베이커리는 온라인 커머스 애플리케이션과 미술품 리세일 서비스 론칭을 앞두고 있다. 또 이종 산업군과 협업을 강화해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다루는 아트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프린트베이커리만의 전문적인 작가 관리 노하우를 시스템화하고 더 많은 전속 작가를 확보해, 국내 미술계에서 최대 규모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기업으로 성장할 방침이다.

※ 김익환 - 노동력 위주의 제조업인 한세실업에 IT를 접목해 성과를 내고 있는 혁신 CEO다. 한세드림, 한세엠케이, FRJ 등 패션 자회사들의 경영에 직접 참여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끌며 지난해 2조2142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최근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고 국내외에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노유선 기자 noh.yousun@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202306호 (202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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