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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살롱 박병진의 위스키 기행(22) 외유내강의 미학, 맥켈란 이야기 

 

완만하고 둥근 곡선의 언덕이 이어져 부드럽고 우아하지만, 그 속에서 최첨단 설비와 멋진 컬렉션으로 과거의 유산을 승계하고 있는 맥켈란 증류소. 외유내강의 미학을 찾아 또다시 스페이사이드로 떠났다.

▎완만하고 둥근 곡선의 언덕이 이어져 부드러움과 조화를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아주 단단하고 대단한 것들을 품고 있는 유니크한 외관의 맥켈란 증류소. 긴 언덕에 생산공정, 홍보센터, 바와 숍이 이어져 있다.
어느 순간부터 이 행성에서는 맥켈란이라는 위스키가 싱글 몰트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다. 사실 싱글 몰트위스키라는 마켓 카테고리 자체를 만들어내고 오랜 기간 외롭게 그 시장을 지켜낸 글렌피딕 위스키 입장에서 보면 이 현상이 좀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역사도 생산량도 판매도 1위가 아닌 맥켈란이 왜 사람들 사이에서 싱글 몰트의 대명사라는 컨센서스가 생겼는지 그 배경에는 무척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맥켈란은 스카치위스키 중에서도 몇 안 되게 그 역사와 전통을 인정받아 정관사를 붙인 ‘The Macallan’으로 불릴 만큼 존재감이 확실하다. 그리고 스카치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면서 같은 숙성 연수의 다른 위스키에 비해서 훨씬 비싼 가격이 매겨져 있다. 아마도 그들은 맛과 품질 때문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도대체 그 맛과 품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런 호기심을 품고서 맥켈란 증류소를 향해 긴 여정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런던과 에든버러를 거쳐 스페이사이드 여행의 시발점인 엘긴까지, 또 그곳에서 맥켈란까지 위스키의 본류를 찾아가는 자체는 또 다른 나의 즐거움이다. 내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부딪혀가는 것 자체로 늘 행복하다. 사실 유한한 인생에서 그 이상이 더 필요할까?

2018년 초봄의 어느 날, 나는 일찌감치 스페이사이드의 다른 증류소를 한 군데 돌아본 후 숙소인 크레이겔라키 호텔로 돌아왔다. 마침 봄비도 오전부터 촉촉히 내려 정말 스코틀랜드다운, 딱 적당한 날씨였다. 그래서 이 한가로운 오후에 천장이 높은 하일랜드풍 로비 한쪽에 있는 서가에서 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죽 장정의 책들과 지나간 여행자들이 두고 간 페이퍼백을 뒤지고 있었다. 나름의 호사를 누리려는 그때, 왁자지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함께 덩치 큰 남자들이 로비로 들이닥쳤다. 비를 맞아 축축해진 거구의 사내들이 로비를 꽉 채운 듯한 느낌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러시아 사람들이었고, 이제 막 준공된 맥켈란 증류소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한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준공되지 않아 방문자 센터도 아직 오픈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러시아식으로 방법을 찾아 비공식적으로 증류소 투어를 했고, 맥켈란 위스키도 몇 병 구입해서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렇다. 세상에는 그곳이 어디든, 어떤 상황이든 ‘ 시’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없다. 하물며 여행자가 여행지에서 돈을 쓰는 일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이런, 맙소사! 나는 기껏 이곳 스페이사이드까지 와서 왜 맥켈란에 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아무리 증류소가 아직 준공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러시아 친구들처럼 찾아보면 방법은 충분히 있었을 텐데, 나는 아예 맥켈란 증류소를 방문지에서 완전히 제외하고 여행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아무리 곤란한 일이라도 열심히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 이렇게 인생살이의 팁을 또 하나 배웠다.

호텔에서 맥켈란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이지만, 이미 다른 일정들로 꽉 채운 탓에 확실한 러시안 커넥션도 없는 내가 불확실한 일정에 베팅을 할 여유는 도저히 낼 수 없었다. 아쉽지만 맥켈란 증류소 방문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저 러시아 친구들은 제대로 가동되는 증류소를 보고 온 것이 아니라, 먼지 풀풀 날리며 공사 중인 증류소에 가서 제대로 사진도 못 찍고 중국제 싸구려 기념품들만 잔뜩 샀을 거라고 자기 위안을 하면서 말이다. 내가 먹지 못하는 포도는 언제나 신맛일 테니까.

경주의 추억


▎증류소 안에 있는 럭셔리한 바.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과 바의 기물들을 감상하며 멋진 소파에서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공교롭게도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세 번의 수학여행을 모두 경주로 갔다. 수학여행 운이 없는 나는 첨성대, 불국사 등 경주의 랜드마크들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본 셈이라, 성인이 되어서는 굳이 경주를 찾아간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도 야트막한 봉우리처럼 줄지어 서 있던 첨성대 인근에 있는 고분들의 기억은 생생하다. 1980년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여느 피 끓는 고등학생들처럼 나도 그때는 몰래 여관을 빠져나가 첨성대 근처의 황남동 일대에서 소소한 일탈을 한 기억도 있다. 그리고 그 일탈은 1980년대의 양주였던 캡틴큐와 조금 관계가 있었다. 사실 그때가 아니라면 그런 치기 어린 행동을 언제 다시 해볼 수 있을까? 버나드 쇼는 젊음은 젊은이들에게 주기엔 너무 아깝다고 말했다. 나도 정말 아깝게 젊음을 허비해버리긴 했지만, 그랬기에 그 젊음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을 정말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역설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제 인생을 웬만큼 살아보니 그 시절이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느끼지만, 어차피 젊은이들은 그때의 나처럼 이런 말에 무감각할 터이니 괜한 말로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다. 비슷한 말로는 영국인들이 프랑스를 부러워하며 만들어낸, ‘프랑스 땅은 프랑스인들에게 주기엔 아깝다’는 말이 있다. 그 땅의 가치는 오직 자신들만이 알아볼 수 있다는 오만한 말이니 이것도 그냥 묻어두는 게 낫겠다. 인생의 해답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두 번의 도전


▎스몰 포트 스틸을 사용해 더 높은 알코올 도수와 더 집중된 풍미를 위스키에 추가하는 최첨단 설비를 자랑하는 증류소 내부.
아무튼 수학여행을 다녀온 지 40년 가까이 지난 어느 여름날 오후, 나는 그 줄지어 선 경주 왕릉의 데자뷔를 이곳 아벨라워에서 다시 보았다. 바로 러시안 커넥션의 이듬해, 나는 이 맥켈란 때문에 다시 찾아온 이곳에서 그 데자뷔를 보게 된 것이다. 완만하고 둥근 곡선의 언덕이 이어져 부드러움과 조화를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아주 단단하고 대단한 것들을 품고 있어 보통내기가 아닌 듯 보이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마치 그 시절 자신감은 넘치지만 아직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미숙하여 부족했던 나에게 ‘그래, 정답은 바로 이런 것이야, 외유내강 봤지?’라며 그 시절의 나에게 한마디 조언을 툭 던지듯 다가온 느낌의 경주 왕릉처럼, 지금의 나는 이 외유내강의 증류소에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자신감 넘치던 십 대 시절의 나를 갑작스레 소환해버린 맥켈란 증류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위스키를 만들어내는 이곳에서 본 곡선의 미학은 그만 나를 매료해버렸다. 내 머릿속 그 시절 그 곡선의 언덕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미장센으로 말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와 그 미장센 앞에 선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았다. 한참이 지난 후 추억을 한 조각이라도 더 담아가려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아마도 과거의 한때로 돌아가 그때 꿈을 꾸었던 나의 자화상을 열심히 찍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속에는 어마어마한 것들을 품고 있지만 겉으로는 우아한 곡선이 매력적인 맥켈란 증류소는 상상 이상이었다. 증류소 투어는 뒷전으로 미루고 한참을 그 주변의 잊을 수 없는 풍광을 사진으로 남기며 배회하고 있었다. 사실 숙성 창고를 비롯한 증류소는 화재 위험이 많은 곳이라 지정된 견학 장소 이외에는 거의 모든 곳이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된다. 그런데 이 경주 왕릉의 미장센에 취해 나도 모르게 방문자 동선을 이탈했고, 맥켈란 또한 증류소가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안이 완벽하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증류소를 배회하며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증류소의 시큐리티가 다가와서 어디서 온 누구이며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물었다. 하지만 이곳은 위스키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는 스코틀랜드가 아닌가? 그래서 대략 위의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무척 좋아하며, 스코틀랜드를 충분히 즐기는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제 충분히 외관은 봤으니 증류소 내부도 보라고 권한다. 당연히 그것 때문에 온 것이라 흔쾌히 대답하고,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일정으로 다시 증류소 투어에 참가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증류소의 반대편 언덕에서 그날 받을 감동의 90%는 다 써버렸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쓴 증류소의 최첨단 설비와 멋진 컬렉션을 그저 덤덤히 바라보기만 했다.


▎증류소에 가기 전 더프타운 시계탑 바로 앞에 있는 가장 번화가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가볍게 식사를 했다.


투어를 마치고 증류소 안에 있는, 보기에도 무척 럭셔리한 바로 들어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과 바의 기물들도 훌륭했고, 멋진 소파에 푹 빠져 그동안 느낀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외유내강의 위스키를 음미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뇌리엔 아까 반대편 언덕에서 바라본 신라 왕릉의 기억이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그동안은 남성적으로 떡 벌어진 어깨와 각 잡힌 병 모양 때문에 맥켈란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외강내강’이었고, ‘셰리폭탄’이라는 별명답게 강하고 진한 맛이 그 확신을 더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맥켈란의 또 다른 품성들을 알아냈기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리고 새롭게 최첨단 증류소를 지어 적시에 과거의 유산을 승계하면서 멋지게 변신에 성공한 맥켈란을 축하한다. 초심을 잊지 말고 계속해서 외유내강의 위스키를 잘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전 세계적인 위스키 붐의 초기, 맥켈란은 생산 공장을 새로이 짓고 더 나은 미래를 대비하기로 결정한다. 이 적시의 의사결정은 돌이켜보면 대단하다. 당장의 수익을 포기하고 더 큰 미래를 준비하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그래서 인생은 타이밍이니 그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현재를 즐기자. Carpe Diem!


▎세계 최고의 싱글 몰트위스키 중 하나로 명성을 쌓아온 스카치의 ‘롤스로이스’ 맥켈란. ‘셰리폭탄’이라는 별명답게 강하고 진한 맛이 특징이다.
역시 타이밍이다. 인생이든, 사랑이든, 사업이든!

※ 박병진 - 30여 년간 IBM, SAP, SK 등 국내 및 외국계 기업,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망라하여 임원 및 CEO로서 대한민국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에 기여해왔다. 최근에는 포브스를 포함한 각종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는 위스키 칼럼니스트이자 동아일보사의 최고위과정인 ‘광화문살롱’의 주임 교수로서 위스키를 주제로 MZ세대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소통의 지혜를 나누고 있다. 더불어, 요리서적 전문 출판사인 ‘북스 레브쿠헨’의 대표로서 이 시대의 대표적인 N잡러이다.

202412호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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