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한국의 현주소 - 가능성은 있는데 결과물이 없다 

개별 기술 훌륭해도 합치는데 어려움 … 빈약한 투자, 열악한 인프라도 걸림돌 

박성민·장원석 이코노미스트 기자

▎충남 부여에서 6월 19일 한국로봇종합학술대회가 열렸다. 메로시리즈에 방문객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1. 특정 장소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준다. 잠깐 생각(연산)을 하는 듯하더니 컴퓨터 모니터에 사진과 똑같은 화면이 뜬다. “당신이 말하는 게 이곳이 맞느냐?”는 질문이다. “맞다”는 명령어를 입력하자, 다리 역할을 하는 두 개의 바퀴가 바쁘게 움직인다. 복잡한 구조의 한양대 ITBT관 6층을 최단 거리로 주파한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사람이나 다른 물체가 막으면 재빨리 우회로를 찾는다. 보여준 사진과 동일한 장소에 도달하자 자신의 역할을 다한 듯 멈춰 선다.

서일홍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이다. 인간의 눈 역할을 하는 카메라 렌즈가 특정 장소를 디지털 선의 형태로 바꿔서 기억한다. 고가의 레이저 장비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로봇에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레이저 장비 못지않게 정확하게 장소를 기억하고 구분해 낸다. 다만 아직 개발 중이어서 로봇의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다.

이름도 없이 철골 구조에 바퀴 두 개가 덩그러니 달려있다. 그럼에도 관련 학계와 업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활용 가능성이 커서다. 서 교수는 “이 기술을 로봇에 적용하면 건물 안에서 우편물을 배달하거나,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2. 감정을 표현하는 로봇으로 알려진 ‘메로’가 변신을 시도했다. 메로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10년 동안 개발한 기술이 집약된 로봇이다. 사람의 표정이나 행동을 읽고 반응하며 감정을 표현한다. 행복함과 슬픔·분노를 표정으로 보여준다. 메로는 1~3을 거쳐 ‘메로 S’로 진화했다. 기존의 메로는 물체로 된 얼굴의 형태를 바꿔서 감정을 표현했다. 메로-S는 얼굴 대신 모니터를 장착했다. 화면 안에 있는 얼굴이 표정을 짓는다.

메로시리즈를 만든 KIST 신기술창업전문회사 로보케어 박인준 소장은 “메로의 얼굴을 모니터로 대체하면서 지능형 로봇의 상용화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됐다”고 말했다. 물체로 표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모터가 필요해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체 대신 모니터로 얼굴을 표현하면서 훨씬 낮은 가격에 비슷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다. 또 모니터의 터치 기능을 이용하면 훨씬 더 간편하게 명령을 전달할 수 있다. 음성인식 기술을 접목한다면 공항이나 백화점의 안내원이나 개인 비서로 진화할 수 있는 로봇이다.

얼굴 대신 모니터 장착해 가격 낮춘 ‘메로-S’

컴퓨터 인공지능 ‘유진 구스트먼’이 세계 최초로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고, 일본 소프트뱅크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는 로봇 페퍼를 200만원대에 출시할 계획을 발표했다. 인공지능을 갖춘 보급형 로봇이 등장하고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에 될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자연스럽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국내 인공지능 로봇 기술은 어디까지 왔을까? 카이스트가 개발한 휴모노이드 로봇 ‘휴보’, KIST가 개발한 ‘메로’ 등을 통해 국내도 로봇을 개발 중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에서 개발한 로봇에는 여전히 ‘아직’ 혹은 ‘잠재력’ 이란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상용화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지만, 먼 미래에는 세계를 호령하는 기술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그럴까?

충청남도 부여군의 한 리조트에서 6월 19일 열린 제 9회 한국로봇종합학술대회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로봇학회가 주관하는 이 학술대회는 국내 로봇 기술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행사다. 올해도 많은 교수와 연구진, 정부 관계자가 행사장을 찾았다. 아직 관련 학계나 업계의 규모가 크지 않은 탓에 행사장을 찾은 상당수는 서로 안면이 있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건네는 첫 인사는 ‘페퍼’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정도 기능을 가진 로봇을 200만원대 가격에 팔겠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페퍼가 어떻게 200만원대에 팔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소프트뱅크가 페퍼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공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추측만 가능하다. 시나리오는 크게 3가지다. ‘일본이 고가의 로봇을 200만원대 가격에 양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췄다’ ‘스마트폰처럼 기기에서 다소 손해를 보며 싼 가격에 보급하는 대신 통신·애플리케이션·부가서비스 등을 통해 수익을 낼 것이다’ ‘다가올 로봇 시대에 대비해 페퍼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키우고, 시장 선점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정답인 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시나리오가 모두 국내의 열악한 로봇 시장 환경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인준 소장은 한국과 일본의 인프라 격차를 야구에 비유해 설명했다. 한국의 고교 야구팀은 50여개, 일본의 고교 야구팀은 4000개가 넘는다. 당연히 고교팀이 많은 만큼 좋은 선수가 나올 확률이 높다. 한국은 몇몇 선택 받은 선수들을 엘리트 식으로 키워낸다. 아직까지 국제대회에서 비슷한 성적을 힘들게 만들어내고 있지만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과 일본 로봇 기술 격차가 한·일 야구와 비슷한 방향으로 흐른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은 수많은 기술의 결합체다. 시각·향기·소리·촉감 같은 외부의 자극을 컴퓨터 신호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소프트웨어가 신호를 분석해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판단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신호를 전달하고, 그 신호를 정교한 동작이나 말로 구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진 게 인공지능 로봇이다. 모든 분야의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야 훌륭한 완성체가 나오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예를 들어 한 연구소가 사람의 명령에 따라 기계 팔을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고 하자. 팔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로봇용 모터를 장착해야 하는데 일본에는 이런 모터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이 1000여 개나 있다. 국내에는 겨우 2~3개 업체가 로봇용 팔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용도에 맞는 하드웨어를 만들기도 힘들거니와 만든다고 해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한국에서 개발한 로봇의 가격이 아직 비싼 이유다.

‘메로-S’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메로-S는 여러 부분을 개선해 메로3보다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도 로봇을 양산할 수 있는 시기를 앞당겼다는 자부심도 있다. 그러나 메로-S의 가격은 2500만원 정도다. 일본에서 200만원짜리 로봇을 출시해버리니 다소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박 소장의 말이다.

개발에만 신경, 수익에 대한 고민 없어

국내 로봇 사업은 10년 넘게 개발에만 매진할 뿐,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다. 카이스트가 자랑하는 ‘휴보’는 연구용으로 8대 정도가 팔렸고, ‘메로-S’ 역시 연구용으로 3대가 팔렸다. 지금까지 쏟아 넣은 개발비를 생각하면 밑지는 장사다. 물론 지금까지 축적된 기술로 더 경제성 있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다.

문제는 개발자들이 이 로봇이 어떻게 사용되고, 어디서 돈을 벌 수 있을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평가원 박현섭 로봇PD는 “페퍼는 로봇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려고 한다는 점에서 로봇 산업계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시작도 못한 고민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그저 먼 미래에 빛을 볼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박 로봇PD는 “로봇의 파급효과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계 로봇 시장의 규모는 약 13조원이다. 삼성전자의 매출이 200조원이니 아직 그리 큰 시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세계 많은 국가가 로봇에 주목한다. 로봇 자체를 팔아서 수익을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 로봇이 만들어내는 제2, 제3의 시장을 노리는 것이다.

멀리 보면 로봇이 국방을 책임지고, 로봇이 노인들을 간병하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가 올 지 모른다.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만들고, 전에 없던 문화를 창조해낼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세계 경제를 뒤흔든 것처럼 로봇이 가져올 변화를 유심히 살펴 비즈니스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게 박 로봇 PD의 설명이다.

어떤 로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은 정교한 기계 제어 기술을 앞세워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은 의료·구조·농업·국방 등 특정 영역에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을 주로 만든다. 국내에서는 아직 ‘어떤 로봇’을 만들지는 않는다. 정부의 역할이 아쉬운 부분이다.

한국로봇학회장을 맡고 있는 송재복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정부에서도 미래 로봇 기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지원을 하고 있지만 다소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큰 방향이나 비전이 없어 프로젝트 단위로 연구개발 지원금이 쓰인다. 여러 분야의 기술력은 쌓여 가는데 완성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

인공지능이라 로봇 분야에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예산이 얼마인지, 앞으로 얼마를 더 투입하는지 묻자 취재과정에서 만난 거의 모든 전문가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연구개발투자가 아주 긴급히 필요한 분야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꼽고 있지만 아직 전략적인 움직임은 안 보인다. “정부가 추진하는 로봇 관련 로드맵 수립 계획에 여러 번 참여했다.

로봇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단 2~3번의 미팅을 갖고 결과물을 만든다. 당연히 비전이나 철학, 목표를 고민할 여력이나 시간이 안 된다. 제대로 된 로드맵을 만들려면, 정부기관·공학자·경영학자·사회학자·철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해야 한다.” 송 교수의 말이다.


▎서일홍(오른쪽) 교수가 6월 18일 한양대에서 카메라 렌즈로 공간을 인식하고 기억해 찾아가는 로봇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개별 기술 뛰어나도 공유가 안 돼

먼 길을 돌아 다시 최초의 질문을 던져봤다. “국내의 인공지능 로봇 기술은 어느 정도인가?” 기자의 질문에 전문가들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기술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몇몇 분야에 있어서는 오히려 일본이나 미국보다 뛰어난 기술도 많다. 그런데 결과물이 없다.

송재복 교수는 “국내에 흩어진 기술을 모으면 페퍼보다 훨씬 훌륭한 로봇도 만들 수 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일홍 교수는 “전국 각지의 대학 연구실이나 여러 연구소에서 로봇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데 그 기술들을 한 데 모으는 일이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된다. 한국에서는 구슬을 만드는 일보다 꿰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국내 로봇 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다. 미국은 오픈소스 생태계가 잘 꾸려져 있다. 누군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면 여러 집단이 공유하는 사이트에 소스를 공개한다. 그 소스를 바탕으로 관련기술을 발전시키며, 보다 완벽한 결과를 향해 나아간다.

일반인 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일도 흔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가 풀기 어려운 문제를 취미로 로봇이나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일반인이 해결하기도 한다. 유럽 역시 공동작업에 익숙하다. 한 관계자는 “유럽 개별 국가로 보면 한국보다 로봇 관련 연구소가 많은 나라는 드물지만 여러 국가가 팀을 꾸려서 연구를 하기 때문에 결국은 한국보다 연구소가 많은 셈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중국 등 아시아의 연구 환경은 미국이나 유럽과 다르다. 자신의 연구를 공유하고 서로 힘을 모으는데 인색하다. 대신 일본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여러 기술을 한 곳에 모은다. 페퍼가 탄생한 것도 소프트뱅크라는 거대 기업이 뒤를 받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은 이도 저도 아니다.

성과를 숨기고 있다가 적절한 시기에 맞춰 발표하고, 개발한 기술이 경쟁 상대보다 뛰어나다고 홍보하는데 주력한다. 그래야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기업의 펀딩을 받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술을 개발한 대학교가 어느 곳인지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그래야 연구비를 지원해준 학교에 면이 선다.

“페퍼가 과거 PC의 역할 할 것”

앞서 밝혔듯, 지능형 로봇은 수많은 기술의 융합체다. 하나의 연구실에서 눈과 귀를 만들고, 뇌를 만들고, 손과 발까지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기술을 한데 모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가끔 여러 연구소가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한 연구실에서 센서를 만들고, 다른 연구실에서 제어장치를 만들고, 다른 연구실에서 기계를 만드는 식이다. 하지만 이 때도 지나치게 각자 분야에만 몰두한다. 그러니 막상 각각의 결과물을 합칠 때는 규격이 맞지 않거나 프로그램이 연동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공동으로 작업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박인준 소장의 말이다.

최근 정부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분위기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각 대학이 가진 기술과 데이터를 모으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실마다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고, 어느 정도 수준으로 구현이 가능한지를 파악한다. 이후 그 기술에 대한 나름의 분석과 정보를 공개해 모든 연구소나 대학이 공유하도록 하는 작업이다. 보다 많은 연구소와 기관이 서로 협력하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제 준비를 시작한 단계다. 좋은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로봇 관련 전문가들은 곧 등장할 ‘페퍼’가 인공지능 로봇의 개발 속도를 끌어올릴 것이라 입을 모은다. 200만원대 가격이면 대중이 충분히 구매를 고려할 수 있는 가격이다. 불과 20~30년 전, 컴퓨터는 워낙 비싼 탓에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의 개인용 컴퓨터(PC)가 보급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페퍼가 과거 PC의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대는 바뀌는데 국내에선 소수의 엘리트가 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기술 수준을 유지하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고교 야구와 마찬가지다. 이 상태라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1243호 (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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