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 등장하는 피보육로봇 데이비드. 인간에게 양육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위안용 로봇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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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남자가 쇼핑몰을 지나친다. 바로 옆 대형 화면에 그 사람이 가장 필요할 것 같은 광고가 뜬다. 휴가를 갈 때면 그 사람의 성향에 맞는 여행지 광고가 뜬다. 시무룩한 표정이면 즐거운 파티를 소개한다.지하철엔 검표기가 없다. 움직이는 사람의 망막을 인식해 과금한다. 종이처럼 보이는 신문은 속보가 들어오는 대로 새로운 내용으로 바뀐다.
▎에 등장한 로봇 ‘써니’. ‘자율’을 알아버린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을 뛰어넘는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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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곳에 컴퓨터 가 장착되고 인공지능이 이를 통합 관리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그린 미래 사회다.#2. 집안에서도 발달된 인공지능이 강력한 능력을 발휘한다. 가족의 건강과 체중에 따라 주문해야 할 식료품을 냉장고가 자동으로 주문한다. 우유의 유통기한과 소비량 등을 판단해 늘 신선한 식재료가 냉장고에 가득 차도록 인공지능이 식재료를 관리한다.화장실 변기는 가족의 몸 상태를 늘 점검해 병원에 정보를 전달한다. 인공지능이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해 의사에게 가족의 몸 상태를 깔끔한 리포트로 전달한다. 영화 <스텝포드 와이브즈>에 나온 모습이다.
수십 년 전 영화에 나온 로봇이 현실로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은 늘 영화 한 장면에 PPL로 협찬 받은 상품을 슬쩍 끼워 넣는다. 과학영화(Sci-Fi)에는 협찬 받을 수 없는 제품까지 끼워 넣는다. 아직 시판되지도 않는 미래 상품들이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가 쓴 종이로 된 1회용 전화기는 물론 <스텝포드 와이브즈>의 니콜 키드먼이 쓴 주방 로봇 등이다. 먼 미래에나 등장할 것 같은 제품들이지만, 사실 실리콘밸리 등에서 이미 개발을 마치고 상용화를 준비 중인 것들이다.한 걸음 더 나가면 인공지능 로봇이 있다. 미래 첨단 제품을 개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두 가지, 인공지능과 로봇을 한목에 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영화에는 다소 먼 미래에나 나올 법한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리 멀지만은 않다. 이미 소프트뱅크의 페퍼 같은 제품이 수십 년 전 영화에 그려진 적도 있기 때문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한 인공지능 할(HAL9000).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살해하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상징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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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 역시 과거 과학영화에서 제안한 기획방향과 제작의도를 상용화시킨 사례다. 영화에 출연한 인공지능 로봇의 모습을 보면 페퍼 이후 나오게 될 다양한 제품도 미리 예상할 수 있다.기계와 인간을 구분하는 ‘튜링테스트’를 처음으로 다룬 영화는 1982년에 개봉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다. 겉으론 인간의 모습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생체 로봇들이 인간 세계에 잠입해 형사들이 이들을 찾아 제거한다는 이야기다.인간처럼 피와 살을 가지고 있고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는 로봇을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다. 이 때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수사기법으로 튜링테스트가 나온다.실제 튜링테스트가 제안된 것이 1950년이니 32년 만에 영화로 제시된 것이다. 우연히도 다시 32년이 지난 2014년 유진구스트만이 실제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원작자 필립 K. 딕은 인공지능 로봇도 미래에는 자아에 대해 사고하고 생존을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봤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인공지능인지 인간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될 정도로 발달한다는 것이다.로봇 제작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아이작 아시모프는 과학소설 <바이센테니얼맨>을 지었다. 1999년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인간을 위해 복무하는 가사전담 로봇 앤드류 마틴(모델명 NDR-114)을 다루고 있다. 마틴은 청소·요리·빨래 등등에 능숙하다. 인간의 하인으로 주인이 편안한 가정에서 지낼 수 있도록 모든 능력을 발휘한다.인간은 하기 싫은 모든 일을 마틴에게 떠넘길 수 있다. 인간은 가사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가족이 된 마틴은 심지어 돈까지 벌어다 준다. 작품을 만들고 자녀들의 인성을 함양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하다. 인간에게는 노동력뿐 아니라 감정적인 만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세탁기는 편리하지만 인간에게 유대감을 주지는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인공지능 로봇의 역할을 하인에서 가족으로 확대한 영화가
다. 영화에 등장한 로봇 데이비드는 어린 아이다. 데이비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다만 보육을 받는다. 인간에게 자식을 기르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위안을 주기 위해서다.인간의 노동을 더는 데 활용되는 로봇이 아니라 순수하게 유희와 즐거움을 목적으로 로봇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뿐만 아니라 에 등장하는 로봇은 인간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감성적 충족감을 더 줄 수 있고, 실제 그런 방향으로 로봇들이 만들어지고 있다.인공지능이 장밋빛 미래만 그리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과학영화들은 인공지능 로봇이 만들어지는 세상을 암울하게 그린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가치는 상실되고 결국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테크노포비아’를 자아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극대화시킨 영화다.제작 당시로 봤을 때의 미래(2001년)를 예상한 이 영화는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에 장착된 인공지능 컴퓨터 할(HAL9000)의 이야기다. 컴퓨터 고장을 의심한 우주인이 컴퓨터를 정지시키려 하자 할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우주 밖으로 내던져버린다. 할의 논리회로가 스스로를 방어하고 인간을 속이도록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로봇에 굴복한 인간세계인공지능이 인간을 해칠 수 있는 원인은 ‘자율’에 있다. 인간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알아서 판단·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본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그만큼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아시모프 원작 은 인공지능의 자율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로봇이 모든 노동력을 담당하는 시대, 프로그램 오류를 일으킨 한 로봇이 자유를 갈망한다. 자아를 자각한 변종 로봇은 자유를 쟁취하고 인간을 정복하기 위해 혁명을 일으킨다.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지닌 로봇 앞에 인간세계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는 설정이다.인공지능 로봇 연구자들은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 혹은 그 이상으로 발달된 로봇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과학영화 제작자들은 늘 뚜렷한 한계를 긋고 있다.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은 개발될 수 없고, 개발된다면 이미 인공지능과 인간을 구분할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그만큼 발달하기에는 아직은 먼 미래 이야기일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