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파괴본색 

“1997년 비행기 참사가 주는 교훈은 ‘소통’ … 위계질서 등 상하 벽 타파해야”
장벽 먼저 허물어라! 거북이냐, 표범이냐 “답은 정해져 있다” 

이윤찬·임성은 기자·chan4877@joongang.co.kr
세계적 ‘경제 빙하기’다. 한국 경제의 성장엔진은 꽁꽁 얼어붙은 지 오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소통을 방해하는 장벽은 높고 두텁다. 위계질서를 초래하는 상하 장벽, 부서 이기주의를 부르는 기능적 장벽 등 종류도 많다. 그렇다고 머뭇거려선 안 된다. 장벽은 원활한 소통을 막고, 불통은 또 다른 위기를 부르게 마련이다. 지금은 ‘파괴본색’을 발휘할 때다.

1997년 8월5일 오전 1시42분. ‘괌’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801편이 ‘쾅’ 하는 굉음을 내며 추락했다. 탑승객 254명 중 228명 사망. 대형 참사였다. 그런데 추락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기후가 불안정했던 것도, 기체가 이상했던 것도 아니었다. 항공 전문가들은 사고 항공기의 블랙박스를 샅샅이 뒤졌고, 그제서야 이번 참사의 충격적 전말이 밝혀졌다.

부기장이 기장에게 던진 애매모호한 한마디. “오늘, 기상 레이더 덕 많이 본다.” 바로 이 말 때문이었다. 경영학자 말콤 글래드웰은 자신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는 사소한 고장과 장애가 축적돼야 발생한다”며 “부기장이 기장에게 ‘문제를 문제라고 직접 전달하지 못한 게’ 사고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오늘, 기상 레이더 덕 많이 본다’가 아니라 ‘육안에 의존해 착륙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기상 레이더를 정확히 보라’고 경고했다면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글래드웰은 이를 “상사와 부하 간 대화가 미묘하게 전개되는 한국 문화의 특성”이라고 분석했다.

종속적 갑을 관계처럼 상사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한국인 부하가 정확한 표현을 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참사의 원인은 밝혀졌다. 후속조치는 어땠을까? 대한항공은 ‘기장-부기장’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을 걷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종석에 앉으면 영어를 쓰라는 이색 조치도 내려졌다.

높임말도, 반말도 없는 영어를 사용해 ‘경고를 확실하게 하라’는 취지였다. 위계질서 타파와 원활한 의사소통. 바로 이것이 대한항공이 찾아낸 안전운항의 모범답안이었다. 상사와 부하, 동료와 동료 사이에 놓여 있는 장벽은 이처럼 ‘나는 비행기’도 떨어뜨린다. 높은 장벽에서 기인하는 ‘불통’의 대가는 뼈아픈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위기’‘부도’‘파탄’…. 온통 빨간 불, 연일 암울한 소식뿐이다. 대한민국호(號)를 ‘시계제로’ 상태로 몰아 넣고 있는 글로벌 경기침체는 좀처럼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기업 경영진은 현장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을 무시해선 안 된다. 직원의 경고를 경청하고 되새겨야 한다.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과 소통 빠르게 하는 기업 ‘승자’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열린 경영의 시작은 마음으로 들어서 마음을 얻는 ‘경청’에서 비롯된다”며 “경청을 바탕으로 상생과 협력, 개방을 실천해 나간다면 모든 이해관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최고의 경영활동 수준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직원 역시 고언을 서슴지 말아야 한다.

배가 산으로 질주하면 ‘방향키를 바꾸라’고 윽박지를 수 있는 배포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같은 대참사는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상사에게 맘놓고 쓴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직원이 얼마나 되겠는가? 반대로 직원의 고언을 귀담아들을 만한 CEO는 또 많겠는가?

글래드웰이 지적한 미묘한 대화가 전개되는 한국 문화의 특성이 바로 이것이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상사와 직원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을 허물면 된다.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프로세스와 기업문화를 만들면 그만이다. 하잘것없는 권위를 버리고 아랫사람과 소통하라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불황터널 속에 있다. 이 같은 위기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이다.

‘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을 요량으로 사장실을 허물고 버스를 타고 다니는’ 일본항공(Japan air) CEO 니시마쓰 하루카(西松遙)처럼 말이다. 사장실을 털어버리고 직원과 소통하고 있는 이호림 OB맥주 사장, 최준근 한국HP 대표도 좋은 사례다. 문제는 상하의 벽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부서 간 소통을 방해하는 장벽도 많다. 요컨대 개발팀·마케팅팀·기획팀 사이에 존재하는 ‘기능적 벽’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벽을 허물지 못하면, 불황탈출에 필요한 지혜를 모으기 어렵다. 부서 이기주의에 빠져, 바다로 가야 할 배가 낭떠러지로 향할 수도 있다. 한 중소기업 CEO의 한탄이다.

“실적부진에 대한 보고서를 올리라고 했더니 개발팀은 마케팅팀 때문이라고 하고, 마케팅팀은 잘못한 것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온통 ‘변명자료’만 들고 온다. 불황을 벗어날 수 있는 비법을 마련하기는커녕 조직갈등만 커지는 실정이다.” 글로벌 종합생활유통업체 P&G그룹 CEO 재플리가 “부서 간 장벽을 타파해야 기업이 효율적으로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행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미국 시스코시스템스의 CEO 존 챔버스는 “덩치가 큰 기업이 항상 작은 기업을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빠른 기업은 언제나 느린 기업을 이긴다”고 말했다. 창조경영아카데미 김영한 대표는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조직성향을 아메바처럼 유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몸집을 줄여야 한다.

쓸모없는 유무형의 장벽을 깨뜨리고, 소통의 장을 활짝 열어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은 글로벌 침체기다. 이런 지긋지긋한 상황을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 없고, ‘나만의 지혜’로 불황탈출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지금은 위키노믹스(Wikinomics: 위키백과와 economics의 합성어로 협업경제학의 의미) 시대, 협업이 비즈니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동규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상하좌우에 놓여 있는 벽을 깨는 것은 창조경영의 기반”이라고 말했다. 거북이는 위기가 찾아오면 등껍질 속으로 몸을 숨긴다. 천하무적일 것 같지만 치명적 약점이 있다. 등껍질 속에 들어가는 순간 세상과의 소통이 일순간 단절된다. 천적 독수리가 바로 옆에 있는지, 자신을 낚아채 하늘로 날아올랐는지도 모른다.

벽은 소통을 막고, 불통은 위기를 가중한다. 표범은 다르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털색을 바꾼다(표변). 이에 따라 사냥을 쉽게 할 수 있고, 천적을 피하는 데 능하다. 세상과 빠르게 소통하는 습성은 표범의 내성을 강하게 만들었다. 바야흐로 경제 ‘빙하기’다. 1998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불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신은 등껍질(벽) 속에 숨은 채 위기모면에 급급한 거북이가 되겠는가? 아니면 벽 없는 세상에서 소통하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표범이 될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982호 (2009.04.1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