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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중국, 인도行… 미 교육계 ‘골드러시’ 

2001년 9·11 이후 유학생 수 줄자 학생 찾아 해외분교 설립 붐
미 대학은 대표 수출상품  

전영완 미주 중앙일보 워싱턴DC 지사 기자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 대학들이 ‘안방에서 유학생을 받는 시대’에서 ‘해외분교를 통해 현지학생을 받는 시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외국 유학생들의 미국행이 주춤해지면서 더욱 가속화된 현상으로, 현재 중동·아시아 등지에 무려 50여 개의 미국 대학 해외분교가 운영되고 있다.

싱가포르에 있는 미 시카고 경영대학원 학생들이 둘러앉아 대화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미국 대학 해외분교 설립 요청은 약 2년 전부터 아예 쇄도하는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싱턴대학의 해외프로그램 담당 수전 제퍼드 부총장은 “각국으로부터 현지분교 설립 제안서를 거의 매주 한 통꼴로 받고 있다”면서 이를 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스팸메일’에 비유할 정도다.

지금까지 미국 대학의 해외분교를 가장 많이 유치한 곳은 중동지역. 두바이·아부다비 등 아랍에미리트(UAE)가 전체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에듀케이션 시티’를 만들어 문호를 활짝 연 카타르(9%)도 그 뒤를 잇는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7%)가 선두. 미국 듀크대 의과대학과 뉴욕대 예술대학 등 명문대 분교들이 문을 열고 있다.

2000년 싱가포르에서 문을 연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은 내년에 규모를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그 밖에 중국과 인도, 그리고 새로운 ‘교육 허브’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송도 등지에도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가리켜 뉴욕타임스는 교육계에 부는 ‘골드러시(Gold Rush)’로 표현했다.

해외분교는 미국에 유학을 계획했던 해외 현지학생들에게 단연 인기다. 수업은 모두 미국인 교수들의 영어로 진행되며, 미국 대학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가 고스란히 유지된다는 점도 젊은이들에게 매력이다. 물론 졸업장도 본토에서 수여하는 것과 거의 차별이 없다. 따라서 입시 경쟁률은 현지 대학들에 비해 치열한 편. 특히 중국 등의 경우는 미국 비자 받기가 까다로워 유학 지망생이 많이 몰리고 있다.

일부 대학은 등록금이 비싸 현지 상류층 자녀들에게만 유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미주리 주립대의 중국 캠퍼스에서 3년간 공부하고 지난해 미국 본교에서 졸업식을 가진 글로리아 박(Gloria Bark·24)씨는 “미국 본교 재학생들 상당수가 내 경우처럼 해외분교에 나가 공부하고 있다”면서 “미국 문화와 교육, 그리고 중국 문화까지 동시에 배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송도 오는 조지메이슨 중동에선 실패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사막 속의 아이비리그(A Middle East Ivy League)’ 기사에 따르면 미국과 숙원지간인 중동지역에서 일고 있는 미국 대학교육 열풍이 이채롭다. 9·11 테러 이후 한동안 미국행 유학생들의 발길이 뚝 끊겼던 곳이고 역사적으로도 결코 가까울 수 없는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은 “중동에서의 미국 대학교육이 거의 아무런 문화충격 없이 잘 정착돼 가고 있다”고 밝혔다. 하워드 롤린스 조지아공대 전 국제프로그램 디렉터는 “미국 대학들의 글로벌 캠퍼스 설립은 이제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며 “각 대학은 분교에서 공부할 현지학생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대학의 중동 진출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다. 2006년 아랍에미리트에 분교를 개설했다가 올해 문을 닫은 조지메이슨대(버지니아 소재)의 실패 사례가 그것. 조지메이슨대는 처음 영어프로그램(ESL)으로 시작했지만 정작 전공을 이수하려는 학부생 모집에 실패해 결국 분교를 철수했다.

대신 조지메이슨은 올해 한국의 송도 캠퍼스에 진출해 해외 교두보를 마련한 뒤 모스크바 캠퍼스 등도 계속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현재 지구촌 해외분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대학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조지메이슨대 송도 캠퍼스 설립을 주도한 노영찬 교수(조지메이슨대 동양철학과 학과장)는 “미국 대학들의 21세기 화두는 바로 ‘글로벌(Global)’”이라며 “미국 대학이 외국에서도 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첫째, 시대의 흐름을 좇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학의 첫째 강점은 뭐니 뭐니 해도 대학마다 차별화된 특성화 교육이다.

예를 들어 미 동부지역 IT밸리로 부상하고 있는 북버지니아 지역 조지메이슨대의 경우 학교 설립 때부터 남들이 안 하는 최첨단 학문에 역점을 두면서 급부상했다. 정보기술 및 컴퓨터분야 등 비전통적인 전공 분야에 심혈을 기울였고, 이는 설립 36년 만에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대학’이라는 명성을 얻도록 했다.

즉, 미국 대학의 특성화 교육은 중동에 진출한 분교들의 프로그램이 의학·공학·컴퓨터·국제관계학 등 당장 필요한 직업교육 위주로 구성돼 있는 것만 봐도 잘 드러난다. 미국 대학교육이 강한 둘째 이유는 교육의 질(質)을 제고하기 위한 자체 감독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대학이 대학답고 믿을 만한 고등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학력인증기관(Accreditation body)들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 단체는 연방정부도 로컬정부도 아닌 각 대학이 참여해 만든 비영리 단체로, 학사운영 및 교육프로그램의 질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미 전역에는 현재 84개의 인증기관이 있으며 그 인증은 학교 전체(Institutional), 혹은 특정 프로그램(Programmatic)에 주어지기도 한다. 인증기관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대학들은 상호 자유협약에 따라 학점교류 등 다양한 혜택을 나누게 된다.

반면 그렇지 못한 대학은 편입학 시 불이익을 받는 등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다. 결론적으로, 학력인증제도는 미국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스스로 감시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대학 상호간 교육의 질을 유지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강력한 툴이 되고 있다. 미국 대학의 셋째 강점은 실력 있는 교원 구축 시스템이다.

미국 대학에서 종신교수(Tenure)가 되기 위해서는 조교수 생활 7년을 마친 뒤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교수들은 진정한 실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실력파 교수 구축이 성공의 관건

심사 기준은 크게 연구 업적과 티칭 능력 두 가지. 연구업적 평가가 워낙 깐깐해서인지 대학 측은 사전에 ‘당근’을 주기도 한다. 심사 대상자로 하여금 논문 발표 및 저서를 출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한편, 연구에만 전념하도록 티칭을 하지 않아도 되는 ‘연구학기’를 제공하는 것이 그것.

이어 학생 및 동료 교수들로부터 티칭 능력에 대해 평가를 받아야 하는 관문도 남아 있다. 종신교수 되기가 이처럼 어렵기 때문에 신입교수 선발 또한 하늘의 별 따기다. 채용절차는 ‘서류 심사 - 인터뷰 - 현직 교수들의 투표’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 다음 마지막 2~3일 동안은 함께 워크숍에 참여해 ‘인간성(인성)’을 테스트한다.

요즘 같으면 채용 경쟁률이 거의 100대 1에 육박한다고 한다. 노 교수는 “미국 대학에서는 교수 한 명을 뽑는 데 7~8개월의 긴 시간이 걸린다”면서 “까다롭지만 철저한 이 시스템이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미국 대학의 경쟁력은 세계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자유분방한 학교 분위기’에서 나온다.

미국과 문화가 판이하게 다른 중국이나 중동 등 해외캠퍼스에서조차도 핼러윈 데이와 추수감사절 풍습은 여전히 엄수(?)된다. 댄스파티도 열리고 잠옷(파자마)을 입고 등교하는 ‘파자마 데이’도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즐긴다. 미국 대학 분교에는 현지 대학에서 경험할 수 없는 재미가 있다.

글로리아 박씨는 “2006~08년 미주리 주립대 중국 분교에 재학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문화를 동시에 배울 수 있어 좋았다”면서 “세계적인 명문 대학들을 갖고 있는 미국의 교육에 거는 기대감과 함께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는 자유분방함이 그곳에 있었다”고 말했다.

992호 (200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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