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오 헨리作 <마지막 잎새>의 ‘노시보 효과’ 

오 헨리作 <마지막 잎새>의 ‘노시보 효과’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마지막 잎새’는 마지막 희망을 상징하는 비유로 종종쓰인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희망의 상징물도 된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는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단편 중 하나다. 오 헨리는 가명이다. 그의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 여느작가가 그렇듯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일찍 어머니를 잃으면서 삶이 꼬였다. 스물 아홉이던 1891년 오스틴 은행에 근무하지만 출납 결손 문제로 그만둔다. 결국 공금 횡령죄로 3년 간 감옥살이를 한다. 감옥에서 탈출해 온두라스로 도망가기도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경험이 그의 작품에 큰 영감을 준다. 오 헨리는 복역 중 필명으로 단편 소설들을 발표했다. 전국 규모의 잡지에 발표된 것만 7편이다. 그가 출소한 것은 39세. 그는 41세부터 2년 간 100편 이상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그중의 하나가 <마지막 잎새>다.



일본의 장기 불황이 노시보 효과 대표적 사례

배경은 뉴욕 맨해턴의 워싱턴스퀘어 서쪽 한 구역에 있는 그리니치 빌리지다. 이곳에는 예술인의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의 한3층 벽돌집 꼭대기 옥탑방에는 수우와 존지가 산다. 이들은 공동의 화실을 차려 화가의 꿈을 꾼다. 겨울이 다가오는 11월. 폐렴이 존지를 덥쳤다. 상태는 심각하다. 의사는 존지가 살 가능성이 ‘열의 하나’라고 말한다. 존지는 이미 삶의 희망을 잃어버렸다. 침대에 누워 창 밖 담쟁이 덩쿨을 세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사흘 전 100개나 있던 덩쿨잎이 이제는 다섯 개만 남아있다.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존지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집 1층에는 베어먼 할아버지가 산다. 나이는 예순.40년 동안 화필을 쥐어왔지만 걸작을 남겨보지 못했다. 젊은화가들을 위해 모델이 되어주고는 그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예술가다. 수우는 베어먼 할아버지에게 존지의 망상에 대해 얘기하며 울먹인다.

그날 밤 심한 비바람이 분다. 다음날 커튼을 제켜보니 마지막잎새가 남아있다. 존지는 감동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오늘밤은 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잎새는 또다시 간밤의 모진 북풍을 이겨낸다. 마음을 고쳐먹은 존지. 수우에게 닭국물을 줄것을 요구한다. 삶의 기운을 되찾은 것이다. 이날 오후 수우가 존지에게 말한다. 베어먼 할아버지가 폐렴으로 죽었다고. 이틀전 밤 비를 맞고 무언가를 밤새 그렸는데 그것이 지금보고 있는 저 마지막 잎새라고.

존지가 삶의 의욕을 잃게 되는 것은 마지막 잎새 때문이고,삶의 의욕을 되찾는 것도 마지막 잎새 때문이다. 몸이 아픈 환자들은 심리적으로 매우 약해있다. 조그만 희망에도 큰 기대를 품고, 반대로 작은 절망에도 크게 반응할 수 있다.

다섯 잎 남은 잎새를 보며 존지가 말한다. “마지막 한 잎이 떨어질 때는 나도 가는 거야. 나는 사흘 전부터 알고 있었어.” 아무리 좋은 약을 먹여도 환자가 ‘나는 틀렸다’고 생각한다면 실제 약효가 반감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노시보 효과(NoceboEffect)’라고 부른다. 일종의 ‘부정적 자기 예언’이다. 존지를 보고 나온 의사는 말한다. “지금처럼 사람이 장의사 쪽으로 달려갈 기분으로 있어서야 처방이고 뭐고 다 바보 같은 짓이 되고말지. 저 처녀는 낫지 않는다고 아예 마음먹고 있거든.

수우는 존지의 마음을 돌려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하루하루 줄어드는 덩쿨의 잎을 보며 더더욱 낙담한다. 어느새 수우는 덩쿨 잎새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다. 노시보 효과는 기업이나 경제가 자신감을 잃을 때 종종 발생한다. 경쟁시장에서 잇따라 밀리게 되면 신제품을 내면서도 긴가민가하게 된다. “과연 이 제품이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라며 쭈뼜거리다 보면 시장을 선점할 좋은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정부가 경기 부양 대책을 내더라도 ‘경기가 살아나기 힘들 거야’라고 경제 주체들이 생각한다면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기가 반등하기 힘들다. 경제에서 노시보 효과를 극복하는 방법은 적극적인 소통이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처럼 경제 주체의 마음가짐에 따라 소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져 자신감을 잃을 때 노시보 효과가 점령할 수 있다. 정부가 애써 경기 부양 대책을 내더라도 “경기가 살아나기 힘들 거야”라고 경제 주체들이 생각한다면 어떨까. 이럴땐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기가 반등하기 힘들다. 기업이나 소비자는 생산과 소비보다는 저축에 더 전념하게 된다. 1990년 이후 20년 간 진행된 일본의 장기 불황이 딱 이랬다. 아무리 돈을 써도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고, 정부만 재정적자에 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한국 정책 당국도 노시보 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2011년 한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진짜 약을 먹고도 환자가 믿지 못해서 병이 낫지 않는 노시보 효과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4년 정부가 투자활성화법을 발표한뒤 원격진료 허용 등에 대해 의료민영화 논란이 벌어지자 현오석 부총리는 “노시보 효과처럼 괴담이 잘못 전달되면 올바른 정책도 효과를 낼 수 없다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경제에서 노시보 효과를 극복하는 방법은 적극적인 소통이다. 국민에게 경제 상황을 흉금없이 터놓고 함께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모으자고 설득해야 하는 것이 정도다.

노시보 효과의 반대말은 ‘플라시보 효과(plecebo effect)’다.

플라시보 효과란 가짜약을 진짜약이라고 속여 먹여도 환자의 병세가 나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플라시보란 ‘만족스럽게 하다’‘좋아지게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다. 의학이 발전하기 전 환자들을 치료하는 역할은 주술사의 몫이었다. 주술사의 주술이나 무당의 굿, 목사의 기도는 아픈 사람을 종종 낫게 했다. 어린 시절 배가 아플 때 “엄마손은 약손”이라며 어머니가 살살 만져주면 배앓이가 그쳤던 기억을 한번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의학적으로 보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30%가량은 가짜약을 먹더라도 진짜약이라고 믿는다면 통증이 잦아진다고 한다.

가짜약 먹어도 낫는 플라시보 효과

두 번의 비바람이 몰아쳤는데도 담쟁이 덩쿨의 마지막 한 잎은 떨어지지 않았다. 존지는 비로소 말한다. “난 나쁜 계집애였어.내가 얼마나 나쁜 계집애인가를 알려주려고 마지막 잎새를 저 자리에 남겨둔 거야. 죽고 싶다니 죄받을 일이지. 닭국물을 좀줘. 우유에 포도주를 탄 것도 좀 주고. 아냐 손거울부터 줄래?"

포터는 왜 오 헨리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을까. 3년 간 옥살이했던 전력 때문으로 후세 평론가들은 보고 있다. 자랑스럽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내보이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오 헨리는 그리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생전에 딱 한번 신문 인터뷰를 했다. 죽기 1년 전인 1909년이다. 오 헨리는 극적 반전으로 작품의 끝을 맺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식의 구성을 ‘오 헨리 식 결말’이라 부른다.

방송 용어 중에 반전 결말을 가져오는 라디오나 TV 프로그램의 마지막 대사도 오‘ 헨리’라고 부른다.

1253호 (2014.09.1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