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멀라인 팽크허스트는 여성 참정권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기존 정당을 통해서는 뜻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한 팽크허스트는 WSPU(여성사회정치동맹)를 결성해 투쟁을 벌였다. 투쟁은 격렬했다. 시내 건물의 유리창을 부수고 빈 건물에 불을 질렀다. 격렬한 투쟁은 죽음을 낳았다. 경마장에 뛰어들어 시위를 벌이던 여성이 말에 밟혀 사망한 것이다.
이 모든 투쟁의 배후로 지목된 팽크허스트는 13번이나 투옥됐다. 감옥에서도 투쟁을 계속했다. 1913년 한 해 동안에만 12번의 단식 시위를 벌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성 참정권 문제는 조금도 진척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변화된 상황을 지켜보던 팽크허스트는 전략을 변경했다. 팽크허스트는 참정권 투쟁을 잠시 접는 대신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여성들이 적극 돕자고 나섰다. 지금껏 눈엣가시로만 여겨왔던 팽크허스트가 정부 정책에 호응하고 나서자 영국 정부도 생각을 바꾸었다. 영국 정부는 전쟁이 끝난 1918년 마침내 여성의 참정권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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