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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 | 정치 포커스] ‘호랑이 굴’에서 뛰쳐나온 안철수의 도박 

“영호남 통합신당 뜨면 양당구도 붕괴된다” 

정운찬·유승민·김부겸·박영선 등과 YS 차남 현철 씨도 합류 기대… 성찰적 진보, 합리적 보수 아우르는 ‘탈(脫)이념 중도정당’ 모색할 듯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선언 다음날인 12월 14일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첫 공식일정으로 ‘효사랑 나눔축제’가 열린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내 경로당을 찾았다. 어르신들이 안 전 대표를 보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장고(長考)하던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칼을 빼들었다. 선택은 탈당이었다. 2014년 3월 26일 자신이 이끌던 새정치연합과 통합민주당의 합당을 통해 탄생시킨 새정연에 몸담은 지 628일 만에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 제안에 혁신전당대회로 맞불을 놓은 안 전 대표는 끝내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자 독자노선을 택했다. 신당 창당에 나선 안 전 대표가 당내 비주류, 당 밖의 천정배 무소속 의원은 물론이고 영남 인사들까지 품는 보다 ‘큰 판’을 구상한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 야당의 주도세력은 쭉 친노·운동권이었다. 그들이 주도해서 치른 선거 중 이긴 적은 딱 한 번, 2010년 지방선거뿐이다. 당 주도세력의 교체 없이는 정권교체도 없다. 이대로가면 문재인은 ‘제2의 이회창’이 되고 말 것이다.”

안철수 전 대표의 핵심측근을 만난 것은 12월 10일, 안 전 대표가 탈당을 선언하기 3일 전이었다. 이 측근의 열변(熱辯)이 이어진다. “당 주도세력을 바꾸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혁신전당대회를 통한 것이고, 또 하나는 신당을 만들어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지금의 새정연처럼 127석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둘로 나뉘더라도 제대로 역할을 하는 게 낫다.”

새정연의 ‘공동창업주’인 안 전 대표가 결국 자신의 마지막 카드를 꺼내들었다. 안 전 대표는 12월 1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당 안에서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당 밖에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면서 새정연 탈당을 선언한 것이다.

안 전 대표의 탈당 선언 후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이 안 전 대표의 탈당은 곧 신당 창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동안 제3지대에 머물며 정국을 관망한 뒤 이른 시일 내에 중도신당의 깃발을 세울 계획이다.

“(서울) 노원병에서 금배지 한 번 더 달려고 탈당했겠는가? 그동안에는 뒤가 무른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에는 ‘강철수’라는 별명을 얻은 만큼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한국정치에 빅뱅이 일어나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호남 통합신당이 뜨면 지금의 양당구도는 무너질 것이다.” 기자에게 배경을 설명하는 안 전 대표의 한 측근의 말끝에 힘이 실려 있었다.

“수도권 현역의원도 상당수 동참하게 될 것”


▎2014년 12월 8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제16회 백봉신사상 시상식에서 정의화 국회의장과 안철수 의원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안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병호 새정연 의원은 현역의원들의 탈당이 호남에서 시작돼 수도권으로 확산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안 전 대표의 호남 지지율 회복을 그 근거로 들었다. 문 의원은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의원들이 많다. 현역의원만 30명 이상 안 전 대표와 뜻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2월 7~9일 전국 유권자 15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 따르면 호남에서 안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응답자는 28.5%로 전주(前週)의 13.9%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반면 직전 조사에서 24.3%로 1위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율은 15.8%로 8.5%p 하락했고, 문 대표는 14.2%에 머물렀다. 전국 지지율에서도 안 전 대표는 11.1%로 16.1%를 기록한 문재인 대표와의 격차를 좁혔다.

문 의원은 “안 전 대표가 단호한 모습을 보이면서 전국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올라섰고, 호남에서도 박 시장을 제치고 1위로 나섰다”면서 “요동치는 호남민심이 지지율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기운이 곧 수도권으로까지 북상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수도권 선거에서는 1천~2천 표차로 승패가 갈리는 만큼 수도권 의원들이 ‘안철수 신당’에 동참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문 의원은 손사래를 쳤다. 그는 “사안을 현상적으로만 보면 그런 예측도 무리는 아니다”며 “신당이 차려지면 친노표 15% 정도가 빠져나가는 대신 합리적 보수, 중도보수 성향의 표를 가져올 수 있다. 수도권의 경우도 문재인 대표 체제에서는 새정연의 공천을 받아도 승산이 없다는 게 각종 지표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안 전 대표의 측근 역시 호남 의원들의 탈당은 시간문제일 뿐이고, 결국에는 수도권 의원들까지 움직이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측근은 “새정연에서 호남을 빼면 남는 것은 친노색뿐이다. 그렇다면 수도권 비노 성향의 의원들이라고 해서 더 버틸 재간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부 기류와는 달리 안 전 대표가 야권 분열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수도권 유권자의 호응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타임리서치’가 12월 8일 수도권 유권자 11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야권 분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49.8%는 문재인 대표, 38.3%는 안철수 전 대표에게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새정연 지지층만으로 조사대상을 좁히면 문 대표 26.7%, 안 전 대표 58.8%로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박해성 타임리서치 대표는 이 조사와 관련해 “2012년 대선 때 안풍(安風·안철수 바람)의 진원지였던 2040세대의 다수(49%)가 야권 분열의 책임이 안 전 대표에게 있다고 답했다”면서 “문 대표의 입지가 불안하지만 안 전 대표가 그를 대체할 야권의 새로운 리더십으로 선택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여권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의 탈당이 여야간 일대일 구도를 만들기 위한 이른바 ‘기획 탈당’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갈등을 노골화화는 것이 야권 단일화를 위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새정연 일각에서도 안 전 대표의 탈당이 ‘일시적 분당’→‘당 바깥세력 규합’→‘통합전대를 통한 여야간 1대 1 구도’로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새정연 한 관계자는 “안 전 대표를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얘기”라며 손을 내저었다.

광폭 인재영입 통한 친노 ‘역고립(逆孤立)’ 전략


▎문재인 새정연 대표(왼쪽)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1월 19일 서울시민청에서 열린 청년 ‘미생’과의 간담회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다.
신당의 성패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동반 탈당 인사들의 이름이 곧바로 흘러나왔다. 최근 결성된 비주류 모임인 구당(救黨)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김영환·강창일·김동철·신학용·김영록·노웅래·문병호·유성엽·이윤석·장병완·정성호·박혜자·최원식·황주홍 의원 중 일부는 이미 탈당을 선언했고, 나머지 의원 중에서도 상당수가 이탈 행렬에 동참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12년 4월 5일 대구 팔공산에서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4·11 총선에 출마한 김부겸 후보의 지원유세를 펼치고 있다.
야권 대통합을 강조하면서 ‘빅텐트론(論)’을 폈던 박영선 의원, 19대 총선부터 험지(險地)인 대구 정복에 나선 김부겸 전 의원, 안 전 대표와 함께 새정연의 ‘공동창업주’인 김한길 전 대표, 당내 유일의 부산 3선인 조경태 의원 등도 ‘안철수호(號)’ 승선 대상으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김 전 대표는 2007년 정계개편 과정에서도 현역의원 22명과 함께 열린우리당 선도(先導) 탈당을 감행함으로써 야당 개편의 촉매제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영호남을 아우르는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하려면 당내 인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게 안 전 대표 측의 생각이다. 2012년 대선 때 안 전 대표를 도왔다가 2014년 민주당과의 통합 과정에서 홀연히 떠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김성식 전 의원의 재합류 가능성도 보인다. ‘박근혜의 책사’였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도 승선 가능성이 점쳐진다. 세 사람 모두 여권 출신이다. 여기에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의 이름도 거론된다. 현철 씨는 최근 “정치권 외에서 활동하겠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경우의 수’는 남아 있다.

안 전 대표 측에서는 중도 성향인 정운찬 전 총리,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 홍정욱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의 합류도 기대하는 눈치다. 안 전 대표는 얼마 전 배석자 없이 오 전 장관, 정 전 총리와 잇달아 만난 적이 있다.

‘MB맨’인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의 최근 발언도 눈길을 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나 혼자 한 번 더 국회의원으로 뛰는 것보다 지금의 정치 시스템을 개혁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 사무총장은 “지금처럼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구조로는 의원들이 국회의 입법기능이나 장기적 정책비전에 대한 고민보다 권력 획득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발언 요지가 안 전 대표의 지향점과 궤를 같이한다.

‘영호남 화합의 전도사’인 정의화 국회의장이 ‘안철수 신당’에 동참한다면 확장력은 상상 이상이 될 것으로 안 전 대표 측은 기대한다. 국회의원이 되기 훨씬 전인 1991년부터 ‘영호남 민간인협의회’에 참여한 정 의장은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에 광주문화재단 사무총장 출신인 김성 씨를 영입했을 정도로 호남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히면서 원내대표에서 쫓겨났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도 본인 의사와는 무관하게 영입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분류된다. 그러나 유 의원 본인은 손사래를 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일각 “비박계 일부 이탈 가능성도”


▎‘안철수 신당’에 합류(합당)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거론되는 정운찬 전 총리, 유승민·천정배·박영선 의원.(왼쪽부터)
안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이른바 꼴통보수와 강경친노만 아니면 누구든 함께할 수 있다. 안철수 신당은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함께하는 실사구시의 정책정당을 지향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외연 확대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신당은 친노를 제외한 제(諸)정치세력을 아우르는 용광로가 될 것으로 안 전 대표 측은 기대하고 있다. ‘친노 역고립’인 것이다. 새정연의 한 관계자는 “친노 등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동교동계 등 구(舊) 민주계를 고립시켰던 것과는 반대로 ‘안철수 신당’이 새정연 내 비주류, 정운찬 전 총리 등 중도 성향의 인사들에 새누리당 출신들까지 품게 되면 새정연은 친노당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비박계 중 일부가 중도를 연결고리로 ‘안철수 신당’과 손잡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념적으로 가장 왼쪽인 친노·운동권과 가장 오른쪽인 친박을 제외하고 중도를 대변할 정치세력의 필요성은 늘 제기돼왔다”며 “안 전 대표가 대안으로 떠오를 경우 중도·개혁 성향의 비박계 일부가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의 측근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안철수 신당은 야당 몫을 나눠먹는 게 아니라 새누리당의 영역인 중도보수에까지 진입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수도권 여당 의원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비박계 조해진 의원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탄생할 새 야당은 친노가 약화되고 중도색채가 강화된 정당일 것”이라며 “여당이 여기에 맞서려면 중도 외연확대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 의장 등과 함께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가 토굴생활을 자처하고 있는 손학규 전 상임고문도 안 전 대표 측이 ‘모시고’ 싶은 대상 1순위로 꼽힌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여전히 현실정치와는 거리를 둔 채 은거를 이어가고 있다.

양측 사이에는 2014년 7·30 재·보선을 전후로 미묘한 기류가 형성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손 전 고문 측은 6·4 지방선거 때 경기지사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한 김진표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수원정 출마를 내심 바랐으나,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는 손 전 고문에게 “수원벨트를 맡아달라”며 수원병 출마를 권유했다. 수원병은 ‘수원의 강남’으로 남경필 경기지사가 5선 고지에 오른 새누리당의 철옹성이다. 그럼에도 전 대표이자 당의 중진으로서 책임감이 컸던 손 전 고문은 기꺼이 독배를 받았다. 결국 분루를 삼켜야 했던 손 전 고문은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강진으로 내려갔다.

손 전 고문 측 관계자는 “안 전 대표가 강진으로 찾아가면 손 전 고문이 녹차 한잔은 대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계를 떠난 손 전 고문이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선을 그었다.

“‘미래권력’이 든든해야 성공한다”


▎안철수 전 대표가 2013년 4·24 재·보선 서울 노원병에서 당선된 이틀 후인 4월 26일 제315회 국회(임시회) 제3차 본회의가 열렸다. 상기된 표정의 안 전 대표의 뒤로 문 대표가 지나가고 있다.
탈당과 신당 창당은 우리 정치사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밥 먹듯했다. 2000년 이후로 범위를 좁혀도 정국을 뒤흔든 탈당과 신당 창당은 크게 세 차례 있었다.

제16대 총선을 한 달 앞둔 2000년 3월, 민주국민당이 창당됐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윤환·조순·신상우 의원,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기택·김광일 전 의원 등과 새천년민주당을 나온 김상현 의원 등 중진들이 대거 포진했다. 여기에 13대 대선에 출마했던 박찬종 전 의원, 재야 민주화운동가 장기표 씨도 가세했다. 이름만 봐서는 하나같이 쟁쟁한 멤버로 구성됐다.

당시 여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이었고, 제1야당은 97년 대선 패배 후로도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던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이었다. 대선에서 한 차례 실패를 경험한 이 총재는 2002년 재수의 ‘필승카드’로 개혁을 꺼냈다. 이 총재는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섰고, 자신의 ‘정치적 코치’로 불렸던 김윤환 의원마저 내쳤다.

총선 결과는 참혹했다. 민국당은 지역구 1석과 비례대표 1석이 고작이었다. 정권 ‘재교체’를 열망했던 영남표가 한나라당에 몰리면서 민국당은 영남에서 전멸했다. 당의 간판이었던 김윤환 의원마저 텃밭인 구미에서 주저앉았다.

4년 뒤인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태풍이 총선을 강타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첫해였던 2003년 말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김근태·천정배·신기남·정동영·문희상·원혜영·송영길 의원 등 40명과 ‘독수리 5형제’로 불렸던 한나라당 탈당파인 이부영·이우재·김부겸·김영춘·안영근 의원이 열린우리당에 참여했다.

창당 당시만 해도 열린우리당은 승리를 장담키 어려웠다. 그러나 총선 한 달 전인 3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 통과시키면서 단숨에 전세가 역전됐다. 탄핵은 촛불시위로 이어졌고, 촛불 열기에 힘입은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으며 원내 1당에 자리했다.

2008년에는 ‘연대’ 돌풍이 거셌다. 그해 3월 23일 박근혜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은 전국 245개 지역구 공천에서 현역의원 109명 중 42명을 탈락시켰다. 42명에는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좌장을 맡았던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서청원·이규택·김재원 의원 등 친박계가 16명 포함됐다. 한나라당 공천자 중 친이 성향은 157명, 친박 성향은 44명이었다.

김무성·서청원·홍사덕 의원 등은 집단 탈당했다. 서청원 의원은 친박연대를, 김무성 의원은 친박 무소속 연대를 만들었다. 총선에서 친박연대는 지역구 6석에 비례대표 8석 등 총 14석을, 친박 무소속 연대는 12석을 얻었다.

한정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신당이 성공하려면 유력한 미래권력(대선주자)과 강력한 지역기반이 있어야 한다”며 “친박연대 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50% 안팎을 유지했던 박근혜 의원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신당의 성공 여부를 이런 측면에서 가늠해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신당’의 성패는 안 전 대표 자신에게 달렸다는 진단도 나온다. 지금까지 보여왔던 ‘CEO 리더십’을 고집한다면 또다시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얘기다. 안철수 대선캠프 출신 관계자는 “안 전 대표는 굉장히 예의 바른 사람이다. 회의 때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한다”며 “그런데 정작 결정의 순간에는 상당히 독선적인 면이 있다. 전형적인 CEO 리더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기업의 CEO는 회사의 이윤 창출을 위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으뜸으로 치지만 정치는 민주적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CEO 입장에서 보면 복잡한 과정이나 절차를 생략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安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리더십”

2014년 3월 2일 민주통합당과의 합당 선언은 ‘안철수 독선’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합당 선언 전날까지도 안 전 대표는 독자 신당 창당을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낡은 정치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러던 안 전 대표는 합당 기자회견 한 시간 전인 오전 9시 핵심 관계자들에게 신당 창당 결정을 알렸다. 신당 창당에 전념하던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합당이 아닌 제3지대에서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라는 안 전 대표의 주장을 추인했다. 안 전 대표의 부산고 선배로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성식 전 의원은 ‘꿈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dream)’이란 제목의 글을 남기고 안 대표 곁을 떠났다.

익명을 원한 한 새정연 의원은 “안철수 신당이 천정배·박주선 신당 같은 호남세력을 품는 데 만족한다면 ‘호남 자민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영호남 통합신당까지 가는 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이 있을 텐데 그럴수록 정치적·민주적 리더십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와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영입된 손학규 전 고문은 안 전 대표가 2014년 민주당과의 합당 결단을 내리자 각별한 당부를 했다고 한다.

“민주당 대표가 된 이상 민주당 전체가 내 식구라는 자세로 사람을 품어야 한다. 얼굴이 새로운 게 새정치가 아니라 정치의 내용이 민주주의의 기본을 제대로 지키느냐가 중요하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박스기사] “安, 2012년 대선 때 이미 ‘文틈’ 벌어졌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2012년 12월 6일 서울시내 모처에서 회동 후 식당을 나서고 있다. 문 후보와 안 전 후보의 표정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공동대표 오른 뒤로도 친노의 물밑 발목잡기에 대해 분노… 지난 10월 기자회견서 친노·운동권 비판하며 탈당 예고

18대 대선 후 만 1년이 된 2013년 12월 8일. 당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신당 창당준비기구인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를 출범시켰다. 공동위원장으로는 박호군 전 과학기술부 장관, 윤장현 광주·전남비전21 이사장, 김효석·이계안 전 의원 4명이 임명됐다.

2012년 18대 대선전(戰)에서 무소속으로 출정(出征)했던 안 후보는 대선후보 등록 3일 전인 11월 23일 돌연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선거운동 기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도왔던 안 후보는 대선 당일이던 12월 1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82일 만인 이듬해 3월 11일 귀국한 그는 4·24 재·보선 때 서울 노원병에 출마해 재기에 성공했다.

대선후보 때만큼은 못했지만 안철수의 ‘파괴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제1야당인 민주당이 좀처럼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안 의원은 나름대로 몸집을 키워갔다. 결국 여의도 입성 8개월 만인 2013년 12월 신당 출범의 전 단계에 이르렀다.

‘안철수의 새정치’는 수명이 길지 못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은 2014년 3월 2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제3지대 신당 창당에 전격 합의했다. 신당 창당을 추진해온 안 의원 측은 인물난이 심화되면서 독자적으로 6·4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민주당으로서는 ‘1여(與) 다야(多野)’ 구도 속에서 선거에 임할 경우 필패를 면키 어려운 상황이었다. 합당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었다.

급조된 ‘김·안 체제’는 내구성이 약했다. 합당 석달 후 치른 6·4지방선거에서는 무승부(광역단체장 기준 새정연 9곳, 새누리당 8곳)로 선전했으나 전국 15개 선거구에서 열린 7·30 재·보선에서는 4승 11패로 완패했다. 김·안 공동대표는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며 대표직을 내려놓았다. 참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민심과 동떨어진 전략공천이 지적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두 공동대표가 물러나게 된 것은 친노들이 물밑에서 체제를 흔들었기 때문”이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왜 운동권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나”

이런 이유에선지 대표직에서 내려온 뒤 안 전 대표와 친노 사이의 골은 더 깊어졌다. 지난 4·29 재·보선 참패(0대 4) 이후 문 대표가 구성한 당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에 대해서도 안 전 대표는 “혁신은 실패했다”고 일갈했다.

문 대표와 친노에 비판의 날을 세워온 안 전 대표는 지난 10월 11일 기자회견에서 작심한 듯 강경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는 “우리는 왜 운동권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왜 성장·안보에 무관심하며 새로운 인재가 들어오지 않고 노쇠화됐나”라고 지적했다. 에두른 표현이었지만 친노와 86(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운동권을 지목한 셈이다.

안 전 대표는 이어 “증오심의 막말 정치와 퇴로 없는 강경투쟁”, “자기 실패에 관대하지만 남의 실패는 물고 늘어지는 이중잣대”, “비리에 대한 온정주의”라고 비판했다. 막말은 ‘공갈 발언’ 파문을 일으켰던 정청래 의원, ‘비리’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구속수감된 한명숙 전 총리를 가리킨 것으로 해석됐다.

안 전 대표 측 핵심 관계자는 “탈당은 10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예고한 셈이었지만 문 대표와는 이미 대선 과정에서 틈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이다.

“대선후보 사퇴 직후였던 2012년 12월 5일이었다. ‘문 대표가 선거 지원 요청을 위해 안 전 대표의 자택으로 찾아갔지만 주차장에서 10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되돌아가야 했다’는 식의 보도가 나갔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안 전 대표가 분명히 ‘다른 곳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고 문 대표 측에 통보했음에도 문 대표가 막무가내로 안 전 대표의 집에 찾아온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은 삼고초려, 안철수는 문전박대가 됐다.” 이번에도 안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기 약 10시간 전인 12월 13일 오전 0시58분쯤 문 대표는 서울 상계동 안 전 대표의 자택을 방문했다. 문 대표는 문 밖에서 40분가량을 기다린 끝에 안 전 대표를 만나 짧은 악수만 나눈 뒤 헤어졌다. 이번에도 문재인은 삼고초려, 안철수는 문전박대한 셈이 됐다.

비주류 측 한 의원은 “너무 자주 봤던 장면이라 식상하다. 2002년부터 시작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2002년’이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대선후보 단일화 파기를 선언한 정몽준 후보의 집을 찾아간 일을 말한다.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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