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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 박보미의 ‘도시미술 산책’ ③ 박선기 ‘조합체(An Aggregation) 130121’ - 꿈 같은 낙원의 환상에 빠지다 

화려함·우아함 돋보이는 투명 아크릴조각 특급호텔의 특별함 더해 


‘조합체(An Aggregation) 130121’: 서울신라호텔 로비에 설치, 2013, 박선기
‘호텔은 호화로운 오아시스처럼 깊고 넓어서 시원하다. 참나무로 장식된 객실, 편안한 산들바람과 짙은 녹색의 관목, 금빛 단추가 달린 제복을 입은 웨이터들. 실내는 언제나 4월의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천정은 여름 하늘에 구름이 둥둥 떠도는 풍경이 수채화로 그려져 있는데 현실에서처럼 사라질까 봐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중략)…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해 한적한 호텔에 숨어든 안목 높은 소수의 손님들은 인간의 지혜와 기술이 제공해 주는 산과 바다의 기쁨을 마음껏 즐겼다.’(오 헨리 단편집 <낙원에 들른 사람들> 중에서)

서울신라호텔의 외부는 고풍스럽고도 단순하지만, 로비는 화려합니다. 천정에 매달린 수만 개의 오브제들이 눈부시게 빛나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화려하면서 우아한 박선기 조각가의 작품 ‘조합체(An Aggregation) 130121’입니다.

조합체 130121은 호텔신라의 전체 분위기를 잘 상징합니다. 기본적으로 호텔은 쾌적한 숙박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어둑한 조명과 주의 깊게 선택된 시그니처 향기가 섞인 부드러운 공기는 방문객들의 마음을 은근히 고조시킵니다. 늘 똑같은 일상과는 확연히 분리된 공간이죠.

믿고 싶은 거짓말 ‘별도 달도 따줄게’

조용하고도 민첩한 호텔 직원의 정중한 인사는 내가 매우 귀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금빛 단추 제복을 입은’ 이들 위에서 반짝이는 작가의 작품은 특급 호텔을 찾은 이들의 설레임과 기대감을 한껏 증폭시킵니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과 조명에 반사되어 은하수처럼 끊임없이 반짝이는 투명한 조각들. 어찌나 황홀한지 마치 연애 초반 남자들이 ‘널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도 따줄게’라는 달콤한 속삭임이 언뜻 이뤄진 것 같습니다.

호텔 역시 그런 무언의 암시를 풍깁니다. ‘여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분을 모시는 곳입니다. 당신은 이제 최고의 대접을 받을 거예요’라는.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진짜 별을 따올 수 없단 건 알지만 그래도 못내 믿고 싶은 그 약속처럼요. 저 반짝이는 작품도 실은 낚싯줄에 매달린 플라스틱 조각들이지만, 영원히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나 은하수로 믿고 싶어집니다. 이는 도저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환상이라도 언젠가 기적처럼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요. 게다가 이곳은 꿈같은 낙원의 환상을 파는 곳이니까요.

낙원에 들른 사람들을 환영하는 이 작품을 만든 작가는 조각가 박선기입니다. 사실 일부러 작가의 이름을 찾아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로 기존의 작품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박선기 작가는 숯을 매달아 묵직함과 가벼움, 중력시점의 왜곡 등을 표현한 아티스트로 유명합니다. 낚싯줄로 오브제들을 매달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존 작품과 화려한 이 작품은 꽤 대조적인 느낌을 줍니다.

공중에 매달린 수많은 투명 아크릴 조각들은 공기의 흐름과 간접 조명에 의해 거대한 샹들리에처럼 보입니다. 자연에서 온 소재이자 안으로 응축된 에너지를 가지는 숯의 성질과는 반대로 인공적인 아크릴은 빛을 투과하고 밖으로 튕겨냅니다. 호텔이 원하는 장식성,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은 기존의 자연에 대한 사색, 소박함과 반대되는 것이니, 작가가 해결해야 했을 고민이 만만찮았을 것 같습니다.

그 해답으로 작가는 소재를 바꿔 인공물을 자연미(은하수나 별처럼)로 보이게끔 했습니다. 이로써 장식성을 극대화 하면서도 그 한없는 가벼움을 밀도감으로 바꾸고, 착시의 유희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감동을 이끌어 냈습니다. 일관성 측면을 제외하고 보면, 이 공간과는 참 잘 어울리는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단편집 <낙원에 들른 사람들>에 방문한 주인공은 상류 사회의 옷 매무새와 몸가짐을 가진, 호사스런 호텔과 매우 잘 어울리는 귀부인이었습니다. 그녀가 대부호의 딸이며 여러 나라를 조종하는 국제적 인물이란 소문도 돌았습니다. 그런데 소설 마지막에 그녀는 한 남성에게 고백합니다. 실은 자신이 양말가게에서 주급 8달러를 받고 일하는 점원이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이곳에서의 휴가를 위해 쥐꼬리만한 주급을 일 년 내내 악착같이 모았던 겁니다. “새벽 7시에 침대에서 기어 나오는 대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서 최상의 음식을 먹고 다른 사람의 시중을 받고 싶었어요. 단 며칠 만이라도요. 이제 제 소원은 이루어졌어요. 제가 평생 가지고 싶었던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귀한 한 사람이 되고 싶은 내밀한 소망

왠지 작품 속 그녀를 속물이라고 비웃고 싶지 않습니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중요한 존재란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하잖아요. 우리는 모두 남들에게 귀하게 대접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때로 존재감이 흔들릴 때, 스스로에게 위로가 될 만한 선물을 하기도 합니다. 사소하게는 식사보다 비싼 커피나 고급 디저트를 먹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요. 꼭 필요한 것도 아닌 제품들이 그토록 잘 팔리는 이유엔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픈 인간의 나약하고도 불가항력인 소망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와아아~!” 엄마 손을 붙잡고 간신히 걸음마를 시작한 꼬맹이가 천정의 작품을 보고 탄성을 지릅니다. 쓸데없이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제 옆으로, 순수하게 경탄만이 담긴 해맑은 목소리가 빛 조각들에 반사되어 공기 중에 눈부시게 흩어집니다.

박선기: 아시안 컨템포러리 아트 분야에서 유명한 설치미술가. 시점과 원근법의 차이를 활용한 부조작품이 대표적이다. 1994년 중앙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4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했다. 아트 뱅크, 뉴욕 ARK Restaurant Corp, 아트파크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작품 감상할 수 있는 곳: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49 서울신라 호텔 로비

서울신라호텔은 매년 12월이면 박선기 작가의 작품을 로비에 전시한다. ‘조합체 130121’은 박선기 작가와 서울신라호텔이 여덟 번째로 선보인 콜라보레이션 작품이다. 매년 로비에 전시되는 작품은 전체가 교체되는 해도 있지만, 일부만 바뀌는 해도 있다. 올해도 12월 초·중반 다시 작품이 바뀔 예정이다. 전시 작품은 박 작가와 호텔신라 디자인팀이 조율해 결정한다. 연말연시 호텔을 찾는 손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는 느낌으로 12월마다 작품을 선보인다는 게 서울신라호텔의 설명이다. 이 밖에도 서울신라호텔은 호텔 내·외부에 49개의 예술품을 전시 중이다.


박보미: 문화예술 기업 ‘봄봄(vomvom)’ 디렉터.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국제디자인대학교대학원(IDAS)에서 미디어디자인을 공부했다. 영화미술, 전시기획, 큐레이팅, 미술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이다. bomi1020@gmail.com

1260호 (2014.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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