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Home>포브스>Management

리걸테크의 최전선 

 

이진원 기자
법률과 기술의 교차점인 리걸테크는 지난 몇 년간 법률 산업을 빠르게 변화시켜 변호사가 일상적인 작업을 간소화하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했다. 시장조사업체 퓨처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 8.9%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규모는 2032년까지 697억 달러(8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법률 시장은 생태적으로 나라마다 이질적이기 때문에 내수시장에서 법무를 디지털화하고 혁신하려는 스타트업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포브스코리아는 리걸테크와 관련해 글로벌 기술 동향을 살펴보고 국내 주요 리걸테크 스타트업의 명단을 꼽았다.

올해 초 챗GPT가 도화선이 된 인공지능(AI) 자동화 혁명이 가장 적중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법률 부문으로 꼽힌다. 미국 노동통계국(OEWS) 보고서는 현재 직무의 1/4이 AI에 의해 자동화될 수 있으며, 특히 사무·행정지원(46%), 법무(44%) 직종에서 AI 기술에 대한 노출이 높다고 진단했다. 골드만삭스 글로벌 투자 리서치 보고서는 AI 기술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지만, 대부분의 직업과 산업은 자동화에 부분적으로 노출돼 있으므로 AI로 대체되기보다는 보완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최근 생성형 AI 기술에 대한 투자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많은 투자자가 리걸테크를 주목한다. 법무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AI 도구의 잠재력이 다른 산업보다 높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연히 리걸테크 스타트업에 벤처캐피털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리걸콤플렉스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리걸테크 기업에 투자자 849명이 총 376건, 총 34억3000만 달러(4조3400억원)를 집행했다. 전년 대비 34%가량 감소했는데, 2022년 기술 분야 글로벌 벤처 자금이 2021년 대비 35% 감소한 영향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은 계약서 초안 작성, 검토, 전자서명 도구 및 소프트웨어 등 법무 관련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빠르게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투자수익률(ROI) 극대화를 기대한다. 전통적으로 법조계가 기술 채택 및 전환에 대해 느린 접근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선점하면 오히려 성장 가능성이 더 크다는 계산이다.

영국에서는 법률 서비스의 현대화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로테크UK(LawtechUK)’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로테크UK가 발표한 최근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규제준수 및 법률 문서 관리가 가장 많은 투자를 유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률 서비스 종사자가 디지털 기술 활용을 확대한다면 연간 최대 17억 파운드(2조8000억원)까지 생산성이 향상될 것으로 추정했다. 일부에서는 리걸테크의 성장이 핀테크에 버금갈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리걸테크 글로벌 레이싱 속속 궤도 진입


리걸테크의 타깃은 일반 대중과 법률 전문가로 양분된다. 우선 일반인 대상 리걸테크는 고용, 개인 신분, 사업허가, 계약 등 일반인이 궁금해하는 법률 문의 및 서비스를 스마트 챗봇 등을 개발해 광범위하게 지원한다. 특히 이혼, 노동권, 고용권, 여성 권리 등에 대한 법률 상담은 일반인의 수요가 많은 영역이다. 자동화된 서비스로 변호사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어 종종 변호사의 권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했던 법률 서비스의 장벽을 낮춤으로써, 대중이 자신의 법적 권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찾고 소모적 법무로부터 전문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사회적 가치를 갖는다.

리걸테크의 선구자 중 하나인 리걸줌(LegalZoom)은 고객이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고 법률 문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로, 2021년 미국에서 설립됐다. 이 회사는 8억 달러(1조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고 2021년 나스닥에 상장했다.

또 영국 기반의 리걸테크 스타트업 루미낸스(Luminance)는 계약과 문서의 법적 처리에 AI 기술을 도입했다. 루미낸스의 기업가치는 2019년에 1억 달러(1270억원)로 평가됐다. 루미낸스 리걸테크는 모든 언어로 된 문서를 처리하며 지난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시 빛을 발했다. AI 기술의 신속한 검토 및 처리 덕분이었다. 루미낸스의 고객사 아이덱스 연구소는 러시아 침공 이후 서방 정부의 러시아 제재 결정에 모든 계약을 신속하게 검토하고 제재 대상 기업과 맺은 계약 관계를 평가해야 했다. 리걸테크 도구를 활용한 덕분에 러시아 관련 기업 문제를 단 30분 만에 해결할 수 있었다.

한편, 법률 전문가 대상 리걸테크는 로펌, 기업 법무팀, 공공기관, 법학계의 다양한 연구와 리서치를 지원한다. 법률 전문가를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는 차원에서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영역이다.

요르단 기반의 리걸테크 스타트업 키스타스(Qistas)는 요르단, 팔레스타인, UAE,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여러 나라의 법률을 디지털화해 아랍어 법률 콘텐트에 대한 지능형 검색 서비스를 제공한다. 플랫폼에는 법률 9만여 개 이상, 판례 410만 건이 포함했다. 키스타스는 2010년 아랍어로 된 최초의 솔루션이자 자연어처리(NLP) 기반의 검색엔진 사이버로(CyberLaw)를 출시했다.

니스린 하람 키스타스 공동설립자는 “법은 언어게임”이라며 “법적 분석, 해석, 추론은 궁극적으로 언어게임이며, 생성형 AI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언어게임”이라고 설명했다. 생성형 AI는 언어 생성이라는 장점과 함께 검토할 수 있는 논리의 양은 압도적이다. 하람은 리걸테크와 관련해 ‘AI가 변호사를 대체할 수 있는가’라는 뜨거운 논쟁에 대해 “현재 변호사가 법을 독점하고 있는 현상을 깨뜨릴 것”이라며 “정보 브로커에 불과한 변호사는 설 자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리걸테크의 유의미한 사례가 속속 발굴되고 있다. 법률 산업 싱크탱크 RSGI는 최근 기업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속도와 투명성을 높인 우수 사례 7개사를 선정했다. 변호사가 스스로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도록 코딩 없는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거나 많은 문서를 처리하고 태그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기업의 계약과 거래 관련 문서를 디지털화해 공동작업, 검토, 전자서명, 출처, 고객관계 등을 지원하는 플랫폼도 활성화하고 있다. 더불어 기업고객이 로펌을 쇼핑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시장가격을 형성하기도 하며, 변호사 업무 특성에 맞게 조사와 증거를 지원하는 도구도 실무에 투입되고 있다.

발목 잡힌 국내 리걸테크

최근 ‘로톡 사태’ 관련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 결정이 리걸테크 산업 전체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징계위는 법률플랫폼 로톡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변협에서 징계받은 변호사 123명이 제기한 이의신청에 대해 심의 중이다. 또 로앤굿의 소송 금융 서비스도 논쟁의 중심에 있다. 로앤굿의 소송 금융 서비스는 민사재판 비용 부담 능력이 없는 원고에게 변호사 착수금 등을 자체 지원한 뒤 승소하면 지원금에 일정 수수료(빌려준 금액의 1.3~2배)를 더해 받는 서비스다. 앞서 변협은 이에 대해 금품을 약속받고 변호사를 연결하는 알선 행위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신생 리걸테크 서비스는 법률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일반인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다. ‘아는 변호사 1명 이하’ 국민 중 52.2%는 로톡 서비스를 이용해 변호사 정보를 찾았다. 로톡 상담 건수는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가율 9.8%를 보였다.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84만 건을 돌파했다. 로톡의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지난 2022년 매출 29억5500만원을 기록했으며 총투자유치금은 377억원에 달했다.

국내 스타트업 투자정보플랫폼 더브이씨에 조회해본 결과, 국내 리걸테크 스타트업은 로앤컴퍼니를 포함해 36곳에 달했다. 이 중 글로벌 민원서류 공인증 플랫폼 ‘배달의 민원’을 운영하는 후엠아이글로벌(구 한국통합민원센터)이 매출액 규모가 가장 커 서비스 실용화에 성공한 것으로 판단됐다. 2022년 매출액은 49억1600만원이었다. ‘배달의민원’ 플랫폼은 민원서류 ‘발급-번역-공증촉탁대리-외교부(아포스티유, 영사 확인)-대사관인증-해외배송’이라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단순화해 민원인의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한편, 해외금융계좌신고법 업무 지원 솔루션 FA-Prism을 운영하는 옥타솔루션은 2022년 매출 36억5700만원을 기록했다. 각종 금융거래 관련 법규 대응 솔루션으로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미국인의 해외 탈세를 막기 위한 해외금융계좌납세협력법(FATCA)이 지난 2014년 본격 시행되면서 FATCA 솔루션 시장을 개척했다. FATCA 이외에도 자금세탁방지(AML)와 보험사기 적발 및 이상거래 징후 탐지(FDS) 등 각종 금융거래 관련 법규에 대응 솔루션을 서비스하고 있다.

고가의 외산 제품이 차지했던 가상데이터룸 솔루션* 시장을 대체한 리걸테크VDR은 기업 기밀자료와 정보데이터의 사내외 공유 및 비대면 협업에 특화한 솔루션이다. 이를 서비스하는 리걸테크사의 2022년 매출은 28억1900만원이다. 지난 팬데믹 기간 동안 비대면 업무와 재택근무가 증가함에 따라 강력한 보안 아래 효율적 업무가 가능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도입이 확산됐다. 최근 리걸테크는 일본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리걸테크 산업의 활성화와 관련해 강석훈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는 “리걸테크는 기술만으로 안 되고 국내 법률과 판례 등 콘텐트가 포괄적이어야 한다”며 “국내 관련 업체들은 콘텐트를 많이 확보했고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리걸테크는 챗GPT가 응용화의 도화선이 됐기 때문에 완만하게가 아니라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많은 것을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상데이터룸: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시공간 제약 없이 사내 기밀자료를 안전하게 검토하고 공유할 수 있는 협업 솔루션


-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

202308호 (2023.07.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