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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쓰는 만년필, 몽블랑 

 

정소나 기자
시대를 초월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에는 어김없이 만년필이 등장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왔다. 특히 새까만 몸체, 육각형 모양의 하얀 별, 금빛 장식이 돋보이는 몽블랑 만년필은 각국 정상들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중요한 문서에 서명할 때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했다. 시대 조류를 따라 수많은 필기구가 컴퓨터 자판과 스마트폰에 자리를 내어준 오늘날까지 몽블랑은 여전히 만년필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몽블랑은 어떻게 세계 각국 유명 인사들이 주목하는 명품 필기구의 대명사가 됐나.

▎찰리 그레이가 촬영한 마이스터스튁 100주년 기념 캠페인 영상 시리즈에 등장하는 몽블랑 마크 메이커 배우 이진욱.
몽블랑 만년필, 성공의 아이콘이 되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만년필은 그 존재만으로도 빛이 난다. 국가 간 조약이나 체결 등 중대한 행사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만년필이었다.

1906년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작은 만년필 공장에서 시작된 몽블랑은 역사적인 순간마다 등장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독일 방문 당시, 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또 쾰른에서 방명록에 이름을 적기 위해 필기구를 찾던 콘라트 아데나워 독일 총리에게 케네디 대통령이 몽블랑 마이스터스튁을 빌려줬다는 일화 역시 잘 알려져 있다.

통일 독일이 탄생하던 1990년 10월 3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와 동독의 로타어 데메지에르 총리가 통일 조약에 서명할 때 양 총리의 손에는 몽블랑 만년필이 쥐어져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스페인의 소피아 여왕,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세계적인 유력 정치가들이 중요한 국가 문서에 사인할 때 몽블랑 만년필을 사용했다. 2022년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즉위 선언문에 서명하는 자리에서 책상 위에 놓인 펜 대신 재킷 안주머니에서 꺼내 서명한 만년필도 몽블랑이었다.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 세계적인 재력가들과 함께 국내에서는 고 이병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만년필을 수집할 정도로 몽블랑 애호가로 알려지며 ‘CEO의 만년필’로도 이름을 날렸다.


▎모든 닙은 몽블랑 최고의 장인이 솔리드 골드를 수작업으로 직접 가공하여 제작한다.


1983년에 개봉한 영화 [007옥토퍼시]에서는 주인공 제임스 본드(로저 무어 분)의 목숨을 구하는 비밀 병기로 둔갑해 영화 팬들에게 색다른 매력을 안겨주며 만년필의 대명사가 됐다. 이 밖에도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불리는 마크 뉴슨, 예술가 오노 요코 등 여러 아티스트의 선택을 받았다. 이렇게 몽블랑은 전 세계 수많은 명사의 선택을 받으며 오늘날 성공과 명예, 지위와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수작업으로 제작 중인 몽블랑 만년필.


개척 정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만년필


▎몽블랑 아카이브의 컬러인 코랄 색조가 특징인 마이스터스튁 100주년 기념 캡슐 컬렉션 카드 홀더.
1906년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상인 알프레트 네미아스(Alfred Nehemias)와 베를린 출신의 엔지니어인 아우구스트 에베르슈타인(August Eberstein)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몽블랑의 역사가 시작됐다. 두 사람은 함께 미국 여행을 하다가 펜 속에 잉크통이 들어간 만년필을 처음 접했는데, 잉크가 한 번에 쏟아져 나오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나와 끊기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편리함에 매료되었다. 유럽으로 돌아와 문구제품 도매상이었던 클라우스 요하네스 포스(Claus Johannes Voss)와 함께 필기구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최고급 골드 만년필 생산업체’로 회사의 방향을 정한 세 기업가는 ‘심플로 필러 펜 코(Simplo Filler Pen Co)’라는 이름을 내걸고 독일 함부르크에 최초의 아틀리에를 열었다. 1906년 이래 줄곧 그들은 함부르크의 샨첸피르텔(Schanzenviertel)에 숙련된 장인들을 고용해 당시로는 최신식인 일체형 잉크 용기를 장착한 심플로 세이프티 만년필(Simplo Safety Fountain Pen) 등 사용하기 쉬운 다양한 만년필을 생산했다. 잉크가 새지 않는 잉크 탱크부터 잉크의 흐름을 개선한 정교한 잉크 전달 시스템, 접이식 닙에 이르기까지 몽블랑은 새로운 발명을 거듭하며 신기술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끊임없는 개척 정신으로 필기구 기술의 선두 주자 자리를 지켜왔다.


▎화려한 블랙 레더 위에 몽블랑산 윤곽선이 직접 엠보싱 처리된 마이스터스튁 100주년 기념 캡슐 컬렉션 지갑.


1910년에 회사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인 ‘몽블랑’에서 영감을 받아 ‘최고의 품질’을 향한 의지가 담긴 새로운 이름을 내걸었다. 1913년에는 알프스산맥 최고봉 몽블랑의 눈 덮인 여섯 봉우리를 상징하는 하얀 별 엠블럼이 탄생했다. 이 엠블럼은 몽블랑이 생산하는 모든 필기구에 장식되며 회사의 상표가 되었다. 몽블랑은 이 ‘몽블랑 스타’에 정상의 만년설처럼 영원히 지속가능한 최고의 품질을 지향하고 유럽의 전통 장인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몽블랑의 열정과 헌신을 담고자 했다.


▎만년필의 디자인 코드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 레거시 니콜라스 뤼섹 크로노그래프 마이스터스튁 100주년 워치.


위기가 만들어낸 명품


▎그린 프레셔스 레진 소재와 100주년 디자인으로 장식된 골드 닙이 돋보이는 마이스터스튁 오리진 컬렉션 프레셔스 레진 클래식.
몽블랑이 처음부터 명품 필기구 브랜드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군인들과 영국 군인들에 의해 오늘날 형태의 볼펜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인 1950년대에는 가격이 싸고 사용하기 편리한 플라스틱 볼펜이 일반화되었고, 만년필 시장은 위기를 맞았다. 만년필이 볼펜에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가 만년필을 출시하는 등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해 만들며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노력했지만, 몽블랑은 이 시기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외부 자본을 받아들였다. 담배와 럭셔리 상품을 만드는 영국의 알프레드 던힐이 몽블랑의 주주가 되어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알프레드 던힐에 인수된 몽블랑 브랜드는 럭셔리 시장을 집중 공략하기 시작했다.

1987년 노버트 플라트가 CEO로 취임한 이후 더욱 명품화에 집중하며 20달러 이하의 저가 만년필 라인의 생산을 중단하고 럭셔리 상품 개발에 주력했다. 1983년에는 최초로 귀금속 소재로 제작한 ‘마이스터튁 솔리테어 컬렉션’을 발표했다. 1994년에 출시한 마이스터스튁 ‘솔라테르 로열 라인’은 다이아몬드 4810개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장식한 만년필이다. 약 1억원을 호가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만년필로『기네스북』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고, 오늘날까지도 몽블랑이 제작한 가장 고가의 필기구로 남아 있다. 1992년부터는 매년 한정판을 선보이며 희소성을 높여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었다. 이런 고급화 정책 이후 세계시장 점유율이 10% 이상 성장했으며, 몽블랑은 고급 필기구의 상징이자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아이콘으로 재탄생했다.


▎2022년 개관한 몽블랑 하우스. 몽블랑의 필기구 패키지 모양을 오마주한 3층 건물에서 매력적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한다.


예술적 가치와 장인정신을 담다


▎몽블랑 하우스에서는 창립일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몽블랑 아카이브와 특별한 몽블랑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몽블랑은 1906년 이래 줄곧 함부르크의 필기구 매뉴팩처에서 메종의 아르티장들이 전통적인 장인정신에 고도의 정밀성과 최신식 생산기술을 접목하여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컬렉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필기구이자 필기 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몽블랑의 마이스터스튁도 섬세한 디테일과 정교한 수작업으로 함부르크 매뉴팩처에서 계속 제작되고 있다. 모든 닙은 몽블랑 최고의 장인이 솔리드 골드를 수작업으로 직접 가공하여 제작하는데, 35차례의 공정과 단계를 거친 후 다시 70여 차례의 추가 공정에서 조립과 검사를 모두 마친 후에야 하나의 마이스터스튁이 완성된다.

만년필은 글씨를 쓸 때의 필기감도 중요하지만, 닙이 종이에 닿을 때 나는 소리도 중요하다. 닙을 연마하는 장인은 닙이 종이 위에 미끄러질 때 나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다. 종이가 긁히거나 종이에 걸리지 않고, 종이 위에서 끊김 없이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소리가 나는 닙만이 엄격한 품질검사를 통과할 수 있다. 함부르크에 있는 몽블랑의 필기구 매뉴팩처에는 몽블랑의 예술적인 필기구들을 탄생시킨 아르티장 아틀리에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필기구를 디자인하고, 금세공인과 보석세공인을 비롯한 숙련된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새로운 디자인이 실제 제품으로 구현된다. 플래티넘과 솔리드 골드, 루테늄, 카본 등 진귀한 소재만 사용하여 수없이 반복되는 정교하고 세밀한 작업 공정을 거쳐 마스터 오브 아트(Masters of Art) 에디션, 작가 에디션(Writers Edition), 그레이트 캐릭터(Great Characters) 에디션 등 다양한 리미티드 에디션이 제작된다.


▎골드 코팅 디자인과 시그니처 코랄 컬러가 조화된 마이스터스튁 오리진 컬렉션 솔리테어 르그랑 에디션.


또 몽블랑은 기존의 비스포크 닙 제작 경험을 한 차원 더 끌어올려 몽블랑의 아르티장들이 고객 개개인의 취향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명품 필기구를 만들어냄으로써 완벽한 주문 제작(Creation Privée) 서비스를 제공한다. 몽블랑 장인들은 최고급 소재와 까다로운 디자인, 진귀한 보석 장식에 궁극의 정밀성과 전문성, 창의성을 더해 몽블랑 애호가를 만족시킬 명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웨스 앤더슨과 함께 제작한 캠페인 비주얼.
2022년에는 함부르크에 있는 몽블랑 본사와 필기구 매뉴팩처 바로 옆에 몽블랑 하우스(Montblanc Haus)를 개관했다. 몽블랑은 이곳에서 몽블랑 창립일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몽블랑 필기구를 제작하는 사람들, 이 필기구를 사용하여 인류애에 대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600㎡ 면적의 3층 건물에서 매력적인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몽블랑 하우스는 글쓰기의 소중함과 사람들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세상에 발자취를 남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몽블랑의 신념을 담은 공간이다.

100년을 관통하는 명작의 탄생, 마이스터스튁


▎프레셔스 레진 배럴과 플루이드 잉크 효과를 준 캡이 특징인 마이스터스튁 오리진 컬렉션 프레셔스 레진 149.
2024년, 몽블랑의 아이콘 ‘마이스터스튁’이 100주년을 맞았다. 최초의 마이스터스튁을 선보인 1924년 당시는 몽블랑이 첫 번째 사명인 심플로(Simplo)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일부 고객이 ‘일요일용(Sundayuse)’, 즉 매일 사용하는 용도가 아닌 훌륭한 경험을 선사하는 특별한 필기구를 요청한 것이 마이스터스튁의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우연히도, 몽블랑에서 수년간 만년필 제작 노하우를 연마해온 장인들은 이미 퍼스널 프로젝트로 자신들을 위한 유일무이한 필기구를 제작하고 있었다. 이 필기구는 뛰어난 장인정신을 보여주었기에 독일어로 ‘걸작(Masterpiece)’이라는 의미의 마이스터스튁(Meisterstück)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처럼 운명적인 우연으로 최초의 마이스터스튁 컬렉션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는 빠르게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으며 오늘날까지 여전히 몽블랑을 대표하는 컬렉션이다.

마이스터스튁은 최초부터 지금까지 심플한 블랙 세이프티 펜의 모습에서 다양한 시대의 영향을 반영하며 진화해왔다. 그 과정에서 50여 년 전 확고해진,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특유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몇 가지 독특한 디자인 속성을 갖추게 되었다. 투 톤 골드 닙에 각인된 몽블랑산의 높이를 미터로 표시한 숫자 ‘4810’과 1920년대 처음 선보인 대담한 클립 디자인,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사이 도입된 간결한 시가 셰이프와 세 개의 골드 링 등이 그것이다.

몽블랑은 마이스터스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미국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웨스 앤더슨(Wes Anderson)과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글로벌 캠페인을 제작했다. 아카데미 어워드 수상 감독인 웨스 앤더슨이 각본과 감독을 맡은 이번 캠페인은 유명한 필기구의 유산에 경의를 표하며, 영화 제작자의 시선으로 몽블랑의 세계로 가는 여행에 관람객들을 초대하고 메종을 신선한 시각으로 보여준다.

또 마이스터스튁의 기원을 조명하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영향력을 기념하기 위해 ‘마이스터스튁 오리진 컬렉션’을 새롭게 선보였다. 오랜 세월을 거쳐온 디자인 속성에서 나아가 광범위한 몽블랑 아카이브에서 한 번도 현실화된 적 없는 오리지널 콘셉트를 재해석하고 강조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필기구부터 액세서리까지, 진화 중인 몽블랑


▎여러 등장인물이 100여 년 전에 탐험가를 위해 디자인된 만년필을 소개하고, 집필실 데스크에 앉아 필기구로 글을 쓰면서 손글씨의 즐거움과 가치를 시청자들에게 알리는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00주년 캠페인 영상.
1906년 필기 문화에 새로운 장을 열며 등장한 몽블랑은 혁신의 영역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정교한 장인정신과 디자인을 선보이는 메종으로 자리 잡았다. 1998년 세계 최대의 명품 그룹 중 하나인 리치몬트 그룹의 일원이 된 몽블랑은 이듬해 뉴욕에 문을 연 첫 번째 플래그십스토어를 시작으로 이후 전 세계 각국의 주요 도시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열고 브랜드의 명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제품 철학과 철저한 브랜드 관리로 명품 필기구 브랜드 이미지를 굳건히 다진 몽블랑은 이후 성공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향수·시계·핸드백·지갑·벨트·선글라스 등으로 제품 라인을 확장하며 토털 브랜드로서 위상을 다져나갔다. 독창성과 상상력은 몽블랑이 럭셔리 필기구와 시계, 레더에 이어 뉴 테크와 액세서리 등 다양한 제품군에 걸쳐 최상의 장인정신을 표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숙련된 장인들의 대담한 아이디어, 시대를 초월해 마음을 사로잡는 제품 디자인, 혁신을 향한 끝없는 열정과 노력은 몽블랑이 필기 문화의 위대한 개척자로서 위상을 공고히 하고, 오랜 전통을 계승할 명품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지난 110여 년간 끊임없이 진화하며 메종의 영광과 품격을 지켜온 몽블랑이 앞으로 써나갈 역사를 기대해본다.

-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 사진 제공 몽블랑

202408호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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