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승계의 의미 

 

권오준 포브스코리아 편집장

모든 기업은 100년 기업을 꿈꾼다. 꿈꾼다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국내 100년 기업은 10여 개에 불과하다. 일본(3만여 개), 독일(1만여 개)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기업의 역사가 짧은 탓이다. 중소·중견 제조기업은 빨라도 1970년대에 간판을 달았고, 1980년대 들어 왕성하게 창업이 이뤄졌다. 창업주들이 60세를 넘어섰고 70~80세에 접어든 분들도 있다보니 리더십 승계가 불가피해졌다. 이들 기업이 100년 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2세 경영, 3세 경영으로 리더십 승계가 성공해야만 한다. 이게 무척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기업 승계에 대한 사회적 경험치가 축적되어 있지 않은 데다, 정교한 승계 프로그램을 갖추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창업주와 2세 경영자의 갈등이 표면화된 곳도 적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창업주와 2세 경영인이 동상이몽인 경우도 숱하다.

지혜로운 리더십 교체로 100년 기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선 무엇부터 해야 할까. 제조기업 후계자의 관점에서 짚어본다. 먼저 창업주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기술 제조기업의 창업주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기술 제조기업의 경우 반석 위에 올라서려면 10~20년이 걸린다. 강한 의지와 집념으로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난관을 이겨낸 결과다. 단지 창업주를 개인으로서, 아버지로서만 존경하라는 말이 아니다. 기업은 수많은 사람의 일터이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곳이다. 우리 사회를 위해 기여해온 공적 인물로서 존경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런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권한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보람되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이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갖기 힘들다면, 이는 2세 경영의 출발이 잘못된 것이다. 출발이 잘못됐는데 어찌 100년 기업을 꿈꿀 수 있겠는가.

승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나름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승계는 단순히 기업 조직과 제품을 물려받는 게 아니다. 기업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권한인 경영권에 한정해서도 안 된다. 사전에서 승계는 ‘선임자나 선대의 업적, 유산, 전통 따위를 뒤이어 물려받음’이라고 되어 있다. 업적은 그간의 성과와 그 성과를 거둔 방식과 경험이다. 유산은 가치 있는 물질적·정신적 전통이다. 전통은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이다. 따라서 기업경영의 승계는 선임자의 철학과 역량, 경험을 계승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철학과 역량과 경험은 기업을 창업하고 중견기업으로 키운 강점이라고 볼 수 있다.2세 경영인은 이런 강점을 연구해서 더 나은 모습으로 지속해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후계자는 잘 승계하고 혁신해서 더 나은 기업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혁신의 의미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간혹 2세 경영자 중엔 기존의 것은 모두 낡은 것으로 간주하고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게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다. 예를 들어 인재 유치 명목으로 무리하게 스펙만 보고 내부 실정에 어두운 외부 인사로 경영진을 교체하거나, 첨단 시스템을 도입한다며 맞지 않은 운용 솔루션을 마구 적용하거나, 신사업에 진출한다며 트렌드를 좆아 신기루 같은 곳에 무리하게 투자함으로써 오히려 본업의 강점을 훼손할 수있다. 2세 경영자는 ‘혁신은 교체가 아니라 현대화’라는 관점을 가지면 좋겠다. 본연의 강점과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30년, 40년 지속할 수 없고, 중견기업 규모로 성장할 수 없다. 그 강점과 경쟁력을 시대 흐름에 맞게 현대화하겠다는 관점으로 일하면 업의 본질을 잘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 승계를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정교한 플랜부터 수립해야 한다. 재무 관련 설계뿐만 아니라 경영 역량의 승계 프로세스까지 마련해서 이를 체계화해야 한다. 경영은 발상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체계화하는 과정이다. 경영 철학과 원칙을 담은 경영헌장부터 만들어야 한다.

- 권오준 포브스코리아 편집장

202310호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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