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김진호의 ‘음악과 삶’ 

음악의 여러 기능 

근대사회에서 소시민이 음악을 듣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감동과 공감의 개인적 경험을 얻기 위함이다. 이러한 전통적 쓰임새 말고도 음악에는 여러 쓰임새와 기능이 있다.

▎벨기에 화가 야코프 회프나겔 (Jacob Hoefnagel, 1573~1632)의 [동물들을 매혹하는 오르페우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음악가다. 고대 현악기인 리라의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은 그의 연주가 동물들까지 매혹했다는 전설을 표현한다. 오늘날 인간의 음악이 사자나 칠면조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 그림은 음악의 효과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일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 사진:위키피디아
물리적 자극인 음악은 감정 등의 심리적 작용을 불러오며 수학적/음향적 질서/구조물이고 지식과 정보, 메시지를 담거나 표현하는 콘텐트이기도 하다. 물리적 자극으로서의 소리와 음악은 어떤 생명들의 경우 성장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식물학자 스테파노 만쿠소에 따르면 땅에 묻혀 있는 식물의 밑동은 땅으로 전달되는 진동에 특히 예민하다. 그런 식물에 음악을 들려주려면 지상에서 연주하기보다 땅을 두들기는 방식이 더 나을 것이다. 100Hz에서 500Hz 사이의 낮은 음향을 땅으로 전달하면 식물의 발아와 생장 등이 촉진된다. 그 밖의 주파수는 식물의 발아와 생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스테파노 만쿠소 외, 『매혹하는 식물의 뇌』, 행성비, 2016).

인간의 성장을 촉진하는, 즉 아이들의 키를 크게 하는 소리나 음악이 있을까? 필자는 인간의 성장을 촉진하는 음향이나 음악에 관한 신뢰할 수 있는 논문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런데 인터넷 공간은 다른 세상이다. ‘인간 성장호르몬 방출을 위한 음악’이라는 제목이 달린 음향을 검색할 수 있었는데, 이 음향의 조회수가 무려 200만 회가 넘었다. ‘21세 이후 키를 크게 하는 음악’이라는 제목의 영상도 있었다.

질병에 대처하는 음악에 관한 연구는 음악의 구체적 기능에 관한 연구 중 가장 많은 성과를 보인다. 이런 연구를 ‘음악치료(Music Therapy)’라는 분야 안에 포괄할 수 있다. 질병 치료와 완화, 현상 유지 등 구체적 효과를 확인한 연구 논문이 많다. 예를 들자면, 어떤 연구자들은 음악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임부들이 출산 과정에서 고통과 긴장을 감소하는 데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어떤 음악들, 특히 어머니의 심장박동과 유사한 리듬의 자극은 신생아를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이승희, 『신경학적 음악치료』, 정현주 외, 『음악치료 기법과 모델』, 학지사, 2006).

인간은 오래전부터 리듬의 심리적 효과를 알고 있었고, 그런 앎에 기초해 사람들은 특정한 음악적 리듬을 특정한 상황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해왔다. 예를 들어, 군대가 행진할 때는 2박자 계열의 음악을 주로 사용해왔다. 3/4박자 음악은 군대보다는 농부들을 위한 농요로서 적절하다. 음악, 특히 규칙적 리듬의 음악은 사람들의 행동을 동조화하는 데 도움을 주며, 그들에게 피로함을 덜 느끼게 해준다. 최근의 연구는 걸음걸이, 관절가동범위, 근육의 힘과 움직임 등 신체적 통제 과정에 리듬이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영향은 재활 영역에서 특히 효과적일 수 있다(이승희, 같은 글).

내 아이를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이 있을까? ‘모차르트 효과(Mozart Effect)’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고 난 직후 IQ 테스트를 받아보면 그 점수가 바로 올라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는 분명한 주장에서부터, 어린시절 고전음악에 노출된 경험이 아이의 심적 발달에 바람직한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두루뭉술한 주장까지, 다양한 주장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두루뭉술한 주장들은 분명하게 증명되기 어렵지만 딱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려워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음악은 인간의 심적 경험 중 하나일 수 있는데, 특히 수학적/음향적 질서/구조물로서의 음악 혹은 지식과 정보, 메시지를 담거나 표현하는 콘텐트로서의 음악을 접하는 일은 지적 경험일 수도 있다. 지적 경험을 많이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주장은 개진할 수 있다. 지적 경험으로서의 음악을 경험하면 지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은 지능 발달 전략 과정에서 일종의 우회로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 우회로를 통과해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경험은 기억되고 성찰되면서 인간에게 배움의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인간이 예술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운다는 주장이 있다. 미국의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인간의 일상적 경험 중 하나였던 예술이 예술을 위한 예술이 되어 일상생활과 유리되었다며, 예술은 원래대로 일상과 자연의 영역으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돌아온 예술은 배움의 중심이 된다. 듀이에게 교육은 배움이며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특히 예술적 경험은 훌륭한 배움이다. 듀이에게 순수예술은 배움을 제공하는 좋은 경험인데, 사람들 특히 성장기 학생들이 예술을 통해 그들의 다양한 지각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존 듀이, 『경험으로서의 예술』, 책세상, 2003). 특히 첨단의 지각적 실험을 통해 창조되는 순수예술은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벨기에 화가 루이 갈레(Louis Gallait, 1810~1887)의 <음악의 힘>. 무덤가에 오빠와 그의 누이가 쉬고 있다. 오빠는 누이를 위로하려고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그의 의도대로, 그의 연주의 힘에 따라, 누이는 깊은 잠을 자고 있다. / 사진:위키피디아
교육자들이 예술을 이용해 학생들의 지각을 훈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진 월렌스타인 같은 신경과학자들은 음악이 인간 개체의 ‘발달상의 어떤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마련되었고, 그 필요성이 음악의 발달과 진화를 이끌어왔다고 말한다. 생후 20년 동안 특히 중요하게 진행하는 정상적 뇌 성장과 발육을 위해, 그 이후에도 평생 유지되어야 할 정상적 뇌 상태를 위해 여러 종류의 청각적 자극을 경험해야 할 필요성이 우리에게 있다. 이 필요성 때문에 우리가 음악에 끌리는 것일 수 있다(진 월렌스타인, 쾌감본능, 은행나무, 2009). 우리 몸이 비타민 C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월렌스타인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비타민 C의 필요에 우리 몸은 어떻게 부응하는가. 우리는 사과 같은 과일을 먹고 쾌감을 느끼는 방향으로 진화해 옴으로써 비타민 C의 필요에 우리 몸을 맞췄다. 우연히 쾌감 체계를 장착해 우연히 발견된 사과 같은 과일을 달고 상큼하게 먹었던 이들은 사과 같은 과일에 함유된 비타민 C를 섭취하게 되어 생존율이 높았고, 쾌감 체계가 미비해 사과 등의 과일을 달게 느끼지 않았고 먹지도 않았던 이들의 생존율은 낮았을 것이다. 비슷하게, 우연히 음악에 대한 쾌감 체계가 장착된 덕분에 음악에 대한 수신 편향을 가졌던 이들이 음악을 하며 잘 발달하여 생존율을 높였을 것이다. 즉, 발달상의 필요성에 노출되어 있었던 우리 뇌 속 청각피질 영역의 비타민은 바로 음악이었다. 사과와 음악이 이런 발달상의 필요성 때문에 존재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필요에 사과와 음악이 우연히 부응한 것으로 볼 수는 있다.

발달상의 필요와 그에 부응하는 음악 자극에 관한 좀 더 구체적인 실험은 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에드워드 창은 갓 태어난 쥐들에게 그리 크지 않은 백색소음을 지속해서 노출했는데, 쥐들의 청각피질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않았다. 이 쥐들에게 이번에는 음악처럼 잘 조직된 반복적인 소리를 들려주었더니 쥐들의 청각피질이 복구되었다! 창의 표현에 따르면 뇌는 계속 발달하기 위해 분명한 패턴이 있는 소리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Chang, E.F. 외, Environmental noise retards auditory cortical development, Science, 300/5618, 2003).

월렌스타인에 따르면 발생기 포유동물의 청각피질은 ‘경험 기대성 기관’으로, 적절한 배선, 즉 적절한 발생·발달을 위해 특정한 음향이 필요하다. 발생기, 즉 자궁 속 태아에게는 청각피질뿐 아니라 변연계, 상위의 피질·시냅스의 형성을 위해서도 적절한 청각 자극이 필요하다. 태아를 위한 적절한 청각 자극으로 월렌스타인은 자장가 특성을 가진 선율들을 거론했다(월렌스타인, 같은 책). 상술했듯이, 청소년 발달기, 즉 10대 후반까지도 청각 회로는 발달한다. 발달이 끝난 후에도 우리 뇌는 분명한 패턴이 있는 소리에 큰 영향을 받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에드워드 창이나 진 월렌스타인이 말한 분명한 패턴이 있는 소리의 사례일 수는 있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상에는 패턴이 있고 특이하며 지적이고 특히 수학적인 구조물일 수 있는 음악이 매우, 아니 너무 많다. 인터넷은 그런 음악을 공짜로 접하게 해준다!

지각 훈련을 통한 배움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모종의 정보와 지식을 알려주기도 한다. 캐나다 심리학자 대니얼 레비틴은 저서 『호모 무지쿠스』에서 노래 가사가 지식을 표현한다고 썼다. 레비틴에 따르면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하고 피해야 할 내용들을 가사로 한 노래들이 세계 각지에서 보편적으로 불린다. 음악은 지식을 전달하고 기억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ABCDEFG…”라는 가사로 불리는 ‘알파벳 송’은 미국 아이들뿐 아니라 한국 아이들이 로마자 알파벳을 암기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음악의 선율은 그것에 붙은 가사를 기억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데, 이것은 선율 자체가 “기억을 돕는(mnemonic)” 요소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환우들에게 음악의 이런 특성들은 분명한 도움이 된다.

‘Mnemonic’이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와 관련이 있다. 므네모시네와 주신인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 아홉 명을 ‘뮤즈(Muse)’라고 부르는데, 이 뮤즈는 음악과 시 등을 관장하는 아홉의 여신을 가리킨다. 아홉 자매는 기억을 통해 올림포스와 인간계의 음악과 시를 담당한다. 이 신화가 알려주는 것 중 하나는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음악이 기억을 돕는 어떤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는 점일 것이다.

음악에 치료 효과가 있고 지각 훈련 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음악의 새로운 기능에 관한 이야기다. 예술과 음악의 새로운 이익과 가치는 예술과 음악의 다양한 쓰임새와 기능의 다른 말일 수 있다. 음악의 여러 기능으로부터 사람들이 혜택받지 말아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 인구가 감소하고 지방이 소멸하며 대학에서 순수예술과 학문을 가르치는 학과들이 폐과되는 세상에서 예술의 새롭고 다양한 쓰임새와 기능을 소개하는 일은 특히 중요하다.

※ 김진호 -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립안동대학교 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매혹의 음색』(갈무리, 2014)과 『모차르트 호모 사피엔스』(갈무리, 2017) 등의 저서가 있다.

202412호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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