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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범의 등산 미학(1) 양주 천보산 회암사지에서 

인걸은 간 곳 없고 주춧돌만 쓸쓸히 녹슬어 


1402년
그 어느 날 이성계가 회암사에 행차했다.

2000여 명의
스님과 여러 무리의 군인들이 넓은 회암사 보광전 앞에 도열했고, 수많은 백성이 숨 죽여 그를 지켜 보고 있었다.


아직도
수많은 전쟁터를 누빈 천하무적 백발 노장의 장군, 조선을 건국한 최고 군주로서의 위엄과 기상이 양주골 423m 천보산 산신령을 덜덜덜 살 떨리게 했지만….

그러나
이젠 이빨 빠진 호랑이!

불과 10여 년 만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 어린 세자 방석, 정치적 스승이자 동지 정몽주 정도전….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병사와 가련한 백성들의 목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것을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고 본인도 허울뿐인 상왕으로 버림받고 쫓겨난 방랑자 신세….

정말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눈물이 되어 앞을 가렸다.

오로지
왕이 되겠다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다섯 번째 아들 태종 이방원의 칼날에 그들은 희생양 제물이 되어야 했다.


권불십년 화불십일홍이라 했던가!

황혼의 패배자 이성계는 권력무상 인생허무를 곱씹으며 조선 건국의 창업 동지 무학대사가 주지로 있는 회암사를 찾아온 것이다.


그는
2000년 전 이미 그것들을 깨우치고 해탈한 석가모니 불상 앞에서 정신적 지주이자 오랜 친구 무학대사의 무릎에 누워 부귀영화가 하룻밤 꿈으로 모든 것 다 부질없고 덧없음을 한탄하면서, 내가 이러려고 위화도 회군을 하고 조선을 창업했을까 하는 참회와 회한의 눈물을 밤새 펑펑 흘리지 않았을까?

주인이 떠난 가련한 회암사도
조선의 건국이념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성계와의 인연과 한양이 가까워 한때는 조선 최고 최대의 왕궁사찰이었지만, 병자호란 무렵 찰나적 화재로 영예와 명예 그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고 전소되어 이제는 주춧돌과 일부 부스러기 파편만 쓸쓸히 녹슬어 가고 있었다.

세상만사 이치가 다 그런 게 아니더냐?
그러니 오늘을 열심히 살고 즐기고 가자꾸나!


*필자 소개: 김희범(한국유지보수협동조합 이사장)

40대 후반 대기업에서 명예퇴직. 전혀 다른 분야인 유지보수협동조합을 창업해 운영 중인 10년 차 기업인. 잃어버린 낭만과 꿈을 찾고 워라밸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등산·독서·글쓰기 등의 취미와 도전을 즐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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