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단순해진 팝송? 

지난 수십 년간 영어권 팝송의 선율과 가사가 계속해서 단순해졌다는 분석이 최근에 나왔다. 이런 연구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단순해진 음악을 들으며 자란 젊은이들도 점점 단순해졌을까?

▎프랑스 화가 로트렉 (Henri de Toulouse- Lautrec)이 그린 볼레로 춤. 오페레타라는 뜻을 가진 ‘Chilpéric(쉴페릭)’이라는 그림 속 장면이다. 볼레로는 4분의 3박자로 된 스페인 춤곡으로, 18세기와 19세기에 유행했다. 특이한 리듬을 바탕으로 한 춤이다. / 사진:위키피디아
지난 70년 동안 미국 빌보드 음악 차트에서 상위에 오른 곡들을 분석한 영국 학자들은 ‘선율’이, 지난 50년 동안의 영미권 대중가요들을 분석한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연구자들은 ‘가사’가 단순해졌다고 분석했다. 에바 자네를레(Eva Zangerle) 인스브루크대학 컴퓨터과학과 교수와 그의 독일 동료들은 다섯 장르에 해당하는, 만 곡이 넘는 팝송을 분석했다. 이들에 따르면 가사 속 단어들의 수가 줄어들어 어휘 수준의 복잡성이 감소했고 반복되는 단어들이 늘어나는 등 구조적 복잡성도 감소했다. 그리하여 가사는 이해하기가 점점 쉬워지는 쪽으로 변화해왔다. 가사가 특히 중요한 장르인 랩에서조차 사용된 어휘 수가 갈수록 줄어들었다(Song lyrics have become simpler and more repetitive over the last five decades, Scientific Reports 14, 2024). 비슷하게, 영국 연구진은 선율의 복잡성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같은 학술지에 보고했다(Trajectories and revolutions in popular melody based on U.S. charts from 1950 to 2023).

음악의 3대 요소에 대해 고등학교에서 배웠을 것이다. 선율(melody), 리듬, 화음. 리듬과 화음보다 먼저 제시된 선율은 음악의 요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일까? 어떤 사람들, 특히 서양 클래식 음악가들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생각하는 당위일 것이다. 상기한 영국 연구자들은 대중음악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선율의 중요성이 약화하는 현실적 경향을 확인했다.

선율과 가사가 단순해짐으로써 팝송은 점점 단순해졌을까?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겠지만, 다른 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할 수 있다. 이 두 번째 대답은 다른 요소들이 복잡해졌거나, 그전에는 도입되지 않았던 요소들이 팝송의 영역에 도입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선율과 가사의 단순화 경향은 다른 차원에서 복잡해진, 그리하여 모종의 (정보적) 풍요로움을 보이는 새로운 팝송을 가져왔을 것이다. 이 추측을 뒷받침하는 빅데이터 연구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직관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볼 때 이 추측이 맞을 것이다. 새로운 게 전혀 없는 팝송이 점점 더 많이 작곡되고 점점 더 많은 젊은이를 사로잡았다고?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위 연구자들이 했던 방식으로 광범위한 양의 연구를 하지 않았지만,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발표된 한국 가요와 팝송을 꽤 많이 알고 있다. 영국인들과 독일인들의 연구들은 그런 필자가 해왔던 직관적 분석과 조화하는 것 같다. 아울러 새로운 요소들이 2000년대 한국 가요와 팝송에서 많이 확인되는 것도 같다.

그리하여 팝송의 70년 역사 동안 젊은이들은 단순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늘 새로운 요소들에 흥미를 느껴왔고, 나이가 들어가는 이들은 젊은이들의 그런 열광에 이질감과 곤혹감을 느꼈을 것이다. 대중음악 취향과 관련한 중년·노년-청년 갈등(?)을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연구는 이러한 직관을 재확인해준다. 온라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스포티파이 AB(spotify AB)의 매니저인 아제이 칼리아는 회사가 보유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흥미로운 점들을 확인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20대 후반이 되면 서서히 새로운 곡들을 덜 듣고 평균 33세부터는 아예 신곡 듣기를 멈추는 경향을 보인다. 남성이 여성보다, 자녀가 있는 부모가 자녀가 없는 같은 세대의 싱글보다 빨리 신곡의 흐름에서 이탈한다. 이 연구가 확인한 신곡을 듣지 않는 이들이 상술한 새로운 요소들을 확인하지 못하거나 그것들에 거부감을 가지는 이들일까? 그런데 그 새로운 요소들은 뭘까?

우선 음색(timber)이 있다. 같은 선율을 서로 다른 악기로 연주할 때 발생하는 음향적 차이가 음색이다. 바이올린의 음색은 피아노의 음색과 다르다. 같은 바이올린이라도 수억원대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명기의 음색과 싸구려 바이올린의 음색에는 차이가 있다. 같은 스트라디바리우스도 연주자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 같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같은 연주자가 동굴에서 연주할 때 발생하는 음색과 사막에서 연주할 때 발생하는 음색도 다르다. 같은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같은 연주자가 같은 장소에서 연주한다고 해도 40대의 그가 내는 음색과 70대의 그가 내는 음색이 다르다. 같은 노래를 벨칸토 창법으로 훈련한 성악가가 부를 때 발생하는 음색과 대중 가수가 부를 때 발생하는 음색은 다르다. 대중 가수들은 저마다 다른 음색을 자랑한다. 클래식 성악가의 벨칸토 창법은 다소 균질화된 음색을 보여준다. ‘벨칸토’라는 이탈리아 단어는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뜻인데, 대중음악계에는 클래식의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답지 못한 음색으로 성공한 이들이 종종 있다. 예를 들면 ‘내 사랑 내 곁에’를 부른 김현식이나 ‘걱정 말아요 그대’를 부른 전인권의 탁하고 거친 목소리는 특이한 음색으로 승부를 걸어 성공한 사례다. 대체로 마이크를 쓰지 않는 성악가들과 달리 대중가요 가수들은 마이크를 쓰는데, 좋은 마이크는 평범한 음색을 매혹적으로 만들어주는 도구이다. 여기에 놀라운 녹음 기술과 디지털 음향 편집 기술이 개입되면 1970년대 가수들의 소박한 목소리로부터 무척 달라진, 압도적 매력을 보이는 2000년대 가수들의 음색을 들을 수 있다.


▎미국 가수 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의 ‘This Is America’ 공식 동영상의 한 장면. 총기 난사 사건이 반복되며 물신숭배에 중독된 미국 사회를 조롱하는 공격적 가사와 영상으로 유명하다. / 사진:뮤직비디오 캡처
고전음악의 영역에서도 20세기에 오면 음색이 중요해진다. 20세기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관현악곡 [볼레로]는 무려 15분 동안 단 하나의 선율을 반복하는 특이한 시도를 보여준다. 지겨울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선율은 반복될 때마다 달라지는 음색의 화려한 옷들로 치장된다. 악기들의 다양한 조합에 따른 음색의 변화상이 다양한 음악이다. [볼레로]는 예쁘면서 우아하고, 그러면서 좀 복잡한, 그래서 쉽게 따라 하기 어려운 고전음악의 우아한 선율의 세계에서 많이 벗어난 미학을 보여주는데, 그 핵심은 음색이라는 요소를 전에 없이 중요하게 처리했던 새로운 작곡법에 있다. 이런 새로운 음악적 생각은 20세기에 나온 여러 현대음악과 대중음악의 세계에서 이미 중요하게 여겨져 왔다. 고전음악의 20세기 버전인 현대음악을 설명하는 데 음색은 중요한 키워드일 수 있다(『매혹의 음색』, 김진호, 갈무리, 2014).

춤도 새로운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영국 연구진의 연구는 이 추측이 맞는다는 부분적 증거를 제시했다. 선율의 단순성이 많이 증가했던 첫 번째 기점인 1975년에는 디스코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두 번째 기점인 1996년에는 힙합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두 장르 모두 춤과 관련이 크다. 힙합은 춤의 일종으로도 여겨진다.

이제 우리는 연관된 가설들을 제기할 수 있다. 70년 전의 팝송에서보다 최근의 팝송에서 가수들은 춤을 더 많이 추지 않을까? 요즘 가수들의 춤이 과거 가수들의 춤보다 더 화려해지고 복잡해지지 않았을까?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 이와 관련해서 과거보다 최근에 가수들이 더 많이 그룹화하고, 그 그룹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 이 가설들을 확인하려면 상술한 연구자들이 연구했던 대상과 다른 대상을 연구해야만 할 것이다. 상술한 연구자들은 팝송의 음향 파일과 미디파일들로 구성된 데이터세트를 컴퓨터로 분석했다. 춤과 관련한 가설을 확인하려면 동영상 파일들의 빅데이터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지난 50년 동안 단순화 경향을 보였던 대부분의 팝 장르에서 부정적 감정의 단어가 늘었고, 특히 분노와 관련한 단어가 증가했다. 미국 사회가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는 것일까? 2018년 발매된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는 매우 과격한 팝송을 상징하는 최근의 노래다.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기록했던 이 노래는 매우 충격적인 가사를 매우 충격적인 안무와 함께하는 동영상으로 더 유명하다. 평화롭게 시작된 노래가 갑자기 빼어 든 권총에 의한 살상·학살을 보여주는 동영상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동안 회자됐다. 한국의 대중음악 세계에서 볼 수 없는 사회적 분노의 표현이었다.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대부분의 대중음악 장르에서 부정적 감정, 특히 분노와 관련한 단어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여왔을까?

지난 수십 년간 영어권 노래의 선율과 가사가 계속해서 단순해졌다는 분석을 제시한 이들은 음대생들이나 음대 교수들이 아니다. 상술한 연구는 대중음악 분야의 빅데이터 연구로, 서유럽과 북미의 인지과학자들과 컴퓨터과학자들이 컴퓨터와 통계적 기법 등을 동원해 얻은 결과다. 그들은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의 영역에서도 연구하고 있고 그런 연구를 통해 음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음악가들에게 제시한다. 한국 음악가들, 특히 음악학자들은 이런 연구 경향을 흥미롭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408호 (202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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