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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르네 라미용은 고도가 높은 산지에 있는 공장에서 혹독한 겨울을 보낼 노동자들을 위해 작업복 위에 걸칠 수 있는 보온성 좋은 다운재킷을 제작해 제공했다. 작업복 위에 걸쳐 입는 이 재킷은 거위털로 안을 채워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이 좋고, 열 전달이 빠른 세계 최초의 다운재킷이었다. 몽클레르의 창업자 르네 라미용, 앙드레 뱅상과 친분이 있던 산악가 리오넬 테레이는 이 작업복 재킷의 탁월한 성능에 매료되었다. 그는 등반 상황에서 마주치는 극한의 험난한 기후를 견딜 수 있도록 보호 기능을 강화한 다운재킷을 개발해달라고 요청했다. 몽클레르는 ‘리오넬 테레이를 위한 몽클레르(Moncler pour Lionel Terray)’라는 이름으로 재킷을 포함해 장갑, 침낭등 산악용 방한 제품들을 출시했다. 리오넬 테레이를 비롯한 전문 산악인들이 직접 현장 테스트를 거쳐 수정을 거듭한 끝에 완벽한 기능성과 형태를 갖추게 된 세계 최초의 다운재킷은 각국의 전문 산악가들과 스키 애호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산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산다산악인들을 위한 방한복으로 이름을 날리던 몽클레르는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의 프랑스 스키 국가 대표팀의 공식 후원사로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산의 형태를 상징하는 에귓(Equit) 로고에서 프랑스의 국조인 수탉을 모티프로 삼은 로고로 바꾸었고,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또 움직임이 많은 스키 국가대표팀을 위해 기존의 2중 재킷보다 가볍고 활동성이 높은 싱글 재킷을 출시하며 더욱 실용적인 스포츠웨어 브랜드로 발전했다.
스포츠웨어에 머물러 있던 몽클레르는 1980년, 디자이너 샹탈 토마스(Chantal Thomass)를 영입해 시티웨어로 영역을 확장하며 패션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은 그녀의 손길이 닿은 다운재킷은 선명하고 화려한 컬러와 광택 효과, 독특한 스티칭으로 특유의 개성을 더해 스키장뿐만 아니라 도심에서도 화제를 모으며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옷의 테두리를 모피로 장식하거나 양면 원단, 화려한 새틴 소재를 사용하기도 했다. 다운재킷의 여밈도 일반적인 지퍼에서 벗어나 버튼을 사용해 변화를 주는 등 고정관념을 깨는 다양한 시도로 다운재킷의 형태와 디자인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한결 트렌디해진 몽클레르 다운재킷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아웃도어 활동뿐 아니라 도심 속 일상생활에서 착용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중반,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파니나리(Paninari)’ 붐이 일었다. 파니나리는 햄버거 숍(이탈리아어로 파니노테카)에 많이 모이는 멋쟁이 젊은이들에게 붙여진 명칭으로, 세련된 브랜드를 지향하는 캐주얼 패션이 그들을 대표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청바지, ‘팀버랜드’의 디키 슈즈, ‘엘 차로’의 웨스턴 벨트 등과 매치한, 화려한 컬러가 돋보이는 몽클레르의 다운재킷은 파니나리들의 상징적인 아이템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몽클레르의 두 번째 도약1980년대 후반부터 성공 가도를 달리던 몽클레르에도 시련이 찾아왔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들이 급부상하면서 몽클레르는 ‘한물간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1992년에는 이탈리아 기업 페퍼 컴퍼니에 인수됐다. 이때부터 프랑스에서 태어난 몽클레르는 이탈리아 브랜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페퍼 컴퍼니에 인수된 후 이탈리아 럭셔리 시장을 공략하며 부활을 꿈꿨지만, 무너진 브랜드 이미지는 되돌리기 어려웠고 하락세가 이어지며 파산 위기까지 맞았다.1999년, 경영난에 허덕이던 몽클레르에 레모 루피니(Remo Ruffini)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합류했다. 몽클레르를 되살리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 그는 본격적으로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2000년 S/S시즌에 몽클레르의 첫 컬렉션을 개최하며 아웃도어 브랜드가 여느 패션 브랜드처럼 컬렉션을 선보이고, 고급 스키 리조트에 매장을 여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2003년 레모 루피니는 브랜드를 인수해 CEO이자 오너 자리에 올랐고, 글로벌 전략을 펼치고 브랜드 리포지셔닝을 계속해나갔다. 특히 10대 시절 몽클레르 다운재킷을 처음 입었을 때부터 몽클레르의 역사와 기술력에 매료되었던 기억을 살려 아이코닉 아이템인 다운재킷에 집중했다.
그는 몽클레르의 역사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능에만 치중한 스포츠웨어가 아닌, 언제 어디서나 모두가 아우터로 입을 수 있는 다운재킷을 만들기 위해 제품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다. 주로 남성들이 입었던 패딩 점퍼를 여성과 아동까지 확대했고, 핏과 실루엣에도 신경을 써 보온성이 뛰어나면서도 날씬해 보이는 디자인을 선보여 여성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브랜드의 아이콘이자 DNA인 다운재킷을 코트 대신 입을 수 있는 명품 재킷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소재부터 디테일까지 모두 럭셔리하게 업그레이드했다. 제품의 프리미엄 가격대를 유지하기 위해 퀄리티를 두 배로 높이고, 모든 디자인과 생산 과정을 꼼꼼히 감독했다. 당시 몽클레르에 합류한 꼼 데 가르송의 수석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와 발렌시아가의 수석 디자이너 니콜라 제스키에르와 함께 재킷의 무게를 줄이고 디자인을 차별화하는 데 힘썼다. 고급 모피로 모자를 장식했고 양면으로 입을 수 있는 리버서블(Reversible)재킷을 고안하며 차별화했다.
또한 2006년에는 오트쿠튀르 컬렉션인 몽클레르 감므 루즈(Moncler Gamme Rouge)를 론칭했다. 처음에는 알렉산드라 파키네티가 디자인을 맡았고 후에 지암바티스타 발리가 진두지휘하며 페미닌하고 아방가르드한 이미지를 가미해 화제를 모았다. 이어 2009년에는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디자이너 톰 브라운과 협업해 스포티한 감성이 더해진 남성복 컬렉션 몽클레어 감므 블루(Moncler Gamme Blue)를 론칭하는 등 매년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2010년에는 역사적인 스키 의류들을 현대적으로 재 해석한 몽클레르 그레노블(Moncler Grenoble) 컬렉션을 출시하며 기능성 의류로 출발한 브랜드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강조하고 브랜드의 유산에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사카이, 크리스토퍼 래번, 릭 오웬스, 버질 아블로 등 동시대 가장 창의적인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하이패션으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렇게 프랑스 태생 몽클레르는 이탈리안 럭셔리 브랜드로 거듭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미래에 대한 오늘의 비전, 몽클레르 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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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르 지니어스 프로젝트 중 역대 최대 규모와 인원으로 진행된 이번 행사에서 상하이 황푸강을 가로지르는 대형 조선소 파빌리온의 3만㎡의 공간이 창조성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도시로 변모하여 감탄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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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르가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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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레르는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 아래 또 다른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을 최대한 줄이는 혁신적인 소재를 계속 연구하고 있으며, 식물 성분 원단과 액세서리들로 만든 탄소중립 다운재킷을 출시했다. 2021년에는 재활용, 유기농, 특정 기준에 따라 인증된 소재로만 제작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인 첫 번째 ‘본 투 프로텍트(Born To Protect)’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기후 행동, 순환 경제, 책임감 있는 소싱, 다양성 증진, 지역 사회 환원 등 다섯 가지 핵심 전략을 담은 2020-2025 전략적 지속가능성 계획을 발표하며 브랜드가 나아갈 바를 명확히 했다.헤리티지(Heritage), 독창성(Uniqueness), 품질(Quality), 창의성(Creativity), 혁신(Innovation)을 모두 담은 다운재킷,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과 진행하는 지속적인 컬래버레이션은 몽클레르를 대표하는 아이덴티티가 됐다.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온 브랜드의 유산과 혁신적인 사고의 융합이라는 핵심 DNA를 앞세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진화를 거듭하는 몽클레르. 다음 세대에도 그다음 세대에도 모든 사람에게 특별함을 선사하는 프리미엄 다운재킷의 대명사로 기억될 것이다.- 정소나 기자 jung.sona@joongang.co.kr _ 사진 제공 몽클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