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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으로 본 세상④ | 한반도의 ‘원죄’ 분단과 전쟁 

영원한 트라우마 한국전쟁부터 외계인과 전쟁까지…전쟁의 공포는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시작된다 

김성훈 만화평론가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 있다면,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의 한 장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우리의 현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다른 나라에서는 다룰 수 없는 소재가 되어 문화 콘텐트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해방공간에서 경험한 이념 대립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과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 남북한 대치상황까지, 모두 슬픈 역사와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또한 그런 만큼 우리는 할 말이 많은 감정과 상처들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웹툰 역시 그러한 면면들을 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니, 이번에 만나볼 작품들은 이름하여 ‘남과 북 그리고 우리의 현실’쯤 되겠다.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 - 전쟁 앞에 엇갈린 형제의 운명

<인천상륙작전>은 해방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방공간의 혼란이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어떻게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역사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해준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주인공 상곤과 상배 두 형제의 대비되는 생존방식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동생 상배는 일제시대에는 친일파 똘마니 노릇을 하다가 광복이 되자마자 애국청년으로 재빨리 옷을 갈아입는다. 반면, 형 상곤은 어릴 적부터 공부를 잘해 집안을 일으켜 세우리라 주변의 기대를 모았지만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 특히, 상곤이 권력에 빌붙어 온갖 악행을 일삼는 상배에게 비난과 걱정을 동시에 하면서도 정작 동생인 상배에 기대어 생계를 이어나가는 모습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그러한 가정사는 해방공간의 혼란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소시민의 삶을 고스란히 그려내며 현실성을 담보해내고 있다. 이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한편으로 서로를 걱정하던 두 형제에게 전쟁이 어떤 상처를 남기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미 38선에서는 소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전면전에 대한 두려움이 희석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포성이 저잣거리로 전해지고 눈치 빠른 이들부터 하나둘씩 피란길에 오르면서 전쟁이 주는 공포감은 모든 이의 삶 속에 스며들게 된다. 한편, 피란길에 나서기에 앞서 볼일 때문에 김포를 지나던 상배는 폭격으로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

그리고 어렵사리 상곤을 만나 “이 전쟁이라는 게 말이오, 진짜 무서운 게 감정이 안 느껴져”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살인마저 서슴지 않았던 그가, 스스로 악귀라고 칭하던 그가 “비행기가 슥 지나가면서 쇳덩이 몇 개 툭툭툭 떨어뜨렸는데… 사람이 죽어!”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전쟁의 공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 흘리는 상배의 눈물 속에는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말살시키는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하지만, 두 형제에게 닥친 비극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동생 상배와 아들 철구, 그리고 아내와 함께 피란길에 올랐던 상곤은 한강대교 폭파와 함께 실종되고 만다. 상배가 강을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는데, 나중에 상곤은 두 다리를 잃은 모습으로 가족들 앞에 나타난다.

얼굴의 반쪽은 화상으로 일그러진 채 아내의 등을 빌려야만 움직일 수 있는 그의 모습은 전쟁이 전하는 참상 그대로다. 마당에 고여 있는 물을 쳐다보며 움직이지도 못한 채 “저거만 있으면 죽을 수 있을 텐데”라며 울분을 토해내는 모습에 이르러서는 독자들에게 깊은 상실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죽이는 것마저 주저함이 없던 상배의 심리적 변화가 바다의 작은 풍랑과 같은 충격을 준다면, 다른 이들에게 죄도 짓지 않고 가족을 살리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왔던 상곤의 처참한 몰골은 우리에게 쓰나미와 같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충격이 한순간에 고요하게 되는 것은 상곤의 아들 철구에 의해서다. 불구가 돼 돌아온 아버지의 모습에 놀랄 만도 하건만, 어린 철구는 상곤에게 “돌아와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건넨다.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돌아온 아버지이지만, 살아 와줘서 고맙다는 아들의 한마디는 이 땅에서 전쟁이 절대로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알려준다.


1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남파간첩을 주인공으로 하여 남북분단 현실을 드러낸다. 2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한 주인공의 동네바보 역할은 만화적 재미에 충실하다. 3 남파된 간첩을 죽이기 위한 또 다른 간첩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Hun의 <은밀하게 위대하게> - ‘ 간첩’에 떨지 않는 사회의 유연성 엿보여

남북한이 대치하는 현실에서 전쟁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위협적인 단어가 ‘간첩’일 것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언제부턴가 대중적인 스토리텔링의 주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 특히 영화계에서는 <간첩 리철진>으로부터 시작하여 <쉬리> <이중간첩> <의형제> 그리고 <용의자>에 이르기까지 단골메뉴가 된지 오래다. ‘이제 웹툰에서도 나올 만한데’라고 생각할 즈음 정말 만화가 나왔는데,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그것이다.

작품에서는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남한에 침투한 ‘원류환’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그를 통해 남북한 대치상태로부터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캐릭터를 완성시킨다. 바로 ‘간첩’이다. 그런데 이 캐릭터, 어쩐지 우리가 선입견으로 알고 있는 간첩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풀빛 체육복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어설픈 걸음걸이로 골목을 배회한다. 동네 꼬마들로부터 놀림당하고 땅바닥에 떨어진 소시지를 주워 먹는 모습이 꼭 바보 같다.

이처럼 ‘남파간첩’이라는 다소 ‘위험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으면서도 이 작품이 독자에게 끊임없이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 원류환의 설정에 있다. 달동네에 스며든 그는 상부로부터 특별한 지시가 내려질 때까지 자신의 신변을 숨기기 위해 ‘동네바보’를 자처한다. 계단을 구르고, 그네에서 떨어지고, 비 오는 저녁에 노상방뇨를 일삼는 모습을 보여주며 동네 사람들에게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간첩이 동네바보라니! 발상의 전환으로 따지면 이 만한 것도 없으리라. 요컨대, 이 만화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간첩’에 대한 이미지를 180도 바꿈으로써 전혀 예기치 못한 주인공을 탄생시켜 ‘만화 같은’재미에 성공한 셈이다. 그런 바보 역할로 인해 다시 간첩 ‘원류환’으로 복귀했을 때는 그 이미지의 반전효과도 배가된다. 누구보다도 민첩하며, 누구보다도 강인한 그의 모습은 우리가 짐작하는 ‘위험한 인물’ 그대로다.

간첩에 대한 파격적인 묘사로 웃음과 반전을 획득한 작품은 곧이어 또 다른 간첩들을 등장시킴으로써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북한 고위간부의 아들인 ‘해랑’, 원류환을 우상으로 여겨 자신 역시 남파되기를 기다렸던 ‘해진’ 등의 등장으로 사건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남파된 주요 간첩들에게 자결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이를 거부한 주인공들을 처단하려 고위급 간첩들이 남파되기에 이른다. 남파될 때는 ‘혁명전사’였지만 이제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아 들개가 된 주인공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알다시피 이 작품은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2013년에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최근 인기몰이를 하는 유명배우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간첩’이라는 소재가 이처럼 웃음과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간첩’ 정도에는 떨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유연하면서도 탄탄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1 <스틸레인>은 김정일 사후의 일을 픽션으로 구성하고 있다. 2 북한 내 강경파를 제거하기 위해 미국 전투기는 폭탄, 곧 ‘스틸레인’을 퍼붓는다.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3 데프콘1이 발령되고, 휴가나온 모든 군사는 원대 복귀해야 한다. 기봉이의 엄마는 기봉이의 안위가 걱정이다.



양우석 & 제피가루의 <스틸레인> - 한반도에 드리우는 전쟁의 공포

이 작품은 ‘2013년에 김정일이 사망하고 난 뒤의 남북관계’를 주요한 설정으로 삼는다. 2011년에 발표되었으니까 작품이 등장했던 당시로서는 미래의 남북관계를 미리 그려보는 셈인데, 작품이 발표되고 나서 얼마 뒤 실제로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핵심 사건은 이렇다. 김정일 사후 북한 내 온건파는 전쟁도 불사하는 강경파를 제거하기 위해 미국에 도움을 청한다. 요청을 받은 미국 국방부는 한국 대통령에게 동의를 구하는데, 대통령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작전이 펼쳐진다.

이 작전에 쓰일 폭탄을 가리켜 ‘스틸레인(Steel Rain)’이라고 부른다. 북한 군부 내 강경파를 제거하는 무기의 이름을 작품 제목으로 삼은 것인데, 이를 통해 북한에서 새로운 정권이 창출되는 계기를 의미하는 셈이기도 하다. 헌데, 정작 폭격을 당한 이들이 강경파가 아니라 실제로는 온건파 인물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그리고 거짓정보를 흘린 인물, 제임스백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인천상륙작전>이 ‘역사’에 대해 정통적인 드라마 구성을 보여주고,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바보로 설정된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개그적 감성을 뽐냈다면, 이 작품 <스틸레인>은 이처럼 뭔가 거대한 음모를 가진 듯한 도입부를 통해 스릴러 분위기를 풍긴다.

한편, 데프콘1이 발동되고 서울 시내의 거리에 탱크가 지나다니면서 전운이 감돌며 스릴러는 공포로 바뀐다. 당연히 전 군에 비상이 걸렸으니, 휴가 나온 군인은 모두 자대로 돌아가야 하는 수순이다. 이 때 등장한 한 명의 엑스트라가 눈길을 끈다. 그의 이름은 기봉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휴가를 즐기던 그는 TV 뉴스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복귀를 준비한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에 들러 옷을 갈아입은 뒤 현관문을 나선다.

그리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한마디가 작품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을 일순 안타까움으로 바꾼다. “엄마는 무슨 일 있어도 절대 어디 안가고 집에 꼭 있을 테니까….” 집으로 꼭 돌아오라는 한마디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갈 수밖에 없는 평범한 소시민의 염려와 안부를 대신해준다. “어…엄마는 별걱정을 다해…”라며 고함을 치며 집을 나선 기봉이는 과연 살아서 귀가할 수 있을까.


하일권의 <방과 후 전쟁활동> - 경험해보지 못한, 있을 법도 한 새로운 전쟁

“현 군 병력으로는 방어에 한계가 있기에 예비군 병력을 늘리기로 결정, 금일 09시 부로 전국의 모든 대학교와 고등학교는 전부 예비군 대대로 편제됩니다.”

<방과 후 전쟁활동>은 이처럼 다소 황당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품 배경이 되는 ‘성동고등학교’는 ‘성동고등학교대대’로 바뀌고, 각 학년은 중대, 학급은 소대로 편성된다. 교탁 앞에는 어느새 선생님 대신 중위 계급장을 붙인 소대장이 서 있다. 반장은 아무것도 모른 채 선임훈련병이 되고 나니, 바야흐로 전시체제가 된 것이다. 헌데, 이처럼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 역시 좀 뜬금없다.

주적(主敵)이 하늘에서 떨어진 ‘미확인구체’라는 것. 외계 세포체로 추정되는 이 적은 어떤 이유로 지구에 온 건지 알 수 없으나 때에 따라 이동하며 인간을 공격하기도 한다. 적의 형체는 명확한데, 그 실체는 알 수 없으니 어쩌면 이러한 상황 자체가 공포다. 사실, 잊을만하면 ‘도발’ 상황에 대한 뉴스를 접하는 우리로서는 공격성향을 지닌 외계세포체가 그렇게 생소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작품은 전쟁을 소재로 다룬 만화지만 남북관계가 아닌 ‘군대’라는 측면에 집중해서 볼 때 그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신체 건장한 남성이라면 모두 다녀왔을 법한 군대 이야기가 깨알처럼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군대가 고등학생으로 이뤄져 있지만, 학생예비군을 편성해 훈련을 받는 과정 자체는 매우 리얼하다.

“군대는 연대책임이고 너희는 이제 한 목숨이다”를 외치는 소대장의 모습과 선착순 기합을 받는 모습에서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이라면 그 사실성에 소름이 끼칠지도 모르겠다. 혹은 책상에 앉아만 있던 아이들이 토가 나오도록 연병장을 도는 모습을 보며 신병시절 새벽구보를 떠올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 작품에서 훈련받는 주인공들은 천하태평이다. 연이은 선착순에도 아직 웃음기가 가시질 않을 만큼 고등학교 3학년의 발랄함이 있기에 소대편성 후 하루 동안의 경험이 그저 3박4일짜리 극기훈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상황이 급변하는 것은 연대책임으로 인해 다툼이 일어나고, 다툼 중에 외계생물체를 건드려 같은 반 친구가 자신들의 눈앞에서 죽게 되면서다.

이제 3학년 2반, 아니 3중대 2소대 소대원들에게는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그저 담력을 기르기 위한 체험활동이 아니라 실제 전쟁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와 닿는다. 그리고 ‘방과 후 전쟁활동’은 더 이상 동아리활동 같은 취미생활이 아니라 생존을 담보로 한 훈련임을 깨닫게 된다. 등장인물 각자에게 인식표가 나눠지고, 교실 칠판에 수학공식이 아닌 죽음을 맞이한 학생들의 사진이 붙여질 즈음 우리는 다음 희생자가 또 누가될지 불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혹, 연병장이 아닌 운동장에서 제식훈련과 총검술 그리고 집총각개훈련 등을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이 작품을 보며 학창시절의 ‘교련’ 과목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모양만 흉내 낸 목총이 아니라 실제 소총이 지급되고, 교실이 내무반으로 바뀐 상황은 웃으며 교련 수업을 듣던 그 시절의 느낌과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 이유로 이 작품은 학생은 공부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도 알게 해 줄 것이니, 또한 방과 후에 해야 할 것은 전쟁활동이 아닌 동아리활동일 때 학생으로서 행복하지 않겠는가.

남북을 갈라놓은 38선의 의미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에 있다. 그래서 많은 이는 휴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를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휴전에 대한 해석이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를 전쟁을 대비’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보다 ‘전쟁 자체가 없는 종전’이 되는 것을 전제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 아닐까. 폭력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 인류에게 가장 큰 폭력인 전쟁은 응당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201406호 (201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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