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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가 만난 예술계 파워리더(21) 이소정 사피엔티아 마인드&뮤직 프로젝트 대표 

전통의 소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다 

정소나 기자
국악은 한국인만의 정서와 문화를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고유의 독특한 분위기와 감성을 담은 한국의 전통음악이다. 국악 중에서도 ‘정가’는 국악 전공자조차 쉽게 선택하지 않는 희소 분야로, 대중이 친숙해지기에는 더욱 어려운 전통 성악이다. 정승우 이사장이 이 낯선 소리를 널리 알리며 교육과 상담, 심리치료와 공연 기획 등 다양한 활동으로 확장하고 있는 정가 전문가 이소정 대표를 21번째 인터뷰이로 맞았다.

▎한국의 전통음악 정가를 기반으로 한 연주, 교육, 상담과 치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소정 대표.
국악은 우리의 전통음악이지만 대중음악은 아니다. 그나마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일부 국악기와 판소리가 잘 알려진 정도다. 근래 들어 한국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크로스오버가 등장해 주목을 받으면서, 젊은 세대가 국악을 한결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하지만 국악 중에서도 전통 성악의 한 갈래인 ‘정가(正歌)’는 대중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장르이다. 영화 [해어화]에서 조선의 마지막 기생 소율 역을 맡은 한효주가 부른 음악이 정가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전통 시조나 한시에 곡을 붙여 불렀던 노래이다.

정승우 이사장이 만난 이달의 주인공은 정가 전문가 이소정 대표이다. 이 대표는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음악과에서 정가를 전공하고, 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에서 음악치료교육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주 활동뿐 아니라 국악과 정가를 기반으로 교육, 심리 상담과 치료, 공연 기획과 관련 강의를 진행하는 사피엔티아 마인드&뮤직 프로젝트 대표로 활동 중이다. 또 국립국악고등학교와 NLCS 제주, 서울국제학교를 비롯한 많은 학교에 출강하며 음악 치료와 국악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41호 가사 전수자이자 이가회(이준아가사보존회)의 사무차장을 맡아 점점 잊혀가는 ‘정가’라는 음악을 이 시대에 전수하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국악 중에서도 정가라는 음악은 무척 생소하게 느껴진다.

전통 성악인 정가는 조선시대 사대부 계층에서 자기 수양을 위해 즐기던 풍류 음악으로, ‘바르고 아정한 노래’라는 뜻을 지닌다. 미덕이나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상류층이 연주하던 곡이라 절제의 미학이 담긴, 매우 서정적이고 고상한 음악이다. 부르는 이의 감정이입이 강한 판소리나 민요와 달리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정형미와 절제미가 있어야 정가다.

가곡, 가사, 시조를 통틀어 정가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각각의 차이는.

먼저 정가 중 가곡과 시조는 시조의 초· 중· 종 3장을 노래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하지만 가곡은 3장 형식의 시를 음절을 길게 늘여 5장 형식으로 부르기 때문에 끊어질 듯한 긴 호흡과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곡이다. 남자와 여자가 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었으며 시의 내용도 다르다. 여자의 노래가 사랑과 이별, 기다림을 노래한다면 남자의 노래는 자연을 벗 삼아 살고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노래하는 내용이 많다. 가곡은 궁중에서 사대부까지 조선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즐기며 사랑했기 때문에 악보로 만들어져 전해지고 있다.

가사는 조선 중기 부유한 중인 지식층이 새로운 예술을 수용하며 시를 짓고, 악기도 연주하며 불렀던 노래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긴 정형시를 떠올릴 수 있는데 가곡, 시조에 비해 시가 길고 자유롭지만 음악적으로는 기교가 있는 편이라 일반 사람들이 부르기보다는 전문가들이 부르던 노래라 할 수 있다.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사와 가창으로 불리는 가사는 달랐으며 현재 가창 가사는 12곡이 전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시조는 가장 널리 알려진 ‘우리 고유의 시’를 의미한다. 누구나 배우고 따라 하기 쉬워 여러 계층과 지역에서 널리 불렸지만 주된 소비층은 선비들이었다. 평시조부터 지름시조까지 다양하게 불렸고 서울·경기지역은 경제시조, 충청도는 내포제시조, 호남지역은 완제시조, 영남지역에서는 영제시조라 칭하며 같은 곡들도 조금씩 다르게 불렀다. 요즘 각종 경연에서 랩 배틀을 하는 것처럼 시조로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기도 하고 서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부르기도 했다. 오늘날 빌보드 차트 같은 음원 차트에 올라가는 곡들이 시조가 아니었을까 싶다.

판소리는 평민을 위한 노래, 정가는 양반의 노래라고 알려져 있는데.

판소리와 정가가 발달했던 조선시대는 계급사회였다. 삶의 이야기를 담은 소리인 판소리는 서민 계층에서 주로 향유되었고 우리 시조나 중국 한시를 읊는 노래인 정가는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던 양반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신문물이 들어오고 신분이나 계급이 흔들리는 조선시대 말에는 이런 이분법이 조금씩 깨졌다. 정가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영화 [해어화]에 기생들이 조선의 마지막 정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정가 전문가이다.

아직은 아니다. 정가의 최고 전문가들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은 정가 중 가곡과 가사, 두 장르만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가사 국가무형문화재 이준아 선생님의 제자로서 그 명맥을 잇기 위해 여전히 배우고, 노력하고 있다. 거기에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교육 현장에 몸담았던 개인적인 경험을 더해 정가를 새롭게 심리치료나 교육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공연을 기획하기도 하고 신곡으로 편곡하여 곡을 연주하는 등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색다른 방식을 접목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자칫 고루하게 느껴지는 국악이라는 장르 중에서도 정가의 저변을 확대하고자 노력하는 전문가라고는 할 수 있겠다.

현대 창작곡도 정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요즘 정가를 하는 많은 분이 현대시에 정가의 음과 시 김새들을 활용한 창작곡들을 발표하고 있다. 반대로 정가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정가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재즈나 가요에 접목해 편곡하여 부르는 분들도 있다.

전통 정가만이 진짜 정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새롭게 창작되거나 변주되어 발표되는 아름다운 곡들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되는 정가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많은 정가인과 음악계의 모든 분을 지지한다.

정가에도 합창곡이 있나.

남녀가 같이 부르는 가곡 중 태평가란 곡이 있는데, 이 곡을 합창곡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요즘 창작되는 곡들이나 나의 스승인 이준아 선생님의 가사 곡 중에서 합창으로 부를 수 있는 곡들을 선정하여 공연에서 함께 부르기도 한다.

대표로 활동 중인 사피엔티아 마인드&뮤직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해달라.

사피엔티아 마인드&뮤직 프로젝트는 심리상담사, 음악치료사, 전문연주자로 구성된 팀이다. 교육과 상담치료를 진행하고,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작곡을 연주한다. 우리나라 전통 성악인 정가의 장르 중 12가사를 널리 알리고자 가사의 내용을 소개하고, 그 안에 드러난 다양한 인간의 감정으로 내면의 나와 소통함으로써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의 보편성을 통해 현재의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공연도 기획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단체이다.

국악의 보편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학교 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교육자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국악이 결코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국악이 다가오고 노래가 보이고 무용이 들린다’는 타이틀로 국악에 대한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평가가 아주 좋은 것을 보며 열심히 노력한 보람을 느낀다.

또 심리학과 국악, 특히 정가를 접목한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공연을 보는 분들이 해설과 함께 사피엔티아 팀의 워크지를 활용하여 단순히 음악을 듣고 즐기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있다. 공연을 보고 팬이 되어주시는 분이 점점 많아져 뿌듯하다.

국악의 정서는 우리 민족의 근간이지만 대중화는 요원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양한 분야와 접목해 국악에 친근하게 접근하려는 시도가 많아져서 반가운 마음이다. 나도 여전히 노력 중이지만 함께 더 많은 사람에게 국악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후원 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가 궁금하다.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국악 음악 치료와 공연 기획을 하고, 동시에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작년에서야 처음으로 공모사업에 지원할 시간이 생겼다.

노인요양시설에 계신 어르신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하실 수 있도록 전통 공연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이 선정됐다. 우리 팀은 음악치료사가 진행을 하고, 국악 중에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가, 탈춤, 가야금병창, 생소병주 등 어르신들의 인지과정, 정서적 안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호응이 좋았던 덕분인지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두 번 연달아 선정되어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음악치료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가족 중에 심리치료를 전공하여 상담을 하는 분이 계신다. 원래 연주 활동과 음악 교육을 주로 해왔는데, 가족을 통해 자연스럽게 마음을 깊이 건드리는 음악이라는 예술 매체를 통한 치료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교육 현장에서 실제로 적용해보고 심리치료가 주는 힘을 알게 되었다. 막연히 좀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서양 음악과 악기를 활용한 음악치료가 아닌, 국악을 매개로 한 음악치료를 전공하는 대학원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저 없이 등록하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 있다면.

음악치료를 하다 보니 사회적 배려 계층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국립 국악고등학교 음악치료 동아리 학생들과 NLCS 제주를 비롯해 서울에 있는 국제학교 학생들, 발달장애 학생들이 함께하는 국악 연주팀을 구성했다. 그들이 대학생이 된 지금도 연주팀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이 활동을 하면서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과 더불어 심리학이나 음악치료, 정가와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친구가 많다. 새로운 꿈을 꾸게 된 장애ㆍ비장애 친구들이 예술이라는 매개체 아래 하나가 되어 함께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작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봉사활동이라 여러 가지 면에서 제약도 많고 힘도 많이 들지만, 어떤 일보다 보람을 느끼고 애정하는 프로젝트이다.

전통악기 중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나.

아무래도 국악과 관련한 교육과 치료를 하다 보니 가야금, 장구, 단소 등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악기들은 조금씩은 다루는 편이다. 하지만 전문 연주자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연주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악기를 묻는다면 없다고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최근에는 단순한 연주자를 넘어 MZ세대들도 국악이나 정가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음악, 심리, 미술, 춤이 어우러지는 종합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또 좀 더 어린 학생들이 연주와 치료 봉사활동에 참여해 각각 별개로 보이는 삶이 하나의 유기체로서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활동에 온 정성을 쏟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분야와 협업을 하고 있고, 계속 영역을 확장해나가고자 한다.

함께 활동하는 전문가들이 봉사의 가치를 아는 분들이기에 너무나 큰 힘이 되지만, 개인이나 단체가 전담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국악과 정가라는 장르가 새로운 세대와 기존 세대의 갈등을 풀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린다.

※ 정승우 - 고려대학교 법학과(학사), 동 대학원(법학 석사, 법학 박사) 졸업 후 2011년 공익재단법인 유중문화재단과 복합문화공간인 유중아트센터를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정리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202312호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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