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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사람] ‘정치인’ 딱지 뗀 도종환이 밝히는 ‘인도 방문’ 내막 

“‘타지마할 관광’ 논란, 외교 모르는 이들의 꼬투리 잡기”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김정숙 여사 인도 방문 동행… “한-인도 관계 개선에 큰 기여”
시인의 눈에 비친 정치권은 “증오의 짐승 활개 치는 암흑 세상”


▎도종환 전 의원이 12년의 외유를 끝내고 ‘시인’으로 돌아왔다. 8년 만의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을 펴냈다.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보고 느꼈던 고민과 회한, 깨달음을 시어로 담았다.
도종환 전 의원을 인터뷰하기로 맘먹은 건 그가 12년의 정치인 생활을 마치고 간만에 시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어서였다. 제자리로 돌아온 ‘시인 도종환’의 감성은 예전 그대로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6월 5일 서울 마포구 마포동 호텔나루 서울 엠갤러리 2층에 문을 연 구립도서관 ‘마포나루’에서 진행한 인터뷰는 계획과 달리 대부분 정치 얘기로 채워졌다. 최근 이슈가 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 논란 때문이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던 도 전 의원은 김 여사와 동행했다. 누구보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의 설명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은 듯했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그의 전화기는 해명을 채근하듯 쉬지 않고 낮은 진동음을 냈다.

이슈가 이슈이다 보니 김정숙 여사와의 인도 방문 설명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여당 의원들의 이야기는 사실관계가 다 틀리다. 예를 들면 김 여사가 자신이 가겠다고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했다는 ‘셀프초청장’ 주장이 그렇다. 사실은 2018년 7월 한·인도 정상회담에서 인도 모디 총리가 11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를 다시 한번 방문해달라고 공식 안건으로 요청했다. 11월에 우타르프라데시(UP) 주에서 열리는 디왈리 축제와 허왕후기념공원 착공식에 참석해달라는 거였다. 허왕후는 인도 아유타국 공주였는데 가락국의 왕비가 된, 삼국유사에 나오는 인물이다. 김해 허씨의 시조다. 한국과 인도의 2000년 교류 역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양국이 함께 비용을 대서 기념공원을 만들기로 했고, 이제 착공을 하게 됐으니 대통령이 와달라는 거였다.”

“모디 인도 총리가 김정숙 여사에게 초청장 보내와”


▎최근 논란이 된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에 관해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동행했던 도종환 전 의원은 “정쟁을 위한 꼬투리”라고 일축했다. 2018년 11월 인도 방문 당시 우타르프라데시(UP) 주 아요디아에서 열린 디왈리 축제 개막식에서 김 여사(가운데)와 도 전 의원(왼쪽에서 둘째)이 연등을 밝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어째서 대통령이 아닌 영부인이 가게 된 건가?

“원래 문 대통령도 다시 오겠다고 화답했다. 그런데 정상외교 일정이 꽉 잡혀 있어서 넉 달 만에 대통령이 다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고의 사절단을 보내겠다고 한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고민 끝에 허왕후를 기념하는 공원이니까 영부인이 가는 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내부에서 나왔다. 이 소식을 들은 모디 총리가 무척 좋아하면서 영부인 초청장을 보내왔다.”

원래 문체부 장관 초청장이 따로 있었다는 보도는 그럼 뭔가?

“장관을 초청한 건 UP 주 정부가 보낸 거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초청장은 별개다. 투트랙으로 진행된 건데 이걸 뒤섞어 사실관계와 다른 주장을 펼치는 거다. 국빈급 초청은 양국이 상의해 결정하는 거지 누가 초청을 요구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외교에 관해 전혀 모르는 주장이다.”

나랏돈으로 타지마할 관광한 거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2018년 상반기에만 인도를 방문한 정상들이 한 50개국쯤 된다. 정상회담의 거의 모든 일정에 타지마할이 반드시 들어간다. 인도 정부가 요구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선 정상회담 사진은 뉴스에 잘 안 나와도 어느 외국 정상이 타지마할을 방문했다는 건 크게 나온다. 그만큼 타지마할에 대한 인도인의 애정과 자부심이 크다.”

도 전 의원은 설명하는 내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JTBC 뉴스에도 출연해 내막을 설명했지만, 정치권에서 전혀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했다. “진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정쟁을 위한 꼬투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타지마할에서 찍은 사진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 관광하러 갔단 비판이 나오는 게 아닐까.

“인도 정부가 최고위 사절단을 보내달라고 한 이유는 인도의 신동방 정책에서 우리 기술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신남방 정책상 인도 시장이 굉장히 중요하다. 2018년 7월에 삼성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휴대폰 공장을 인도에 지었다. 공장 준공식에 모디 총리와 문 대통령이 전철을 타고 갔는데, 그 전철을 현대가 납품했다. 또 지하철은 삼성물산에서 공사했다. 그만큼 중요한 시장이다. 나는 인도 관광부, 체육부 장관을 만나 관광·체육 교류 협력을 의논했고, 김 여사는 모디 총리 면담, 총리 가족과 식사, 인도 외교부 장관 회담 등 외교 일정을 수행했다. 4일간 일정을 소화한 뒤 양국 관계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아나? 인도 역사 교과서에 한국사가 2페이지 신설됐다. 그 전엔 일본사와 중국사만 있었다. 그리고 제2 외국어로 중국어 대신 한국어가 채택됐다. 인도로 관광을 갈 때 도착 비자로 바꿔주는 혜택을 일본만 줬는데 한국에도 적용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 참전 기념비가 없었는데 처음 세웠다. 그리고 석 달 뒤 모디 총리가 한국을 답방했다. 이런 중요한 외교적 성과는 쏙 빼고 꼬투리만 잡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서울 안 가 본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안다더니…”


▎에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인도가 자랑하는 타지마할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인도는 자국을 방문한 국빈에게 타지마할 관람을 요청할 만큼 자부심이 크다고 한다. / 사진:트리스탄 브로메 프랑스 영부인 비서실장 SNS·중앙포토
‘황제 기내식’ 논란이 가장 컸다.

“기내에서 무슨 호화파티를 하나. 자기 자리에서 도시락 먹은 게 다였다. 비용이 과다한지 아닌지는 박근혜 정부나 현 정부에서 정상외교 나갈 때 드는 기내식비를 비교하면 간단히 풀린다. 국회 외통위를 열어 자료 받아서 비교하면 되잖나. 공무원들이 어느 특정 정상외교 때만 비정상적으로 부풀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항공이 터무니없이 견적을 내지도 않고, 말도 안 되는 예산을 신청한다고 해서 기재부가 그걸 승인해줄 리도 만무하다. 서울 안가 본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안다더니, 직접 갔다 온 사람 말은 듣지 않고 안 가 본 사람이 더 떵떵거리는 형국이다.”

여당의 국면전환용이란 의미로 들린다.

“치욕을 치욕으로 갚으려 하지 말고, 모멸을 모멸로 갚으려 하지 않는 사회를 나는 꿈꾼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안 먹힌다. ‘백배로 되돌려줍시다’라고 해야 박수를 받는다. 바른 소리는 귀담아듣질 않는다.”

문인의 감성과 양심으로 정치권에서 버티기 쉽지 않았겠다.

“보복을 반복하는 건 한도 끝도 없다. 결국 문인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에 들어갔던 문인 중 문학과 정치 두 가지 모두 실패한 경우가 많다. 외국에선 빅토르 위고나 체코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처럼 정치도 잘하고 문학도 성공한 경우도 있다.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 민주화에 기여하고 대통령 후보까지도 했으면서 노벨 문학상도 받았다. 위고는 망명에서 돌아와 상원 의원을 두 번이나 하고도 레미제라블 같은 작품을 남겼고. 하벨은 대통령이 되고서 ‘폴리티컬 폴리틱스’, 즉 ‘정치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그건 불가능하다’고 하자, ‘그렇다면 불가능의 예술로서의 정치를 하겠다’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하벨의 연설문을 모아 [불가능의 예술]이란 책으로도 나왔다. 나도 12년간 정치를 하면서 손가락질당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경계하고 늘 사유하며 철학 있는 정치를 하고자 했다.”

“나라 다스리는 것보다 마음 다스리는 게 더 힘들어”


▎지난 5월 22일 타계한 신경림 시인은 도종환 전 의원이 민주당의 문화예술계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할 때 “일을 마치고 문학으로 돌아오라”고 격려했다. 도 전 의원은 신경림 시인의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아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의정활동하는 내내 참 부지런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전에 4년 내내 민주당이 당론으로 본회의 안 들어가기로 한 날 빼곤 본회의에 100% 출석했다. 국회의원이 본래 해야 할 일은 진짜 성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다.”

(도 전 의원은 2015년부터 장관직을 수행할 때를 제외하고 2023년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여러 단체와 기관에서 의정활동 우수 의원으로 선정됐다.)

처음 등원했을 때를 기억하나?

“민주당 쪽에서 문화예술계 비례대표를 급히 찾으면서 연락이 온 터라 준비가 안 돼 있었다. 제안을 받고서 문학계 어르신들과 상의했다. 처음엔 반대하셨던 신경림 선생께서 나중엔 찬성하시면서 가서 일 잘하고 문학으로 돌아오라고 격려해주셨다. 이제 돌아왔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더니 이미 돌아가셨다.”

(신경림 시인은 5월 22일 타계했다. 충북 청주 출신인 도 전 의원은 충주 출신인 신경림 시인과 교분이 두터웠다. 도 전 의원은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아 스승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도 전 의원은 신경림 선생 얘길 꺼내자 이내 눈물이 고였다.)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한데 정치권에서 12년을 어떻게 견뎠나.

“시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정치적 역할을 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보다 마음의 화를 다스리느라 혼났다. 분노하고 화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매일 생기는 게 정치권이니까. 즉시 말싸움하고 대응하면서 분노를 있는 그대로 표출해야 정치 잘하는 거로 인식되다 보니 나처럼 순발력이 떨어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한 뒤 행동하는 사람들은 참 힘들었다.”

의정활동에 나름의 원칙이 있었나?

“정치권에는 경박하고 거칠게 행동하고 말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이 팽배했다. 난 우선 겸손해야 한다, 그다음에 지혜롭게 행동하자, 영혼 있는 정치를 해보자, 이런 원칙을 지키려고 애썼다.”

처음 등원했을 때 근조(謹弔) 화분을 받았다는 기사를 봤다. 그 화분 아직 갖고 있나?

“대개 처음 등원하면 축하 난을 많이 받는데 지인 한 분이 ‘근조’ 리본을 달아서 보냈다. 그분이 볼 때 ‘너는 시인으로서 이제 죽었다. 네 죽음을 애도한다’ 이런 뜻이었을 게다. 장난기 섞인 선물이었겠지만, 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 화분을 책상에 올려두고 매일 자문했다. ‘나는 오늘 죽었는가, 나는 오늘 살았었는가.’ 하루하루 성찰의 도구였다. 리본까지 그대로 단 채로 여전히 잘 키우고 있다.”

도 전 의원은 이번에 열두 번째 시집을 냈다. 무려 8년 만이다. 제목은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극단적인 양극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정치권에 몸담으며 가졌던 문제의식을 명쾌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12년간 쓰고 있던 정치인의 굴레를 벗어던진 ‘시인 도종환’의 복귀를 알리는 전보(轉報)인 셈이다.

정치생활 고뇌 담은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출간


▎도종환 전 의원은 시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화를 다스리고 정치적 역할을 하는 게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2021년 8월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도종환 위원장을 둘러싸고 회의 진행을 막고 있다.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이란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정오(正午)’에 대해 가장 명료한 정의를 내린 알베르 카뮈의 표현에서 빌려왔다. 카뮈에 의하면 정오는 환하고 따뜻하고 생명이 가장 잘 자라는 시간, 그래서 가장 균형 잡힌 시간이다. ‘중용의 시간’이란 거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떤가.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에 와 있진 않은가. 가장 어두운 시간, 가장 두려운 시간, 균형이 깨진 시간, 극단의 시간에서 우리 내면의 짐승들이 활개를 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극단의 시간에 서 있기에 세상이 증오와 적개심으로 움직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종(弔鐘)은 아닐 테고, 사회를 향한 경종(警鐘)으로 이해하면 될까?

“어둠 속에선 별을 보고 길을 찾는다. 별을 보며 성찰하고, 존재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을 살면서 성찰하지 않으면 우리 내면의 짐승들이 날뛰어 동물적인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양극단의 삶을 완화하는 게 정치가 할 일인데, 오히려 증오와 적개심을 부추기고 흥분한 사람들을 지지자라는 이름으로 자기를 알리는 데 동원하더라. 내가 경험한 정치는 별의 역할과 거리가 멀었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권력은 나눌 수 없기에 더 치열한 게 아닐까.

“정치는 지지자의 요구대로 100을 관철하는 게 아니다. 20, 30을 상대에게 양보해야 절충점이 생긴다. 민주주의는 동의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서로의 얘기를 들어야 하고, 서로 권력을 주고받으면서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거다. 우리만 집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저들이 집권하면 5년 내내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증오와 실패가 끝없이 반복된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 실패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에 민주당이 집권하면 성공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땐 반대편의 증오가 또 발목을 잡을 거다.”

설명을 들으니 잠언시집에 가까워 보인다.

“정치가 대의를 잃고 내 재산과 권력, 지위만 지키려고 들면 나라가 망한다. 지금 우리 앞에 얼마나 많은 소멸의 위기가 놓여 있나? 기후, 저출생, 중앙과 지방의 양극화, 경제적 양극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인데 진보적 테제로 위기를 극복하려 하기보다 권력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은가. 그런 욕심이 ‘영성 없는 진보’, ‘능력 없는 보수’란 비판을 받게 하는 거다. 정치의 실종이다.”

도 전 의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인이 12년간 몸소 겪었던 정치권은 ‘욕망의 진흙탕’이었다. 충돌하는 욕망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어디까지 해소할 수 있는지 처절하게 고민했다. 그저 진흙탕에 같이 뒹굴어 범벅이 되고 마는 게 아니라 진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탐구했다. 그 치열함이 시집을 채웠다.

정치하더니 변했다는 얘기도 들어봤을 텐데 괴롭지 않았나?

“생선 상하지 말라고 소금을 뿌려두면 하얗던 본래 색이 사라지고 누리끼리해진다. 비린내를 끌어안고 버티는 동안 자기 모습이 변한 거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소금이 변했다고 손가락질한다. 자기 몸을 녹이고, 색깔이 바래야 소금은 제 역할을 하는 거다. 그곳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라는 요구와 왜 달라졌느냐는 평가는 양가적이다. 나에게 어느 시기에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인데 시인이 아니다, 달라졌다고 하는 것도 그와 다르지 않다.”

“통곡과 고락, 백성과 함께해야 진정한 선비”


▎도종환 전 의원은 “영성 없는 진보, 능력 없는 보수란 비판을 새기고 증오의 순환 고리를 끊어야 정치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인이 되고 나서 문장이 달라지진 않았나?

“소재와 생각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혼자 조용히 글을 쓰는 게 구도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은 구도의 길과 세속의 길은 둘이 아니라고 하셨다. 세속에 나와서도 구도의 길을 가던 정신을 유지하고 있으면 같은 길이란 거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두 노인]의 결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나는 문학의 순례를 하다가 잠시 세속의 길로 다녀온 것뿐이다. 이 깨달음을 ‘속유(俗儒)’라는 시에 담았다. 선비는 문장과 서책을 벗어나 백성들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통곡과 고락을 함께해야만 진정한 선비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집필 계획은 없나?

“‘왜 거기 있었는가’라는 책을 내려고 한다. 저 강 건너(여의도)에 있으면서 매일 하던 고민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왜 거기 있었는지 통찰한 자전시를 써보려고 한다. 이번엔 좀 긴 글로 써볼까 한다.”

도 전 의원과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의 시를 몇 수 찾아보던 중 [라일락 꽃]에 시선이 붙잡혔다. 12년의 ‘외유’ 기간에 그가 지키려 했던 문인의 절개를 단 두 문장으로 압축해놓은 듯했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407호 (202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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