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를 향해 한 계단 한 계단 밟아나간다. 계단 높이가 낮아 수월할 때도 있지만 가파른 계단 앞에서는 두려움이 앞선다.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는 시간, 이를 인생 여정이라 부른다면 삶은 결국 고해(苦海)다. 예술 작품은 우리가 고해를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돕는다.
▎빈센트 반 고흐 <오베르의 계단> 18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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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지며 계절이 무겁게 내려앉는 지금, 우리 모두는 각자의 마음속에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일터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고민과 돌발적인 위기들, 가팔라지는 경제 상황 속에서 꿈꾸던 목표는 점점 더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계단은 목표로 가는 여정을 상징하지만, 그 여정이 언제나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 가끔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우리를 더욱 깊어지게 만든다.요즘 같은 시기에는 많은 이가 높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느낄지 모른다. 오르기만 하면 끝이 있을 것 같지만, 이 과정에서 고통을 견디며 위만 바라본다면 계단은 결코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오르는 순간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올라온 만큼 성장한 자신을 느끼는 것이 진정한 의미다. 결국, 계단은 끝에 닿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올라가는 매 순간 우리를 더 단단하고 넓게 만들어주는 존재다.
곁에 두는 이의 힘, 함께 걷는 심리적 동반자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작가 빈센트 반 고흐의 <오베르의 계단>에는 두 명씩 짝을 지어 길을 오르는 두 쌍이 보인다. 이들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길을 걸으며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불안정하게 휘어진 길과 올라야 할 계단은 쉽지 않은 여정을 상징하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에 이 길이 고립감 대신 동행의 따뜻함으로 채워진다. 그들은 힘들 때는 함께 쉬고, 지칠 때는 서로를 다독이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계단을 오르며 주고받을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숨을 고르며 “너무 힘들다, 여기서 포기하고 싶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다. 어떤 동료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해. 우리가 같이 가니까 괜찮아, 힘내!”라고 응원의 말을 건넬 것이다. 이런 대화들은 그 여정을 지탱하는 힘이 되고, 혼자라면 지쳤을 그 순간을 이겨내게 만든다.누구를 곁에 두는가에 따라 계단을 오르는 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길을 오르고 있지만, 그 길 위에서 곁을 내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조금 더 견디고, 조금 더 나아갈 힘을 얻는다. 이 그림 속 인물들처럼 나의 곁에는 어떤 사람이 함께하고 있을까. 지금 함께 오르는 이들이 나의 여정에 어떤 힘이 되는지 생각해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다른 이들의 곁에 서 있는지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반복되는 길 위에서 나를 지탱하는 힘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스허르 <오르내리기> 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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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출신의 판화가 M.C 에스허르의 작품 <오르내리기>에는 끝없는 계단 위를 걷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계단은 하나의 루프처럼 맴돌아, 이곳을 오르고 또 올라도 결코 정상에 닿을 수 없다. 걷고 있는 사람들은 이 끝없는 오르막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들 대부분은 무표정한 채로 마치 기계처럼 계속 걷고 있다. 이 그림 속 인물들은 마치 하나의 습관, 끝이 보이지 않는 무의미한 반복 속에 갇혀버린 모습이다. 이 반복은 어딘가에 다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않으며, 대신 억압적이고 고립된 느낌을 준다.살아가다 보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아무리 오르고 또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 계속해서 발전하는 기술들을 배워야 하고, 충분히 열심히 달려왔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은 변해가며 또 다른 성장을 요구한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외부의 보상이나 인정이 아닌, 내 안에 있는 힘과 믿음이다. 자신을 믿고, 내 걸음의 의미를 되새길 때, 우리는 끝이 없어 보이는 계단 위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또 이러한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감을 줄이려면 자신에게 작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걸음 한걸음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그 계단의 목표를 ‘정상’이 아닌, ‘나의 오늘을 조금 더 잘 걸어내는 것’으로 바꾸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오르는 이 길이 지금은 반복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속에서 내가 쌓아 올린 작은 성취들이 결국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믿는 것이다.가끔 오르는 계단이 끝이 없어 보일지라도,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어떻게 나아가고 있을까.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면서도, 나를 지탱하고 계속 움직이게 하는 그 힘은 무엇일까.
끝없는 계단 속 고립,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 <상상의 감옥> 1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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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감옥>은 18세기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판화가인 조반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의 작품이다. 피라네시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거대한 감옥을 판화로 표현했으며, 이 감옥은 끝없이 이어진 계단과 복잡하게 얽힌 구조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의 작품 속 계단과 복도는 미로처럼 꼬여 있어 출구를 알 수 없고, 감옥 속에 갇힌 인물들은 고립감과 혼란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듯한 느낌을 준다.<상상의 감옥>은 단순한 건축적 공간을 넘어,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상징한다. 끊임없이 이어진 계단은 마치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과 불안을 상징하며, 자신을 옭아매는 감정과의 싸움을 묘사한다. 피라네시의 이 이미지 속에서 관람자는 종종 고통스럽고 끝이 보이지 않는 혼란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고통과 혼란 속에 갇혀 있다고 느낄 때, 때로는 나를 믿는 힘마저 버거워질 수 있다. <상상의 감옥>에 등장하는 끝없는 계단과 복잡한 구조물들처럼, 삶의 문제들이 무한히 꼬여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에 놓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잠시 그 자리에서 멈추어야 한다. 쉼 없이 오르려 애쓰기보다 잠깐 머무르며, 내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것이 때로는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가끔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내 문제를 바라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짧은 여행을 하며 주변의 풍경을 바꾸고, 일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막혀 있던 마음이 환기되고 새로운 시야가 트인다. 또 스스로에게 너무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그렇게 자신에게 작은 목표만 허용하며 한 계단씩 천천히 오르다 보면, 그 끝이 어딘지 몰라도 지금의 고통에서 벗어나 조금 더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끝없는 계단 속에서 무력감을 느낄지라도, 한 걸음씩 내딛는 그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더 강해질 것이다.
다음 계단을 위한 달콤한 쉼표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 1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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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작가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 No.2>로, 사람의 형체가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을 동적인 선과 면으로 묘사했다. 뒤샹은 몸이 움직이는 순간순간의 형태를 여러 겹으로 중첩해, 계단을 내려오는 역동적인 과정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목적지에 도달한 후 그 길을 되돌아 내려오며 편안해지는 순간과 그간의 여정을 되새기는 모습을 보여준다.목표에 도달한 후,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과정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다. 그동안 겪었던 고통과 노력이 마치 뒤돌아보며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내려오면서는 그동안의 노력과 성취를 잠시 달콤하게 음미하고, 편안하게 내려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목표를 달성한 후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또 다른 도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일을 쉬지 않는 한, 또다시 새로운 계단이 기다리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중요한 것은 다음 계단에 오를 준비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 재충전의 시간이다. 산을 넘는 등반가들이 오랜 등반을 마치고 돌아온 후, 장비를 점검하고 근육을 쉬게 하듯, 마음 근육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동안 고단했던 나의 마음과 몸을 재정비하며, 스스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성취 후의 휴식은 다음 목표로 가기 위한 준비이기도 하지만, 그 순간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앞으로 또 오를 계단이 있다는 생각에 지금의 휴식마저 스트레스로 여길 필요는 없다. 현재의 고요한 순간을 온전히 누리며, 새로운 도전을 위한 에너지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쉼이다.
계단을 오르며 얻은 것들삶은 오르내리는 계단의 연속이다. 올라가는 길에서는 고통과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서는 힘겨웠던 순간을 돌아보며 성취의 달콤함을 맛보고, 다음 여정을 위한 쉼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또 다른 계단 앞에 서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딜 힘을 차곡차곡 쌓아간다.지금 나는 계단의 어디에 서 있을까. 내가 오를 계단은 얼마나 높고, 또 나는 그 길을 누구와 함께 가게 될까. 그 여정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할 것이며, 또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까.
※ 김소울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에서 미술치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미술치료전공 겸임교수이자 플로리다마음연구소 대표다. 『치유미술관』 외 19권의 저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