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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화제] 제국(帝國) 일군 창업주들의 은퇴 속사정 

셀트리온 서정진의 배수진 ... 넥슨 김정주의 엑시트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서 회장의 2020년 조건부 은퇴는 “마지막 허들 넘겠다”는 의지 표현
김 대표의 NXC 지분 매각 시도는 ‘게임업계 떠나겠다’는 뜻으로 읽혀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왼쪽 사진)과 김정주 NXC 대표가 은퇴를 시사했다. 서 회장은 2020년까지 그룹의 소유와 경영 분리를 목표로 잡고 있다. 김 대표는 넥슨의 경영권 매각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정진(62) 셀트리온 회장과 김정주(51) NXC 대표가 2019년 새해 벽두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의 사전적 의미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냄’이다. 두 창업주의 은퇴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까지만 해당한다.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낼’ 생각은 없어 보인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둘의 은퇴 선언은 타이밍의 의외성을 떠나서 그 배경과 의도에 세인의 관심이 집중된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시작해서 둘은 ‘제국’을 건설했다. 2002년 직원 2명으로 출발한 셀트리온은 삼성 바이오로직스와 쌍벽을 이루는 한국 대표 바이오회사로 우뚝 섰다. 현재 직원 숫자는 1500명. 셀트리온의 코스피 시가총액은 약 26조원(2019년 1월 15일 기준)에 달한다. 2018년 1월 8일 셀트리온은 현대자동차와 포스코를 넘어 시가총액 3위(37조1066억원) 기업으로 올라서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이 셀트리온보다 위에 있었다.

서 회장은 “내 재산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포브스] 보고 알았다”고 1월 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포브스]는 서 회장의 재산을 110억 달러로 추산했다.

김정주 대표는 1994년 게임회사 넥슨을 창업했다. 김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대학원에서 전산학과 석사를 받았다. 넥슨 창업 후 1996년 ‘바람의 나라’를 시작으로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김 회장은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게임 개발보다 M&A(인수합병)에 더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2004년 인수한 위젯스튜디어에서 메이플 스토리를, 2008년 인수한 네오플에서 ‘던전앤파이터’란 메가 히트작이 나왔다. 넥슨은 여세를 몰아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됐다. 넥슨의 시가 총액(2019년 1월 15일 기준)은 13조원이 넘는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Bloomberg Billionaires Index)는 2019년 1월 9일 김 대표의 자산가치를 50억5000만 달러로 평가했다.

그가 대표이사로 있는 NXC는 넥슨의 지주회사다. NXC의 지분 98.28%를 김 대표와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다. 나머지 1.72%는 와이즈키즈라는 회사 소유다. 이 회사는 김 대표의 가족회사다. 사실상 NXC는 100% 김 대표 회사다. NXC는 넥슨 지분의 47.98%를 갖고 있다. 따라서 김 대표가 넥슨을 매각한다면 보유 지분 가치만 6조2000억원을 넘는다. 여기에 NXC가 보유한 자회사들의 가치와 경영권까지 더하면 매각액은 10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 대표와 서 회장은 1월 4일 나란히 은퇴 시사 발언을 꺼냈다. 시기적으로 비슷할 뿐, 발언의 결이 다르다. 김 대표는 한국 게임업계 1등 회사 넥슨의 지분을 팔고 완전히 떠나겠다는 포지셔닝이다. 반면 서 회장은 “2020년까지 셀트리온을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키워내겠다. 그리고 2020년이 끝날 때 회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방점은 ‘은퇴’가 아니라 ‘글로벌 셀트리온’에 찍힌다. 이 때문에 둘이 같은 어휘를 구사했음에도, 김 대표의 은퇴 예고가 업계에 미치는 파장 면에서 더 격하게 표출되고 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의 은퇴 예고는 ‘조건부’라고 봐야 타당하다. PR 능력이 탁월한 서 회장은 ‘은퇴’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서 세상의 이목을 끈 다음에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을 했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의 앞에 놓인 마지막 허들”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됐다. ▷글로벌 직판체계 구축 ▷바이오시밀러 램시마SC의 2019년 출시 ▷중국시장 진출 ▷케미컬 의약품 분야에서 에이즈 치료제 ‘테믹시스’ 판매 ▷인천 송도에 제3공장(12만ℓ) 건설 ▷해외 제4공장(24만ℓ) 건설지 결정 ▷바이오 의약품 위탁개발사업(CDMO) 추진 등, 굵직한 현안들이 놓여있다.

은퇴로 이목 끌고 현안을 강조


▎문재인 대통령(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15일 청와대에 재계 주요 기업인들을 초청했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맨 오른쪽)은 국내 굴지기업 총수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 사진:연합뉴스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의 다양화를 통한 ‘글로벌 비즈니스 확장’, AI 원격진료 등 ‘4차 산업혁명 대비 신사업 구상’은 그룹의 미래가 걸린 사안이다.

이 시국에 나온 서 회장의 은퇴 발언은 ‘2020년까지 시한을 걸어놓은 만큼 치열하게 일하겠다’는 절박함에 다름 아니다. ‘모든 것이 다 잘되면 2020년쯤 셀트리온은 내가 2선에서 챙겨도 괜찮을 만한 안정적 위상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셀트리온에게 향후 2년은 기회이자 위기의 시간이다. 기회와 위기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셀트리온이라는 회사가 어떻게 이렇게 성장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2002년 탄생한 셀트리온은 이미 2005년부터 [포브스] 아시아판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유망한 기업이었다. 당시 셀트리온은 코스닥(2018년 2월 코스피 이전)에 상장돼 있었다. 이때 이미 셀트리온 시가총액은 130억 달러, 그의 재산은 2억5000만 달러였다. 이때만 해도 셀트리온의 수입원은 CMO(의약품위탁생산) 비즈니스였다. 즉, 아직 셀트리온의 ‘진짜 대박’이 터지기도 전이었다.

셀트리온의 진짜 대박은 바이오시밀러에서 창출됐다. 바이오시밀러는 셀트리온 성장의 마법을 부렸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의 개념을 알아야 셀트리온이라는 회사가 보인다.

예를 들어 비아그라가 있다. 이 약은 미국의 글로벌 제약회사 화이자에서 만든 오리지널 발기부전 치료제다. 신약엔 특허권이 부여된다. 그런데 특허엔 만료 기간이 있다. 그 시한까지 독점권을 인정하되 그 이후엔 다른 제약사에서 복제약을 만들 권리가 허용된다. 이를 테면 팔팔정이 그렇다. 화학적으로 두 약은 같은 성분이다. 그래도 비아그라가 더 비싸다. 초기 연구개발에 워낙 많은 돈을 들였고, 브랜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복제약은 가격경쟁력에서 비교 우위를 가질 수 있다.

이 원리를 바이오 약에 적용하면 바이오시밀러의 시장성이 발생한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인 바이오 신약보다 약 30% 저렴하다. 약은 크게 바이오와 케미칼, 두 종류로 나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약의 대부분은 케미컬이다. 앞에서 사례로 든 비아그라도 케미컬 약이다. 화학 성분이 응축돼 있다. 반면 바이오는 비유하면 유기농에 해당한다. 인체친화적 자연 성분으로 제조된 약이다. 당연히 바이오 약의 효능이 더 좋고, 몸에 미치는 부작용도 적다. 그런 만큼 훨씬 비싸다.

선진국 시장을 노리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에 바이오 약은 블루오션이다. 미국의 존슨앤존슨이 류마티스 관절염 약 레미케이드, 스위스 제약사 로쉬가 유방암 약 허셉틴, 림프종 약 리툭산을 최초 개발했다. 바이오 약의 블록버스터로 불렸다. 그런데 이 약들도 독점권에 관한 특허만료 기간이 설정돼 있었다. 셀트리온의 기회는 여기서 열렸다.

‘셀트리온 마법’의 열쇠, 바이오시밀러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트룩시마’. 셀트리온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가능성을 간파했다.
서정진 회장은 대우자동차 전략실 고문 출신이다. 34세 나이에 임원으로 스카우트됐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위기가 터졌고, 대우자동차는 몰락했다. 서 회장은 1999년 실직했다.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그는 바이오에 대해 처음 접했다. ‘블록버스터 오리지널 바이오 약은 특허만료 기간이 있다’, ‘바이오는 타 분야에 비해 진입 장벽이 높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는 바이오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했다. 두 가지 원칙을 세워 사업전략을 짰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와 글로벌 스탠더드가 그것이었다. ‘퍼스트 무버’는 후발기업이 선두기업을 따라잡을 때 쓰는 방식이다. 신생기업 셀트리온이 곧장 바이오 신약을 만들 순 없으니 바이오시밀러를 경쟁자들보다 빨리 만들어내 비교우위를 점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가 램시마, 트룩시마, 허주마였다. 이 약들이 거듭된 임상실험을 통과하고, 미국과 유럽, 일본 시장에서 판매 허가를 얻어낼 때마다 셀트리온의 기업가치는 수직상승했다.

서 회장은 바이오의 활로는 해외시장에 달렸다고 봤다. 바이오시밀러의 기준을 선진국 기준에 맞췄다. 2019년 1월 현재 셀트리온의 제품은 115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서 회장은 생명공학 전공자가 아니다. 김형기 셀트리온 부회장 등 옛 대우자동차 출신이 초창기 멤버였다. 그들에게 기술은 없었지만 투자를 유치할 능력이 있었다. 서 회장은 사업 가능성을 포착한 뒤, 자금을 조달·관리하고, 사람을 부리는 방법에 관한 전문가였다.

2001년 KT&G 투자(8500만 달러)를 받아냈고,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생명공학회사 VaxGen과 합작해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나중에 서 회장은 VaxGen의 셀트리온 지분을 1억3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처음 셀트리온의 주력은 CMO(의약품위탁생산) 비즈니스였다. 본사가 위치한 인천 송도에 제1공장(5만ℓ)과 제2공장(9만ℓ)을 지었다. 그리고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나왔다. 램시마는 2013년 6월 유럽의약청으로부터 항체 바이오시밀러론 세계 최초로 오리지널 제품과 동일한 적응증을 인정받아 만장일치의 허가 의견을 얻었다. 이후 2014년 캐나다와 일본, 2016년 미국의 판매승인을 획득했다. 이어 트룩시마가 2017년 유럽에서 승인을 받았다. 램시마와 트룩시마는 이미 유럽 시장점유율에서 오리지널을 넘어섰다. 허쥬마(허주마?)는 2018년까지 43개국의 판매허가를 받았다. 이 중 유럽 14개국과 한국, 일본에선 출시까지 됐다.

셀트리온은 업드레이드된 바이오시밀러 램시마SC를 출시했다. 기존 바이오시밀러의 해외 판로도 확장 중이다. 임상실험 단계인 새 바이오시밀러도 있다. 바이오시밀러의 리스트를 제약업계에서는 파이프라인이라고 칭한다. 셀트리온의 파이프라인은 25개에 이른다.

그러나 바이오시밀러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도 본질적으론 모방의 영역이다. 속도에서 밀렸지만 다른 업체들도 조만간 셀트리온처럼 바이오시밀러를 만들어낼 것이다. 서 회장은 경쟁자들이 따라올 수 없는 초격차를 만들고 싶어 하는 시점에 2020년 은퇴 의사를 밝혔다.

서 회장은 1월 4일 기자간담회에 나섰다. 4년 만에 선 공식석상에서 은퇴 얘기를 꺼냈다. 이어 1월 10일(한국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바이오 투자행사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경쟁력과 성장성을 보유한 글로벌 제약사에만 배정되는 메인트랙에 셀트리온은 설 수 있었다.

서 회장은 정작 은퇴 예고 이후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셀트리온의 2단계 도약은 바이오시밀러의 유통마진을 올리는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가 특정 국가에 처음 진입했을 때에는 현지 유통업체를 활용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미국, 유럽 같은 거대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올라가면, 직판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유리하다. 초기엔 판로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만 자리를 잡으면 유통마진을 개선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서 회장은 “기존제품 직판에 대해서는 이미 네트워크를 구축해놨다”며 이렇게 말했다. “직판을 추진해도 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해서 추진한다. 직판 시스템을 구축하면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영업력이 호전되는 효과를 볼 것이다.” 셀트리온 제품을 전담 유통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코스닥 대장주로 꼽힌다.

셀트리온은 올 7월부터 램시마SC를 직판할 계획이다. 서 회장은 “여지껏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들을 해내왔다. 지금까지 해온 것 중 가장 어려운 일을 하려는 것이다. 1400조원의 세계 의약품 시장을 가져오기 위해 고속도로를 까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주 ‘은퇴’가 불러온 자본의 국적논쟁


▎중국 선전시에 위치한 텐센트 본사. 텐센트는 자본의 힘을 앞세워 한국 게임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주 NXC 대표는 1월 4일 “넥슨을 세계에서 더욱 경쟁력 있는 회사로 만드는 데 뒷받침이 되는 여러 방안을 놓고 숙고 중에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넥슨 매각설을 시인한 발언이다. 게임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넥슨 매각은 지난해 10월부터 소문이 났다. 중국의 텐센트, 알리바바와 접촉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금융권에서 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새해 벽두 언론 보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셀트리온을 더 잘되게 하기 위해 배수진을 치겠다’는 서정진 회장과 김 대표의 은퇴 발언은 결이 다르다. 게임업계에서 엑시트(exit)를 하기 위한 차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를 둘러싼 궁금증은 큰 틀에서 3가지로 집약된다. ▷김 대표는 넥슨을 왜 팔려고 할까 ▷팔릴 수 있을 것인가 ▷팔린다면 그다음에 김정주와 넥슨 혹은 한국 게임산업의 행로는 어찌될지가 그것이다.

취재를 할수록 흥미로웠던 점은 김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가치판단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업을 해서 막대한 부를 얻은 경영자의 재산에 국가의 지분은 얼마나 들어있을까’에 관한 관점이 핵심이다. 이것이 크다고 보는 이들은 김 대표의 매각 움직임에 비판적이었다. 반면 이것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보는 이들은 김 대표의 은퇴에 대해 긍정적까진 아니더라도 온정적이었다.

이는 ‘자본에 국적이 있느냐’는 논쟁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넥슨의 유력한 인수후보로 중국기업 텐센트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의 지분 매각이 뜨거운 논쟁을 불러온 이유이기도 하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은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김정주 대표가 (게임산업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봤을 것이다. 넥슨은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중국에서도 게임산업에 관한 규제가 시작됐다. (넥슨이 던전앤파이터로 매년 텐센트로부터) 로열티 1조원을 받고 있는데 이 돈이 안 들어오면 힘들어진다.” 익명을 요청한 게임 업계 인사도 “넥슨에서 최근 출시된 게임 중에서 잘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지금 팔지 않으면 팔지도 못 한다”고 평했다. 사업가적 마인드로만 봤을 때, 김정주 대표 개인적으론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를 보는 사회적 시선이 결코 곱지 않다는 대목이다.

배경국 한국게임개발자협회 부회장은 “이 상황 자체가 한국 게임업계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고 단언했다. 그는 “설령 김 대표가 ‘넥슨을 안 팔고 다시 열심히 하겠다’고 선회해도 전과 같을 수 없다”면서 “이미 ‘김 대표가 떠나려 한다’는 시그널이 시장에 전달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첩첩산중인 것이 10조원의 가치로 평가받는 넥슨의 경영권을 팔기도 쉽지 않다. 배 부회장은 “텐센트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중국 정부의 견제를 받고 있다. 어찌 될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사모펀드 컨소시엄의 투자 가능성도 나오지만 원체 규모가 커서 가능할지 미지수다. 전부를 팔 수 없다면 그 대안으로 지분을 분할해서 팔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그렇다면 왜 텐센트 등 중국 자본의 넥슨 지분 매입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할까. 위정현 회장은 ‘텐센트는 이미 넷마블의 3대 주주’라는 점에 주목했다. 텐센트가 투자한 금액이 1조3000억원이다. 그리고 넷마블은 NC소프트의 3대 주주다. 넥슨마저 넘어가면 한국 게임산업 매출의 60~70%를 차지하는 3N(넥슨-NC소프트-넷마블)이 중국의 영향력에 놓이는 심각한 상황이 된다는 게 위정현 회장의 우려다.

개인의 재산권 vs 자본가의 사회윤리


▎넥슨의 대표 게임 ‘던전앤파이터’의 팝업스토어. 텐센트에서 받는 로열티만 연간 1조원에 달한다.
텐센트의 자본은 이미 한국에 침투해있다. 2014년 넷마블에 5300억원을 투자했고, 카카오게임즈 지분도 6.7% 가지고 있다. 2018년 2월 텐센트는 비(非)상장사인 카카오게임즈에 500억원을 투자했다. 게임업계 한 전문가는 “넥슨이 팔린다면 대체할 기업이 더 이상 한국에서 나오기 어렵다”면서 “온라인에서 모바일 게임 시대로 넘어오며 한국은 주도권을 상실했다”고 진단했다. 실제 한국의 게임산업 1등 기업인 넥슨은 최근 이렇다 할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의 은퇴 선언이 실행돼 넥슨이 중국에 넘어가면 넷마블, 카카오게임즈와는 다른 차원이 전개된다. 한국 게임산업의 국가대표라 할 기업의 경영권을 내주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논쟁이 촉발된다. 과연 ‘게임은 국가 기간산업일까’에 관한 물음이다.

위정현 회장은 게임을 국가 기간산업이라고 본다. 만약 BTS의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중국 완다그룹에 팔려간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혹자는 “게임은 반도체, 자동차와 다르다. 외국에 넘어가도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지만 위 회장은 “게임이 얼마나 파괴력이 있는지 모르는 소리”라며 “게임은 AI(인공지능)와 빅데이터가 결합된 미래산업이며 넥슨은 매출 2조5000억원 기업”이라고 일축했다.

꼭 돈만으로 가치를 재단할 순 없겠지만 게임산업은 당장의 현금 창출력, 미래 가능성을 고려할 때 국적논리를 경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외국회사가 구조조정에 더 무자비할 개연성도 높다. 액토즈(중국 샨다)와 그라비티(일본 소프트뱅크)가 외국회사에 팔렸지만 이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게임업계 일각에선 반론도 나온다. “서태지 다음에 HOT가 나왔듯, 넥슨을 대체할 게임회사가 나올 수 있다”는 시선이다. 게임산업은 엔터테인먼트적 사업 속성을 지닌다. 작은 회사라도 글로벌 히트작이 터지면 단번에 위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익명을 요청한 업계 종사자는 김 대표에 관한 비판을 “국뽕(과잉 애국주의)” 논리로 바라봤다. “넥슨은 글로벌 수출 기업이다. 그런데 세상은 넥슨과 김 대표를 두 가지 프레임으로만 봤다. ‘돈 많이 벌었다’와 ‘게임중독자를 양산했다’가 그것이다. 세상이 게임 그 자체엔 관심이 없다. 자부심이 없는데 굳이 할 필요가 있겠나? 우리나라 게임산업에선 유니콘 기업이 나올 수 없다. 게임업계는 허리가 다 사라졌다.” 그는 이어 “김 대표가 욕을 먹는 것이 이해는 가지만 1등의 숙명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넥슨이 상징적 회사라서 더 비판 받는다는 뜻이다.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기업의 자본가가 파는 것 자체를 탓할 순 없다”고 말했다.

‘포스트 넥슨’ 나올까?


▎이웅렬(왼쪽 사진) 코오롱그룹 회장과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도 나름의 이유로 회사를 떠났다. / 사진:중앙포토 (이웅렬) / 사진:연합뉴스 (이서현)
그러나 넥슨이 온전히 김정주의 재산이냐는 사회적 논쟁은 가열돼있다. 배경국 부회장은 “법적 소유권이 인정되니까 김 대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극단적 자본주의 시각”이라며 “일정 수준을 넘어간 부의 축적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위정현 회장도 “게임업계에서 엑시트하는 경영자들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있을 때는 애국자인 양하더니, 나갈 때는 ‘내 거 내가 처분하는데 왜 시비냐’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이미 한국 게임산업은 붕괴단계에 접어들었고, 넥슨 사태로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시각이 게임 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다. ‘김정주 책임론’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아울러 만약 매각이 성사되면, 김 대표가 어느 분야의 사업에 새로 발을 디딜지도 관심사다.

서정진, 김정주에 앞서 2018년 12월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이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도 삼성복지재단으로 이동했다. 이랜드그룹 박성경 부회장도 이랜드재단 이사장으로 옮겼다. 재계에서 ‘조기 은퇴’는 하나의 트렌드처럼 되고 있다. 그러나 저마다의 사정은 제각각이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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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호 (201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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