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일본 조총(鳥銃) 역사의 교훈 

 

안현호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의미의 조총(鳥銃)이 일본에 전파된 시기는 15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은 총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서구에 뒤지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검술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 무사계급의 반발로 일본 역사에서 총은 한동안 종적을 감췄다. 이후 일본은 20세기 초부터 세계 무대의 강자로 등장하면서 아직까지도 아시아 국가 중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에 속한다.

그런데 일본이 최근 또 다시 역사의 시험대에 올라있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사실상 성장이 중단됐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4년 18.1%에서 최근 8%대로 줄었다.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대 7%대에서 현재 4% 중반으로 감소했다. 무엇보다 일본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은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 약화일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의 해외 진출이 급증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화됐다. 이는 고용감소, 무역수지 적자 확대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로까지 연결된다. 실제로 지난해 일본의 해외 투자는 13조2000억엔으로 1985년 이후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하반기에 월별 경상수지가 적자로 전환됐다.

2012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아베노믹스는 일본 경제가 이 같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 재기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은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하기 위한 통화정책, 유연한 재정정책,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이라는 세 가지 화살이다. 이 중 세 번째 화살이 그동안 수많은 정책적 시도에도 해결하지 못한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바로 엔고, 높은 법인세, 높은 인건비, 급격한 환경·노동 규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지연, 전력 수급 불안 등 이른바 ‘6중고’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다.

하지만 엔고를 제외하면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더구나 세 번째 화살은 일본 내부 혁신에 대한 정치적 의지와 국민적 공감대없이는 활시위조차 당겨보기 어렵다. 과연 일본이 뒤늦게라도 혁신의 기개와 의지를 발휘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내부의 반발과 저항으로 과거 조총의 운명을 따를 것인가.

이런 물음에 우리나라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최근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들여다보면 20년의 간격을 두고 일본의 행로를 따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저출산·고령화부터 점검해보자. 한국의 출산율은 2012년 기준 1.3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인 반면 고령화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 이를 되돌리기도 어려워 보인다.

한국 경제의 고비용 구조도 이미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통상임금 범위 확대 등으로 인건비·조세 부담 모두 커졌다. 환경·노동 규제 역시 더욱 강화되고 있다. 올해부터는 원화 강세까지 예상된다.

일본은 과거 기득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조총이라는 신기술과 변화를 금지시키는 우를 범했다. 1990년대에는 버블 붕괴 후의 이상징후를 일시적인 경기순환의 문제로 치부하고 내부 혁신에 실패해 ‘잃어버린 20년’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이 같은 실수는 한국의 반면교사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늦기 전에 내부 혁신의 활시위를 당기는 기개와 의지다.

1238호 (201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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