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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트럼프 지기(知己)이자, 클린턴의 전 참모 딕 모리스의 동북아 책략 

“佛 핵무장 이끈 ‘드골의 상식’ 한국과 일본에 적용해야”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한국의 원폭 개발이 미국 안보에도 이익이라는 논리 설파할 필요… 트럼프 대선 승리시 한·일 핵무기 보유 이해하고 지원할 것”

▎딕 모리스는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한국의 안보가 한층 더 강화되리라 전망한다.
딕 모리스와 만난 것은 3년여 만이다. 필자의 친구로, 딕 모리스와도 잘 알고 있는 일본인 교수가 뉴욕에 들른김에 함께 만나게 됐다. 그동안 몸이 안 좋다는 얘기도 들렸지만, e메일로 연락했을 뿐 직접 얼굴을 마주한 것은 오랜만이다. 필자에게 딕 모리스는 업무상 보스에 해당하는 동시에 미국 정치의 흐름을 짚어주는 멘토이기도 하다. 찾아간 곳은 딕 모리스의 코네티컷 집이다. 뉴욕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딕 모리스의 여름별장에 해당한다. 겨울에는 플로리다주의 별장에, 보통 때는 뉴욕 맨해튼에 머문다.

저녁을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받는 순간 만사 제쳐두고 곧바로 달려갔다. 미국 대선, 특히 트럼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미국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딕 모리스는 선거와 정책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로 통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참모이자 정책 어드바이저로, 1996년 클린턴 2기 집권의 일등공신으로 통한다.

지금까지 30명의 상원의원과 주지사의 선거참모로 일했고, 러시아를 비롯한 5개 나라 지도자의 선거운동에도 직접 관여했다. 필자는 5개 나라 중 일부를 도와주는 과정에서 딕 모리스와 연(緣)을 맺었다. 함께 일을 하는 동안, 미국 정치만이 아니라 정책 개발이나 정책 분석에 관한 수많은 노하우를 배우게 됐다. 엄청난 미식가이기에 레스토랑을 전전하는 동안 음식이나 와인에 대한 견문도 넓히게 됐다.

딕 모리스의 코네티컷 별장은 작은 기념관이나 박물관으로 느껴졌다. 호수에 바로 인접한 집으로, 정원이 엄청 넓다. 2010년 뉴욕주 베드포드힐스로 옮긴 집은 클린턴 부부 집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집의 규모는 보통 크기였지만, 70세에 달한 나이를 고려해 가정부와 정원사가 24시간 근무한다고 한다. 집에 찾아가자 딕 모리스의 아내인 아이린(Eileen)이 반갑게 맞아줬다.

딕 모리스는 헝가리계 유대인이다. 아이린은 아일랜드 출신으로 원래 워싱턴에서 로비스트로 일한 여성이다. 두 사람은 뉴욕 콜롬비아 대학 재학 중에 만났다. 아이린은 함께 책도 내고, 딕 모리스를 정신적으로 지켜주는 강한 캐릭터의 여성이다. 저녁은 밤 7시부터 10시까지 계속됐다. 딕 모리스가 아끼는 캘리포니아산 화이트와인과 함께, 아이린이 직접 만든 음식이 제공됐다. 미국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는 일은 극히 드물다. 고학력자로 올라갈수록, 대부분의 미국 여성은 요리와 무관하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배신자로 불러


▎트럼프는 저비용에 기초한 경제적 선거를 치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얘기의 중심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로 흘러갔다. 딕 모리스는 클린턴과 일하는 동안 힐러리를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클린턴과 힐러리에 관한 얘기는 15년 전 필자가 딕 모리스와 처음 만났던 때부터 들어온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처음 듣는 얘기가 많다.

주름살 지우기 성형수술을 한 힐러리가 얼굴 마스크를 한채 백악관 오벌하우스에 나타났다…. 클린턴은 타이프라이터는 물론 컴퓨터 좌판도 전혀 사용할 줄 모른다…. 클린턴은 생선을 먹어본 적이 없다. 최고 좋아하는 메뉴는 햄버거다. 맥도날드 햄버거만으로도 세 끼를 해결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딕 모리스는 힐러리 공격의 제1선에 선 인물이다. 민주당 대통령 클린턴을 위해 일했지만, 1996년 백악관을 나온 뒤부터는 공화당의 열혈 지지자로 변한다. 선거참모로서 일하는 고객의 대부분도 공화당 정치가다. 1998년에는 힐러리가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이란 예언도 한다. 공화당 지지자라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힐러리의 약점을 미국 국민에게 알린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딕 모리스를 배신자라 부른다. 힐러리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인물이 바로 딕 모리스다.

딕 모리스는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와도 잘 아는 사이다. 1946년생인 트럼프와는 같은 뉴욕 출신이자 동갑내기로, 어릴 때부터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친구다. 이른바 죽마고우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독일계 부동산업자로, 딕 모리스 아버지는 뉴욕을 대표하는 유대계 변호사로 함께 일했다고 한다. 사람들로 터져나가는 뉴욕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서로가 통한다.

두 사람은 겨울이 되면 플로리다에 있는 딕 모리스 별장 근처에서 자주 만난다고 한다. 트럼프 빌딩이 딕 모리스 별장 근처에 있기 때문에 함께 술도 마시고 식사도 하는 사이다. 아이린은 트럼프가 아주 소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남의 얘기를 잘 안 듣는 것이 흠이지만,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낙천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딕 모리스와의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진 대화를 종합한 것이다. 저녁식사 때 나눈 얘기가 배경에 있지만, 1주일 뒤 정식으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 주된 것이다. 와인 5병을 함께 마시면서 나눈 얘기도 흥미롭지만, 보스나 지인이 아닌 정치평론가 딕 모리스의 ‘공적인’ 의견이 한층 더 정확하고 객관적일 듯하다. 얘기는 트럼프에서부터 시작됐다.

트럼프 현상에 대해 묻고 싶다. 셀리브리티 수준의 트럼프가 한순간에 미국민에게 어필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글로벌리즘에 대한 반발이다. 이민이나 무역 정책, 중국 부상과 같은 문제들은 1990년대부터 불어닥친 글로벌리즘의 결과에 해당된다. IMF(국제통화기금)나 유엔은 글로벌리즘이란 명분 아래 미국·유럽 나아가 한국(웃음)과 같은 나라에 글로벌 교두보를 확보한다.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같은 것이 가장 좋은 예다. 이들 경제체제는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이민이나 문화적 문제로 확산된다. 특히 멕시코와의 자유무역을 통해 미국 내 수백 만의 시민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미국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인 손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는 그 같은 미국민들의 고민과 고통에 적절히 응하면서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트럼프 현상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판단한 데 따른 결과다.”

힐러리 우세 전망은 ‘무지와 왜곡’의 결과


▎1. 미 오하이오주 기념품 판매상에 걸린 배트맨과 트럼프 가면. 시골로 갈수록 트럼프가 강세를 점한다. / 2. 대학생 학비 공짜는 샌더스의 공약이다. 힐러리 클린턴도 공립대학의 무상학비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국 신문·방송 기사를 대하면 민주당 후보 클린턴은 이미 11월 선거에서 압승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정책이 미국민들에게 어필하는지에 대한 분석보다는 공화당 트럼프 후보를 둘러싼 가십성 얘기만 넘친다. 옥수수머리의 트럼프는 막말 인종차별주의자로 찍힌 지 오래다. 미국 지성들은 물론이고 미국민들이 트럼프를 공격한다. 서울에서 보면 이미 승부가 끝난 것이 2016년 미국 대선이다.

부분적으로 맞는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무지와 왜곡’의 결과다. 미국 정치를 한국 정치에 익숙한 눈으로 보기 때문에 생긴 엄청난 착시다. 미국은 넓은 나라다. 서울이 지방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한국적 정치환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워싱턴·뉴욕·시카고·샌프란시스코에서 횡행하는 대도시의 논리는 지방의 여론과 다를 수 있다. 크게 보면, 대도시와 지방의 여론이나 선거에 임하는 자세는 상극 관계라 봐도 된다. 한국에 전달되는 뉴스의 90% 정도는 대도시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대학에 못 간 절반 이상의 미국인이 아닌, 박사 출신 지식인을 통한 고견이 대부분이다. 9월 초, 트럼프가 클린턴을 누르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타났지만, 한국인이 보면 의아스럽게 느낄지 모르겠다. 히스패닉과 무슬림에 대한 강성 발언을 고려하면 표가 떨어져도 한참 떨어졌을 법한데, 어떻게 트럼프가 클린턴을 누를 수 있을까?

당신은 백악관에서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을 지켜본 사람이다.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녀를 어떻게 보는가?

“기본적으로 힐러리는 아주 강한 여자다. 가정에서 과자를 굽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고전적 의미의 여성과 거리가 멀다. 그런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힐러리는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부정부패에 연결되게 된다. 1979년 남편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로 일할 당시 힐러리는 변호사 자격으로 가축업체의 환경문제에 관여하게 된다. 당시 힐러리는 업계와 만나는 과정에서 1000달러를 투자한다. 이후 10개월 만에 10만 달러의 수익을 돌려받는다. 수익 관련 정보를 미리 알고 투자했을 수도 있겠지만, 가축업계의 로비의 결과로 10개월 만에 100배 수익을 올렸다고 볼 수 있다. 힐러리가 남편을 통해 처음으로 사회생활에 적극 관여하면서 나타난 첫 번째 사건이 바로 10만 달러 수익 문제다.”

2016년 미국 대선의 주인공은 트럼프다. 싫든 좋든 신문의 1면은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다. 미디어 장악이란 측면에서 볼 때 힐러리는 한참 뒤져 있다. 너무 군불을 지핀 탓인지 힐러리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다. 지킬하이드 여부를 떠나 트럼프 얘기가 대중을 파고 든다. 21세기 영화·소설·드라마의 공통점이지만, 착한 캐릭터가 항상 주인공인 것은 아니다. 악동일수록 한층 더 흥미진진하다.

당신은 힐러리와 트럼프 모두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아주 드문 사람에 해당된다. 당신이 직접 경험하면서 느낀 두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 알고 싶다.

“힐러리는 아주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인물이다. 뭔가 비밀에 집착하고 남에게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극도의 집착증(Paranoia)을 가진 여성이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는(웃음) 성격의 소유자다. 항상 뭔가를 숨기려고 애쓴다. 트럼프의 경우 뭔가 새롭게 만들어가는 사람(Developer)이라 볼 수 있다. 사람과 자원을 이용해 건물을 그리고 도시를 창조해가는 외향적 캐릭터의 소유자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과정에서 사물을 낙관적으로 보고, 뭔가를 성취해나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힐러리가 전 생애를 통해 공공의 돈으로 화려한 삶을 유지한 데 비해, 트럼프는 자신이 직접 일하면서 창조해 낸 자본으로 인생을 꾸려왔다.”

정치참모, 정치평론가, 선거전략가 딕 모리스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15권을 출간해 10권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인세만으로도 백만장자 대열에 오른 인물이 딕 모리스다. 지난여름에는 <아마겟돈(Armageddon:최후의 격전)>이란 이름의 책을 발간해 곧바로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려놓는다.

최근 발간된 당신의 저서 <아마겟돈>이 다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3개월 간 수십만 부 이상 팔린 걸로 아는데, 책의 부제가 ‘어떻게 하면 트럼프가 힐러리를 이길 수 있는가(How Trump can beat Hillary?)’이다. 어떻게 하면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가?

“지금까지 해왔던 공화당 후보 스타일의 선거 캠페인으로는 힐러리를 이길 수 없다. 권투에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오른손 잽이나 훅과 같은 것으로 승부를 내기보다 왼손 공격도 병행하는 것이 승리로 이르는 길이다. 민주당 후보 버니 샌더스가 보여줬던 식의 정책을 통한, 왼손 훅과 같은 공격이 트럼프에게 필요하다. 명심해야 할 점은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주 대표의 46%가 샌더스를 지지했다는 부분이다. 민주당과 무당파(independent)의 경우 반(反)힐러리 정서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샌더스가 보여준 정책을 트럼프가 도입할 경우 힐러리에 반대하는 민주당표도 확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에 대한 공격, 대형은행이나 기업에 대한 증세 같은 정책은 샌더스가 아닌 트럼프가 주도한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민주당 내 반힐러리 세력들은 기꺼이 트럼프 지지로 돌아설 것이다.”

트럼프, 버니 샌더스의 정책 활용한다면 승산 높여


▎클린턴은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을 확보했지만 다수를 이루는 백인 저소득층에서 약세를 보인다.
대선에 임하는 미국인의 자세는 단 하나의 이유나 배경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은 물론, 주변 나아가 국가적 차원의 이슈를 전부 고려한 끝에 결정한다. 그럴듯한 루머나 사진 한 장에 확 바뀌는 여론이 아니다. 트럼프의 인종차별 발언이나 멕시코 국경선 장벽 설치가 비난의 대상이 되긴 하지만, 결코 여론의 전부는 아니다. 힐러리와 관련해 3만 건이 넘는 e메일에 대한 불신만이 아니라, 월스트리트와 IT재벌을 통한 엄청난 기부금 모집도 보통의 미국인들이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클린턴재단, 국무성, 클린턴 전 대통령을 둘러싼 3각관계는 법적으로 문제시 될 수 있는 어두운 행적들이다. 트럼프의 막말 행진이 지나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클린턴 스캔들을 대하는 미디어의 관심은 지극히 약하다. 폭스채널과 같은 일부 보수계 미디어를 제외할 경우, 트럼프 때리기 경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클린턴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커질수록 트럼프에 대한 막장 기사가 뉴스의 주인공으로 떠오른다.

힐러리 선거전략을 볼 때 어떤 특징이 있는가?

“힐러리는 단기전을 통한 선거전략에 집착한다. 트럼프를 공격하는 식의 정책이 그것이다. 위험하다, 인종차별주의자다. 정신이상자다… 그런 식의 비난으로 선거운동에 나선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통해 트럼프의 연설을 들어보라. 정제되지 않은 말이 있기는 하지만, 트럼프만큼 현실에 기초해 진지하게 얘기를 이어가는 사람도 드물다. 힐러리의 비난만 경청한 사람이라면 트럼프를 욕하겠지만, 한 번이라도 트럼프의 연설이나 집회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힐러리의 추상적이고도 일방적인 비난에 동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힐러리의 입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층 더 곤란해질 것이다. 힐러리는 8년간 오바마 정권에서 일했다. 오바마가 잘했던 점, 못했던 점 모두를 힐러리가 껴안고 가야 한다. 경제·안보·의료 등 모든 문제에 관해 오바마와 비슷한 정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 국민 가운데 오바마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힐러리는 반(反)오바마 세력에 대한 새로운 메시지를 전할 수가 없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트럼프 비난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다.”

퍼주기 복지는 서울시나 한국만의 전매품이 아니다. 샌더스는 교육·의료 등의 전면적 국가 지원을 공약으로 내세운 인물이다. 샌더스를 닮으려는 한국 정치가라면 그의 내일이 궁금할 듯하다.

힐러리는 다운타운, 트럼프는 미드타운의 ‘대표’


▎1. 딕 모리스가 지난여름 발간한 <아마겟돈>. 힐러리를 공격하는 내용을 담았다. / 2. 코네티컷 자택 뒤편의 호수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딕 모리스.
2016년 선거에는 트럼프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자에 가까운 버니 샌더스가 등장한 해다. 샌더스의 생각은 2016년 이후에도 미국 정치에 이어질 것인가?

“트럼프와 샌더스의 등장은 여러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다. 양당제에 대한 회의나 반발은 중요한 잣대에 해당된다. 트럼프는 공화당 중앙지도부가 지지한 플로리다 주지사 출신의 젭 부시를 누르고 공화당 후보가 됐다. 샌더스에 대한 인기도 힐러리를 지지하는 민주당 중앙 지도부에 대한 반발의 결과라 볼 수 있다. 샌더스를 가졌다고 해서 민주당 중앙 지도부에 대한 반발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16년 선거 이후 공화·민주 양당의 중앙 지도부의 위상이 아주 약화될 것이다.”

딕 모리스는 100% 뉴요커다. 죽마고우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딕 모리스는 자본주의 총본산 뉴욕을 크게 두 개 권역으로 나눈다. 다운타운의 월스트리트 증권가와 미드타운의 부동산·유통·식품권이다. 둘은 서로가 미국 경제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을 구축하는 방법이나 관련자들의 비즈니스 사고가 전혀 다르기에 경쟁은 물론 서로를 불신한다. 다운타운의 월스트리트는 머리와 네트워크, 미드타운의 부동산·유통·식품은 몸과 땀이다. 힐러리가 다운타운, 트럼프가 미드타운의 대표라는것이다.

앞으로 공화·민주 양당의 사령탑이 정당 지도부로서의 기능을 못한다는 말인가?

“당장, 과거에 행했던 식의 정치, 정책이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공화당의 경우 석유산업에 대한 전면적인 지지가 상식적으로 통해왔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다. 환경, 지구온난화 문제도 생각해야 하고, 대형 기업인 석유산업만이 아닌 소규모 영세업자의 이익도 감안해야만 한다. 민주당의 경우 빈자(貧者)와 마이너리티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활동해왔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부자나 가득권에 대한 지지와 지원도 많다. 앞으로 민주당 내의 정체성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며, 더불어 중앙 지도부의 위상도 약화될 것이다. 중앙의 일방적인 목소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정치기부금으로 볼 때 8월 한 달 동안 힐러리는 2억3000만 달러를 쓸어담은 데 반해 트럼프는 7400만 달러를 모으는 데 그쳤다. 미국 정치에는 돈이 절대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전당선, 무전패배다. 기억에도 새롭겠지만 오바마는 선거기부금 모집이란 측면에서 세계신기록 보유자다.

8월 한 달 동안에도 힐러리가 3배나 많은 기부금을 모았다는 점에서 선거결과가 뻔하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새로운 선거문화, 정치실험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중요한 요소라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트럼프는 백만장자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을 돈으로 사려고 하지 않는다. 정치광고에 쓰는 돈도 엄청나게 적고, 지지자를 통한 선거운동에도 별로 투자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돈을 아끼면서 하는 선거가 트럼프를 통해 나타나고 있다. 돈이 안 드는 정치, 돈이 필요 없는 선거를 트럼프가 직접 실천하면서 미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선거자금 문제는 미국 정치무대에서의 핫이슈 중 하나다. 트럼프 선거방식은 그 같은 논의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저비용에 기초한 경제적 선거가 2016년 대통령 선거의 새로운 모델로 나타나고 있다.”

흑인·히스패닉 전부 버려도 ‘뒤처진’ 백인으로 만회


▎9월 9일 북한 평양 기차역 인근에서 주민들이 대형스크린을 통해 당국의 핵실험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그 누구도 뒤처지지 않도록(No one left behind)’. 미국 초·중·고교에 정착된 교육이념이다. 모두가 함께 평등하게 나누면서 앞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다. 뒤처진 사람을 도와주면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자는 환상적 슬로건이기도 하다. 고상한 미사여구에 취할지 모르겠지만, 구체적 내용으로 들어가면 달라진다. 뒤처진 사람에게는 좋겠지만, 앞선 사람에게는 결코 탐탁지 않은 발상이기 때문이다. 인종적으로 볼 때 백인은 앞선 사람 대열에 들어간다. 마이너리티 즉 흑인·히스패닉·무슬림은 백인에 비해 뒤처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흑인·히스패닉·무슬림들은 백인의 희생에 의해 뒤처지지 않고 함께 나갈 수 있다. 문제는 기득권은커녕, 나눌 만한 것도 아예 없는 뒤처진 백인이다. 백인이라 해서 전부 잘 먹고 잘사는 것은 아니다.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마이너리티 수준보다도 낮은 백인도 많다. 바로 트럼프 지지자들이다. 트럼프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다. 흑인의 80%, 히스패닉의 70% 이상이 철옹성 민주당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전부 버려도 뒤처진 백인을 통해 만회할 수 있다.

트럼프의 저비용 선거가 미국 미디어의 주목을 받은 것을 본 적이 없다. 거꾸로 인종차별주의자에게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부정적 기사가 많은 듯하다. 미디어가 지나치게 리버럴하다는 평가도 있는데?

“리버럴 미디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를 공화당 후보로 만들어낸 일등 공신은 사실 리버럴 미디어들이다. 트럼프를 악마에다 괴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어떤 후보자들보다도 많은 시간을 트럼프에 할애했다. 덕분에 공화당 내 경쟁자 모두를 물리치고 최종 승자가 된 것이다. 원래 돈 많은 탤런트 수준이었지만 리버럴 미디어 덕분에 2016년 대선 하이라이트 뉴스메이커로 자리 잡은 것이다. 힐러리에 대한 리버럴 미디어의 일방적 지지는 트럼프를 정상으로 끌어올린 데 대한 뒤늦은 ‘후회’의 반작용이라 볼 수 있다. 트럼프를 악마로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힐러리를 2016년 대선 당선자로 만들려는 것이 미국 미디어의 실상이다. 미국 국민들은 리버럴 미디어의 ‘편견(Bias)’을 충분히 잘 알고 이해하고 있다. 모스크바 라디오나 북한의 김정은 찬양 방송을 대하는 식이라 보면 된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CNN은 리버럴의 대명사다. 선거 관련 방송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 출연자의 절반 이상이 흑인이나 마이너리티다. 2016년 미국의 인구 3억2000만 명선이다. 이 가운데 백인은 62%, 흑인은 13%, 히스패닉은 17% 정도다. 흑인, 히스패닉을 비롯한 마이너리티를 전부 합쳐도 38%다. 정상적으로 치자면 출연자의 10명 중 6명이 백인, 나머지 4명은 마이너리티에 분배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다. 대략 백인 1명 당 마이너리티 2명 정도가 출연해 뉴스를 이끌어간다. 뉴스 진행자만이 아니라, 토론에 참여하는 논객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접한 트럼프 관련 아침 토론회에는 흑인이 6명, 백인이 1명 등장했다. 오바마에 대한 ‘용비어천가’는 이들 마이너리티의 공통분모이기도 하다.

오바마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이 50%를 넘어서 있다. 그가 남긴 업적, 오바마 레거시(Legacy)는 앞으로 어떻게 평가될까?

“나는 구체적으로 오바마 레거시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의 지지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힐러리에 대한 리버럴 미디어의 편견과 연결돼 있다고 보면 된다. 힐러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과정에서 동병상련 관계인 오바마에 대한 공격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정책이 퇴임 후에도 유지되고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의료개혁의 경우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고 의료보험회사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향후 계획대로 실시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애매한 정책도 오바마가 퇴임하는 즉시 다른 길로 들어설 것이다. 지구온난화 정책에 관한 문제도 해결점도 없이 숙제만 잔뜩 만들어 놓은 상태다. 오바마가 수많은 어젠다와 정책을 선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한 것들이 과연 성공을 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이란도 원폭 무장… 한·일은 미국에 더 미더운 나라


▎딕 모리스와 부인 아이린(가운데)은 그들이 가장 아끼는 명화를 배경으로 필자(왼쪽)와의 기념 촬영에 응했다.
9월 초 워싱턴에는 일본 정치인과 외교 전문가들로 터져 나간다. 2016년 11월 이후 닥칠 안보구도 변화에 대한 예비조사차 들른 것이다. 한국은 언제나처럼 무관심하다. 트럼프 당선은 한반도 안보구도의 큰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설마라는 심정으로 한국 관련 막장 발언을 다루고 있지만, 힐러리가 당선된다 해도 결코 적지 않은 변화가 일 전망이다.

한국 입장에서 볼 때 트럼프 당선은 악몽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당선될 경우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돈이다.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 더 많은 국방비를 지불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나 경제적 여건으로 볼 때 한국과 일본은 더 지불할 수 있고, 또 더 지불해야만 한다. 두 번째 트럼프가 생각하는 것은 장기적 차원의 동아시아 안보체제 구축이다. 단적으로 말해 미군 없이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수준의 국방력이다. 바로 원자폭탄 개발이다. 두 나라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억지력 수준의 원자폭탄 개발이 필요하다. 트럼프는 그 같은 상황을 이해하고 지원할 것이다.

북한은 전쟁을 벌일 경우 서울을 먼저 공격할 것이다. 이때 미국이 앞장서서 북한을 공격할까? 로스앤젤레스로 향할 북한발 원자폭탄을 감수하면서까지 북한에 보복성 공격을 한다는 것은 미국 내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 일본 스스로가 원폭을 가질 경우 북한도 서울에 공격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에는 이란도 원폭을 갖고 있는 상태다. 미국의 우방인 한국과 일본은 이란에 비해 믿을 수 있는 나라다.

억지력을 갖춘 원폭 개발은 한국·일본만이 아닌, 미국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전후 프랑스의 샤를 드골 수상은 자국의 원폭 개발 필요성을 미국 정치가들에게 수차례 강조했다. 미국은 ‘왜 원폭이 필요하냐? 우리가 대신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드골의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테러리스트가 원폭으로 파리를 공격할 경우 미국이 뉴욕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구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프랑스산 원폭을 통해 파리를 지킬 수 있고, 더불어 뉴욕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드골의 답변은 상식선에서 볼 때도 타당하다. 트럼프는 그 같은 상식을 한국과 일본에 실현시킬 것이다.”

9월 7일 는 처음으로 공화·민주 후보를 불러 그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힐러리와 트럼프가 직접 부딪치는 토론회가 아닌, 따로 불러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듣는 포럼 형식이다. 2016년 제1회 대선후보 토론회의 주제는 무엇이었을까? ‘Commander in Chief’ 즉 국군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이다. 경제·사회·복지가 아닌 안보문제가 가장 먼저 논의된 것이다. 질문자로 장군, 여군, 퇴역 군인들이 후보자를 에워싼 채 질문을 던졌다.

이번 미국 대선을 통해 특히 한국 정치인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트럼프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오바마가 보여준 한반도 정책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보다 적극적이고도 직접적으로 북한 문제에 관여할 것이다. 트럼프는 이미 그런 의향을 수차례 비춘 바 있다. 북한 핵을 막기 위한 방어시스템 확보도 한층 더 강화할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경우 한국의 안보도 더 강화될 것이다.”

딕 모리스는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경우 미국 땅을 떠나겠다고 <팍스> 뉴스를 통해 공언했다. 만약 트럼프가 지면 어디로 갈지를 물어봤다. “뉴질랜드. 인터넷망도 좋고 공기도 좋은 곳이다. 힐러리 뉴스도 볼 수 없는 곳이다.” 전체적으로 딕 모리스는 트럼프에 걸고 있는 듯하다. 선거가 끝난 12월, 딕 모리스가 어디에 살지 궁금해진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201610호 (201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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