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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주 센터장의 메타버스 로드맵 짚어보기 

점점 낮아지는 메타버스 문턱 

세계적인 가전·정보통신 제품 박람회 ‘CES 2024’에서 대세는 단연 AI와 기술 융합인 듯했다. 더불어 AI 기술이 융합된 메타버스 플랫폼이 대거 등장하면서 국내 여러 언론도 꺼진 줄 알았던 메타버스 인기의 불씨가 다시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기사를 앞다퉈 싣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으로 메타버스 환경 개발과 관련된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명확해지면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요원해 보였던 메타버스 구현이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푸른 용의 해라는 2024년, 메타버스 동향 중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 할까?

▎2024년 1월 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24 소비자가전전시회 (CES)에서 사람들이 SK 원더랜드를 방문해 가상현실을 체험하고 있다. / 사진:신화통신/우샤오링
메타에서 퀘스트 3세대를 발표하면서 기존의 13세였던 나이 제한을 10세 이상으로 낮췄다. 어차피 대부분 메타버스를 실제로 사용하는 어린이들의 나이에 맞춰 기준을 바꾼 듯하다. 나이 제한을 낮추는 대신 부모가 자녀들의 메타버스 활동을 조금 더 쉽게 통제할 수 있도록 메타 퀘스트 스마트폰 앱에 자녀 보호(parental control) 기능을 추가했다. 이로써 메타 퀘스트 앱은 2년 연속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다른 소셜미디어 앱을 제치고 애플 앱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한 앱 1위를 차지하게 됐다.

특강이나 기조연설을 할 때면, ‘메타버스라는 거, 너무 불편해서 안 쓰게 되던데, 킬러앱이 개발되기 전까지 이게 과연 성공할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받아들이기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르나, 메타버스는 이미 2차원 스크린에 익숙해진 세대들을 위한 세상은 아닐 확률이 높다. 심지어 MZ 세대도 메타버스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다. 추측건대, 2011년 이후 출생한 알파 세대(현재 중학생들) 정도는 되어야 메타 퀘스트 같은 VR 헤드셋이 일상 속에 녹아 있어 자연스럽게 메타버스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스마트폰 중 ‘킬러앱’을 꼽으라고 하면 과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사실 현대인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 킬러앱을 꾸준히 사용하기보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이용해야만 삶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우리를 깨워줄 알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교통카드로, 차를 몰고 갈 때 방향을 알려줄 내비게이션으로, 사진을 찍을 때 사진기로….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으나, 점점 발전을 거듭해 스마트폰 하나로 일상을 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메타버스가 더는 놀라운 신기술로 여겨지지 않는 알파 세대부터는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미래를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혼합현실(Mixed Reality)의 약진

메타 퀘스트 3세대와 애플 비전 프로의 출시 소식으로 CES 2024에서도 Xreal Air2 Ultra 등 혼합현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유저가 완전히 몰입하지 않아도 되는 혼합현실에서는 가상현실(VR) 헤드셋보다 가볍고 이동성이 좋은 선글라스 형태의 하드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시야의 폭이 훨씬 좁아지는 것이 Hololens나 Magic Leap 등 기존 AR/MR 기기들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시선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투사되는 디지털 이미지를 볼 수 없게 되어 실용성이 떨어졌는데, 혼합현실 기기와 앱들이 활성화된다면 큰 움직임이 필요 없는 사무실이나 교실 환경에서는 효용가치가 높을 수 있다. 학교나 직장 같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상호작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 가상현실처럼 현실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몰입형 환경을 원활하게 사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기도 하다.

흔히 이런 혼합현실형 헤드셋은 컴퓨터 앞에서 주로 문서 작업을 하는 일반 사무직과는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혼합현실 하드웨어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헤드셋 렌즈를 통해 컴퓨터 작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패스스루(passthrough) 수준이 되면, 가장 눈에 띄는 편리한 점은 유저가 사용할 수 있는 모니터 화면의 넓이가 가상 공간의 확장으로 상당히 넓어질 수 있다는 부분이다. 현재는 모니터 2~3개를 연결하려면 케이블을 이용해야 모니터 면적을 넓힐 수 있지만, 혼합현실 헤드셋을 사용하면 가상 공간에서 유저가 필요한 만큼의 크기와 넓이로 모니터를 설정하여 사용할 수 있다. 또 같은 사무실 공간에서 일하고 있더라도 유저가 원하는 대로 가상 아이템(예: 메모지, 포스터, 화이트보드 등)들을 덧입힐 수 있고, 이는 유저의 눈에만 보이게 설정할 수 있어서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동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우리 모두에게 개인 비서가 생긴다면?

AI 기술이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에 융합되면서 기존 음성인식 기능들이 더욱 똑똑해질 전망이다. 모빌리티 서비스 등 자동화 기술이 발달하면서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CES 2024에 소개된 Rabbit R1은 기존 음성인식 서비스들의 한계를 뛰어넘어 복잡한 명령들도 수행 가능한 AI 개인 비서 서비스이다. 유저가 검색이나 서비스 이용을 위해 개별 앱이나 수많은 웹사이트를 일일이 클릭하지 않고 Rabbit R1에 지시 사항을 전달하면(예: “애틀란타에서 인천으로 가는 최단 시간 비행편 중 가장 저렴한 표를 찾아 예약까지 해줘”) 수행에 필요한 여러 앱과 웹사이트를 자동으로 방문해 검색 후 실행한다. 물론 AI 기술의 발전은 빠르지만 아직 현재진행형이라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에 Rabbit R1의 효용가치에 대한 우려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인공지능 서비스는 분명 지루한 단순노동에서 인간을 해방해줄 가능성이 높아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 듯하다.

그런데 배신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고 했던가. AI의 효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저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 등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하는데, 유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인공지능 서비스일수록 개인정보 유출 등 프라이버시 문제가 생길 위험이 커지고, 유저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만 알고 있는 서비스는 아무래도 유저의 니즈대로 명령을 정확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유저들이 느끼는 편리성에 대한 유혹, 이를 미끼로 개인의 주체성과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점차 박탈해가는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의 덫은 우리 모두를 서서히 끓는 물 속에서 죽어가는 개구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점점 다양해지는 메타버스 생태계

가상현실(VR)이 주류를 이뤘던 기존 메타버스 생태계와 달리 2024년에는 메타버스 관련 기술의 폭이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특히 코로나 직후 얼어붙었던 미국의 스타트업 펀딩이 경기 후퇴의 위기를 모면하며 회복세로 전환하면서 메타버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관련 회사들이 다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게임산업 외에도 교육, 의료,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메타버스 관련 연구와 기초과학 발전에 필요한 R&D 펀딩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어 향후 메타버스 관련 기술은 일반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고려한 모습으로 발전해 한 가지 ‘킬러앱’의 형태보다 점차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든 모습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 안선주 - 조지아대 첨단 컴퓨터-인간 생태계 센터(Center for Advanced Computer-Human ecosystems) 센터장이며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가상현실, 증강현실 등 뉴미디어와 이용자 행동 변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의료, 소비자심리학, 교육과 연계한 가상현실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 대화형 디지털 미디어에 의사소통 및 사회적 상호작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2022년 초 TED talks에서 ‘일상생활에 가상현실 통합’이란 주제로 발표한 바 있다.

202402호 (202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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