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규 의원 ‘대타’로 나서 원내대표 압도적 당선, ‘원만한 성품의 경제통’은 장점범야권 192석 앞에서 운신의 폭 좁아… 총선 패배 후 여당 단일대오 유지가 과제
▎2024년 5월 9일 국민의힘은 원내대표로 추경호 의원을 선택했다. ‘TK 친윤’이 여전히 국민의힘 주류임을 확인시키는 결과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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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추경호(64) 의원이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당초 유력했던 ‘찐윤’ 이철규 의원에서 ‘친윤’으로 선회한 것이다. 3선 의원(대구 달성군)인 추 원내대표는 1982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에 들어간 이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재부 제1차관, 국무조정실 실장(장관급), 기재부 장관(부총리)을 역임한 경제통이다. 정계에는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을 통해 입문했다.
험지 취급 받은 여당 원내대표 자리국민의힘이 ‘찐윤’에서 ‘친윤’, ‘경제통’으로 선회한 이유는 구인난 때문이다. 총선 패배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철규 의원이 출마하지 않으면서 선뜻 나서는 이가 없자, 국민의힘은 원래 예정됐던 5월 3일에서 9일로 원내대표 투표 일정을 늦췄다. 후보 등록 마감 전날인 4월 30일까지 단 한 명도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9일 치러진 원내대표 경선 투표는 4월 총선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102명의 참여로 이뤄졌다. 여기서 추 의원이 절반을 훌쩍 넘긴 70표(68.6%)를 얻어 결선 투표 없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추 원내대표는 21표를 얻은 이종배 의원(충북 충주)과 11표를 얻은 송석준 의원(경기 이천)에 큰 표 차이로 앞섰다. 그 배경에는 용산의 암묵적인 승인이 작동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추 원내대표는 옅은 의미에서 ‘친윤’ 범위에 포함된다. 윤재옥 전 원내대표에 이어 또 TK냐는 부담감이 있었겠지만, 국민의힘 지역구 90석 중 59석이 영남 출신인지라 현실적인 대표성을 띠고 있다. 경제통이라는 이미지도 필요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TK 성골 출신인 추 원내대표는 튀지 않는 성품, 딱히 약점이 없는 이력, 야당과도 말이 통하는 소통 능력 등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거부감을 희석시켰다.하지만 아무도 선뜻 출마하지 않은 상황에서 짐작되듯 추 원내대표의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수락 연설에서부터 그런 고뇌가 읽혔다. “108석이 똘똘 뭉쳐서 범야권 192석에 기죽지 말고 맞서고 나아가자”며 복잡한 심경을 에둘러 표현했다. 애당초 추 원내대표는 소수파 여당의 원내 사령탑 후보로 거론되지도 않았다. 그가 원내대표 출마를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은 국민의힘이 투표 일정을 한 차례 늦추기 직전인 4월 말 무렵이었다.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이철규 의원이 막판 불출마하면서 국민의힘 원내대표 자리는 무주공산이 됐다.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후보 등록 절차가 마무리된 직후 이 의원은 “당초부터 이번 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여당 원내대표 자리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선뜻 나서지 않게 된 이유는 자명하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통과를 예고한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을 막아내기 쉽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추 원내대표뿐 아니라 그 누구도 개인기로 민주당의 압도적 의석수를 돌파하기란 어려운 형국이다.실제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의 한 당선인은 “추 원내대표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당이 108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현실을 지적한 말이다. 이 인사는 “민주당과 협상을 하기 위해선 우리가 제시할 것이 있어야 하는데 제시할 수 있는 당근이 안 보인다”라고 덧붙였다.추 원내대표의 최대 과제는 국민의힘 108석의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칫 여당 내 이탈표가 발생할 경우, 채 상병 특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수사를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이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채 상병 특검의 경우, 개혁신당까지 포함한 범야권 192석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추 원내대표에게는 국민의힘 108석을 결속시켜야 할 책임이 막중하다.과거 추 원내대표와 기재부에서 10여 년간 호흡을 맞췄던 인사는 “그런 점에서 화합에 능한 추 원내대표가 최적의 카드”라고 평했다. 그는 “같이 일했을 때, 추 원내대표는 후배가 실수해도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추 원내대표는 꾸짖는 대신 “내가 대신 처리할게”라는 말로 훈계를 대신했다고 한다. 이 인사는 “추 원내대표는 분노하면 오히려 말수를 줄이고 침묵을 지키는 스타일”이라고 부연했다.
‘허니문’ 없이 시작된 민주당과의 신경전
▎2024년 5월 15일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한 추경호(오른쪽)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둘은 전 국민 25만원 지급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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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총리 시절 추 원내대표가 보고하러 들어온 공무원들과 셀카를 찍었던 에피소드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직원들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싶어서”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24년 1월, 기재부 공무원 투표에서 추 부총리는 ‘닮고 싶은 상사’로 뽑힐 정도로 평판이 좋았다. 이런 추 원내대표가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냈던 만큼 용산 대통령실과 소통이 원활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놓고 ‘찐윤’까지는 아니어도 ‘친윤’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추 원내대표가 공개적으로 대통령실에 ‘No’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우세하지만, 그렇다고 ‘Yes맨’으로만 처신할지는 단정할 수 없다. 추 원내대표는 보통 3인 이상 모인 사석에선 가급적 “No”라고 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듣는 상대방이 무안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둘이 있을 때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중히, 직선적으로 전달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추 원내대표의 이 같은 면모는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와의 상견례에서도 드러났다. 박 원내대표가 지난 5월 13일 ‘채 상병 특검’과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지급’을 언급하자, 추 원내대표는 ”구체적 사안에 대해 갑자기 들어오고 제가 혹 견해를 이야기하면 우리가 더 이상 대화를 못 하지 않겠느냐”고 응수했다.여의도에선 대통령실이 추 원내대표 선출을 비토하지 않은 데는 경제 전문가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본다. 추 원내대표가 단호하고 일관되게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총선 공약인 전 국민 대상 25만원 지급을 반대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지금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통이 아니라 정치통”이라는 시선도 있다. 의회 다수 의석을 점유한 민주당과 협상할 수 있는 정무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임기가 1년에 불과한 추 원내대표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지극히 협소하다는 것이 한계라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어떤 정책이든 무력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일각에선 “대통령실이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지급을 반대해도 추 원내대표가 막판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건희 여사 특검과 채 상병 특검의 향방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과 협상에 나서야 하는 추 원내대표가 특검을 저지하기 위해 민생회복지원금 카드를 받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일단 민주당의 거센 공세를 막아내며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부터 숙제다.
총선 패배에도 ‘친윤’ 일색이 된 국민의힘 비대위
▎2024년 5월 13일 윤석열(왼쪽) 대통령이 한남동 관저에서 열린 만찬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초청했다. 추 원내대표는 윤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였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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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으로 5선인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선출된 것은 추 원내대표에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강성으로 분류되는 추미애 민주당 의원보다 우 의원을 상대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합리적 인사로 통하는 우 의원은 5월 13일 6선의 추 의원을 누르고 22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실제 우 의원은 국회의장 당선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여야 협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국회의장은 단순한 사회자가 아니다”라고 전제하면서도 “올바른 일이 있으면 여야 간의 협의를 중시한다”고 밝혀 추미애 의원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드러냈다.민주당이 예상을 깨고 우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한 데 대해선 민주당의 ‘책임 분산’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강성 추미애 의원이 국회의장을 맡을 경우, 윤석열 정부 하반기 국정 책임이 자칫 민주당으로 쏠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야권과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우 의원이 의장을 맡을 경우, 민주당 입장에선 부담을 상당부분 덜 수 있다.당초 추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된 이유는 김진표 국회의장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 민주당 내에선 김 의장이 ‘협치’의 이름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묵살시킨다며 불만을 표시해왔다. 우원식 의원도 이를 의식한 듯, 국회의장 당선 직후 대통령실에 견제구를 날렸다. 우 의원은 “국민에게 꼭 필요한 법안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헌법상 국회 입법권을 부정,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통령의 거부권은 아주 제한적으로, 국민들이 동의할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채 상병 특검, 김건희 여사 특검을 의식한 듯 “국민의 동의를 얻어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국회법 절차에 따라 하겠다”고 역설했다. 이렇게 민주당이 대통령 거부권을 제한하려는 데 대해 추 원내대표는 “대통령 거부권은 삼권 분립 원칙의 핵심 중 핵심”이라고 맞받았다.총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이 변화보다 안정을 택한 결과가 추 원내대표의 등판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황우여 비대위원장과 추 원내대표, 정점식 정책위의장, 유상범 의원, 엄태영 의원, 전주혜 전 의원, 김용태 의원 등 비대위원 7인 중 황 위원장과 김용태 의원을 제외한 5명이 ‘친윤’으로 짜여졌다. 당대표 선출 시점까지 국민의힘의 혁신이 더 멀어졌다는 비판도 비등하다.- 김영준·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