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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24)] 대중가요 ‘작사의 신’ 이건우 

“아모르파티(네 운명을 사랑하라) 니체가 한 말, 내 삶의 모토입니다” 

사진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종이학’ ‘날개잃은 천사’ 등 40년간 1200곡 노랫말 지어
“가요 품격 높이려면 국문과·문창과에 작사론 개설해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마포의 작업실에서 만난 이건우 작사가는 “사진 잘 나오려고 메이크업 하고 왔다”며 웃었다.
작사가 이건우의 별명은 ‘작사의 신’이다. 1981년 전영록의 히트곡 ‘종이학’으로 대박을 터뜨렸을 때 나이가 21살이었다. 이후 40여년 동안 무려 1200여 곡에 노랫말을 붙였다. 장르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태진아)’ ‘있을 때 잘해(오승근)’ 처럼 구성진 트로트부터, ‘고니(이태원)’ ‘파초(수와진)’ 등 서정적인 곡까지, 심지어 ‘날개잃은 천사(룰라)’ ‘미녀와 야수(DJ DOC)’ 같은 댄스곡에서도 자신의 철학과 시대정신을 담은 주옥같은 가사를 풀어냈다.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교수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9월 책을 한 권 펴냈다. 자신의 대표적인 히트곡 가사를 수록하고 그 가사가 나오기까지 과정과 에피소드, 작곡가·가수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책 제목은 아모르파티(Amor Fati). 김연자가 불러 크게 히트한 곡 이름과 같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계열인 이 곡은 2013년 발표된 뒤 5년 만에 역주행,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왜 아모르파티를 책 제목으로 선택했는지 묻자 이 교수는 “이건우의 작사 정신을 가장 상징적으로 표현한 게 아모르파티”라며 “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네 운명을 사랑하라). 이게 내 삶의 모토거든요”라고 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마포대교 근처 오래된 오피스텔에서 그를 만났다. 작사가 이건우는 “이 작업실이 작품빨을 받는 곳이라서 딴 데 못 가요. 히트곡은 여기서 다 나왔거든” 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나훈아 ‘테스형’보다 먼저 가요에 철학자 소환


▎가수 김연자가 이건우 작사가의 필생의 역작 아모르파티를 열창하고 있다.
지난해 나훈아가 ‘테스형’을 통해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대중가요의 영역으로 소환했는데요.

“나훈아 선배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뛰어난 작사가입니다. 특히 트로트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독학으로 어떻게 그런 경지까지 갔는지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가요에 철학자를 불러낸 건 제가 더 빨랐어요. 2013년에 나온 아모르파티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거든요. 아모르가 사랑이란 뜻이니까 ‘사랑 파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하하.”

아모르파티 히트 뒷얘기 좀 들려주시죠.

“당시 신철 프로듀서가 당대 최강 세 명(가수 김연자, 작곡가 윤일상, 작사가 이건우)을 모아서 프로젝트를 해 보자고 했어요. 가사를 완성하는데 한 달 가까이 걸렸고, 이곳에서 2주 동안 밤을 샜죠. 그런데 몇 달을 밀었는데도 히트 조짐이 안 보이는 겁니다. 사실 그때 붓을 꺾으려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역주행이 시작된 겁니다. 당시 KBS 열린음악회 마지막 순서인 그룹 엑소(EXO) 출연 직전에 김연자가 아모르파티를 불렀는데, 엑소 팬들을 중심으로 ‘와, 이런 곡이 다 있네’ 하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거죠.”

요즘에는 방송에도 출연하시고, 새 전성기를 맞으신 것 같습니다.

“MBC 예능 프로인 [놀면 뭐하니]에서 가수로 변신한 유산슬(유재석)에게 ‘합정역 5번 출구’ 노래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죠. 제가 방송에 나가는 건 작사가라는 직업이 있고, 대중가요에서 작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고 싶어서였어요. 요즘은 가슴 따뜻하고 서민적인 노랫말을 쓰고 싶습니다. 김범룡이 작곡한 곡에 내가 가사를 붙인 ‘당신과 나’라는 작품이 그런 쪽인데 조짐이 좋습니다. 대박 가능성이 있어요.”

이건우는 경기도 평택에서 나서 포천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다. 어릴 적 일기를 쓰면 어머니가 용돈을 줬다. 용돈 받는 재미에 일기 쓰는 데 취미를 붙였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교내외 백일장을 휩쓰는 글쟁이가 됐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하루 5장씩 10년 동안 꾸준히 썼어요. 지금도 일기장 200권을 갖고 있죠. 고2 때 대한민국 최고의 작사가가 되겠다고 결심을 합니다. 당시 영향을 끼친게 송창식·김민기·한대수 이런 분들이 만든 포크송이죠.”

이건우는 운동에도 능했다. 복싱·기계체조 등을 배웠고, 탁구는 아마추어 최강 수준이었다. 고교 시절 전국의 큰 탁구장을 돌아가며 ‘도장깨기’를 했고 급기야 탁구 명문 신진공고까지 쳐들어갔다. 1학년 후보 선수와 7세트를 했는데 모두 21-15 정도로 졌다. 신진공고 선수들은 “아마추어가 대단하다”고 했지만 이건우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탁구계를 떠났다. 그 후 작사에 더 전념했음은 물론이다.

송창식 선생한테 직접 전화도 했다면서요?

“그분이 만든 노래가 너무 좋아서 어떻게어떻게 전화번호를 알게 됐어요. 전화해서 ‘저는 한영고등학교 2학년 이건우라고 합니다. 제가 작사가가 꿈인데 제 작품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받긴 하겠는데 안 쓰더라도 실망하지는 말아라.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고 하셨어요. 훗날 종이학이 히트를 하고 21살 때 송창식 형을 직접 만났고 그 형 집에서 일주일간 살면서 가르침을 받았죠. 내 몸 속에는 포크가 있어요.”

지인과 술 마시다 ‘있을 때 잘해’ 제목 잡아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김연자·이건우·유재석. / 사진:MBC
작사가로서 데뷔는 어떻게 했나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 이미 100곡 정도를 썼어요. 그중에는 이동기가 불러 히트한 ‘논개’도 있었죠. 그걸 들고 작곡가 사무실·작업실 돌아다녀도 받아주는 데가 없었어요. 지금 중앙일보 건물 맞은편에 코러스라는 싱어롱 다방이 있었어요(지금도 있다). 거기서 가수 채은옥 누님을 만났는데 ‘야, 작품이 너무 아깝다. 영록이한테 가라’면서 전영록 형을 소개해주신 겁니다. 알고 보니 저희집과 영록이 형 집이 같은 보문동이었어요. 영록이 형 집에서 1년 반을 같이 살면서 1981년에 ‘ 종이학’을 썼죠. 저는 항상 방송 나와서 ‘내 마음속 국경일은 3월 26일(전영록 생일)이다’고 합니다. 지금도 40년 우정을 변치 않고 있습니다. 저를 만들어 준 은인이자 산파죠.”

노랫말의 소재는 어디서 얻습니까?

“초창기에는 많이 돌아다녔어요.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간 뒤 내려서 여기저기 걸어다니는 거죠. 저는 대화를 좋아해요. ‘작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얘기와 마음을 옮기는 거다’는 게 제 작사론입니다. 난 사람들의 얘기를 기술적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하는 거죠.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뜻하지 않게 보석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인과 술 마시다 ‘야, 너 있을 때 잘해’ 소리를 듣고 ‘이거 노래 제목으로 딱이다’ 하는 감이 왔어요. ‘있을 때 잘해’ 노래가 빅 히트를 하고 나서 그 지인에게 고맙다고 30만 원 줬어요. 하하.”

늘 메모장을 갖고 다니셨겠네요?

“그렇죠. 딱 감이 왔을 때 그 자리에서 메모지 꺼내 끄적이면 실례가 될 수 있으니까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자리에서 빠져나와 화장실 변기에 앉아 메모를 하는 거죠. 영화관 가면 꼭 연속으로 두 번 봅니다. 가사가 될 만한 대사가 휙휙 지나가니까요. [타이타닉]에서 디캐프리오가 자살하려고 하는 장면에서 여주인공과 주고받는 대사(헤이, 다가오지 마/ 그럴 순 없어/ 날 내버려 둬/다시 생각해) 이게 3인조 여성 그룹 ‘디바’가 불러 크게 히트한 ‘왜 불러’에 다 나옵니다.”

시와 노랫말은 전혀 다르죠?

“당연하죠. 일기는 남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전제로 쓰는 거고, 시는 보든 말든 이라면 노랫말은 남이 무조건 봐야 하는 거잖아요. 동기가 전혀 다른 거죠. 또 시와 노랫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발음입니다. ‘나이야 가라’와 ‘푸르른 날’을 발음해 보세요. 받침이 많으면 노래가 힘들어요. 자연스럽게 입에서 떨어져야 합니다. 조용필 ‘창밖의 여자’에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를 ‘아름답다 했었소’ 했다면 어땠을까요. 높이 올라가는 음에서 받침이 있으면 힘들어요. 저음에서는 큰 상관없지만. 가수의 입을 통해 어떤 음에서 어떤 발음이 나가는가를 확인해야 해요. 여기서 한 단계 더 올라가려면 그 가수가 잘하는 발음이나 받침을 알아야 합니다. 조용필은 ‘자차카타파하’를 잘합니다. 그런 걸 찾아내려면 음성학도 공부해야죠.”

메시지 담지 않으면 진부한 사랑타령


▎‘종이학‘을 히트시켜 오늘의 작사가 이건우를 있게 해 준 전영록.
가사를 쓰는 게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네요.

“아까 말씀드린 그런 걸 깨우치는 데 나도 몇 년 걸렸어요. 프로 작사가는 프리 스케일, 즉 곡 성격과 장르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해야 합니다. 제 작품은 90% 이상 먼저 곡이 나온 뒤에 노랫말을 붙인 겁니다. 곡이 나와 있는데 입에 맞게 가사를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젊은 시절엔 ‘은·는·와·서·고’ 같은 접속사 하나를 10시간씩 쳐다보곤 했어요. ‘당신은 울고 있네요’에서 ‘당신도’ ‘당신과’처럼 접속사를 바꿔보는 겁니다. 밤 꼴딱 새고 새벽에 해장국 먹고 들어와 다시 들여다봐요. 부모님은 ‘미친놈 하나 나왔다’며 걱정하시고. 그런 숙련 기간이 없으면 안 되고, 절실함을 넘어서 운명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명한 시에 곡을 붙인 곡 중에서 크게 히트한 게 많지 않은 것 같네요.

“‘푸르른 날’ ‘그대 있음에’ 같이 몇 개 있긴 하지만 작곡가는 열 배 더 힘들어요. 받침이 많고 입에 안 붙으니까요. 정지용의 시 ‘향수’에 곡을 입힌 작곡가는 몇 달 걸려서 작업을 끝낸 뒤 미치는 줄 알았다며 다시는 안 한다고 했다잖아요. 그러던 차에 가요에도 저작권이 생겼어요. 노래방·주점·방송, 휴대폰 벨 소리 등에 나오는 모든 곡에 저작권료를 작사가와 작곡가가 5대5로 나눕니다. 그러니 남 좋은 일 시켜줄 필요가 없죠. 요즘은 시에 곡을 입힌 노래가 거의 안 나오잖아요.”

3-4조, 4-4조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운율도 가요에 많이 쓰이지 않나요?

“장르에 따라 다르죠. 정통 트로트는 3-4조를 많이 씁니다. 그런데 세미 트로트다, 뉴 트로트다, 홍진영이다 그러면 조금씩 달라져야 합니다. 결국 가수가 노래를 했을 때 발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가요는 내용 반, 발음 반입니다. 어렵지 않고 흥얼흥얼 나오는 게 좋은 겁니다. 구전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사랑은 아무나 하나’가 대표적이죠. 반복 후렴구는 내용은 별거 없는데 희한하게 중독성이 있어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것, 그게 바로 고수들이 하는 겁니다.”

거의 10년 주기로 장르를 바꿔오셨는데요.

“10년 써 보니까 너무 힘들고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저작권 개념도 없을 때 이걸로 평생 먹고살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쓰고 싶었죠. 장르마다 가사의 포인트가 다르니 내 역량을 테스트해 볼 수 있었고요. 갑자기 댄스 쪽으로 바꾸면 생활과 리듬이 달라집니다. 젊은이들과 어울리게 되고, 빠르고 분량이 긴 댄스곡에 가사 붙이는 게 너무 힘들지만 그런 데서 도전하는 재미도 느꼈죠.”

가장 기억나는 가수를 꼽아달라고 하니 역시 전영록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리고 조용필. 80년대 중반 함께 작업하면서 그렇게 빨리 악보를 그리는 작곡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로커에서 트로트 가수로 깜짝 변신한 유현상과 그의 부인이 된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산사(山寺) 결혼식에 참석한 이건우와 최윤희의 선배 안희경이 운명적으로 엮여 부부가 됐기 때문이다.

가장 마음에 꽂힌 노래를 꼽아달라고 했다. 종이학-날개 잃은 천사-사랑은 아무나 하나-아모르파티, 연대기 순으로 대표작을 들었다. 그는 “이 노래들은 제 작사 인생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 줬던 곡입니다. 작사가는 메신저이고, 스토리 안에 메시지를 담아야 합니다. 사랑 얘기를 하면서도 뭔가 메시지를 담지 않으면 진부한 사랑타령이 되고 말죠”라고 했다.

책의 맨 뒤에 음악평론가 임진모 선생이 이건우의 작품 세계를 잘 정리했던데요.

“맞아요. 첫째가 현실 밀착형 감수성인데요. 기분, 느낌, 잠깐의 상상 등 생활 속 사소한 것이 작품의 모티브가 됩니다. 그다음으로는 공감하는 인간이죠. 타인의 입장·처지·감성에 공감해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상대의 말에 피드백을 잘 해주고 커뮤니케이션의 질도 좋아야 합니다. 저는 대인관계가 원만한 편인데 자주 만날 사람이냐 1년에 한 번 만날 사람이냐를 빨리 결정합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가지요. 작품비는 주위 사람들한테 밥 사고 술 사는 데 다 나가지만 결국 되돌아 오더라고요.”

대중과의 동행이 중요하다는 표현도 나옵니다.

“가수들을 보면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어떤 가순데, 히트곡이 뭔데, 내 나이 60이 되고 보니, 이런 식으로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그 나이에 맞는 애절한 사랑의 테마를 찾아가야지 회고록 쓰는 식이 되면 곤란하죠. 작사가도 젊은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쪽으로 자기표현을 하게 어휘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젊은 사람과 자꾸 얘기하고, 책도 많이 봐야 하지요. 은둔형 인간이 되면 작가로서 죽은 겁니다.”

지성이 아닌 ‘갬성’, 통찰보다 유희, 이성적 숙고보다 감각적 파악이 중요하다고 하셨죠.

“공연윤리위원회가 하던 대중가요 가사 사전 심의를 정태춘 형이 싸워 이겨서 1996년에 없앴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중가요 가사에 대해 표현 미숙이다, 외설적이다 등등 온갖 구실로 난도질을 했어요. 그때 제가 철학을 외쳤습니다. 그해 나온 ‘미녀와 야수(DJ DOC)’에 ‘이성은 행위 앞에 노예/ 관념은 이유 없는 참견’ ‘상상은 목적 없는 방황/ 인격은 실속 없는 과시’라는 노랫말을 붙였어요. 마치 바이블 같은, 댄스곡을 써도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트로트 열풍은 젊은 스타 쏟아진 덕분


▎이건우 작사가는 “대학 국문과·문창과에 작사론 강의가 개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로트 태풍이 불고 있습니다. 발원지는 어디죠?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는 어떤 분야에서도 젊고 매력 있는 스타는 계속 나옵니다. 그런데 성인가요에 스타가 없었어요. 송대관·태진아·설운도·현철이 너무 오래 가는 바람에 지겨워진 거죠. 그런데 신인 가수는 이들이 구축한 강고한 카르텔 때문에 진입을 하기 어려웠어요. 그렇다고 그분들이 어마어마한 노래를 부른 것도 아니죠. 저작권료를 먹으려고 전문 작사가가 아닌 사람들이 휘뚜루마뚜루 만든 곡들이 쏟아졌어요. 50대 이상이 2000만 명을 넘는 시대에 이들이 들을 노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영탁·임영웅·송가인 같은 ‘미치고 펄쩍 뛸 만한’ 젊은 애들이 쏟아져 나온 겁니다. 하늘에서 은혜처럼. 앞으로 이런 친구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 겁니다.”

그러다 보니 올드 보이들도 재조명되는 거네요.


▎한국 가요계를 이끌 젊은 스타 영탁·임영웅· 이찬원(왼쪽부터).
“맞아요. ‘이제 작사에 신경을 써야 되겠구나. 아무나 써도 되는 게 아니다. 작품 질을 올려야 되겠구나’ 하는 자각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젊은 스타들도 1, 2년 내 신곡이 터지지 않으면 또 잊힙니다. 더 좋은 작사 작곡가를 만나 신곡으로 히트송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저작권에 욕심을 내서 자신들이 해보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난 자신 있어요. 이번에 획기적이고 충격적인 걸 하나 썼는데 영탁이나 임영웅이나, ‘트로트의 민족’에서 뜬 안성준 같은 친구한테 주고 싶어요.”

한국 가요 세계에 알릴 박물관 반드시 지어야


▎구전 멜로디에 이건우가 노랫말을 지은 ‘사랑은 아무나 하나’를 부른 태진아.
한국 가요 가사의 질이 높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사가의 위상이 높아져야 합니다. 내가 가사를 써서 누구한테 주고 싶다 하면 줄 수 있어야죠. 내가 한번 만나자 하면 싫다는 사람 없어요. 내 자랑이 아니라, 작사가가 이런 위치에 있어야 양질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거죠. 노래는 스토리인데 스토리 텔러가 필요합니다. 그게 작사 작곡가 아닙니까. 우리나라 4년제 대학에 국문과 없는 데 없고, 문예창작과도 많잖아요. 그런데 작사를 가르치거나 작사론 강좌가 개설된 곳이 하나도 없어요. 노래는 시나 소설보다 사람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큽니다. 전 국민이 듣기 싫어도 들어야 하잖아요. 양질의 작사가 양성하는 기관 하나 없다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지금도 남예종에서 후학들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남예종은 예술전문학교니까 일반 대학과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실용음악과에 작사 전공이 있어야 하고, 국문과·문창과 학생들이 작사라는 영역을 접하고 도전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나한테 한 학기, 길면 두 학기만 배워도 작사가가 될 수 있어요. 유튜브 유료 강좌도 생각하고 있어요. 전에는 40년 노하우를 한꺼번에 주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책임감을 느낍니다. 쓰레기 같은 가요가 너무나 범람하니까요.”

가요박물관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이고 계시죠.

“가요박물관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나훈아 방, 송창식 방, 조용필 방 가서 그들의 역사와 독특한 색깔들을 느끼고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보다는 용인 에버랜드처럼 사람이 많이 모이는 데 건물 하나 지어서 BTS 방, 트로트 존, 댄스 존 등등으로 나누고 입장료도 받아야죠. 이런 게 한국을 세계에 알리고 문화융성 할 수 있는 길이죠.”

코로나 블루 시대 대중가요는 뭘 줘야 하나요?

“짜장면·짬뽕을 만날 먹는 맛이 아니라 최고 수준으로 줘야죠. 그게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입니다. 지금 트로트는 뽕짝이라 불리던 장르가 아니라, 성인가요·대중가요를 모두 아우르는 광의의 언어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뉴 트로트도 나온 거죠. 이제는 짜장면·짬뽕 외에 파스타도 주고 전골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줄 사람이 없었어요. 만날 태진아·송대관이었으니까. 지금은 새로운 가사, 새로운 장르가 나와야 합니다. 송가인이 부른 ‘서울의 달’도 일부러 젊은 느낌이 나게 썼어요. 진부한 가사를 고집하면 안 되고 언어의 유희 같은 세련된 느낌을 줘야 하겠죠. 그렇지 않으면 젊은이들은 금방 떠납니다.”

마지막 질문을 할 시간이 됐다. 레전드가 되려면? 그는 길게 말했다. 40년 작사 인생의 엑기스가 담긴 말이었다.

“필요에 의해, 혹은 이걸 안 하면 할 게 없어서, 이때쯤 내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런 차원 정도로 절실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이거 못하면 죽어야 한다. 이거 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각오를 해야죠. 1년 2년 두들기다 힘들어 하는데 20년은 봐야 합니다. 내 인생은, 이번 생은 이걸로 끝이다. 몇 계단 올라가다 죽더라도 하겠다. 죽음과 맞바꿀 수 있다. 히트가 안 돼도 좋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이거뿐이다. 이렇게 절실해야 그 마음이 전달됩니다.”

※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 중앙SUNDAY에 ‘스포츠 오디세이’ ‘스포츠다큐-죽은 철인의 사회’를 연재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2013년 이길용체육기자상을 수상했다. 연세대 국문학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와 한양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2102호 (20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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