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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외교 포커스] 수교 51주년 살얼음판 한일관계의 행로(行路) 

중국과 관계설정이 양국 우호 복원의 키포인트 

콘도 다이스케 일본 슈칸겐다이(週刊現代) 특별편집위원
친한(親韓) 마스조에 도쿄 도지사, 혐한(嫌韓) 우익의 공격으로 위기 봉착… 오바마, 히로시마 한국인 희생자 언급은 한국 정부의 요구가 관철된 것
일본 최대의 서점 아마존에서 한국 관련 서적의 베스트셀러 1~10위는 모두 혐한 서적이다. 일본 내 혐한은 장기적인 트렌드로 정착되어간다. 한일관계 복원을 더 이상 미루기 힘든 이유다. 한국과 일본의 협력은 경제적인 실익 외에도 대북 핵억제 공조에도 효과가 있다. 일본 조야의 한일관계론을 심층적으로 짚어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또다시 한일관계가 ‘표류’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1년 전 이 시기의 한일관계는 빠른 속도로 순항하고 있었다. 2015년 6월 22일은 한일수교 50주년으로 이 기념일에 어떻게 해서든지 인상 깊은 이벤트를 남겨야 한다는 분위기가 한국 측에도, 일본 측에도 팽배해 있었다.

윤병세 장관이 거느리는 한국 외교부와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이 거느리는 일본 외무성은 양측 모두 보수적이고 강경하다. 그래서 ‘별동대’가 양국의 외교를 움직였다. 즉 박근혜 대통령의 직속 보좌관인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아베 신조 총리의 직속 보좌관인 야치 쇼타로 국가안전보장 국장의 ‘청와대-총리관저 라인’이었다.

2013년 6월부터 1년간 주일대사를 맡았던 이병기 비서실장에 대한 일본 측의 신뢰는 두터웠다. 한국과 일본은 국교정상화 50주년에 어울리는 특별한 이벤트를 연출했다. 서울의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일본 대사관 주최의 기념 리셉션을 열고, 그 자리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도록 한다. 도쿄의 미야코 호텔에서는 한국 대사관 주최의 기념 리셉션을 열어 아베 총리가 참석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필자도 참석했던 미야코 호텔에서 열린 리셉션은 참석인사들의 화려한 면면으로 분위기가 무척 고조됐다.

당초 참석 예정에 없었던 윤병세 장관이 급히 달려온 것을 시작으로 캐롤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 대사와 청융화 주일 중국 대사도 얼굴을 비쳤다. 한국에 연고가 있는 많은 일본인은 물론, 3000개 안타의 대기록을 보유한 장훈 씨를 비롯한 재일 한국인 저명인사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아베 총리와 윤병세 장관을 필두로 축사에 나선 양국의 인사는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지금까지의 50년을 초석으로 해서 앞으로 한층 더 양국관계의 발전을 위해서 나가자”라는 덕담을 외쳤다.

2015년 후반의 한일관계는 한 걸음 더 전진했다. 11월 1일에는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처음으로 양국 정상회담을 열었다. 이어 12월 28일에는 기시다 외무장관이 방한하여 종군 일본위안부 문제에 관한 양국정부의 역사적인 합의를 이뤄냈다. 이때의 합의 역시 ‘청와대-총리관저 라인’이 실현시킨 것이었다.

올해 2월 7일, 한일관계를 한층 더 진전시키는 뉴스가 동북아시아를 강타했다. 북한이 장거리탄도 미사일의 발사 실험을 강행하면서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사드(THAAD; 고고도방위미사일)의 도입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뉴스를 전해들은 아베 총리는 내심 대단히 흡족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댔다. “상당히 멀리 돌아온 감은 있지만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

동북아는 20세기 후반 이후 전통적으로 미국·한국·일본 등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러시아)·중국·북한 등 사회주의 진영이 냉전을 펼쳐왔다. 세계의 냉전구조는 1991년의 소련의 소멸과 함께 붕괴되었지만, 동북아에서만큼은 지금까지도 존속되고 있다. 그런데 2013년 2월 취임한 박근혜 정권이 일본에의 적의와 중국에의 호의를 선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인해 북동아의 균형은 ‘변형’돼갔다. 한국 측에서 보면 그것은 모두 “아베 정권 탓”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베 총리의 생각은 달랐다. 아베 총리는 시진핑 정권의 중국을 ‘최대의 가상 적국’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이 내 마음을 알아주었다”


▎미국이 한반도 배치를 원하는 ‘사드’는 요격고도가 40~150㎞에 이른다. 일본은 한국의 사드 배치 움직임을 한일관계 복원의 청신호로 보고 있다.
그러던 것이 정권 출범으로부터 만 3년의 세월이 지나고, 박근혜 정권이 결국 사드 배치 검토를 선언했다. 이것은 한국이 전통적인 미국·일본 진영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의미했다. 이때 아베 정권의 고위관리는 내게 이렇게 진술했다.

“사실은 지난해 말의 위안부 문제의 합의는 아베 총리로서는 대단히 어렵게 결심한 결과였다. 모두가 집중적으로 아베 총리를 설득해서 겨우 얻어낸 것이다. 그런 만큼 아베 총리로서는 박근혜 정권의 사드 도입 검토가 위안부 문제를 타협한 보람으로 생각한 것이다.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는 과거 문제이며, 사드 배치는 미래 문제다. 일본으로서는 전자를 타협해서 후자를 얻은 편이 이득임이 틀림없다.”

한일관계가 ‘호조’를 보인 것은 여기까지였다. 4월 13일 한국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아베 정권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앞서 언급한 정부 고위인사는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한국의 이번 선거에서 우리들이 주시하고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사드 배치가 어떻게 될지 하는 문제이었다. 그런데 그만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승리해 배치 계획에 암운이 깃들게 되었다. 지난해 말 양국 정부간에 합의된 위안부 문제조차 이후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5월 15일에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임 뉴스가 도쿄의 총리관저를 강타했다. 다시 한 번 익명을 요구한 고위관료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들은 이 청천벽력 같은 뉴스에 충격을 숨길 수 없었다. 과거에는 반일 일변도와 같은 주일대사도 있었지만 게이오 대학교 객원교수 경험도 있는 이병기 씨는 주일대사 시절부터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지적으로 교섭을 진척시켜가는 프로 외교관이었다. 그 때문에 대사를 끝내고 귀임한 후에도 계속해서 양국간 파이프라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일본정부가 ‘교쿠지츠다이주쇼(旭日大綬章)’라는 최고위급 훈장을 하사한 것이다. 이 비서실장의 사임의 표면상의 이유는 ‘선거 패배의 책임’이라고 하지만, 어쩌면 실제로는 일본에 지나치게 다가갔기 때문에 입지가 나빠진 것은 아닐까? 아무튼 양국을 잇는 중요 인물이 사라지게 된 것으로 일한 관계는 다시 오리무중이 돼버렸다.”

5월 26일과 27일, 아베 총리가 주최하는 일본의 올해 최대 외교 이벤트인 ‘이세시마 서밋’이 열렸다. 일본에서 8년 만에 열린 서밋에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초대하려고 했다. 이세시마 서밋은 처음부터 “별다른 성과가 없는 서밋이 될 것이다”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미국과 영국이 각각 국내 ‘선거 모드’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잘 알려진 대로 이미 트럼프 후보와 클린턴 후보의 일대일 승부에 미국 전체의 시선이 쏠려 있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세시마 서밋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경제 정책을 발표할 가능성이 없었다. 또 유럽 최대의 금융시장을 가지고 있는 영국도 6월 23일 실시되는 EU 이탈 여부를 묻는 국민 투표가 핫 이슈다. 만약 국민투표 결과 EU에서의 이탈이 결정되면 캐머런 정권은 총사퇴할 가능성이 높다. 캐머런 총리의 마음은 온통 이 투표의 향방에 가 있다. 그런 만큼 ‘이렇게 바쁠 때 왜 지구 반대편(일본)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나’라는 회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가 공전(空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베노믹스는 대담한 금융 완화,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대폭적인 규제 완화라고 하는 ‘3개의 화살’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이 중 성공한 것은 2013년 4월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발표한 ‘첫 번째 화살’뿐이다. 더구나 첫 번째 화살인 대담한 금융완화 역시 “2년 동안 2%의 인플레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3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초조함이 더해진 구로다 총재는 올해 1월 29일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란 충격적인 금융완화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을 경악시킨 이 ‘묘책’조차도, 매스컴으로부터 “효과가 있었던 것은 겨우 이틀뿐”이라는 야유를 당하는 처지로 몰렸다.

아베의 재정지출 확대 요청 선진국은 거부


▎6월 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에서 한·미·일 국방장관이 3자 회담에서 인사하는 모습. 왼쪽부터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 한민구 국방부 장관.
일본은 4월 1일부터 일반회계총액 96조7218억 엔(약970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예산 집행을 시작했다. 국가채무가 1000조 엔(약 1경원)을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상최대 규모의 예산을 편성한 것은 오로지 재정지출 확대라고 하는 ‘두 번째 화살’을 날리기 위해서다.

아베 총리는 이세시마 서밋에서 재정지출 확대를 선진국가 전체의 경제방침으로 설득하기 위해 4월 하순으로부터 5월 상순에 걸쳐 유럽을 순방했다. 그러나 이 방침은 영국·독일· 프랑스·이탈리아에서 모두 외면당했다. “또다시 거액의 채무를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보다 구조개혁 진행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지적을 받은 것이다. 7월 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의 입장에서는, 모처럼 이세시마 서밋 개최의 별다른 성과가 없다면 ‘2007년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이다. 2007년, 즉 9년 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자민당이 패배하여 레임덕에 빠지면서 2개 월 후 총리직을 사임해야 했던 것이다.

이세시마 서밋에서 경제분야에 대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면 별도의 방법으로 ‘화제 만들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베 정권은 두 가지의 토픽을 준비했다. 그 하나가 박근혜 대통령을 옵서버로 서밋에 초대하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초대는 일한의 화해를 세계에 어필한다고 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일미간의 화해를 연출한다.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래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것으로 일한의 화해도 연출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방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5월 25일부터 12일간의 일정으로 아프리카 3개국과 프랑스를 방문하기 위해 출국한 것이다. 앞서의 정부 고위관료의 말이다.

“일본으로서는 아프리카를 방문하기 때문에 서밋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것을 액면 그대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에 일본은 아프리카의 소국(小國)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박 대통령이 중국 정부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돌이켜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3일 저 악명 높은 시진핑 주최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서방측 국가원수로 유일하게 참가했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주최하는 서밋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본으로서는 뒷맛이 영 개운치 않은 것이다.”

식당 종업원 환대에 케리 장관 감동


▎5월 26일 이세신궁을 걷는 G7 정상들. 왼쪽부터 렌치 이탈리아 총리, 융커 EU 집행위원장,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트뤼도 캐나다 총리, 메르켈 독일 총리,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일본 총리,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캐머런 영국 총리.
아베 총리가 이세시마 서밋에서 준비한 또 하나의 토픽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다. 1945년 8월 6일, 미군이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로 원폭을 투하해 약 14만 명이 즉사했다. 이로 인해 일본은 8월 15일에 무조건 항복했고, 1951년에는 일미 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하여 미국의 동맹국이 되었다. 그러나 전후 71년 동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할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도쿄의 미국 대사관 관계자에게 다음과 같은 뒷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에는 대량 학살을 감행한 히로시마를 방문하게 되면 암살당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었다. 그러나 4월 10일과 11일에, G7 외무장관회담으로 히로시마를 방문한 케리 국무장관은 암살은커녕 큰 환대를 받았다. 케리 장관은 밤에 비공식으로 히로시마 시내의 한 서민식당을 방문했다. 식당 종업원과 다른 손님들이 케리 장관을 알아보고 열렬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고 한다. 케리 장관은 이에 대단히 감동했고 귀국 후 자신의 경험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이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도 결심하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5월 27일 결국 실현됐다. 그리고 이 이벤트에 의해서 이세시마 서밋 자체는 별다른 성과가 없었음에도 불구,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10% 가까이 상승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히로시마의 평화기념 공원에서 17분에 달하는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그 모습은 TV를 통해 생중계되어 많은 일본인이 지켜보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의 모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사망자를 추도하기 위해서 방문했다. 사망자 안에는 10만 명이 넘는 일본의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 그리고 수천 명의 한국인, 포로가 된 십수 명의 미국인도 포함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의 모두에서 한국인 피해자까지 언급한 것은 일본인에게는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미국 대사관 관계자에게 이 대목에 대해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결정됐을 때, 한국 정부에서 강한 요청이 있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그래도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한다면 1000명이 넘는 한국인 피해자가 생겨난 것도 연설에 정확히 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 건에 대해 일본정부에 비공식적으로 문의했고 ‘일본정부는 한국인 피폭자에 대하여도 조치를 마련하고 있으며, 대통령의 연설 내용은 미국 측이 정하는 것이다’라는 견해를 들었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인 포로까지 포함시켜 ‘모든 원폭 피해자를 추도한다’라는 의미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스피치가 일한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인 피해자까지 언급한 스피치는 성공적이었다. 많은 일본인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들을 때까지 한국인 원폭피해자가 있었던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자세한 내용을 기술할 수는 없지만 전후에는 한국인 피폭자들과 일본정부와의 긴 교섭의 역사도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는 ‘친한파’로 유명한 정치가가 궁지에 몰려 있다. 도쿄도의 마스조에 요이치 도지사다. 2014년 2월의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마스조에 전 후생노동 대신은 ‘6개의 공약’을 내걸고 당선했다. 그중 하나가, ‘도시 외교의 추진’이었다. 2020년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쿄가 자체적으로 도시 외교를 추진하여 관광객을 늘리려고 하는 목적이었다. 마스조에 요이치 지사는 개인적으로는 필자의 대학 시절 은사다. 1980년대 당시 도쿄대학 조교수로서 국제정치를 가르쳤던 마스조에 지사는 “섬나라에 사는 일본인은 시야협착증에 빠지는 경향이 있지만, 일본을 항상 세계의 일부로서 확대해서 봐야 한다”는 주장을 갖고 있었다.

“보육원에 떨어졌다. 일본 죽어버려”


▎5월 27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원폭 피해자인 모리 시게아키를 안아주고 있다.
그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하다. 당시로서는 진귀하게 영어 문헌을 가지고 공부하는 국제정치 ‘제미(세미나형식의 강의)’를 지도하기도 했다. 필자는 은사가 배우지 않았던 한국어와 중국어를 공부했는데, 마스조에 지사는 후년 내게 이렇게 털어 놓았다. “나도 젊었을 때에 한국어와 중국어를 공부해둬야 했다. 일본의 장래에 있어서 한국, 중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일본의 생명선이다.”

도쿄도 지사에 당선된 그는 2개월 후의 2014년 4월 베이징을 방문하고, 7월 한국을 방문했다. 서울, 베이징과 도쿄는 자매도시이지만, 역대 도쿄도지사 중 양 도시를 방문한 인사는 극히 드물었다. 마스조에 지사의 한국 방문 때에는 박 대통령이 그를 청와대로 불러 만나기도 했다. 그때 박 대통령은 마스조에 지사에게 위안부 문제 조기해결의 필요성을 호소했으며, 도쿄의 한국인학교 증설에 대해서도 협력을 요청했다. 도쿄도 신주쿠구에 한국인학교가 있지만, 장소가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민단 등 도쿄 주재의 한국인 단체에서 새로운 학교 설치에 대한 요청이 있었던 것이다. 마스조에 지사는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다”라고 회답, 올해 3월 16일 도쿄도는, 신주쿠구 야라이초의 약 6000㎡의 도쿄도의 소유지를 한국 정부에 임차하기 위한 협의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 토지는 2009년 폐교한 이치가야 상업고교의 철거지로서, 2017년 3월까지는 신주쿠구립의 초등학교 교사로 사용되지만, 그 후의 용도는 미정이었다.

마스조에 지사는 3월 18일의 정례 기자회견에서 지론을 피력했다. “도쿄와 서울은 자매도시이며, 서로 협력하는 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한 우호를 위해서라도 고교의 철거지를 한국인학교로 사용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큰 역풍이 거칠게 불어댔다. 요즘 일본에서는 ‘호카츠(保活)’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다. 도쿄 등의 도시부에서는 보육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보육원 등의 보육시설에 들어가기 위한 활동”이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의 최대의 사회문제가 돼 있는 것이다. 올해 2월 15일에는, ‘호카츠’에 실패한 한 젊은 주부가 쓴 “보육원에 떨어졌다. 일본 죽어버려!”라는 과격한 인터넷 글이 회자됐다. 야당이 국회에서 이를 이용해 아베 정권의 무책임을 강하게 추궁하고 있었다.

그런 때에 “일본인을 위한 보육원보다도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 학교를 우선시 하는 것인가”라고, 마스조에 지사는 세상의 거센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 비판에 ‘혐한파’인 극우파들이 합류했다. 마스조에 지사의 세타가야구 자택 근처에 극우의 가두선전 차가 출현해 요란하게 스피커를 틀어대며 비난활동을 하고 있다.

매스컴에서 마스조에 비판의 최선봉에 선 것은 우파의 <산케이 신문>이었다. 5월에 들어가면서 같이 우파를 대표하는 시사주간지 <주간문춘>이 비판 캠페인을 시작했다. 5월 후반부터 텔레비전 각국도 가세하게 되고 마스조에 지사는 매스컴의 총공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있자니 한때의 ‘혐한 붐’은 사라졌다고 해도 일본인의 ‘혐한감정’은 뿌리깊은 것이 되어 버린 듯하다. 덧붙이자면, 일본 최대의 ‘서점’이 되고 있는 아마존에서 한국 관련 서적의 베스트셀러 1위에서 10위까지를 보면, 아래와 같다 (숫자는 6월5일 시점에서의 순위).

1. 한국인이 쓴 치한론(韓國人による恥韓論)

2. 대만인이 본 일본과 한국, 병들어 있는 것은 어느 쪽?(台湾人から見た日本と韓國、病んでいるのはどっち?)

3. 미중 전쟁의 ‘버리는 말’이 된 한국(米中抗爭の「捨て駒」にされる韓國)

4. 한국인이 쓴 허한론(韓國人による噓韓論)

5. ‘반일 한국’의 고뇌(「反日韓國」の苦惱)

6. 악한론(惡韓論)

7. 지옥 같은 한국론(韓獄論)

8. 한국인이 쓴 침몰하는 한국론(韓國人による沈韓論)

9. 보한론(呆韓論)

10. 신판, 조선 카드 ‘상식을 넘은 나라에는 상식을 넘은 속담이 있다’(新版 朝鮮カルタ 常識を超えた國には常識を超 えたことわざがあった)

타이틀을 열거하는 내가 부끄러워질 만큼 감정적인 한국 비판 퍼레이드다. 이렇게 보면, 6월 22일 국교정상화 61주년을 맞이하는 한일관계는,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또다시 ‘내리막길’이어서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심정이다. 최근 2012년까지 주한 일본 대사를 맡았던 무토 마사토시 씨를 만나 한일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물었다. 무토 전 대사는 약 1시간에 걸쳐서 한일관계 및 한국에 대한 지론을 토로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현재의 일한 관계에 있어서의 최대 문제는 양국간 전략적인 대화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흉금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지극히 적기 때문에 일한 쌍방의 국익이 되는 비전을 구상할 수 없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중국에 대한 전략이다. 우선은 일한이 중국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열린 파트너가 되도록 힘을 합쳐서 후원해가는 수밖에 없다.

쌍방에 국익이 되는 비전이 없다


▎2014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마스조에 요이치 일본 도쿄도지사를 접견하는 박근혜 대통령.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중국에 대한 태도다. 한국은 지금까지 ‘중국과 안전보장상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은 북한에 대처하기 위해서다’라고, 일본과 미국에 설명해왔다. 그러나 한국이 아무리 가깝게 다가가도 중국은 진정으로 한국의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지 않는다. 1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고, 2월 장거리탄도 미사일 실험을 발사해도 중국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에 마지못해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강한 미국에 대하여는 신중하지만, 약한 아시아 각국에 대하여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나라다.

내가 한국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중국에의 종속 외교는 그만두고, 일본과의 긴밀한 제휴를 기반으로 국력을 비축하여 중국과의 교섭에 임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쪽이 중장기적으로 보아 훨씬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 역대 정권 중에서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정권은 모두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시절과 이명박 대통령 정권의 전기(前期)가 그에 해당한다. 반대로 반일을 내세우는 정권일수록 경제가 악화됐다. 따라서 긴밀한 일한 관계를 쌓고 양국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포인트는 아시아의 대국인 중국에 대해 한일이 어떻게 대치해나갈 것인가다. 올해 6월 일본은 외무성 수장이 ‘대한 강경파’인 사이키 아키타카 사무차관에서, 2000∼2004년에 주한 일본 대사관에서 공사를 맡았던 ‘지한파’의 스기야마 신스케 사무차관으로 교체됐다. 주일 대사도 예전에 게이오대 유학 경험을 가진 ‘지일파’인 이준규 대사로 교체됐다. 두 인사 모두 새로운 한일외교를 기대할 수 있는 전문가다. 일본은 현재 7월 10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선거 이후 다시 한일관계에 ‘서광’이 비추기를 기대한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슈칸겐다이(週刊現代) 특별편집위원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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