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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리포트] 미국 언론에 비친 ‘트럼프 현상’의 진실 

트럼프 현상은 세계의 현실이자 한국의 당면 과제 

워싱턴=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퍼시픽21’ 디렉터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의 테러는 트럼프의 승세에 호재로 작용... 뉴욕, 워싱턴에서 추가 테러가 발생한다면 공화당 대통령 탄생은 기정사실이 될 것

▎도널드 트럼프는 5월 26일 몬태나주 빌링스에서 승리해 1 대의원 과반을 확보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절치부심 힐러리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에 오르고, 소문처럼 들리던 트럼프는 어느 틈엔가 ‘현상’을 넘어선 ‘현실’로 나타났다. 각자의 입장이나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호불호와 관계없이 트럼프가 상승세인 듯하다. 이메일 사용(私用) 문제로 신뢰에 금이 간 힐러리는 내리막이다.

구글 검색란에 들어가 두 사람을 비교해봐도 상황을 알 수 있다. 6월 11일 오전 11시를 기준으로, 만 24시간 내 구글에 나타난 두 사람에 관한 정보의 양을 보자. 키워드로 ‘Donald Trump’와 ‘Hillary Clinton’을 검색창에 치면, 각각 2억9900만과 2억500만이 나타난다. 두 사람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인터넷 상에서 오르내리는 빈도를 보면 트럼프가 힐러리를 압도한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이지만, 스캔들·로맨스에 관계없이 웹에서 얼마나 화제가 되는지가 관건이다. ‘양으로서의 디지털 승리’는 ‘돈·명예·권력의 확보’로 이어진다.

21세기 미디어는 ‘언론의 정도(正道)’와 무관하다. 먹고, 입고 벗는 분야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확대하는 선동꾼으로도 비친다. 웹에 나타난 트럼프의 세(勢)를 바탕으로 한 찬미와 악담이 매스컴에 넘친다.

구글만이 아니라, 미디어 장악이란 측면에서 봐도 트럼프가 힐러리를 압도한다. 사실, 힐러리에 관한 뉴스와 생각은 지난 18년간 ‘지겹게’ 지켜봤다. 8년 전 오바마가 당선될 때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인 인물이 힐러리다.

트럼프가 대선에 나선다고 발표한 것이 지난해 4월이다. 당시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극소수다. 부동산 비즈니스를 위한 퍼포먼스쯤으로 해석됐다. 불과 1년 만에 공화당 간판이 된 인물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2016년 초여름, 트럼프는 글로벌 뉴스 메이커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를 대하는 시선은 결코 탐탁지 않다. ‘트럼프=막말 정치인, 인종차별주의자(Racist)’라는 이미지로 연결된다. 미녀 부인과 딸을 ‘동반한’ 재력가에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헤어스타일의 소유자이지만, 뭔가 반칙왕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주의 대부(代父)다. 20세기 근현대화와 21세기 정보화시대의 국가적 모델이 바로 미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반칙왕 대통령 후보가 등장해 상승세를 타고 있다.

대통령 당선에 유리한 인종차별적 발언


▎미국 올랜도의 나이트클럽 총격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을까? 9·11테러로 21세기를 열더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최근에는 이슬람국가(IS)와 전쟁에 돌입한 나라가 미국이다. 오랫동안 포성에 시달리다 보니까 아예 이성이 마비된 걸까?

결론부터 얘기하자. 막말 정치인, 인종차별주의자, 반칙왕으로서의 트럼프는 미국 밖에서 받아들여지는 ‘일반적 통상적’ 이미지에 그친다. 보통 미국민이 보는 트럼프는 막말 인종 차별주의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히스패닉과 이슬람 신자에 대한 적의를 숨기지 않는 트럼프지만, 다른 부분의 건설적인 얘기도 많다. 글로벌 비즈니스에 성공한 자신만만한 뉴요커인 동시에, 텔레비전 벤처 프로그램에 등장해 경영의 핵심을 집어내는 창업자 멘토의 이미지도 강하다. 듣기 거북하고 화를 불러일으키는 얘기도 많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약이 되고 득이 될 수 있는 인물이 트럼프다.

반칙왕 트럼프가 상승세를 타면서 힐러리의 강적으로 떠오른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마이너스보다 플러스가 더 많은 트럼프를 통해 더 좋은 미국이 탄생될 수 있다고 믿는 미국인이 결코 적지 않다. 사실 막말, 인종차별에 관한 부분은 미국 정치문화의 일상이기도 하다. 특별히 트럼프만 맛이 갔다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인종차별, 막말은 역대 미국 대선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88년 공화당 부시와 민주당 듀카키스 접전 당시의 인종 차별 선거 캠페인은 유명한 일화다. 41대 대통령 부시가 인종 차별의 주범이다. 성범죄자의 주말 휴가를 지지한 듀카키스를 ‘Weekend Pass’ 화신으로 묘사한 것이 부시의 네거티브 광고 핵심이다. ‘Weekend Pass’란 주말에 음식을 삼가는 그리스정교의 종교적 예법이다. 그리스 출신인 듀카키스를 공격하는 인종차별적 용어다. 광고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10% 정도 높은 지지율을 자랑하던 듀카키스지만, 이후 부시에게 밀린다. 듀카키스가 그리스 출신이란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지면서 가톨릭과 기독교인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평론가는 41대 부시는 물론, 레이건 대통령도 인종 차별적 발언을 구사해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신문·방송에 언급되는 트럼프의 이미지는 ‘전체’ 미국인의 의견이 아니라, ‘일부’가 보는 일방적 의견에 기초한 듯하다. 트럼프에 관한 긍정적 기사는 거의 없다.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2012년 12월 수상에 오를 당시의 보도 성향과 비슷하다. 반일정서 때문이겠지만, 당시 서울발 신문·방송은 우익 광신도 아베의 운명이 금방이라도 끝날 것처럼 보도했다. 아베는 현재 집권 4년째에 들어서 있다.

워싱턴발 서울 뉴스를 보면, ‘트럼프=무식하고 정신 나간 백인지상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포퓰리스트의 화신’에 머물러 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니다. 로마의 카이사르가 남긴 유명한 말이지만,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전부 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본능이자 습성이다. 모두가 비난하는 포퓰리스트 트럼프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공화당 최종 승자가 된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미국 현지상황을 고려한 주관적 판단이지만, 한국에 전달되는 트럼프에 관한 얘기는 전체의 30%에 그치는 듯하다. 봉사가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식으로 트럼프에 대한 ‘예단(豫斷)’이 횡행한다. 트럼프를 에워싼 갖가지 악의 요소를 들춰내면서 덩달아 미국과 미국민을 하대(下待)하는, 일종의 정신적 우월의식도 한국 신문·방송에서 느껴진다.

대선 이후 미국의 몰이해와 시대착오적 대응


▎뉴욕 할렘의 흑인 거주권은 이슬람 지역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프리카 출신의 이민1세대들은 무슬림을 기반으로 한다.
트럼프에 대한 예단은 한 개인에 대한 판단착오에 그치지 않는다. 2016년 11월 대통령 당선 이후 나타날, 변화된 미국에 대한 몰이해와 시대착오적 대응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의 변화만이 아니다. 힐러리가 당선된다 해도 트럼프가 남긴 흔적은 미국 정치에 그대로 남을 것이다. 트럼프는 정신 나간 개인 차원의 정치가가 아니다. 미국의 흐름을 대변하는, 아니 세계의 변화를 예견하는 아바타에 해당된다. 이슬람인 추방이라든가, 멕시코 국경 보호벽 건설 같은 발언이 막말이나 인종차별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실체가 막말과 인종차별로만 채워져 있다고 믿는 것도 어리석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3월 19일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열린 트럼프 집회 관련 소식이다. 미국 신문·방송을 보면 트럼프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트럼프 연설이 아닌, 불청객들에게 집중된다. 막말 인종차별주의자에 대한 히스패닉계의 반대 데모다.

당시 필자는 워싱턴 스포츠바에서 트럼프 망언 규탄시위를 지켜봤다. 해피아워 맥주를 주문하던 중, 반(反)트럼프 데모에 관한 CNN속보가 텔레비전 화면에 떴다. 데모가 시작되자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비난하는 히스패닉 억양의 사람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친(親)민주당, 친(親)마이너리티 성향이 강한 CNN에 걸맞은 보도지만, 옆에서 맥주를 마시던 젊은 흑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시의 스포츠바는 수많은 인종이 교차하는, 젊은 사람들로 메워진 곳이다. 수도 워싱턴이란 점에서 볼 때 결코 교육수준도 낮지 않을 것이다.

“저기가 미국인가?” “무슨 말인가?” “나는 트럼프 같은 선동꾼에게는 관심도 없다. 그렇지만, 저런 식의 행동은 참기 어렵다. 여기는 미국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이유를 물어봤다. 흑인은 손가락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켰다. 국기다. 자세히 보니까 멕시코 국기다. “미국 땅에 성조기는 없고 멕시코 국기가 난무한다.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여기는 미국이다. 너희 나라에서 멕시코인이 국기를 흔들면서 데모를 벌인다면 환영할 수 있나? 저 데모는 보통 미국인의 이해와 무관한 모임이다. 이해는 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기본적인 룰도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 상태가 현재의 미국이다.”

피닉스의 데모 기사는 한국 신문에도 크게 보도됐다. ‘막말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반(反)트럼프 정서 미국전역으로 확산’.

멕시코 국기에 대한 얘기는커녕, 히스패닉의 반트럼프 데모가 흑인을 포함한 다른 미국인에게 어떤 생각과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지에 대한 얘기가 어디에도 없다.

자세히 살피지 않는 한, 반(反)트럼프 정서가 미국 국민 전체의 입장처럼 느껴진다. 왜일까? 도시를 중심으로 한 리버럴 미디어가 가장 큰 배경에 있다. 반트럼프 정서에 주목하고 확대재생산하는 동인(動因) 중 하나가 바로 리버럴 미디어다. 월스트리트 부자나 텍사스 석유재벌과 같은 금수저에게는 폭탄세금을, 흑인·히스패닉·대학생·이민자와 같은 흙수저에게는 교육과 의료 혜택 나아가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는 곳이 리버럴 미디어다.

미국인은 [뉴욕타임스]보다 지방 텔레비전을 더 신뢰


지난 4월 미국 전역을 들끓게 한 성전환자 화장실 선택 문제는 리버럴 미디어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본보기 중 하나다. 성전환 이전의 생물학적 성에 기초한 화장실 이용만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보수파의 생각이다. 리버럴 미디어는 성전환자 개개인에게 화장실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당시 논쟁의 성격을 보수와 리버럴의 대결만이 아니라, 지방과 대도시의 갈등 나아가 장년과 청년간의 세대차로 해석했다. 원래 남성이던 사람이 성전환 수술 후 여성 화장실, 나아가 여성 탈의실에 출입한다고 할 때 어떤 느낌이 들까? 성전환자의 인권을 우선시할 수도 있겠지만, 딸을 둔 부모 입장에 선다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뉴욕타임스] [CNN] [MSNBC]와 같은 대도시권 미디어는 화장실 선택권을 성전환자에게 맡겨야만 한다는 식의 여론으로 몰아간다. 딸 가진 부모의 걱정은 쓸데없는 노파심, 나아가 성전환자에 대한 인권탄압 정도로 비친다.

미국은 넓은 나라다. 수도 서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한국과 달리 지방 분권이 강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텔레비전은 물론, [뉴욕타임스]라 해도 대도시권에서 영향을 발휘할 뿐 지방으로 가면 상황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미국민은 거주지 뉴스에 특화한 지방신문이나 지방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주목한다. 자신의 생활터전인 동시에, 현실적 이익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나는 뉴스나 현안은 멀고 먼 ‘당신들의 뉴스와 생각’에 불과하다. 지방 미디어는 보수를 지향한다. 청년들의 거주지인 대 도시와 달리 장년층이 많고 교회나 커뮤니티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도 지방 미디어가 보수화하는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미국민의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에 대한 신뢰도는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낮다. 미국민의 실업문제보다 이민자와 동성애 복지 향상에 더 신경을 쓰는, 리버럴 신문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보스톤에 위치한 세계적 여론조사 기관인 퓨(PEW, www.pewresearch.org)가 2010년 발표한 미디어 신뢰도에 대한 결과가 그렇다.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신문으로 통하는 [뉴욕타임스]를 보면, 대부분 믿는다가 20%, 대부분 불신한다가 15%대다. 가장 많은 미국인이 읽는 전국적 대중지인 [USA투데이]는 대부분 믿는다가 17%, 대부분 불신한다가 21%에 달한다. [뉴욕타임스]와 [USA투데이]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는 전체 조사대상 미디어 14개 가운데 13위와 14위로 최하 수준에 머물러 있다.(도표 참조)

설문에서 미국인이 가장 신뢰하는 미디어의 2위는 지역 TV뉴스다. 대부분 믿는다가 29%, 대부분 불신한다가 8%에 그친다. [뉴욕타임스]보다 지역TV뉴스나 신문을 더 신뢰하는 것이 보통의 미국인이다. 한국에 전해지는 정보의 대부분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대도시 신문에서 나온다. 뉴스의 종류나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퓨 설문 결과만을 본다면 보통 미국인의 상식에서 벗어난 정보에 해당된다. 따라서 한국에 전해지는 반트럼프 정서는 평균 미국인의 생각이라기보다, 대도시 리버럴의 주의주장에 기초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방의 생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미디어는 처음부터 논외(論外)다.

트럼프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리버럴 미디어가 주도한 반 트럼프 논리와 정서가 미국인 모두의 생각인 것처럼 포장돼 한국에 전해진다.

무신론자와 같거나 못한 존재, 이슬람신자


▎트럼프가 가는 곳의 불청객 중 하나가 히스패닉계다. 성조기가 아닌 멕시코 국기를 앞세운 시위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감정은 미묘하다.
둘째는 필자가 사는 지역 내 수퍼마켓에서 경험한 일이다. 트레이더 조(Trader Joe’s)란 곳으로 미국 전역에 457개 지점을 가진 중형 식료품 전문 수퍼마켓이다. 아시아인, 흑인도 간혹 볼 수 있지만, 주로 40대 이상 백인 중산층이 주고객이다. 1주일에 한 번은 들르지만, 언제부턴가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헤자브를 쓴 여성들이다. 남자와 자식 서너 명이 앞서 걸어가고, 헤자브 차림의 여성들이 따라가면서 물건을 구입한다. 일단 수적인 면에서 눈에 띄기 때문에, 다른 고객 대부분이 헤자브 가족을 주목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시선은 피한다.

헤자브 가족은 카트를 통로 중간에 둔 채 가족끼리 얘기를 나누거나 물건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통행에 불편을 준다. 그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지만, 뭔가 못마땅하게 느끼는 모습이 역력하다. 보통 트레이더 조의 직원들은 가벼운 인사나 대화를 통해 고객과의 친밀감을 높인다. 헤자브 가족은 예외다. 직원들이 계산대에서 접해도 별달리 대화가 없다.

이슬람을 대하는 미국인의 평균 시선은 ‘결코’ 곱지 못하다. 리버럴 미디어만 대한다면 이슬람이 가톨릭, 유대교와 동일한 듯 느껴진다. 일반 국민의 느낌은 크게 다르다. 지난해 1월 퓨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공화·민주, 보수·리버럴 관계없이 이슬람을 적대시한다.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호감도가 47%로 무신론의 46%보다 1%포인트 높을 뿐이다. 공화당 지지자의 이슬람에 대한 호감도는 33%로 무신론의 34% 보다 1%포인트가 낮다. 미국에서 무신론자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악의 상징이다. 이슬람신자는 무신론자보다 조금 낫거나 오히려 더 못한 존재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트럼프의 막말과 인종차별의 배경에는 이민문제가 드리워져 있다. 이민문제를 이슈화하는 과정에서 히스패닉과 이슬람신자를 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리버럴 미디어는 트럼프를 1930년대 히틀러에 비견되는 파시스트로 평가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다른 부분이다. 트럼프가 아닌 보통 미국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발상이다. 미국인들은 이민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 정치의 주도권은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1면 기사를 누가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 파시스트 여부를 떠나 트럼프는 1면을 선점하고 있다. 이민문제를 통한 1면 장악에 성공한 셈이다. 이민문제는 트럼프 상승세의 1등 공신에 해당된다. 보통 이민문제는 경제·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분석된다. 이민자가 들어서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범죄도 늘고, 고유의 문화도 엉망이 된다는 식이다.

트럼프가 제시한 이민문제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하면서도 특별한 요소를 하나 더 포함하고 있다. 심리적 부분이다. ‘이민=미국의 자존과 자아 상실’이란 식의 근본적 차원의 불안 심리다. 슬로건으로서의 이민자 보호는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인도주의의 실천에 해당된다. 평등, 인권신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헤자브 차림의 이슬람신자가 식료품 가게 안에서 길을 막고, 커뮤니티 수영장에서 옷을 입은 채 수영을 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코란을 읊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평등, 인권과 같은 슬로건에서 벗어나, 이민자가 나의 이웃으로 집 근처까지 진출한다면… 특히 그 같은 이민자들의 출신지가 테러나 마약과 관련이 깊은 인종이나 국가라면?

트럼프가 이민문제 이슈화에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경제·사회·문화에 속하던 이민문제를 심리적 공포로 연결시켜 현실적 문제로 만들어냈다는 점에 있다. 트럼프가 뜨기 전까지의 설문조사를 보면, 공화당 지지자로 이민문제를 시급현안으로 본 사람은 10%에 불과하다. 이슈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관심하다.

그러나 올 4월부터 트럼프가 뜨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월스트리트저널] 6월 8일자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의 69%가 ‘이민문제=국가적 시급현안’으로 답했다고 한다. 트럼프에 반대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47% 조차 이민문제를 국가적 현안으로 손꼽았다.

트럼프 상승세의 1등공신은 ‘이민문제’

경제·사회·문화가 아니라, 이민문제를 통해 자신의 세를 부풀리는 것이 트럼프 선거전략의 핵심이다. 불쌍하고 힘없는 외국인을 적으로 한 파시즘적인 발상이라 비난하겠지만, 필자는 다르게 본다. 트럼프가 선동해서 이민문제를 과장·확대했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민문제를 둘러싼 미국민의 불안심리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에 이민문제를 제1이슈로 만들 수 있었다는 논리다.

사실 심리적 차원에서의 반이민 정서는 미국보다 유럽이 한층 더 하다. 6월 23일 결과가 나오겠지만,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관한 국민총선거는 살벌한 현실을 반증하는 좋은 예다. 언뜻 봐선 영국인들이 EU 가입국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기 때문에 탈퇴에 나서는 듯하다. 틀리지는 않지만, 보다 근본적인 배경을 무시한 분석이다.

보다 큰 이유는 반(反)이민 정서에 있다. EU 내에 넘치는 북아프리카, 아시아의 이슬람권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다. 유럽내 국적을 취득할 경우 영국 내 진입도 가능해진다. 백인 유럽인에 대한 경계보다, 합법적으로 국적을 바꾼 이민자들의 영국 진입에 반대한다는 것이 EU 탈퇴의 진짜 이유다. 영국은 물론 유럽의 미디어는 그 같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있다. 잘못하다가는 인종차별주의자로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EU를 탈퇴할 경우 영국이 잃을 경제·정치적 손실은 엄청나다. 그러나 그 모든 손실에도 불구하고 테러에서 자유로운, 심리적 안정과 안심에 집중하자는 것이 영국인의 마음이다. 국민총선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만, 영국이 이민문제를 심리적 차원의 공포로 받아들인 이상 EU 탈퇴는 시간상 문제에 불과하다.

트럼프에 대한 이해는 미국 대선만이 아니라, 세계 정세를 정확히 분석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비난하고 눈 아래로 보는 자세가 아니라, 분석하고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트럼프 당선 여부보다, 트럼프가 뜬 원인과 배경을 글로벌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영국의 EU 탈퇴 문제만이 아니라 프랑스, 독일 나아가 서유럽 전체에서 불고 있는 반이민 정서가 왜 미국 대선과 연계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트럼프 현상, 아니 트럼프 현실은 가까운 시일 내 한반도로 밀어닥칠 것이다. 일본은 이미 재일 한국인을 증오의 타깃으로 삼으면서 일본판 트럼프 현상을 확산시켜나가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동남아시아인, 중국인, 조선족, 북한 주민 가운데 그 누가 타깃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한국이라고 해서 유럽·미국·일본에서의 트럼프 현실과 유리될 수는 없을 것이란 점이다.

21세기 글로벌리즘 시대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기해 역방향으로 나아갈 전망이다. 6월 12일 올랜도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의 테러는 트럼프의 승세를 위한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만약 뉴욕이나 워싱턴 같은 대도시에서 조직적 테러가 벌어진다면 트럼프 대통령 탄생은 기정사실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트럼프는 그 같은 불안한 현실의 최첨단에서 미국민들의 마음을 사고 있다. 따라서 인종차별 막말은 앞으로 한층 더 심해질 것이다. 트럼프에 대한 연구가 이성·합리적 수준에서 이뤄질 수 있다면, 왜 국민들이 그를 지지하는지 이해를 한다면, 미국 나아가 한국의 내일에 대한 준비도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정신 나간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다. 한반도 밖에서 강풍으로 몰아치고 있는, 변화된 세계와 시대의 징표에 해당된다.

- 워싱턴=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퍼시픽21’ 디렉터

201607호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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