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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의 평양리포트] 피폐한 얼굴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그 이유는 

“야심차게 추진한 정찰위성 발사 실패가 원인일 것” 

식량난 속 우주개발… 내부 단속 위해 올드보이들 앞세웠지만 효과는 ‘글쎄’
발사체 부품 인양한 한국군…기회 잡았지만 대북정책 신구 권력 충돌은 부담


▎5월 17일 군사정찰위성 1호기를 시찰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손에 담배가 들려 있다. 그 옆에는 딸 김주애도 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1월 전원회의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전원 회의를 소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친 모습이었다.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에 따르면 김정은의 얼굴은 심하게 부었고 눈 주위에는 다크 서클이 생겼다. 볼에는 큰 뾰루지도 난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은 스트레스와 과도한 음주, 수면 부족 등이 겹칠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외부에서 파악할 수 있는 1차적 스트레스는 5월 31일 야심차게 추진한 정찰위성 발사가 실패함으로써 스타일을 완전히 구겼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발사한 ‘천리마-1형’은 1단 추진체 분리 뒤 2단 추진체 고장 탓에 전북 군산 어청도 서쪽 200여㎞ 바다에 떨어졌다. 액체연료를 사용한 천리마-1형은 3개의 추진체로 구성돼 있다. 1단부터 3단까지 단계적으로 점화돼야 정찰위성을 정상적 궤도에 올릴 수 있는데, 1단 로켓 연소가 끝난 뒤 2단 로켓이 점화되지 않아 발사체가 추진력을 잃고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2단계 로켓이 점화된 뒤 공중에서 폭발한 것이 아니라 점화 자체가 안 됐다. 결국 2·3단계 로켓과 함께 탑재했던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도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다. 새로운 엔진의 점화와 연소가 불완전한데도 지상에서 충분한 연소시험을 하지 않은 결과다.

서해에 추락해버린 북한 발사체

김정은은 불혹이 안 된 젊은 나이임에도 북한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다. 그런 그도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일이 꼬여도 너무 꼬여 야심 찬 의도가 자충수가 됐다. 천리마-1형이 서해상에 추락한 뒤 이례적으로 북한 우주발사국이 발사 실패를 공식 인정했다. 우리 해군이 보름 동안 사투 끝에 발사체 잔해를 인양하는 장면을 보고 다혈질의 김정은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와인에다가 독한 양주를 한 잔하며 잔뜩 화를 냈을 것이다.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준비했더라면 이런 참패가 없었을 것이다. 후회막급일 것이다. 성질 같아서는 미사일개발총국 책임자 등을 노동단련대나 교화소에 보내 문책해야 하지만 본인이 서두른 책임도 있으니 일단 재발사 준비에 주력할 것이다. 하지만 재발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한은 2012년 은하로켓 발사에 실패한 뒤 재도전에 나서 8개월 이후에나 성공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국가우주개발국을 네 차례나 방문해 정찰위성 개발을 강조했고, 서해 위성발사장을 찾아 현지지도를 했다. 김정은의 독려와 지시로 지난해 12월 국가우주개발국은 군사정찰 위성 1호기 준비를 2023년 4월까지 끝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성급한 발사가 이뤄졌다는 분석이 가능한 근거다. 김정은은 정찰위성 발사 실패를 계기로 세상일이 본인의 의중대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한 만큼 군사력 과시에 있어 절제의 미덕을 어느 정도까지 발휘해야 할지 앞으로 고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반면 한국군은 고군분투 끝에 천리마-1형의 2단 추진체와 만리경 등 각종 부품을 인양하는 데 성공했다. 정찰위성 발사에 긴장하던 우리 군으로서는 뜻하지 않은 횡재성 인양으로 부가적 성과를 거뒀다. 우선 한국군의 인양 능력이 실시간으로 시현돼 글로벌 구조전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K방산의 시너지 효과도 적지 않았다. 이번 인양 작전에 투입된 청해진함, 통영함, 광양함 등 K구조함들의 작전 수행 능력도 검증이 된 셈이다.

합동참모본부는 7월 5일 총 36일간의 탐색과 인양 작전을 종결하면서 “위성체가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다”고 발표했다. 다만, 어떤 부품을 인양해 그런 결론을 도출했는지에 대해서 함구한 채 일절 설명하지 않았다. 군은 인양 물체가 ‘위성체 주요 부분’이라고만 할 뿐 구체적 부품이나 장비 내역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쉬쉬했다. 또한 군은 당분간 잔해 분석 결과를 발표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우리 군의 인양 결과와 탐색 작전 역량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안상 조치다.

하지만 이 같은 단정적 분석 결과라면 광학카메라 등 핵심 부품이 인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이 북한 위성체에 장착된 카메라 등 광학장비 부품을 인양해 분석하지 않고서는 이런 단정적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인양된 위성체의 주요 부분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분석할 만한 근거가 있다”고 언론에 전했다. 한·미 합동 감식을 거쳐야만 최종 결론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분석 작업에는 국방부, 합참, 한국 국방과학연구소(ADD)뿐만 아니라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 등도 참여했다.

군이 이번 인양 작전에서 건져낸 잔해물에는 위성체에 달린 카메라 등 광학장비나 부품, 광학카메라가 들어간 경통 등이 일부 포함됐다. 군 관계자는 “(해상에 추락하면서) 온전한 것(장비)은 없지만 의미 있는 것(부품)이 많다”며 “북한 위성체가 군사적 효용성이 없다고 판단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통상 500∼600㎞ 저고도에서 운용하는 위성이라고 해도 해상도가 좋아지려면 경통이 길어야 하는데, 북한 위성체 경통은 짧아 해상도가 구글 위성사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충수가 된 김정은의 조급함


▎북한이 5월 31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1형’의 발사 장면을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했다.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다. /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정찰위성이라면 해상도가 최소 1m는 돼야 하는데, 북 위성체는 해상도 10~20m로 웬만한 상업 위성보다도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수준으로 파악됐다는 의미다. 위성의 해상도는 위성 카메라 등으로 지표상 물체를 얼마나 정밀하게 파악하는지 나타내는 척도다. 해상도 1m는 가로와 세로 1m의 물체가 위성 사진에서 한 점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정찰·첩보 위성으로 쓰려면 1m 이하 해상도를 뜻하는 ‘서브 미터’급은 돼야 한다. 미국이 1976년 처음 쏘아 올린 KH-11 위성은 해상도 13∼45㎝급으로 알려졌으며, 비스듬한 각도에서도 촬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중소형급 위성발사체인 천리마-1형은 전체 길이가 30m로 한국의 누리호 47.2m보다 작다. 우리 군이 북한 ICBM 기술의 퍼즐을 맞출 수 있는 추진체를 확보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위성체와 1·3단 추진체 등 추가 잔해물에 대한 정밀 분석이 가능하다. 연결단에 1·2단 엔진 제어, 원격 명령 및 계측, 유도제어, 배터리 등의 전장품이 남아 있다면 발사체 및 ICBM 기술 수준, 국산화 수준, 해외 부품의 구매 여부 등의 진단이 가능하다. 카메라 등 광학장비 부품을 조사해보면 북한이 자체 제작했는지, 외국에서 수입했는지를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해상도까지 파악할 수 있다. 위성체에 들어간 광학장비 부품을 자체 제작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러시아와 중국 등 외국산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관련 부품을 어느 나라에서 수입했는지를 밝히면 해당 국가와 기업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적용도 가능할 것이다.

핵심 관전 포인트는 정찰위성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장한 미사일 발사였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우주 공간에 쏘아 올리기 위해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우주발사체와 ICBM은 발사 각도만 다를 뿐 구조와 원리가 동일하다. 향후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에서 추진체에 대한 정밀 분석으로 ICBM의 설계 방식, 연료체계 등 전반적 기술 수준이 드러날 전망이다. 고각 발사로 진행됐던 ICBM의 실제 사거리 등도 파악할 수 있는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을 찾은 만큼 북한 미사일 체계의 설계도를 해부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재차 정찰 위성의 발사를 예고했지만, 해상도와 궤도가 성공 여부의 관건이 될 것이다. 궁극적 목적은 ICBM 발사 기술의 진전이다. 소득 1200달러 빈곤국가가 지구상의 물체를 정밀하게 촬영할 필요는 없다.

천리마-1형은 은하-3호와 비교해 발전된 기술이 적용됐지만 역설적으로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실패할 가능성을 열어놨다. 수심이 얕은 서해 상공에 함부로 위성을 발사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묻지마 도발’에 대한 내부적 억제 효과도 크다.

북한은 전반적으로 정찰위성 기술개발보다는 ICBM 발사 능력의 외부 과시 등 정책적 판단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시어도어 포스톨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정찰위성은 카메라가 지상의 목표물을 촬영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이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위성 발사는 “기술적으로 발전된 국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종이 인형(paper doll)’에 불과한 위성으로 전 세계를 정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위협하려는 의도라고 봤다.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도 RFA에서 발사 목적이 “한국이 누리호 발사에 성공하자 김정은은 북한이 열등하게 보이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심각한 식량 부족 등의 문제 앞에서 김정은이 위성발사 성공을 통해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미사일 전문가 마커스 실러 박사는 “정찰위성 1개로 중요한 군사 역량을 수행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며 “북한은 자체 정찰위성을 발사하기보다는 상업위성 사진을 사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해외전문가들도 대체적으로 정찰위성 발사가 기술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측면에서 이뤄졌다고 평가한 것이다.

내부 결속 나섰지만 묘수 못 찾아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발사한 우주발사체 ‘천리마- 1형’의 잔해가 서해에 추락한 지 15일 만인 6월 16일 인양돼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 이송,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북한은 6월 18일부터 2박 3일간 노동당 전원회의를 개최하는 등 향후 돌파구 마련에 애를 쓰고 있다. 상반기 경제난이 심화된 상황에서 변화된 정세와 외교·국방전략을 토의한다는 입장으로, 경제난 해결 대책과 함께 2차 정찰위성 발사 등에 대한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이번 전원회의에는 김정은이 참석하긴 했지만, 그의 별도 연설이나 주요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전원회의 이후 방영된 ‘조선중앙-TV’ 화면을 봐도 김정은이 연단에서 연설하는 장면은 없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연설을 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의 연설 내용이 보도되지 않았던 사례는 당대회와 겹쳐서 개최했던 전원회의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주석단 중앙에 앉아 있었지만 연단에 오르지는 않았다. 김정은은 혼자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고 내용을 듣고 있던 데 반해 김정은만 오른쪽 귀에 검은색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연설을 하지 않은 것이 건강상 이유인지 아니면 정찰위성 발사 실패 뒤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연설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인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특이점은 전원회의 보고를 정치국과 당중앙위원회 비서들이 나눠서 한 것이다. 특정 간부가 아닌 정치국을 첫째 의정 보고자로 적시하는 등 집체적(集體的) 결정이 강조된 것은 과거와 다른 점이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이번 전원회의의 첫째 안건은 ‘올해 주요 정책집행을 위한 투쟁을 더욱 과감히 전개해나갈 데 대하여’였다. 이 문제에 대해 정치국이 보고를 하고 이어 김덕훈 내각총리, 리일환·전현철 당 중앙위 비서가 토론 발표를 했다. 둘째 안건인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박태성 중앙위 비서가 보고를 했고, 셋째 안건인 ‘인민위원회 일꾼’ 문제에 대한 보고는 조용원 비서가 했다. 과거 노동당 전원회의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과거에는 김정은이 연단에 나와 핵 문제와 남북관계, 국방, 경제, 사회, 교육 분야에 대해 몇 시간씩 보고와 평가 그리고 지시를 하면 참석자들이 이를 받아 적는 것이 관례였다.

주목되는 부분은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다. 과거 남북, 미·북 정상회담을 주도했던 77세 김영철 전 노동당 대남 비서와 76세 오수용 전 경제부장 등 노병이 이번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복귀했다. 대남 강경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심각한 경제난을 관리하기 위해 올드보이들을 구원투수로 등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해임됐던 오수용 경제부장은 1년 만에 복귀했다. 대북 제재와 코로나19로 최악의 식량난과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은 다시 베테랑(?) 오수용을 구원투수로 등장시켜 급한 불을 끄려고 하고 있다. 현재 경제 분야의 실적 부진은 코로나 3년에 따른 국경봉쇄와 유엔의 대북제재 등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식량 부족은 5~7월 춘궁기에 절정에 달하고 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일시적으로 난국을 타개하는 데는 역시 노회하고 산전수전 다 경험한 인물이 적임자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려막기 회전문 인사에 불과하다. 최근 3년 동안 노동당 부장급에서 경제부장은 김두일→오수용→전현철→오수용으로 계속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전권을 부여받지 않은 월급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은 관리뿐이다. 내일모레 80대를 바라보는 이들은 과거 김정은 지시대로 움직이다가 보직 해임된 인물들이다. 1~3년 만에 다시 자리로 돌아왔지만 근본적 개혁과 개방은 언감생심이다. 관료들 충성 경쟁의 간판 인사가 될 뿐이다. 세대 교체와 근본적 정책 변화는 없고 회전문 인사를 통해 ‘그럭저럭(muddle through)’ 버티기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올드보이의 귀환과 피곤한 김정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4월 26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자신의 ‘평산책방’에서 계산 업무를 하며 책을 손님에게 건네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최근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사실상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 사진: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77세 김영철 전 노동당 대남 비서의 복귀다. 30여 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고문 자격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2018년과 2019년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을 바로 옆에서 보좌했던 최측근이다. 대남 강경파이자 원칙주의자로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정찰총국의 수장이었고, 2006~2007년 남북 장성급회담에서는 북한 단장으로 남측 대표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김영철은 2009년 군 총참모부 정찰총국장에 올랐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피격 사건’이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정찰총국을 그 배후로 지목했다. 미국은 같은 해 8월 말 발표한 대북 제재 대상에 북한의 정찰총국과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을 포함했다. 김 고문은 2018년 4월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의 취재 제한을 사과하기 위해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나 김영철”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그의 위상은 급락했다. 재작년 대남 비서 자리가 없어지면서 통일전선부장으로 사실상 강등됐다가 지난해에는 통전부장 자리마저 후배인 리선권에게 넘겨줬고, 이어 상임위원회 위원 자리에서도 물러났었다. 한때 처형설까지 돌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고, 이번에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자 통전부 고문으로 복귀했다. 다시 대남 업무를 책임질 것이며, 경색 국면인 남북관계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이 고(故) 정몽헌 회장 20주기를 계기로 추진했던 금강산 방문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북측은 이를 남북 교류협력 조직이 아닌 외무성을 내세워 발표하면서 남측을 적대적 관계의 외국처럼 다루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남북관계를 특수관계로 판단하던 과거 행보에서 탈피하고 남한을 일반 외국과의 관계처럼 대하겠다는 의도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명했다.

김성일 북한 외무성 국장은 7월 1일 조선중앙통신에 낸 담화를 통해 남측 언론매체에 보도된 현 회장 방북 추진 계획을 언급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 국장은 담화에서 “남조선 그 어떤 인사의 방문 의향에 대하여 통보받은 바 없고 알지도 못하며 또한 검토해볼 의향도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그는 “금강산관광지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며 “우리 국가에 입국하는 문제에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북 강경 기조에 ‘남남갈등’마저 심화

윤석열 대통령은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를 통일부 장관으로 지명한 것과 관련해 7월 2일 “그동안 통일부는 마치 대북 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이제 통일부가 달라질 때가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통일부장·차관, 대통령실 통일비서관 등 통일 분야 주요직을 동시에 교체 임명한 것에 대한 배경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앞으로 통일부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헌법 정신에 따라 통일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통일은 남북한의 모든 주민이 더 잘사는 통일,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통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통일부가 북한 동향 분석과 대응, 북한 인권 관련 업무 등을 주로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통일부는 그간 집중해 온 대북 교류·협력에서 대북 압박과 인권 개선으로 그 역할이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날로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정책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당분간 남북관계는 각자의 이해와 관심에 따라 대화 없이 소 닭 보듯이 개점휴업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남남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7월 3일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사실상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이 남북 종전선언 필요성을 강조해 온 이들을 가리켜 “반정부세력”이라고 말해 야권이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나온 문 전 대통령의 첫 메시지다. 삼복 무더위에 정권 교체에 따른 대북 정책 기조의 변화를 계기로 신구 권력이 맞붙은 모양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역대 정부가 평화를 위한 정책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이어달리기를 했다면 남북관계와 안보 상황, 그리고 경제까지도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 본다”고 적었다. 문 전 대통령의 글은 최종건 전 외교부 1차관이 펴낸 책 ‘평화의 힘’에 대한 일종의 ‘추천사’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겨눈 ‘비판문’으로 해석됐다. 종전선언은 남북 평화를 강조해 온 문 전 대통령의 핵심 대북정책 기조였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강조한 이들을 반정부세력으로 몰아세운 데 이어 통일부를 향해 “대북 지원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질책하자 더 이상 침묵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신구 권력의 갈등과 대립은 철학과 가치관의 충돌인 만큼 정권 내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남성욱 -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지냈다. 2013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지낸 뒤 후학 양성과 북한 문제 연구에 전념해오고 있다. [김정은의 핵과 경제](2022, 박영사), [북한 여성과 코스메틱](2017, 한울아카데미), [한반도 상생프로젝트](2009, 나남) 등 북한 문제에 관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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