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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25)] 전북 현대 골키퍼 조련 맡은 ‘거미손’ 이운재 

‘오대영’ 참패하고도 행복했다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폐결핵 딛고 2002 월드컵 주전 발탁, 4강 신화 이끌어
A매치 132회, 승부차기 10승 1패 …“이기려면 기다려야”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2017년 K리그 우승 트로피를 앞에 놓고 포즈를 취한 이운재 코치. 그는 “리그 4연속 우승의 대기록을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고 했다. / 사진:장정필 객원기자
거미손이란 별명으로 한국축구 골키퍼 계보에 가장 높이 솟아 있는 이름 이운재(48).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복병을 먼저 만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다.

올해 초 프로축구 K리그 명문 전북 현대 골키퍼코치로 부임한 이운재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에 있는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터뷰를 신청하자 구단에서는 “방문 이틀 전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 증명을 갖고 와야 클럽하우스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외부인을 통해서 선수 한 명이라도 감염돼 확진자가 나오면 구단 1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충분히 이해했고, 기꺼이 코로나 검사를 받은 뒤 음성 판정 문자를 확인하고 전주로 향했다.

이운재는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었고, A매치 132경기에 출전한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은퇴 후 코치로 변신해서는 탁월한 코칭 능력을 인정받았다. 전북호의 새 선장이 된 김상식 감독이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자 기꺼이 손을 맞잡았다.

봉동 클럽하우스 실내연습장에서 잠시 기다리자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와 환한 웃음으로 이운재 코치가 나를 환영했다.

전북 현대에 와 보니 분위기가 어떻던가요?

“여기 온 지 한 달 조금 넘었는데요. 회사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는 게 느껴집니다. 운동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이 워낙 좋으니까 선수들이 훈련하는 태도와 자세가 다릅니다. 결과는 시즌 마지막까지 가 봐야 알겠지만요.”

명문 구단은 다르다고 느낀 점은?

“좋은 구단이 되려면 역시 돈이 있어야 하고 선수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겠죠. 그렇게 투자해서 구단의 재산이 된 선수를 막 대하면 안 되겠죠. 시간이 지나면 이적을 통해 구단에 큰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자원이잖아요. 운동만으로 보면 자그마한 스포츠 구단이지만 큰 맥락으로 보면 시장 속에 있는 겁니다. 전북이 비즈니스에 일찍 눈을 떴고, 그럼으로써 선수나 팀이나 회사나 홍보 효과와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것 같습니다.”

김상식 감독이 직접 러브콜을 했다던데요.

“감독님이 ‘함께 하자’고 하셨어요. 중국에 있다가 한국 들어와서 별로 할 것도 없었고, 또 어느 누구라도 전북 현대라는 구단에서 먼저 제스처 취하고, 감독이 직접 와서 제안했을 때 마다하겠습니까. 고심은 좀 했지만 흔쾌히 승낙했죠. 감독님과는 국가대표팀에서 오래 함께 뛰었고 20년 이상 친분을 쌓고 있습니다.”

김상식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요?

“감독님들 옆에서 보면 다 힘들고 고민거리가 있더라고요. 팀을 이끌어가는 스타일도 다 다르고요. 김 감독님은 배포가 큰 데다 빠르고 대담한 결정을 내릴 줄 아는 지도자 같습니다. 전북에서 선수와 코치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구단과 선수단 사이 소통의 중요성과 방법을 잘 알고 있어요. 또 사람들 사이 관계를 잘 형성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자카르타 사건’ 대가는 충분히 치렀다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 한국-스페인 경기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슛을 막아내는 이운재 골키퍼.
김상식-이운재 하면 2007년 자카르타 그 사건(아시안컵 기간에 숙소 이탈해 룸살롱 간 일)이 떠오르는데요.

“그 사건을 다시 들춘다 하더라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희 행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질책을 받을 만큼 받았고, 대한축구협회에서 준 벌(국가대표 1년 자격정지)도 다 수용했고요.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전북이 4년 연속 우승을 했는데 내가 와서 그게 끊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죠. 김두현 코치와도 그런 얘기를 하면서 ‘어쨌든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합니다.”

전북의 골키퍼 자원은 어떤가요? 주전인 송범근이 잘하고 있지만 가끔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다른 골키퍼들은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요.

“선수들의 장단점을 짚기 이전에 자세는 좋습니다. 모든 훈련시간에 최선을 다해 이해하고 습득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합니다. 골키퍼는 완벽할 순 없지만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합니다. 1년 시즌 내내 한 번의 실수도 없다면 정말 대단한 선수겠죠. 그게 제가 해야 할 코치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컨디션 조절, 정신적 부분까지 선수들과 교감해야죠.”

송범근에 대해선 어떻게 보십니까?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아직 어립니다. 하나하나 더 배워나간다면 작년보다 올해가, 올해보다 내년이 더 좋아질 선수입니다. K리그에서 송범근을 밑으로 보는 사람은 없고 전북 현대 붙박이 주전이지만 대표팀 붙박이는 아닙니다. 골키퍼가 성장하려면 대표팀에서 큰 대회를 하나하나 치러봐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껍질을 벗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죠. 또 송범근 하나로 시즌을 끌고 갈 수는 없으니 2번, 3번 골키퍼가 들어가도 문제없이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만드는 게 제 역할입니다. 개개인 색깔과 특성이 다르니까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끄집어내야죠.”

골키퍼 조련에 남다른 노하우가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소통합니다.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너희들은 엘리트 골키퍼로서 모든 단계를 거쳐서 올라온 선수들이다. 캐칭·세이빙 등 기술적인 부분들은 잘 배웠다. 프로는 그걸 넘어서야 한다. 내 말이 100% 맞지는 않다. 내 신체조건과 너희 신체조건이 다르고, 내 생각과 너희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난 선수 시절 겪었던 걸 바탕으로 너희들에게 얘기를 해 줄 거야. 그걸 받아들인다면 경기장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 그리고 선수들에게 늘 생각하는 플레이를 하라고 강조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운동하면서 생각을 하라는 거죠. 저는 훈련도 하나로 끝나는 것보다는 여러 요소가 합쳐진 걸 하려고 합니다. 경기장에서 1+1=2가 나오는 상황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상대 슈팅이 우리 선수 다리 맞고 굴절될 수도 있고,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훈련하면서 그걸 늘 생각하고 예상하자는 거죠.”

현대 축구는 전방압박과 빌드업(공격 전개)의 비중이 커지면서 골키퍼에게도 발기술을 요구하는데요.

“많은 분들이 발기술 얘기를 합니다. 골키퍼의 발기술은 상대의 압박으로 급하게 백패스가 왔을 때 발로 잡아서 처리해 주는 것, 크로스를 잡았을 때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빨리 연결해 주는 것,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그걸 골키퍼의 발재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급하게 백패스가 와서 한 번에 롱 볼을 차야 하는데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공간을 확보한 우리 선수가 있다면 간결하게 처리하고, 상대에게 마크를 당한 상태라면 높이 띄워서 시간을 벌 수 있게 해 준다든지 이런 판단과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어야죠.”

기회가 왔을 때 잡으려 준비하고 노력

골키퍼는 안정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맞습니다. 골키퍼가 공을 오래 갖고 있어 봐야 좋을 거 없어요. 쓸데없는 행동에 대해서는 ‘그건 아닌 거 같다. 한 방에 끝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김병지가 파라과이전에서 하프라인까지 공을 몰고 나왔다가 뺏겨 히딩크 감독에게 찍혔던 얘기를 하자) 현역 때는 말할 수 없었지만 지도자 입장에서는 그 방법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선수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으면 세계적으로 퍼펙트하게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이라. 그렇지 않다면 하지 마라. 그래도 하고 싶다면? 그럼 딴 팀 가서 해’라고 말할 겁니다.”

박지성 어드바이저가 팀에 합류했는데요. 어떤 역할을 맡게 되나요?

“구단이 가고자 하는 큰 방향에 조언을 하고 선수 스카우트에도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선수단 산하 유소년 팀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어드바이스를 해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서 오래 선수 생활을 했으니 거기서 본 것을 우리 현실에 잘 접목시킬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선수들에게 ‘왜 축구를 해야 하는지’ 목표의식을 분명하게 심어줄 수 있을 겁니다. 박지성은 모든 선수들이 존경하는 롤 모델이니까요.”

이운재는 경희대 3학년이던 1994년 미국 월드컵에 후보 골키퍼로 출전했다.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에서 최인영 골키퍼가 전반에만 세 골을 실점했다. 김호 감독은 후반전에 이운재를 과감히 기용했다. 이운재는 안정감 있는 수비로 추가 실점을 막았고, 한국은 황선홍·홍명보가 골을 터뜨리며 2-3으로 아깝게 졌지만 독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 경기를 통해 이운재는 대표팀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시련이 닥쳤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이운재는 폐결핵에 걸렸고, 2년 동안 투병해야 했다. 경기 출전은 물론 훈련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운재는 모진 시간을 이겨냈고,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해 세계적인 골키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 스토리는 그가 쓴 책 [이기려면 기다려라](일리)에 잘 나와 있다.

이기려면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능력이 떨어져서 그런 건 아닌가요?

“그럴 수 있습니다. 2002년 이전으로 돌아가면 이운재라는 골키퍼는 잘 보이지 않았어요. 기회가 오지 않아 기다리면서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96년에 폐결핵에 걸려 2년 동안 제대로 운동을 못했어요. 너무 힘들었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했죠. 옛날 같았으면 이 세상 하직할 수도 있는 병이잖아요. 게임 때는 벤치에 있다가 밤마다 밖에 나가서 줄넘기를 했습니다. 달리는 자동차 번호판 보는 연습도 고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해 왔고요.”

골키퍼로는 키(1m82㎝)가 작은 편입니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이기도 하고요.

“제가 운동할 때만 해도 이 키로 골키퍼를 할 수 있었어요. 지금이라면 주전이 되기 힘들죠. 남들과 같은 양을 먹어도 살이 더 많이 찌는 체질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만의 장점을 만들려고 했고 내 장기가 뭘까 많이 생각했죠. ‘키퍼가 뭐야? 골 안 먹는 거. 공격은? 골 넣는 거. 그럼 부담은 공격이 더 크네? 승부차기에서 골키퍼가 못 막았다고 욕먹지 않는다. 볼 반대 방향으로 뛰어도 키커가 잘 찼네 그런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죠.”

그런 과정에서 ‘이기려면 기다려라’가 나왔네요.

“그렇죠. 최대한 움직이지 말고 넘어지지 말자. 저 사람(키커) 목적은 나를 넘어지게 하는 거니까 내가 넘어지지 않고 있으면 사이드로 차야 해. 거기서 조금만 잘 차려고 하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골키퍼라는 건 골을 먹을 수밖에 없거든. 누가 봐도 ‘응, 먹을 수 있는 거야’ 하는 건 먹어도 되는데 ‘어, 저건 막을 수 있는 건데’ 하는 건 막자는 거죠. 그런데 그 막을 수 있는 걸 100%가 아니라 150%, 200%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자는 결론이 나온 거죠.”

골 먹었다고 고개 숙이면 안 돼


▎2008년 K리그 우승을 확정한 뒤 차범근 감독(가운데)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이운재. 왼쪽은 송종국.
그게 이운재 코칭의 기본이 되는 거네요.

“저는 선수들에게도 ‘막을 수 없는 것 먹었다고 고개 숙이지 마. 그건 상대 선수가 잘한 거야, 상대가 잘한 건데 네가 왜 자책해야 해’라고 말합니다. 경기장에서 실수했다 하더라도 자신감이 떨어진 모습을 상대에게 보이면 안 됩니다. 마음 아프고 자책감이 들더라도 동료를 위해서 혼자만 삼키고 끝나고 난 다음에 복기하자는 거죠. 내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팀이 골키퍼를 믿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요.”

이운재는 최후방 사령관 역할을 잘하는 게 장점이었죠.

“그게 정말 중요합니다. 골키퍼는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다 컨트롤하고 코칭 하고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로 골대 안으로 슈팅이 하나도 안 들어와서 무실점 했다고 해서 그 골키퍼를 못한다고 하지 않죠. 오히려 클린시트(무실점 기록지) 받았으니 잘한다고 칭찬할 겁니다. 공이 저절로 골대로 들어오진 않습니다. 상대 선수가 발로든 머리로든 슈팅을 했기 때문에 공이 골대 안으로 날아오는 거잖아요. 상대 선수를 놓치는 바람에 계속 볼이 골대로 들어오면 아무리 훌륭한 골키퍼라도 실점할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죠. 골키퍼는 우리 선수가 내 반대편 저 멀리에 있어도 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를 질러야 합니다. 수비수나 미드필더 등을 다 리드하고 코칭을 잘해서 상대 선수에게 빈자리를 주지 않는 게 골키퍼의 첫 번째 임무입니다. 그다음에 슈팅이 골대 안으로 들어오면 그때 세이빙(몸을 날려 공을 막는 것)을 하는 겁니다.”

이운재는 페널티킥과 승부차기에 특히 강했다. 2002 월드컵 8강전 스페인전을 포함해 A매치 승부차기 11전 10승 1패의 놀라운 기록을 갖고 있다. 유일한 패배가 2007년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이라크에 진 거다.

이운재는 2004년 12월 1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서 미하엘 발락의 페널티킥을 막아내 3-1 승리에 기여했다. 2004년 수원 삼성과 포항 스틸러스가 벌인 K리그 챔피언결정전 승부차기에서 포항의 마지막 키커 김병지의 슈팅을 막아내며 수원의 우승을 확정 짓기도 했다.

승부차기에 그렇게 강한 비결이 뭔가요?

“먼저 움직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 방법을 서너 가지 갖고 있죠. 처음엔 전혀 안 움직이는 것, 다음엔 한쪽으로 뛰었다 다시 돌아오는 것, 다음은 발락 막을 때처럼 한번 이쪽 갔다가 다시 저쪽 갔다가 돌아오는 것 등이죠. 내 머릿속에 나만의 작전을 생각하는 겁니다. 중요한 점은 볼을 끝까지 봐야 한다는 거죠.”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죠.

“가로 7m32㎝ 세로 2m44㎝ 골대 가운데 섰을 때 내 왼쪽 다리에서 왼쪽으로 2m, 오른쪽 다리에서 오른쪽으로 2m, 무릎에서 허리 높이로 오는 공은 손만 뻗어도 막을 수 있습니다. 골대 구석이나 모서리 쪽으로 오는 공은 골키퍼의 반응 속도가 공의 속도를 못 쫓아가기 때문에 막지 못한다는 게 과학이죠. 그런데 승부차기 다섯 개 중에서 2∼3개는 골키퍼의 양쪽 2m 안으로 옵니다. 그거만 잡는다고 나는 생각하는 거죠.”

김병지의 킥이 딱 그랬죠?

“맞습니다. 내 오른쪽 방향이었죠. 그리고 저는 병지 형이 찰 때 딱 감을 잡았어요. 무슨 뜻이냐 하면, 키커는 찰 방향을 정해 놓고 뛰어오는 선수, 골키퍼가 움직이기를 기다려 반대 방향으로 차는 선수로 유형이 나뉩니다. 병지 형은 두 번째 유형이죠. 골키퍼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움직이지 않으니 어디로든 차긴 차야죠. 마음이 급하다 보면 코스 정확도와 슈팅 스피드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2002년 스페인전에서 막아낸 호아킨의 킥도 그랬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스페인전 아닌 폴란드전


▎이운재 코치는 “전북 현대가 선수들을 아끼고 성장시키려는 모습을 보면서 명문 구단임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 사진:장정필 객원기자
A매치 132경기를 뛰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역시 2002 스페인전이겠죠?

“아뇨.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이었어요. 그 경기가 없었다면 제게 스페인전은 없었겠죠. 당시 선발 골키퍼가 누구냐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전날 밤까지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 맘으로는 ‘내가 뛸 것 같다’는 생각은 했죠. 폴란드전 며칠 앞두고 경주에서 자체 평가전을 했는데 제가 주전 조였거든요. 당시 내 몸에 대해 자신감이 최고였고 컨디션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어필이 그거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히딩크 감독님, 난 이런 몸을 갖고 있소. 어떻게 하시겠소’라고요. 결국 나한테 기회가 온 거고, 난 준비를 하고 있었고. 폴란드 전에 나갔고 무실점했기 때문에 다음 경기 다음 경기 갈 수 있었죠. 만약 폴란드전에 김병지 선배님이 나갔다면 나에겐 2002 월드컵은 없었을 겁니다.”

반대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경기는요?

“A매치에서는 없었습니다. 제게는 모두 행복한 경기였다고 생각하니까요. 히딩크 감독님 밑에서 당한 두 번의 오대영(5-0) 경기(2001년 5월 프랑스전, 8월 체코전)도 제겐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행복했어요. 당연히 다섯 골 먹으면 화나죠. 그렇지만 내가 선수 생활하면서 저런 선수, 저런 팀과 언제 경기해볼 수 있겠나 생각하면 그런 경험들이 나한테는 큰 도움이 된 거죠. ‘이런 골을 먹을 수도 있고, 이런 경기를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경험하면서 골키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새길 수도 있었죠. 나한테 숙제가 주어진 거죠.”

이운재는 2018년 12월 중국 23세 이하 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훈련을 할 수 없어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국내에 계속 머물면서 꼬박꼬박 급여를 받았다.

그러는 동안 2002 월드컵 멤버들이 축구계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박지성 어드바이저, 이영표 강원 FC 대표,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행정 쪽으로 진출했다. 황선홍·최용수 등은 사령탑에서 내려와 잠시 쉬고 있지만 김남일(성남)·설기현(경남)·이민성(대전) 등이 K리그 1,2부 감독을 맡고 있다. 안정환은 방송 엔터테이너로 명성을 굳혔고, 현영민은 JTBC 해설위원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레전드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버려라

2002 월드컵 멤버들의 귀환을 보는 느낌은?

“2002 월드컵은 한국축구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대회였고,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이 축구계 각 분야에 진출하는 건 당연합니다. 각자 달란트가 다르기 때문에 모두 지도자가 될 필요는 없겠죠. 2002 멤버들이 혜택을 받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특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자리에 갈만한 충분한 생각과 공부를 했다고 믿으니까요. 어쨌든 각자의 자리에서 한국축구 발전을 모색하고, 축구계 파이가 커지면 모든 축구인이 그것을 나눠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K리그 주전 공격수 자리를 외국인 용병들이 차지하면서 토종 골잡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걱정도 있는데요.

“대신 우리 대표선수들이 해외로 나가잖아요. 손흥민·황의조·황희찬·이재성·권창훈·이승우 등등. 큰 걱정은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뛰어난 외국인 공격수를 막으면서 우리 수비와 골키퍼가 강해질 수 있고, 팬들도 수준 높은 축구를 즐길 수 있지 않습니까.”

올 시즌 목표는 당연히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일 텐데,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입니까?

“온 지 얼마 안 돼서 장기적인 목표는 아직 설정하지 못했지만 골키퍼코치이다 보니 골키퍼 4명이 누구나 다 1번이 될 수 있게끔 상향 평준화시키는 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북 현대 산하 유소년 팀 골키퍼들도 같이 수준을 향상시키는 게 장기적인 목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올라와도 바로 게임 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거죠. 내가 직접 가르치지는 못해도 거기 선생님들과 대화하고 협조하고, 여기서 하는걸 보고 배우면 큰 발전이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레전드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자 그는 “레전드가 되고 싶은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고 대답했다. “욕심을 갖게 되면 그 욕심이 화를 부를 수 있습니다. 전 내가 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인가 그것만 생각하며 달려왔어요. 다 달리고 나니까 사람들이 레전드라고 해주시더라고요. 내 색깔을 보여주고 싶고, 내가 남보다 뛰어나다는 걸 부각하려다 보면 실수가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음가짐이나 밸런스가 망가질 수 있고요. ‘레전드’는 종착역 이름입니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와 한양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2103호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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