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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바비 인형, 중국 유혹하다 

“세계 유일 바비 전용매장 상하이에 열어…금발 바비 가장 인기”
마텔의 글로벌 마케팅 실험 

채인택 중앙일보 기자·ciimccp@joongang.co.kr
올해로 탄생 50주년을 맞은 바비 인형이 중국에서 생존의 길을 찾고 있다. 바비 제조사인 마텔사는 3월 6일 중국 상하이 중심지에 대형 점포의 문을 열었다. 이 매장에서 판매되는 바비 인형과 액세서리는 60% 정도가 중국에서 현지 생산되며, 나머지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만들어져 수입된다.

6층 건물 전체가 바비 인형과 액세서리만 파는 상하이 전용 매장. ‘섹스앤더시티’의 의상 디자이너인 패트리셔 필드가 디자인한 바비의 옷과 액세서리가 판매되고 있다.

전체 면적이 3500㎡에 이른다. 바비만 파는 전용 매장은 바비의 고향인 미국에도 없다. BBC방송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상하이가 유일하다. 마텔은 중국에 미래를 걸고 있다.

바비 생산기지에서 판매시장으로 중국의 가치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BBC 보도에 따르면 이 매장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현란한 분홍색 의상을 입은 875개의 바비 인형이 줄지어 있는 통로 전시장이다.

바비 인형이 흡사 진시황릉 용마갱의 병사들처럼 무더기로 줄지어 서있는 것이다. 팬들이 이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포토용 옥좌도 가져다 놨다.

통로에는 잘 차려입은 상하이의 여자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손톱을 다듬는 곳도 마련됐다. 그 사이사이에도 인형을 담은 상자가 줄줄이 진열됐다. 한결같이 바비의 특징인 길쭉길쭉한 다리를 하고 있고 금발도 하나 있었다.

나머지는 대개 아시아인의 눈 모습을 한 동양적인 바비 인형이었다. BBC에 따르면 이 매장의 매니저 로라 라이는 “대부분의 중국 엄마는 어려서 바비를 가지지 못했으며 이들은 바비를 아이들에게 사주면서 자신도 함께 즐긴다”고 말했다. 라이는 “이는 부모 세대들이 잃어버린 한 부분을 지금에서야 채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매장엔 동양계 바비가 대세

그는 “그래서 이 매장은 부모 자식이 함께할 기회를 가급적 많이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밝혔다. 엄마와 딸이 바비 쇼핑을 하면서 새로운 인형을 디자인해보고, 카페에서 점심을 함께 먹고 아이스크림 바에서 주전부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시 그의 말이다.

“이곳은 엄마가 딸과 뭔가를 함께 할 기회를 아주 많이 제공한다는 개념으로 만든 곳이다. 단순한 여자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소녀의 마음을 가진 모든 연령대 여성들을 고객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나라 고유 의상을 각각 입고 있는 인형들을 보며 엄마가 여섯 살짜리 딸에게 어느 나라에서 온 의상인지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장면도 보였다.

이 여성은 “상하이나 베이징 같은 대도시의 어린이들은 바비에 대해 아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사이 딸은 더 많은 바비 인형을 보러 가자며 엄마의 팔을 잡아당겼다.

문제는 가격이다. 그는 “바비 인형 값은 중국 기준으론 아주 비싼 것”이라며 “가끔 가짜를 사기도 하는데 사람들이 갈수록 돈이 많아지고 있어 바비는 조만간 아주 인기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바비가 상하이를 택한 이유다. 마텔사는 전 세계 여러 도시를 폭넓게 조사한 뒤 상하이를 낙점했다. 중국은 아직 부자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돈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경험을 원하게 마련이다. 중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바비 종류는 아이로니컬하게도 금발에 빼빼 마른 전통 바비다. 아시아인의 모습을 한 바비는 세일을 하는 데도 별로 팔리지 않고 있다.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상하이 테틀러’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애니 왕은 “내 친구들의 아이를 보면 바비가 서방 브랜드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며 “지금 아이들은 바비나 라이언 킹을 자기 삶의 일부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중국 음식을 먹다가 맥도널드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바비 관계자들은 중국이 언젠가 최대 시장이 되리라고 믿고 있다. 이 매장은 그때를 대비한 투자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중요한 고객이 될 어린 세대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다. 지금 아이 세대는 자신들의 부모 세대보다 훨씬 큰 구매력을 가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미래를 바라보고 아이들의 눈길을 어릴 때부터 잡아두려는 전략을 구사하는 국제적인 브랜드 업체는 바비뿐이 아니다. 월트 디즈니도 그중 하나다. 독특한 것은 이 회사가 자신들의 브랜드를 단 최초의 학교를 상하이에 세웠다는 점이다. 원래 디즈니는 오랫동안 수업용 교육 자재를 전 세계에 공급해 왔다. 하지만 디즈니 브랜드의 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고 BBC는 보도했다.

마텔, 중국에서 사활 건 마케팅 실험

세계 각국의 영어 사용자들이 상하이의 월트 디즈니 학교에 와서 중국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들은 영어 수업에서 첨단 시청각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물론 미키마우스나 도널드 덕처럼 전 세계 어디에서나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디즈니의 캐릭터를 사용해 흥미진진하게 수업을 진행한다.

아이들에게는 물론 학비를 내는 부모에게도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상하이의 월트 디즈니 영어학교에 따르면 중국의 영어 사교육비는 21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디즈니 학교의 앤드루 서저먼은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영어 교육 시장”이라고 말했다. 디즈니가 영어학교를 상하이에 세운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중국 어린이들을 어려서부터 자사 캐릭터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상하이를 중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생각하고 있다.

이곳에서 운영을 해보고 잘되면 중국의 다른 도시로 진출하는 방식이다. 인형 판매량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마텔은 미국 연말연시 판매가 크게 줄면서 지난해 4분기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46%나 떨어졌다. 특히 지난해 성탄절 시즌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5%나 줄었다. 10년래 최악의 실적으로 기록됐다.

마텔 측에 따르면 마텔은 바비 인형 판매로 한 해 평균 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려왔다. 바비와 다른 제품을 포함한 전체 매출은 2007년 59억7000만 달러였으며 6억 달러 이익을 냈다. 매출의 51%가 미국, 26%가 유럽에서 나왔다. 아시아는 4%에 그쳤다. 역으로 아시아에서 판매 확대 가능성이 크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마텔이 새 시장인 중국에서 사활을 건 마케팅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비 신화 일군 세계 최대 장난감 메이커
마텔 어떤 회사인가?
세계 최대의 장난감 회사다. 바비와 아메리칸 걸을 비롯한 인형 제품과 보드게임, 비디오게임 등 다양한 장난감을 개발해 판매한다. 1945년 해럴드 매트 맷슨과 엘리엇 핸들러가 공동 창업했다. 회사 이름 마텔은 맷슨의 별명인 매트와 엘리엇의 앞 부분을 합친 것이다.

핸들러의 부인인 루스가 나중에 회장에 올라 1959년 바비 인형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바비는 1959년 3월 9일 뉴욕에서 바버라 밀리센트 로버츠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그 뒤 바비는 이 회사 이익의 80%를 책임져왔다. 원가 상승과 매출 감소로 고민하던 이 회사는 중국 등으로 생산라인을 옮겼다.

2002년 미국에 있던 마지막 공장이 문을 닫았다. 지금은 모두 중국을 비롯한 해외 기지에 생산을 맡기고 있다.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세군도에 있다. 3만1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988호 (200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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