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ews

일본의 소비세 2차 인상 논란 - 美 정부 “아베 총리, 조금 미루시길” 

세계 경제 타격 우려에 만류 지방선거 앞둔 아베 내각도 고민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지난 4월 23일 일본 도쿄 긴자의 전통 초밥집에서 열린 만찬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사케를 따라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소비세 2차 인상을 만류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일본 집권여당인 자민당과 아베 내각 안팎에서 소비세 추가 인상 불가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지난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전개된 경기흐름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간다. 소비세 인상에 따른 내수경기 위축은 내각과 일본 은행(BOJ)의 애초 예상 범위를 넘어섰고, 소비지표는 3분기 들어서도 반등다운 반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소비세를 추가 인상한다면 무릎이 꺾이려는 일본 경제를 완전히 주저앉히고 말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우려는 작년 1차 소비세 인상을 결정하던 당시에도 제기됐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번에는 미국까지 가세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3분기 지표 확인 후 인상 여부 결정

지난 10월 15일 미국 재무부는 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일본 정부에 묘한 조언을 했다. ‘일본은 재정건전화 속도를 신중하게 가져 가야 한다.’ 무슨 이야기일까. 아베 내각의 중장기 재정건전화 계획의 핵심은 연금·의료보장 개혁을 통해 재정부담분을 축소하고 소비세를 인상해 세수 기반을 확대하는 것이다. 시기상 미국 재무부의 이번 제안은 일본이 소비세 2차 인상을 서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일본은 지난 4월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한데 이어, 내년 10월부터 다시 10%로 인상하는 방안을 올해 말 3분기 지표를 확인한 뒤 최종 결정하기로 돼 있다.

미국의 이 같은 주문은 ‘세계 경제도 별로 좋지 않은데 소비세를 또 올려 일본 내수를 더 가라앉혀서야 되겠느냐’는 의미로 읽힌다. 미국의 이례적인 주문은 10월 초순 열렸던 G20 재무 장관 회의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영국·프랑스 등은 각 정부가 글로벌 수요 창출을 위해 인프라 구축 등 재정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주요 공격 대상은 독일이었다. 유로 존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해 긴축재정을 고수하며 돈 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독일을 향해 ‘총대를 메고 유로존 경기회복에 나서라’는 압박이었다. 물론 독일은 ‘다들 구조개혁이나 하시라’며 퇴짜를 놓았다.

이런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일본의 추가적인 소비세 인상은 글로벌 수요 창출을 위한 공조에 반한다. 미국·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경제 규모인 일본의 소비심리가 추가 증세로 계속 위축된다면 어쩔 수 없이 글로벌 총수요를 둔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나아가 내수 둔화로 국내에서 소화되지 못한 제품들이 경쟁적으로 해외 시장으로 향하기라도 한다면 글로벌 수요·공급 측면에서 불균형은 한층 더 심화될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일본이 수출 증대에 나서게 되면 주변국 사이의 환율전쟁은 더 심화되고 만다. 이는 독일의 재정을 빼먹고 싶어하는 글로벌 연대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미국 재무부가 하고픈 말은 ‘우리 입장에서 아베노믹스는, 그리고 엔 약세는, 일본이 내수부양에 적극 나선다는 약속을 지킬 때만 용인될 수 있다’가 되겠다. 일본의 재정재건 필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현 시점에선 유연성을 발휘해 달라는 이야기다.

아베 내각 각료들은 소비세 2차 인상에 나서더라도 이에 따른 내수 충격을 덜기 위해 작년처럼 재정을 통한 경기대책을 가동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4월 1차 소비세 인상 때 확인했듯 정부의 경기대책에도 내수 충격은 제대로 흡수되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설사 소비세를 추가로 인상하더라도 작년보다 더 강한 경기대책을 펴달라는 것이기도 하다. 한층 고강도의 경기대책으로 소비 위축을 최대한 상쇄하거나, 소비를 그 이상으로 끌어올려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사실 미국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정치적 부담 탓에 아베 내각에서도 소비세 인상 연기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 지난해 소비세 인상을 결정한 시점에는 임박한 큰 선거가 없었다. 작년 소비세 인상 논의는 그해 7월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에 본격화했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내년 봄 전국 단위의 지방선거가 기다리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온기가 지방과 중소기업으로는 전혀 확산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커졌고, 가팔랐던 엔 약세와 지난 4월 소비세 인상이 불러온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는 저소득층의 고통을 키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표 갉아 먹는 소리가 들리니 증세를 미루자는 이야기가 더 빈번해지고 있다.

게다가 지난 9월 야심차게 출범한 아베 2기 내각은 한 달여 만에 주요 각료의 사퇴로 삐걱대고 있다. 지난 10월 20일 아베 각료 중 2명이 사퇴했다. 마쓰시마 미도리 법무상과 아베 내각의 ‘떠오르는 별’ 오부치 유코 경제산업상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 촉진’이라는 개혁 과제에 맞춰 9·3 개각 당시 전략적으로 발탁한 여성 각료 5명 중 2명이 정치자금 문제 등에 휘말려 동시에 물러나게 된 것이다. 임명권자인 아베의 입지가 말이 아니게 됐다.

특히 총리를 지낸 오부치 게이조의 둘째 딸인 오부치 유코의 낙마는 아베 입장에서 뼈아프다. 이시바 시게루를 자민당 간사장에서 끌어내린 아베가 후임 간사장으로 적극 밀었던 인물이 오부치로 알려질 만큼 그녀에 대한 아베의 지지는 대단했다. 자민당 내 올드 보이들의 반대로 오부치는 간사장이 아닌 경제각료로 입각하게 됐지만 이 역시도 아베의 결단이 크게 작용했다.

오부치가 맡았던 경제산업상이라는 자리는 일본의 정치와 경제구도에서 상당히 중요했다. 바로 원전 재가동 문제를 해결하는 포스트였기 때문이다. 아베가 오부치를 이 자리에 앉힌 것은 오부치 특유의 유연함과 부드러움으로 원전 재가동을 둘러싸고 꼬여 있는 이해관계를 풀어나가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런데 오부치는 낙마했고, 후쿠시마현 지사 선거는 다가오고 있다.

개각 한 달여 만에 각료들이 옷을 벗는 상황은 야당에겐 좋은 공격의 빌미이자, 아베 내각으로선 지지율 훼손을 가져올 위험 요소다. 10월 후쿠시마현 그리고 11월 오키나와현 지사선거에서 자민당이 고배를 마신다면 내각지지율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실제 이런 양상이 전개된다면 아베는 정말 소비세 인상을 연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아베 총리도 연기 가능성 흘려

이를 의식한 듯 아베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소비세 2차 인상의 연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아베 총리는 “소비세 추가 인상으로 일본 경제가 입는 타격이 너무 커진다면 소비세 인상은 의미가 없어진다”며 “소비세 추가 인상으로 경제가 궤도를 이탈해 둔화된다면 세수도 늘지 못해 역효과가 난다” 고 말했다.

다만 소비세 인상 연기는 법개정을 필요로 하는 만큼 의회 내 야당의 반발과 진통을 각오해야 한다. 더구나 정부 재정의 신뢰를 떨어뜨려 일본국채(JGB)시장의 급격한 동요를 불러올 수 있는 잠재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일본 경제가 2차 소비세 인상을 견디지 못할 만큼 다시 허약해졌음을 시인하는 꼴이다. 금융시장 내 아베노믹스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제기될 수 있다. 소비세 인상은 이래저래 말 많고 탈 많은 이슈 임에 틀림없다.

- 국제경제 분석 전문 매체 Global Monitor 특약

1259호 (2014.11.0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