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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큼 다가온 인공지능 로봇 - 웃고 삐치고 말하고···사람 닮은 로봇 

소프트뱅크의 페퍼, 튜링 테스트 통과한 인공지능 등장 … 한국은 연구 더뎌 




인공지능 로봇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일본 소프트뱅크가 6월 5일 지능형 로봇 ‘페퍼’를 공개한 데 이어 한 인공지능 컴퓨터가 사상 처음으로 ‘튜링 테스트(기계의 인공지능을 검증하는 테스트)’를 통과했다. 사람의 감정까지 읽어내는 신기한 로봇의 등장에 과학계가 오랜만에 들뜬 분위기다. 인공지능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지만 잠재 가치가 무한하다. 미국·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국책 연구소를 거점 삼아 인공지능 연구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구글·IBM 등 세계적인 IT 기업 역시 새 시장 개척에 뛰어들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의 인공지능 연구는 더딘 모습이다. 6월 19일 제 9회한국로봇종합학술대회가 열렸는데 아쉬움의 목소리가 컸다. 국책 연구소는 없고, 기업도 뒤만 쫓는 모양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현재와 미래를 짚었다.


지난 3월 17일 LA타임스는 지진 관련 소식을 전하는 속보 기사를 온라인에 냈다. 이 기사는 LA타임스 기자 겸 프로그래머인 켄 슈벤케가 업로드했다. 그는 기사를 보냈을 뿐 정작이 기사를 쓴 건 다름 아닌 로봇이었다. 슈벤케가 2년 전 직접 개발한 이 로봇에 지진 정보를 입력하면 로봇은 알고리즘에 따라 관련 자료를 추출한 뒤 미리 정해진 탬플릿에 따라 기사를 쓴다.

로봇이 쓴 속보 기사에 BBC 등 전 세계 언론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30년 안에 없어질 직업’에 기자를 포함시킨 언론사도 있었다. 정작 슈벤케는 “기자의 업무를 보충하는 수준이며 누구도 직업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로봇 저널리즘’이 성큼 다가왔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로봇이 퓰리처상을 받는 건 아닐까?’ 어쩌면 기자부터 직업을 바꿔야 할 지 모르겠다. 단순히 알고리즘에 따라 기사를 쓰는 로봇에서 나아가 스스로 기사 콘셉트를 정하고, 취재 방향까지 생각할 수 있는 로봇이 나온다면 일자리를 잃게 될 테니 말이다. 머나먼 얘기라고 안심할 수도 없는 처지다. 얼마 전 일본에서 감정까지 읽어내는 지능형 로봇이 등장했다. 일본 통신회사 소프트뱅크는 6월 5일 인간과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느끼는 지능형 로봇 ‘페퍼’를 선보였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페퍼라고 합니다. 손 회장님, (인사는) 이걸로 충분할까요?” 발표회장에서 처음으로 말문을 연 것은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이 아닌 흰색 바디를 가진 작은 로봇이었다. 페퍼는 최신 음성인식 기술과 감정인식 기능을 탑재해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춘 로봇이다. 키는 121㎝, 몸무게는 28㎏이다. 한 시간에 최대 3㎞를 이동할 수 있다.

핵심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 최초의 로봇이라는 점이다. 원래 로봇은 프로그래밍에 따라 행동하지만 페퍼는 인간의 감정을 인식하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기능을 가진 로봇을 지향한다. 발표회장에서 손 회장과 나눈 대화는 애플리케이션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것이었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유대화도 70~80% 정도 가능하다는 게 소프트뱅크 개발자들의 설명이다.

소프트뱅크와 프랑스 알데바란 로보틱스가 공동으로 개발한 페퍼는 ‘감정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기쁘고, 고맙다는 감정을 인식하고 그 감정을 수치화해 학습한다. 각각의 개체에서 얻은 정보는 클라우드 상에서 다른 페퍼와 공유해 보다 빨리 성장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페퍼는 더 똑똑해진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손 회장은 “어릴 적 철완 아톰을 보았는데 아톰은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그런 감정을 가진 로봇이 있다면 좋겠다고 줄곧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직 완전한 대화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인공지능 기술도 갈 길이 멀지만 보급형 인공지능 로봇 시대를 처음 열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페퍼’ 로봇 200만원대

페퍼는 단순히 시범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내년 2월에 본격적으로 시중에 판매된다. 페퍼는 이미 소프트뱅크 플래그십 매장인 긴자점과 오모테산도점에서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 고객에게 농담을 건네거나 춤을 추기도 하는데 인공지능에 의한 자유 대화도 가능하다. 가격은 19만 8000엔. 우리 돈으로 200만원 정도다. 지능형 로봇 1대를 200만원에 팔면 당연히 적자다.

하지만 손 회장은 “우선 컴퓨터 정도의 저가격으로 판매해 보급 확대에 주력할 것”이라며 “이익은 나중에 거둬도 된다”고 말했다.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프트뱅크는 세계에서 가장 싸게 좋은 것을 만든다는 중국 폭스콘과 손을 잡았다. 일단 시장을 선점하고, 로봇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경험을 공유토록 한 뒤 더 나은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한다는 게 손 회장의 전략이다.

페퍼 공개 사흘 뒤 영국에서 또 하나의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영국 레딩대는 ‘유진 구스트만’이라는 슈퍼컴퓨터로 구동되는 대화 프로그램 ‘유진’이 영국 왕립학회가 실시한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튜링 테스트는 1950년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고안한 것으로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 검증하는 테스트다.

심사위원이 컴퓨터와 문자로 5분간 대화하고 심사위원의 30% 이상이 상대가 인간인지 컴퓨터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본다. 이제껏 컴퓨터든 기계든 이 테스트를 통과한 프로그램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 튜링 테스트에서는 심사위원의 33%가 유진이 기계임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시험’을 통과한 첫 인공지능의 등장에 전 세계 언론이 호의적인 반응을 내놓은 것과 달리 전문가의 평가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프로그램 안에서 ‘유진’은 13세 수준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설정돼 있는데 실제로 유진과 대화를 해보면 대화 자체에는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몇몇 질문에는 엉뚱한 답을 내놓거나 모르는 질문을 하면 답을 피하기도 한다.

언제부터 안경을 썼냐는 질문(유진은 안경을 썼다)에 자신은 안경을 쓰지 않았다고 답하거나,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다고 해놓고는 우크라이나에 가본적 없다고 답하는 등 오류가 제법 많다. 원활한 채팅을 위한 프로그래밍의 결과일 뿐 유진이 실제 인공지능 또는 인간의 뇌에 근접한 사고 능력을 가졌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뇌 정확히 이해 못하면 인공지능 ‘거기서 거기’

인공지능 로봇이 여는 새 미래가 성큼 다가온 건 사실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페퍼나 유진이나 아직 초보적인 단계다. 여태껏 공개된 로봇 중 어떤 것도 아직 제대로 걷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넘치는 지식을 흡수해 똑똑하긴 해도 인간과의 대화는 원활하지 않다. 진짜 인간처럼 생각하고 판단한다기 보다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사람처럼 보이거나,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흉내를 내는 정도란 의미다.

인공지능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인간의 지능이 가지는 학습, 추리, 적응, 논증 따위의 기능을 갖춘 컴퓨터 시스템’ 이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범주가 달라진다. 좁게 보면 인간의 평소 습성이나 패턴을 그대로 구현하는 기술(도우미형)을, 넓게 보면 정말 SF 영화에 나오는 듯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친구형)을 의미한다.

6월 14일 문화과학 석강 프로젝트 ‘문화의 안과 밖’ 강사로 나선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는 “만약 과학의 발달로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등장한다면 그들에게 투표권을 줘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임의대로 로봇의 스위치를 끄려고 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말한 인공지능이 딱 후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건 아직 멀었다. 생각을 문자나 말로 표현하는 인간과 달리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말, 글 등의 정보를 수집해 생각이란 걸 만든다. 인간과 같은 수준의 인공지능을 구현하려면 인간의 뇌 구조부터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현재 기술로는 무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인공지능은 현재의 IT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실제로 돈이 되는 것 역시 이 분야다.

예를 들어 A씨가 인공지능 로봇 B와 함께 산다고 하자. B는 A씨의 평소 생활을 학습하고, 기억한다. A씨가 피곤할 때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하는지 파악해 그에 맞게 말을 건네고, 반응한다. 오래 함께 할수록 더 많은 정보가 누적될 것이고, 로봇의 소프트웨어적 정확도는 더욱 높아진다. 페퍼는 그 초기 단계의 로봇이다.

이런 기술은 자연히 전자제품·자동차 등에 응용될 수 있다. 구글이 연구 중인 무인 자동차 역시 이런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 카메라·GPS 등 하드웨어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운전 기사가 해석해 어떻게 운전할 지 결정한다.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긴급한 순간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는 게 과제지만 기술적인 준비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인공지능 국책연구소 하나 없는 한국

이처럼 인공지능의 부가가치는 엄청나다. 로봇뿐만 아니라 기계 등 다양한 산업, 제품에 적용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전 세계 각국 정부나 글로벌 기업이 앞다퉈 연구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글은 세계 최고의 로봇 회사들을 잇따라 인수했고,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은 이미 전 세계 병원에서 환자를 만나고 있다.

세계는 뛰는데 우리는 걷는다. 우리나라엔 아직 국책 인공지능연구소가 없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은 일찌감치 인공지능연구소를 만들어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부 대학 연구소에서 프로젝트 단위의 사업을 수행하는 게 전부다. 기업들의 대처도 아쉬움이 많다. 한 교수는 “인공지능은 장기적으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라 삼성이든 LG든 대기업이 치고 나가줘야 하는데 도통 준비가 없다”며 “특허 등 향후 비용 문제까지 고려한다면 지금이라도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1243호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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