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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 2] 대통령, 공천 승부수 던졌나 

“영남권은 박근혜 지지층이 교통정리해줄 것”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친박계, ‘대구 여론 뒤집기는 시간문제’라며 진박 후보 역전극 기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통해 비박계 견제하고 TK·PK 현역의원 물갈이 시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오른쪽)가 2월 11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4·13 총선 공천을 총괄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 사진·중앙포토
박심(朴心, 박근혜 대통령 의중)이 움직이는 걸까?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이 일제히 영남권 현역의원 물갈이론을 설파한다. ‘공천 부적격자’ 심사와 당내 경선이라는 두 개의 절차를 통해 박 대통령이 언급한 ‘배신의 정치’를 심판하겠다고 벼른다

“정부가 국회와 정면대결을 해야 한다. 법률 하나하나를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고, 야당하고 논쟁하고, 여당의원을 설득하고….”

이한구 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은 지난해 <월간중앙> 1월호에서 정부가 일을 제대로 안 한다며 이렇게 다그쳤다. 국민 각자가 자유의지에 따라 열심히 일하자면 각종 규제가 풀려 공정한 경쟁이 돼야 하고, 기득권 집단의 기득권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공공·금융·노동·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였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념이나 진영논리가 아니라 양심껏 일을 처리토록 해야 한다. 때로는 정면돌파도 하고….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고 나라의 주인이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국민심판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시기가 바로 2016년 총선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새누리당의 최고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국민심판론’을 언급한 그에게 새누리당 공천개혁의 ‘칼’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국가적 위기 상황을 예방해야 한다”며 상황이 이전보다 훨씬 더 엄혹함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월간중앙>과 만난 자리에서 “20대 국회는 세계 정치, 경제 체제가 바뀌면서 국가적으로 가장 위기가 집중되는 시기”라며 “자칫하다가는 몇 십 년 공들여 만든 나라가 큰 타격을 받는다”고 우려했다. 그는 또 “행정부도 잘해야 하지만 국회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며 “누적되는 위기 요소를 잘 해결하고 새 정치, 경제 질서를 창출하자면 정치개혁이 우선이며 그 첫걸음이 공천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의원, 당내 경선 참여 가능성은?


▎2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예비후보자 워크숍에서 김무성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새누리당은 2월 16일까지 총선에 출마할 공직후보자 추천 신청서를 받았다. 접수가 끝나면 주요 선거구를 대상으로 사전 여론조사를 실시한다. 새누리당 공천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후보 인지도 조사다. 여론조사 결과와 후보 면접 결과를 토대로 경선에 나설 후보들을 가려낸다.

이와 관련해 이 위원장은 당 지도부가 추진해온 상향식 공천제가 국민 여망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새누리당이 표방해온 상향식 공천제는 겉으로만 그럴 듯할 뿐 속을 들여다보면 문제가 많다”며 “현역의원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라고 경선 만능주의에 일침을 가했다. 오히려 당헌·당규에 따라 부적격 의원을 솎아내고 그 빈 자리에 새로운 인물을 앉히겠다고 밝혔다. 이는 예비심사에 의한 낙천, 즉 ‘컷오프(Cut off)’를 도입하는 효과를 낳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정치생명’을 걸며 추진해온 상향식 공천 즉 ‘100% 국민참여경선’에 대대적인 메스를 가할 것임을 공언한 셈이다.

그동안 친박(親朴, 친박근혜)계와 비박(非朴, 비박근혜)계로 나뉘어 치열한 기싸움으로 전개되던 새누리당 공천 작업이 이 위원장의 등장으로 새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이전까지는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가 우위에 있었다. 1월 14일 새누리당 상임전국위원회에서 확정된 새 총선 공천룰을 담은 당헌·당규에는 김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의 입김이 많이 들어가 있다. 후보자 선출을 위한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경선)에서 국민 참여율을 높였다. 당헌·당규상 50대 50인 당원 대 국민의 참여비율을 30대 70으로 바꿨다. 또 외부 영입인사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100% 여론조사로 경선을 치르도록 해 무혈입성을 차단하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게 비박계의 평가였다.

이 당헌·당규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은 친박계로 분류되는 이한구 위원장이 주도하는 공직후보자추천관리위(공관위) 몫이다. 비타협적이고 소신이 뚜렷한 이 위원장이 내놓는 발언 하나하나가 후보자 선정의 잠정적인 가이드라인으로 해석되는 되는 상황이다.

새누리당 당헌·당규상의 ‘공직후보자추천규정’에 따르면 공관위는 공천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자격심사를 수행한다. 공직후보자로서 ‘부적격 기준’에 해당하는 이들은 당내 경선에서 배제할 수 있다. 당규에 따르면 현역 의원들이 ‘유권자의 신망이 현저히 부족한 자’, ‘공직후보자로 추천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명백한 사유가 있는 자’ 항목에 걸려 당내 경선 참여가 봉쇄되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 위원장은 2월 들어 공관위 전체회의 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당의 공천을 받은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 경우라면 문제가 있다”고 했다. 부적격 기준에 당 정체성이 포함될 것임을 시사한 발언이다. 나아가 “국정에 대한 협조 여부도 공천기준 중 하나”라고 말해 ‘증세 없는 복지 없다’는 발언, 국회법 처리 등으로 박 대통령과 대립한 유승민 의원 같은 이들이 유탄을 맞게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낳았다.

친박계 주요 의원들은 현역 의원 물갈이 타깃이 영남권이라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홍문종 의원은 “영남지역은 현역 의원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당연히 현역 의원들이 당선되리라고 생각하던 영남 유권자들이 지금은 다른 후보를 뽑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바뀌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홍 의원은 “영남은 경선 자체가 의미 있는 곳이 될 것”이라며 “경선에서 현역의원들이 떨어질 확률도 꽤 높다”고 강조했다. 그는 물갈이 범주와 관련해 “대구·경북도 그렇지만 부산·경남이라고 해서 현역 의원들이 마냥 따뜻한 것만은 아니다”라며 모종의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

친박계의 김태흠 의원도 영남 의원들에게는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고 가세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영남권은 ‘공천=당선’ 지역이므로 경선 자체가 사실상의 본선에 해당된다. 그래서 경선과 본선이라는 두 개의 관문을 통과하는 여타 지역보다 경선 과정이 더욱 엄격해야 한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영남의 경우, 예선인 경선과정에서 좀 더 어려운 통과 기준과 잣대를 적용해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여당이 강세 지역일수록 과감히 기득권을 타파하겠다던 이 위원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발언이다.

친박계가 지지율에서 밀려도 느긋한 이유


▎친박계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는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이 공천 부적격 심사 대상에 오를지도 관심이다.
방법론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이 위원장은 2월 11일 공관위 전체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남지역에서 당 지지도보다 지지율이 낮은 현역 의원은 문제가 있는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현역 의원에게는 공천을 줄 수 없다”고 강조해 현역의원 물갈이가 영남권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리라는 추측을 낳았다. 문제가 있다고 판명된 의원에게는 아예 당내 경선참여가 봉쇄되므로 상당수 영남권 의원은 가슴을 졸이며 공관위 활동을 주시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2월 1일부터 3일까지 전국 유권자 15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2.5%p)에서는 전국 새누리당 지지도는 40.2%를 기록했다. 이 위원장이 눈여겨보겠다고 강조한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울산은 각각 63.9%, 55.4%에 달했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현역의원 중에서 당 지지율을 앞서는 의원은 많아야 한두 명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게 지역 정가의 관측이다. 특히 영남권에는 친(親)박근혜 후보임을 자처하는 주자들이 난립해 있다. 여러 후보가 지지율을 나눠 갖는 관계로 현역의원의 지지율이 당 지지도를 구조적으로 앞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영남권의 현역의원들은 모두 대상자로 분류될 수도 있다. 많은 영남권 의원이 잠을 못 이루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자칫하면 자의적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어 사전에 기준을 철저하게 만들 것”이라고 논란의 여지를 제거할 것임을 강조했다.

영남권 의원들은 공관위 ‘부적격 심사’라는 관문을 뚫고 경선 대열에 합류한다고 해도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라는 묘한 상황과 맞붙어야 한다.

대구에만 현 정부에서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지낸 5명의 예비후보가 표밭갈이에 나섰다. 이들은 통상 ‘진박 후보’라 불린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진박 예비후보 사무실을 돌며 누가 ‘박근혜의 사람’인가를 인증해주기도 했다. 특히 진박 후보들과 대통령의 인연을 소상하게 설명함으로써 대통령과 후보의 일체화를 꾀하기도 했다. 이런 행보는 박 대통령의 일정한 양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진박 후보들의 지지율은 현역의원들보다 많이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친박계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낙담하거나 체념하는 일은 없다. 경선일에 임박할수록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 진박 후보에게 결집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여기에는 나름의 논리가 따른다. 친박계의 한 분석가는 “전국적으로 40%, 영남의 60%에 이르는 새누리당 지지자들 중에서 박근혜 지지층을 빼면 남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되묻는다. 다시 말해 박 대통령은 싫은데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만이 당내 경선에서 비박계 후보를 지지하게 되며, 그 규모란 미미하기 짝이 없으리라는 분석이다. 그는 “결국 집토끼를 갖고 싸우는 경선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박 후보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일반 국민이라는 큰 틀을 상대로 하면 진박 마케팅을 비판하는 이들이 더 많을 수는 있다. 어차피 국민의 절반 이상은 ‘박근혜’라는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니까. 그래서 전체 여론은 진박 후보들에게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지지층 내에서는 박 대통령이 일을 잘하도록 도와달라는 주장에 거부감을 느끼고 반대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진박 후보가 결국 역전승을 거두게 되지 않겠나.”

여권 핵심에서 자체적으로 실행한 여론조사에서는 대구의 이른바 ‘진박’ 예비후보들이 당원 조사에서는 현역 의원을 앞서기도 한다는 전언이다. 일반 유권자 조사에서도 현역 의원과 지지율이 박빙이거나 근접전을 펼치는 등 판세가 호전되고 있다고도 한다.

부적격 심사 대상에는 당 대표 등도 포함한다


▎2월 16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 마련된 공천 신청 접수처를 찾은 예비후보자들.
새누리당 대구 공천의 향배는 박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 간 기싸움 결과에 좌우될 공산이 크다. 박 대통령은 심판해야 할 ‘배신의 정치’ 당사자로 원내대표 시절 자신에게 반기를 든 유승민 의원을 지목한 바 있다. 나아가 친박계는 유 의원을 비롯해 이른바 유승민계로 불리는 새누리당 내 몇몇 초선 의원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나섰다.

김철기 전 친박연대 사무총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유승민 의원을 지지하면 대통령이 일하기 어려워진다“며 보수층 표심을 자극했다. 홍문종 의원도 이번 대구 동을 경선을 “박 대통령인가, 유 의원인가를 결정하는 선거”라며 ‘박-유’ 양자대결에 방점을 찍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좀처럼 식지 않는 국정지지율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이자 특히 충성도 높은 지지층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철기 전 총장은 또 “유승민 의원에 대한 지지도는 동정표와 역선택이 작용하고 있어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며 조만간 변동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피력했다. 김 전 총장은 나아가 친박계가 유 의원 ‘컷오프’를 바라는 것 같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컷오프까지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경쟁할 기회를 줘서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이 1차 관문인 공관위 ‘부적격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2차 관문인 경선에서 당원과 유권자들이 정리해주리라는 계산이 깔린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역 의원 물갈이의 공포는 비단 영남권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원론적인 얘기지만 모든 공천 신청자는 ‘부적격 심사’의 잠재적 대상이다. 이 위원장은 당 대표를 포함해 누구든 부적격 심사의 대상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당연하다”면서 “누구를 빼고 하면 큰일 난다”고 강조했다. 또 부적격 심사는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고도 했다. 해당사항이 있는 신청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2008년, 2012년 총선에서 내리 두 번이나 낙천의 쓴맛을 본 김무성 대표마저도 공관위의 ‘부적격 심사’에 경계심을 가질 법하다. 역대 새누리당(전신인 한나라당 포함) 공천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의 하나로 2000년 16대 총선 당시의 영남권 의원 대거 낙천이 꼽힌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김윤환·이기택·신상우 의원 등 계보를 거느린 거물 정치인들을 무더기로 탈락시켰다. 이한구 위원장은 당시와 같은 파격이 이번 새누리당 공천 심사과정에서도 재현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 “글쎄 해봐야 안다”면서 “과거에는 당 총재 등이 굉장한 파워를 가졌지만 내게는 그런 힘이 없다”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공천룰이 정해져 있는 데다 최고위원들과 상의도 해야 하므로 과거 같은 충격요법을 동원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최대한 그런 방향으로 강하게 밀고 나가겠다”면서 “여론이 뒷받침하고 당원들이 지지해주면 (물갈이를) 많이 하는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이 위원장은 또 2월 16일 소수자 배려 차원에서 17개 광역 시·도별로 1∼3개 우선추천지역(정치적 소수자 등 배려)을 선정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산술적으로 17~ 51곳 지정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우선추천 지역 확대 등은) 오랜 기간 수차례 토론을 거쳐 만든 공천룰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반박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웠다. 현역 의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기울던 여당의 공천 작업이 박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리는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등장으로 혼미한 국면으로 접어든다.

-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201603호 (201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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