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세종실록』과 『정조실록』, 그리고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 등 원전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다(예: 세종8.5.11 → 세종 8년 5월 11일자 실록). “ ”표시는 원문의 직접 인용(단, 대화체로 변형함), ‘ ’표시는 원전을 바탕으로 각색한 것이다. 나머지는 필자의 창작이다.
정조 삼가 여쭙습니다. 전하께서는 즉위 교서에서 ‘시인발정(施仁發政:어짊을 베풀어 훌륭한 정치가 이루어지게 한다)‘을 천명하셨습니다. 이것은 맹자가 말한 ‘발정시인(發政施仁:훌륭한 정치를 행하여 어짊을 베풀 것이다)’에서 가져오신 것이라 알고 있사옵니다. 그렇다면 왜 ‘발정’과 ‘시인’의 순서를 바꾸신 것입니까.
세종 ‘맹자께선 훌륭한 정치를 행하여 어짊(仁)을 베풀어 나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 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앞을 다투어 왕의 나라로 몰려와 농사짓고, 벼슬하고, 장사하며 행복하게 그들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리하여 설령 나라의 크기는 작을지라도, 그 어떤 대국들도 감히 넘보지 못하는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 하셨다.’(맹자). 내가 꿈꾸는 나라도 그것이다. 다만 ‘발정시인’이라 할 경우, 물론 맹자께서는 그런 의도가 아니시겠지만 후세 왕들이 정치의 주체를 백성이 아닌 왕 자신으로 오해할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발정시인’을 ‘시인발정’으로 바꾼 것이다. 나는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을 베풀어 인을 통해 교화된 개개인들이 모여 그들이 곧 위대한 정치를 이루어 가도록 만들고 싶다. “어짊을 베풀어 이 땅 위에 훌륭한 정치가 행해지게 함으로써 선왕들께서 땀 흘려 이루신 은택을 이어나갈 것이다”는 다짐은 그러한 나의 소망을 담은 것이다(세종 즉위년.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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